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의 빛글 Jul 17. 2023

전화 포비아, 주문도 못한다고?  딸아이의 치유

아는 순간, 치료가 시작된다.

'엄마, 엄마가 걸어주면 안돼요?. 정말 못하겠어!'

통닭 한마리 시키는데도 쩔쩔 맨다.

'엄마, 뭐라고 말해? 어떻게 말해야 되나? 엄마가 해주면 안돼요? 하.... 진짜 못하겠어!!'

숨을 몇번이나 들이쉰다.


'엄마가 해줄 수도 있지만, 엄마가 매번 해줄 수 없기 때문에, 니가 해야돼. 못하겠으면, 연습해야 돼.'


유아들은 보통 엄마가 전화기를 들면, 곁에 와서 전화기를 뺏어 들고 자기가 통화하려고 한다.

우리 딸도 마찬가지다. 말도 또박 또박 잘하고, 전화기를 무서워 할 일이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 아이가 전화를 못하겠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도 내가 운영하는 모닝독서모임에 매주 따라 나왔기 때문에, 어른들하고 대화나누는 데 친숙했다.

그리고, 성인들과 함께 스피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말하는 훈련이 잘 되어 있었다.

게다가, 교회에서 피드백 훈련을 했고, 집에서도 피드백 훈련을 했기 때문에, 말하는데 주저함 없이 당당했던 아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할아버지댁에 일주일에 몇번씩 왕래했기 때문에, 어르신들을 싫어하지도 않았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오히려, 중학교 때는 길에서 어른들이 뭘 물으면, 친구들은 대답 못하고 자기가 대답했다면서, 왜 친구들은 어른들이 물으면 내 뒤로 숨고 피하지? 하고 내게 물을 정도였다.

학교에서 동아리 회장이 되고, 전국 동아리 발표회에서 사회를 맡을 정도로 말하는데는 두려움이 없는 아이다.  

그랬던 아이가, 갑자기?

전화하는 건 못하겠다고 한다.

 

알고보니, 전화 주문은 늘 남동생한테 시켰다고 한다.

전화기만 들면, 상대에게 뭐라고 얘기해야할지 가슴이 두근거려서 말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딸아이가 중3 이후, 남동생 없이 엄마랑 단둘이 지내다보니, 스스로 전화를 거는 건 부담이 되었나보다.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배달주문 전화 뿐 아니라, AS센터, 하물며 외할머니에게 조차도 말을 못하겠다고 점점 심해져 갔다.

그래도, 연습해야 한다고 엄마가 곁에 있을 때도 일부러 주문전화를 딸에게 걸게 한다. 그 때마다 울먹이면서 내게 미룬다. 그래도 이 엄마는 해 줄 수가 없다. 이건 이 아이가 극복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이유를 모르니 연습을 해야 했다.




하루는 둘이 차분히 얘기를 나눴다.

혹시, 우리가 기억 못하는 일이 있었을까? 왜 전화하는 걸 그렇게도 싫어하게 되었을까? 언제부터일까? 어릴 때, 엄마 강의하러 갔을 때, 엄마한테 전화하면 엄마가 전화 못받고 그래서 그랬나?

그렇게 엄마에게 전화했는데, 엄마가 받지 않거나, 바쁘니까 나중에 전화하라고 해서 거절당한 감정 때문이었을까? 딸의 내면을 탐색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학교 기숙사에 있었고, 주일은 교회에서 나랑 같이 있었기 때문에 그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지 않았고, 사회생활하고 연습하다보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능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스크린 골프 예약을 하기로 했다.

전화 걸어서 예약 하라고 하니, 못하겠다고 숨을 내리 내 쉰다. 엄마가 해주면 안되냐고.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통닭을 시켜 먹을 수가 없어서 포기할 정도로 전화 주문이 어려워서 직접 방문해서 사오는데, 전화 걸기가 가능할 리가 없다.

