아들을 보내야 했던 나쁜 엄마
작년부터 아들이 아들 노릇을 한다.
엄마 생일도 챙기고 어버이 날도 챙긴다.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좀 늠름해졌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말을 참 이쁘게 하는 아이였다.
배우지도 않은 말을 어떻게 저렇게 이쁘게 할 수 있을까? 놀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두번째 이혼했던 해, 크리스마스였다.
아이들의 선물을 준비했었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묻는다.
'엄마는 어떤 선물 갖고 싶어요?'라고.
그래서, 너희가 너희 돈으로 엄마에게 선물할 수 있을 정도로 자라면, 너희가 엄마에게 사주고 싶은 걸 사주면 되지 않을까? 아직 큰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때였다.
딸아이는 '엄마는 명품 백 사드리면 좋아할 것 같은데요?'라고 했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누나가 말을 하자 마자, 아들이 말했다. '엄마는 좋은 아빠가 가장 좋은 선물이겠지!'라고 했다.
자기가 할 수 있으면 좋은 아빠를 선물해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벌컥 눈물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아마도 흰자위가 벌겋게 충혈된 것을 아이가 봤을 것이다.
그런 아들을 나는 애들 아빠에게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딸은 중3이 되었다.
이제 딸은 공부에 집중해야 할 때인데, 내가 신경을 써주지 못해서 딸의 스트레스가 심해져갔고, 그 스트레스는 아들을 향했다. 딸은 자기를 통제하지 못하고, 아들을 통제하며 스트레스를 아들에게 전가시켰다. 아들은 누나보다 덩치가 작았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까지는 누나가 시키는대로 했었는데, 이제 자기 머리도 커졌다는 것을 누나에게 과시하고 싶어했다. 더이상 참지 않겠다며, 자기를 건드리면 죽여버리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금이 간 남매의 상처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문제해결을 할 수가 없었다. 문제해결을 하려면, 최대한 많은 시간을 아이들에게 쏟아야 하는데, 내 일이란 게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전국으로 대중강연을 다니다 보니, 지방에서 1박을 하고 올 때도 있고, 밤늦게 들어와서 아침 일찍 나가는 때가 많았다.
이제 사춘기가 된 아들은 누나에게 절대 지지않을 각오가 되어 있고, 억눌렀던 상처의 모든 감정을 폭발할 기세였다. 어느 날, 둘만 놔두고 나간다는 것이 한계에 이른 날이 왔다.
그래서, 가족회의를 했다.
'엄마가 생각해 봤는데, 자...하나 제안해볼게.
이렇게 매일 같이 다투고, 엄마가 들어오자 마자 서로를 험담하고, 둘이 죽일 것처럼 몸싸움까지 하니, 엄마는 지켜보기 어렵고, 엄마 없을 때, 무슨 일 생길까봐 불안해서 엄마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엄마는 정말 같이 사이좋게 행복하게 우리끼리 살아도 더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어. 어때?
자. 둘이 잘 지내고, 엄마랑 살기
둘이 잘 지내지 못할거면 누가 아빠한테 가서 살아야 할텐데, 누가 갈거니?,
어떻게 하고 싶어?
엄마랑 여기서 같이 행복하게 살거야? 준범이가 갈거야? 영민이가 갈거야?
엄마랑 같이 여기서 행복하게 살고는 싶은데, 둘은 같이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서로 누나가, 동생이 아빠한테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준범아, 누나는 아빠한테 절대 안간대... 그럼, 엄마가 너를 아빠한테 보낸다고 하면, 엄마는 니가 싫어서 보내는게 아니고, 너희들이 다투다가 사고가 날까봐 걱정되어서 그러는데, 그래도 니가 아빠한테 가면 너는 엄마랑 같이 살 수 없고, 너무 속상하잖아? 서운할테고? 그치?, 그러니까, 누나랑 사이좋게 지낼 수 있어?'
라고 물어도, 아들은 사이좋게 지낼 수 없다고 했다.
차라리 누나랑 여기서 사느니, 자기는 엄마랑 사는걸 포기하고 광주 아빠한테 가겠다는 것이다. 여기 있으면 정말 누나가 사라졌으면 좋겠고, 그렇게 안되면, 내가 누나 죽여버리고 싶다면서 펑펑 울었다.
그렇게 우리는 합의를 봤다.
그리고, 절대 돌려보내고 싶지 않은 아빠에게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아들이 그렇게도 끔찍히 싫어했던 아빠인데, 아들은 아빠를 선택했다.
말도 안되는 선택을 나는 또한번 해야 했다. 모자 지간의 생이별이 되었다. 남매가 서로 떨어져 있는 기간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며 애써 합리화했다.
그렇게 중학교 1학년 말 아들은 광주로 내려갔다.
그리고, 아들은 방학 때마다 올라와 있다가 내려가고, 학기중엔 내가 광주에 갔다가 만나고 올라온다.
이 아이가 올해 고2가 되었다.
올 어버이 날에도 선물을 보내왔다. 손 안마기라며..
'엄마, 손안마기 보냈어요! 엄마는 손을 많이 쓰시잖아요. 그래서 이게 좋을 것 같았어요. 사랑해요 엄마!'
용돈을 받으면, 한꺼번에 다 써버리는 아이가 이제는 엄마에게 선물도 할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
이번 여름 방학에도 올라왔다 갈 것이다.
방학 때만 만나는 남매는 서로를 기다렸다. 그리고, 서로에게 선물도 하고, 이제는 서로를 애틋해 한다.
딸이 어느날 '준범이에게 좀 더 잘해줄 걸 그랬어!'라고 한다.
둘 다 깨물어 아픈 손가락인데,
아들은
내 가슴을 더욱 저리게 하는 아이다. 그래서, 꾹 꾹 눌러 참는다. 눈에 넣어도 안아픈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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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아빠랑 잘 지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잘 지냈고, 중 3 때, 여자친구가 생겼다며, 이제 서울에서 사는 것보다 광주에서 사는데 익숙해졌다. 여자친구가 엄마 만나보고 싶다고 해서, 반갑게 만났는데, 화장기 하나 없는 요즘 아이들 같지 않은 아주 이쁘고 선한 아이였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여자친구와 여자친구 부모님께 받고 있다. 중3때부터 만난 걸로 아는데, 600일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이 그림은 사랑하는 내 아들이 그린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