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반대의 가치관을 맞춰가는 과정
정 반대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
어떻게 잘 맞춰가며 살 수 있을까?
모난 돌 두 개가 만나
부딪히고 깨지며 다듬어진다.
나와 남편은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존재들이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으니
다른 건 당연하다 싶으면서
다름에서 오는 부딪힘이
살아보면 얼마나 수행과 고행이 되기도 하는지
겪어보기 전엔 알지 못했다.
육아에서도
그와 나는 정 반대의 지점에 서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가치 중 하나는
'생각하는 힘'이다.
자신을 인식하고,
독서, 사유, 글쓰기, 대화하며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싶었다.
아이들 안에 '창의성'이라는 씨앗과 재능이 보였고
그런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니
달에 한 번이라도 주말에 도서관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동안 나의 우울과 무기력 등 다양한 이유로
생각에만 머물렀고, 집에서 읽어주는 책 한 권도 힘들던 시기를 보냈다.
조금씩 회복하며 이제는 일상의 힘이 생겼고, 활력도 채워졌기에
올해는 실행해보려 한다.
하지만 남편은
눈 떠서 감는 순간까지
컴퓨터 앞에 게임을 틀어둔다.
참고로 남편은 '겜돌이'블로그를 운영하며
10대, 20대를 게임으로 보냈고, 현재 게임 회사를 다닌다.
그의 일생은 게임 하나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게임과 하나 된 삶이다.
그는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집안일하고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게임을 하거나 핸드폰에 릴스, 유튜브를 보고 있다.
그런 남편에게 내가 제안한 것은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을 5분만이라도 만들어 보자'
'밥 먹을 때만큼은 핸드폰을 보지 말고 대화를 해보자.'였다.
하지만 이 마저도 남편에게는 노력해야 할 어려운 영역이었다.
나는 상대를 앞에 두고 핸드폰에 몰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에
자연스럽고 당연스러운 행동이었지만
남편에게는 신경 써서 지켜야 할 영역이었던 것이다.
나는 '게임'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밤새 테트리스를 하던 중학생 시절이 있었지만
그 시기를 지나니 게임에 흥미가 붙지 않았다.
게임의 중독성을 알기에 애초에 시작하지 않은 부분이 더 크다.
나에게 '게임, 미디어'는
'중독, 집중력 저하, 유익하지 않은'
그런 매체였다.
게임과 미디어가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정서와도 연관이 깊다는 연구 결과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가급적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고,
여기서 갈등은 시작됐다.
남편은 미디어와 게임에 관대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었기에
아이들이 한참 어릴 때
10만 원 초반 대의 갤럭시 탭을 사주기도 하고,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남편이 게임을 하고 있으면
주변에 서서 구경을 한다.
그러면 남편은 한 명씩 게임을 해보게 한다.
게다가 빔프로젝트를 산 남편은
아이들에게 영화와 영상도 심심찮게 틀어준다.
물론 나도 아이들과 영화 보는 시간을 좋아하지만
남편은 과한 미디어 노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책과 친해지기도 전에
저렇게 미디어에 노출시키려는 가상한 노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굳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남편은 아이들과 함께 게임하고 싶다고 한다.
그 마음은 존중하지만
시기가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이 게임을 좋아하게 될 수 있으니 그때 해도 늦지 않다고.
7,8세에는 많이 뛰어놀고, 책 보고 생각하며 집중하는 뇌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내가 정한 틀'이라 한다.
이 밖에도
음식, 경제관념, 중요하다 여기는 것,
주말에 집에 있고 싶어 하는 남편과
나가자는 아이들 등등
무수히 많지만..
서로 다른 두 가치관의 충돌.
잦은 다툼과 반복되는 갈등은 어떻게 화합할 수 있는지.
중간지점을 찾아 조율하는 방법
모두가 괜찮은 합의점이 과연 존재하는지
달라도 너무 다른 저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대화만 하면 다툼이 되니
서로 말을 섞지 않고 공기 같은 존재로 살기도 했다.
