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하러 온 선생님인데, 만나기 싫어도 오늘 한번만 만나요. 내려올 때까지 안가고 기다릴거에요!"
"이~씨, 귀찮다니까요! 저는 상담 안받아요! 저는 상담받을 이유가 없어요!"
"그래, 상담받고 싶지 않은데, 이렇게 찾아와서 난감학죠~ 선생님도 센터에서 요청받아서 왔는데, A가 짜증을 내니까 당황스러운데요.. A가 상담을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선생님에게 권한이 있는데! 만나보고 결정할게요"
A는 마지못해 아파트 벤치로 나왔다.
A는 지체장애 4급, 4형제 중 맏형이었다. 엄마는 알콜 중독, 아빠는 사망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A는 가족과 관계 맺는 것 조차도 극도로 싫어한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도통 없었데다 대인기피증이 심했다. 그렇다고 정신과 의사의 진단을 받아본 적이 없고 청소년이기 때문에, A를 조현성 성격장애라고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다.
A가 상담을 불신하는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A를 낳기 전주터 알콜중독인 엄마가 지금까지 알콜중독인 엄마가 증독치료, 상담 같은 걸 안받았을 리 없다.
자신도 중2때 상담 받아봤는데 아무 효과 없었다고 했다. 상담자도 신뢰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초생활대상자로 국가 지원으로 상담받는 것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A는 고개를 푹 숙이고, 소매끝을 자꾸 만지작 거렸다. 7월 한여름인데, 긴 점퍼를 입고 소매 끝 고무밴드가 손가락 끝까지 감출 수 있도록 잡아당겨져 있었다.
한쪽 소매 끝을 만지작대는 손등을 보니 아토피가 있는 것 같았다. 하의는 반바지 차림이었는데, 무릎도 아주 오래된 딱지의 흔적이었고 정강이도 긁은 자국이 선명하고 검붉게 탈색되어 최근에 생긴 것으로 보려지지 않았다. 아토피가 심해보였다. 마침, 내 가방 속에 질 좋은 로션이 있어서.. "아토피 같은데, 아... 간지럽고 따갑겠다. 선생님한테 아토피에 좋은 크림 있는데, 발라볼래요? 줄까요?" 했더니,
"저한테도 있어요. 병원에 가면 줘요."
"그치, 병원에서 받아오면 되죠? 그런데, 병원에서 준 크림으로 나을 것 같았으면, 벌써 완화되었을 거 같은데, 좀 심해보여서.."
"더워서 그래요"
"그래, 니가 싫다면 선생님도 줄 수가 없죠!"
A는 귀찮다는 듯이, 나의 연속된 질문에, "아.. 씨"라고 했다.
A에게 말을 낮춰도 되겠냐고 묻고, A가 수락해서, 좀 더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자, 상담에 관한 건데, 선생님은 의뢰를 받았어. 그래서 선생님은 선생님 일을 해야 하니 너를 만날 수 밖에 없는데, 그냥 딱 4번만 만나자! 응? 어떻게 하면 좋겠니? 그냥 만나서 밥먹고, 선생님하고 얘길 해도 되고 얼굴만 마주보고 말은 안해도 되고. 니가 상담을 안받겠다 하면, 엄마 한번 만나보고 갈게. 엄마 집에 계시니?"
"안돼요. 집은, 엄마 얘기 하면 상담 안받을거에요!"
"아.. 그래? 그럼, 선생님 만나기로 결정한거다? 엄마는 안만날게!
"음......... 엄마 얘기 안하는 조건으로요, 4번만 하면 된다고 했죠?"
"응. 그래. 4번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야지, 우선 4번만 할지, 더 해야할지 그건 4번 만나보고 결정하자. 서로~, 그럼, 다음주에 보자."
A는 태어나자 마자 보육원에 맡겨졌다, 엄마가 알콜 중독이어서 양육을 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후, 초등학교 4학년 때,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와서 보니, 동생들이 있었다. 이미 3형제가 살고 있었다. A가 느꼈을 마음이 고스라니 내 마음으로 전이 되었다.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보육원에서 지낼 때도 마음 편히 지내보질 못했었다. 그러니, 관계를 차단할 수 밖에....
A는 나를 만난지 한 달 만에 긴팔 옷을 벗었다.한쪽 3개의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다.손가락은 짧고 힘이 없어보였다. 손을 나에게 보여줄 용기가 생겼다. 어느날 말끔히 차려입고 나온 모습이 이제는 마음을 열었다는 신호였다. A와의 상담 진행 과정이 다른 청소년들처럼 쉽지 않았지만, 1년의 상담기간을 채웠다.
A는 한번도 누군가에게 격려와 응원을 받은 적이 없었다. 엄마와의 스킨십도 기억에 없다고 했다.보육원에서의 기억도 썩 좋지 않았다. 6살 때, 도둑으로 오해 받은 뒤, '장애인 도둑'이라는 꼬리표가 줄곧 붙어다녔다고 했다. 얼마나 지옥같았을까?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 날, 어떤 여자아이들이 A의 모습을 보고 또래들끼리 손가락질하며 비웃었다고 했다.
A가 장애인이기 때문에정신건강이 나빠진 게 아니다. 장애인이었기 때문에 받은 불이익이 부정적인 자기낙인감이 되어버렸다. A는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가정이 사회가 버린 아이다. 학교 선생님에게조차 격려를 받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형제들과의 사이도 좋을리가 없었다.
대인관계기피증이 있는 충분한 이유들이 있었다. 상담자에 대해 신뢰하지 않고 상담이 의미없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엄마의 영향이 컸다. 알콜 중독인 엄마는 지금까지 여러 번 치료도 받았으나 눈에 띄는 성과가 없었다.
상담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A가 상담자인 나를 신뢰하고 나와의 관계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당당하게 혼자서 영화도 보러갈 수 있고, 인터넷 쇼핑으로 구매하던 것들도 직접 외출해서 구매하게 되었다. 대학 진학을 안하더라도 공부도 좀 해야겠다는 맘을 먹게 되기까지 1년 동안, A에게 있는 낙인감을 깨는데 집중했고, 그 아이는 점점 자신감을 회복했다. A에게 그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의미있는 타자'가 되어주고 싶었다. 우리는 학업과 진로 뿐 아니라, 앞으로 성년이 되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얘기했다.
그런 A가 상담종료시점에서 상담관계가 끝나는 것에 서운함을 넘어 불쾌감과 분노를 표현했다. 결국 선생님도 떠나는 사람 아니냐는 것이다. 감정이 너무나 격해졌다. 상담을 종결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는데, A는 이제 다시는 상담을 받지 않겠다며, 마음의 문에 자물쇠를 여러 개 채워버렸다. 그리고,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렇게 상담이 흐지부지 종결되었다.
한달에 한 두번 정도 나는 A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여전히 받지 않았다.
그러다, 몇 개월 후, 드디어 연락이 되었다. 이제 내 전화를 받기로 했나보다. 마음의 화가 좀 누그러졌나보다. 우리는 다시 연락을 하고 지냈다. A는 졸업 후 운전면허 학원도 다니고 있었고, 다른 기술도 배워볼 생각이라고 했다. A는 훨씬 당당해졌고, 성숙해져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훅 돌아서 연락을 단절했던 것에 대해 좀 미안해 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