나는 운전을 하고, 딸은 뒷자리에 앉아 있는데, 뒷자리 앉아 있는 애가 전화하는 게 더 빠르다.

차도 막히고, 복잡한 길인데다, 다음 행선지가 있어서 우리가 잘 모르는 동네에 가서 한게임 하고 가려고 했던거라서 그 지역에 있는 연습장을 검색해야 되니, 스마트 폰 지도를 보면서 운전하고 있는 나보다 딸이 전화하는 게 더 수월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도저히 못하겠다며, 울먹였다. 어제도 전화할 곳이 많아서 여기 저기 전화했는데, 진이 다 빠졌다면서 어제 많이 했으니까, 오늘 엄마가 해줘야 한다며, 자기는 도저히 못하겠단다.


내가 스크린에 전화 예약하고 나서 짜증이 났는데, 막 그 때, 떠올랐다.


이 아이가 왜 전화를 그렇게도 무서워하는지...

그 이유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을 흘리며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영민이 어릴 때, 엄마랑 따로 살 때, 아빠가 엄마한테 전화하라고 윽박지르고 겁박했었잖아? 그 때, 빨리 엄마한테 전화하라고 하면서, 엄마한테 전화하면, 너는 마구 울면서, 아빠가 전화하라고 했다며, ... '

'엄마, 아빠가 계속 엄마한테 전화하라고 하면서, 엄마한테 빨리 돈 보내라고, 안그러면 굶겨버리겠다고'...

'그런 적이 여러번 있었지? 엄마한테 전화할 때, 늘 울면서 전화했잖아~, 그것 때문이었네, 아빠가 윽박지르면서 전화하라고 협박하는데, 너는 하고 싶지 않았던거야, 엄마한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니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닌데, 아빠 말을 전하는게 너무나 싫었던거야, 그 때, 그 공포 때문이네'

했더니,

'설마, 그럴까?' 하더니, 울먹인다.

'응. 그것 때문이다. 그 때 그 일때문이야. 그런데, 영민아, 이제 괜찮아. 그 때랑 상황이 다르잖아. 너는 그 때 어렸고, 니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전화거는게 힘들었던거야, 그래서, 전화하려고 하면 꿀먹은 벙어리가 되고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크게 내쉬어야 하는거였어. 근데,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다 컸잖아. 그리고, 억지로 통제 못할 상황도 아니잖아! 그 때랑 상황도 다르고, 이제는 니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어! 이제 알았으니까. 괜찮아질거야. 이유는 그거였네. 이제 좋아질거야! 괜찮아. 엄마 아빠 때문이야. 엄마가 강의가 바빠도 전화를 잘 받아줬어야 했는데, 엄마가 미안해. 아빠가 그렇게 너희를 협박해서는 안되는거였어. 그 때, 아빠한테도 말했지만, 너는 어려서 그 공포가 잠재의식 속에 있었던거야......미안해. '

'.......' 딸은 아무대답을 하지 않고, 울었다. 나는 운전을 하면서, 딸은 뒷자리에서 코로 흘러내리는 콧물인지 눈물인지의 정체를 닦으면서, 안도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났다.

통닭 시켜 먹을까 했더니,

'엄마, 나 전화 잘한다!, 이제 전화 잘해!, 그리고, 주문도 잘해!, 이제 안무서워!, 과대표 하면서 전화할 데가 많고 그렇게 하다보니 연습되었나봐. 이제 안그래!'

'그래? 잘됐다!, 거봐, 여러번 반복하면 되잖아!, 그리고, 왜 전화거는 걸 못했는지, 그 원인을 알았기 때문에 치유가 된거야. 포비아가 치료 된거야! 잘됐네! 그니까, 다른 것도 겁먹지 말고. 너는 정말 당당한 아이였거든! 엄마는 그렇게 키웠거든~'

'네~' 씩 웃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는 사망, 엄마는 알콜중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