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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고백

속 이야기

by 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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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하얀 종이가 막막하다. 쓰고 싶은 언어가 떠오르면 신난 아이처럼 키보드 앞으로 달려가 시간도 못 느낀 채 쓰고, 고치고, 읽고, 바꾸고를 반복하며 글 하나를 낳는다. 글은 꼭 출산 같다. 글감 하나를 품고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이며 키워내다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일. 살아 숨 쉬는 생명 같다. 마음에서 품고 키워져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세상 밖으로 나온다.


오늘따라 이 탄생의 과정이 무겁다.

사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이 주제에 대해 써야지 했지만 결국 적지 못했다.


매일 글을 쓰는 일은

글감을 생각하고

대상을 사유하고

잘 읽히는 글을 위해 쓰고, 고치는 반복의 과정이다.


때로 힘들지만 글이 주는 유익이 좋다. 쓰는 시간을 사랑하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써보자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예전부터 그토록 찾고 싶던 내가 좋아서 하는 일.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하는 일인 것이다. 나는 글을 배워 본 적도, 책과 친하지도 않았다. 유려한 표현과 풍부한 어휘력도 없지만 쓰고 싶은 마음 하나가 있다. 구체적으로 사례를 들며 생생하게 쓰고 싶지만 이놈의 머리는 기억이 도통 나질 않아 두루뭉술한 글이 아쉬울 따름이다. 언젠가는 나도 생활 밀접형 글을 써 볼 수 있겠지 희망할 뿐이다.


잘하지 못해도

누군가 봐주지 않아도

나는 글 쓰는 시간이 좋다.


글에는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이 있다.


무슨 말을 해도

어떤 생각을 적어도

묵묵히 들어준다.

어떤 비난도 판단도 없이

있는 그대로 다 받아준다.


그 시간의 위로를 받는다.

외로울 때 적었고

힘들 때 글을 잡았다.


생의 파고에 휩쓸려 허우적거릴 때

글을 쓰며 들었다.


'지금의 너를 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분명 길이 있어.'

내면의 지혜로운 목소리였다.


나는

쓰며, 살아났다.


어쩌면 내가 글을 쓰는 진심은

모든 나를 드러내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알아주고 받아주는 사랑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힘들고 지쳐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에도

다짐한 걸 하나도 지키지 못해 스스로가 한심한 날에도

괜찮다며 안아주고 사랑해 주는 마음이 나에겐 간절했던 것이다.


그 마음을 받고 싶어 글을 적는다.

받는 위로가 좋아 글을 쓴다.


그랬구나.

여기, 있었구나.

네가,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었구나.


안아주는 글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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