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세상과 어른의 세상, 그 경계에서
저녁즈음 딸아이를 데리러 홈스쿨에 도착했을 때, 딸은 모르는 아이와 나란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쯤으로 보이는 장발머리의 남자아이였다. 딸을 뒤따라 남자아이가 서둘러 같이 나왔다.
남자아이는 대뜸 나에게 오더니 우리 집이 궁금하다며 같이 가도 되겠냐는 말을 떨리는 눈빛으로 전했다. 응? 이건 무슨 상황이지?
선생님이 상황을 들으셨는지 교실에서 나와 말을 해주셨다.
"제가 없을 때 아이들이 서로 집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가기로 정했나 봐요.
그래서 우선은 어머님의 허락이 필요하고, 어머님께서 허락을 안 하실 수도 있다고 말해두었어요.
어머님께서 상황이 불편하시면 아이에게 잘 말씀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엄마가 데려오시는 거 아니야?" 물어보니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서 자율적으로 혼자 오고 간다고 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채 무섭게 아이는 겉옷을 빠르게 입으며 딸아이 보다 먼저 문밖으로 나와 신발을 신었다. 일단은 같이 가며 대화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름, 학년, 학교를 천천히 물어보며 내 아이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디선가 본 듯하면서도 아직은 알지 못하는 친구여서 갑작스러운 상황에 조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이 올라왔다. 아이에게 왜 우리 집이 궁금한 거야라고 물어보았다.
'아 길에서 자주 봤는데 우리 집이랑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가 궁금했어요. 그래서 같이 가보고 싶었어요.'
'그랬구나.' 아이의 순수한 의도와 궁금증일 수 있지만 한편의 마음에서는 내가 가진 불안함이 올라왔다.
한 없이 마음을 열고 바로바로 모든 것을 오픈해 버리는 딸아이의 대한 경계와 안전, 그리고 내 안에 존재하는 불안감이었다. 아이에게 어디에 사는지 물어보니 정말 우리 집과 같은 길이었다. 우리 집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간다고 했다. '나와 아이를 자주 봤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집에 가기 전 주차장에 들려야 했기에 남자아이에게 인사를 했다. '이모는 차에서 짐을 빼야 해서 오늘은 여기서 인사하고 집으로 가자. 다음에 만나면 또 인사하자. 잘 가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는 '알겠어요' 대답하며 듬성듬성한 걸음걸이로 멀어졌고, 뒤통수를 바라보던 딸은 크게 외쳤다. '오빠 우리 집은 저기 파란색 지붕 저기야!! 그리고 오빠 번호가 뭐야?' 낭랑한 목소리로 외치는 딸을 만류하며 이 상황에 대한 정리가 필요했다.
우선은 내 안에 불안함이 올라왔음을 바라봤다.
무언가에 노출되어 무방비상태가 되어진 듯한 두려움이었다. 안전에 대한 불안함.
이것은 그 아이 때문이 아니라 내 무의식에 존재하는 마음인데 갑작스러운 상황에 건드려진 것이다.
또, 아이가 아직은 어리고, 사람에 대해 쉽게 믿고 다 열어서 보여주는 것에 대한 걱정이었다.
세상에는 좋은 만남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는 경계와 안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1) 안전에 대한 중요성
누군가 집을 궁금해해도, 우리 집은 소중한 공간이니 쉽게 알려주면 안 돼.
그래서 누군가에게 집주소를 알려주기 전에 꼭 엄마와 이야기해 줘야 해.
2) 사람에 대한 신중함
모든 사람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을 천천히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것이 필요해. 충분히 친해지고 서로의 정보를 오픈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어. 전화번호도 마찬가지야. 엄마도 예전에는 마음이 잘 통하고 처음 만난 사람과도 마음을 활짝 열기도 했는데 이게 나쁜 건 아니지만, 천천히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3) 딸아이의 느낌 존중하기
내 말을 듣던 아이는 "그 오빠 엄청 착한 오빠야!!"라는 말을 했다.
"응, 그럼. 엄마가 하는 말은 그 오빠가 나쁘고 안전하지 않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야.
그 오빠뿐만 아니고, 앞으로 혹시 모를 상황이 있으니 엄마가 미리 알려주는 거야"
나의 노파심이자 불안이기도 하고,
살면서 겪은 두려운 경험이 해결되지 않은 것일 수 있지만
아이에게도 필요한 교육과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번 남자아이를 만나면 인사를 건네고
어른으로서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친구에게는 순수한 호기심과 궁금증일 수 있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의 집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이 때로는 상대가 놀랄 수도 있다고.
누군가는 신이 나서 좋다고 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천천히 알아가며 알려주고 싶은 경우도 있다고.
이런 말을 해주는 게 나으려나? 도움이 되려나?
아니면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내는 게 나은가?
여러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른으로서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과연 이것이 그 아이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아닌지.
아이를 키우며 와닿는 것은
내 아이만 잘 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나아져야 하고
함께하는 사람도 같이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지랖이 되지 않아야겠지만 말이다.
참, 성숙한 어른이 되는 길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다.
매 상황마다 나를 살피고, 아이를 생각하고,
아이와 나에게 필요한 부분을 배우며 나아간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괜찮은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면 많은 고민이 된다.
남자아이를 만나면 인사만 하는 게 나은지,
나의 말에 상대가 느낄 수 있는 부분까지 말을 해주는 게 나은지
이런 것은 아직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