그러다 갈등이 시작되면 싸움은 전쟁처럼 커지기도 했고,
더 이상 이대로는 못 살겠다 외치며
이혼을 마음 먹기도 했다.
상대를 이해하기에는
내 안에 걸림이 되는 생각, 마음, 감정이 많았고,
감정이 앞서니 제대로 된 소통과 이해가 어려웠다.
소통의 답답함을 느끼며
1차적으로 선행했던 것은
내 마음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어떤 마음으로 인해
남편에 대한 화와 미움이 올라오는 것인지.
"내가 옳다."
"내 말에 따라야 한다."
내 말에 따르지 않으면 엄청난 분노를 가진 마음이 있었다.
"나는 옳고 바른 길을 안다. 내 방법이 더 옳다.
너는 내 뜻에 따르고 내 말대로 해야 한다."
에고에 담긴 분노와 감정, 생각들을 알아차렸다.
또,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게임은 중독을 유발하고, 유익하지 않다.'
게임, 미디어는 아이들을 망친다.
아이들이 잘 못 될까 두렵다.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
고정관념과 생각, 감정을 인지했다.
나의 감정, 마음, 생각,
고정관념, 틀을 정화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두 번째는
내가 부족했던 점을 인정하고,
그에게 필요했던 부분을 대화하며
대화를 통한
이해, 존중, 조율이었다.
대화만 하면 싸움이 되고
결국 대화단절까지 가게 된 우리가
최근에서야 다시 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서로 가치관이 달라도
양육 공통의 목적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잘 키우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나는 남편의 생각이
'잘못됐고, 틀리다' 생각했다.
내 생각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훨씬 가치 있고, 옳은 방향이라 여겼다.
'내가 맞다. 너는 틀리다'는 생각이 확고할수록
'옳다고 정한 틀과 기준'이 강할수록
상대를 이해하고 조율하는 방향이 아닌
분열하고 갈등하고 배척하고 비난하는
길을 걷게 된다.
이제야 마음으로 받아들인 사실이지만
서로 맞고 틀리고가 아닌
다른 것이고,
각자의 장단점이 있고 다양성이 있으니
아이들에게는 다양함을 경험하게 해 주고
각자의 장점을 취하게 해 주면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나에게 성찰, 독서, 글쓰기, 소통의 유익함을 배우고
남편에게 게임의 즐거움, 다양한 전략을 생각하고, 소통하고,
미디어를 삶에 적용하는 시각을 배우면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다양하고 폭넓은 경험을 하며
각각의 장단점을 스스로 생각해 보고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아 나가면 된다.
대화를 하며 남편이 생각하는 게임의 장점에 대해 듣게 되었다.
게임을 통해 사람들과 함께 모여 전략을 짜고
레벨업을 하기 위해 생각을 하고, 팀을 이끄는 경험도 해보면서
사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게임 회사를 다니며 우리 가족이 먹고살 수 있고,
게임 속 경험 덕분에 스마트 스토어에 진입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도전했다고 한다.
게임도 장점이 있는데
내가 단점만 보고 정해진 틀 안에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의 견고한 고정관념과 생각의 틀에서
스스로 깨고 나와야 함을 느꼈다.
절대적인 것
확고한 것
옳고, 맞는 것
내가 정한 기준과 틀을 깨고 나와
조금 더 다양한 시각과 전체적인 부분을 봐야 했다.
내가 말한
'생각하는 힘'도
독서, 글쓰기, 토론을 제외한
다른 방법으로도 해볼 수 있는 것임을 알아야 했다.
그리고 남편은
게임에 과도하게 집중된 시간을 분배해 보기로 했다.
서로가 가진 생각을 듣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며
내가 가진 생각과 마음을 성찰했다.
스스로 부족했던 부분을 인정했다.
그러니 나아갈 부분이 보였다.
8년간의 무수한 생채기와
관계의 끝을 셀 수 없이 경험하고 나서야
9년 만에 조금씩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고
조율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모난 돌멩이 두 개가
다듬어지고 부드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