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설픈 줄넘기에서 배우는 완벽하지 않은 삶

by 호연

어제 긴 고민 끝에 브런치에 주 1회 업로드를 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매일 출석하듯 글도장을 남긴 공간에 월요일만 오겠다고 하니

왠지 모를 감정이 몽글몽글 서려왔다. 이 마음은 뭐지.


마음 한켠을 투명하게 바라보니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서글픔이 보였다.

브런치는 공개적인 곳이니 매일 착실하게 신뢰를 쌓고 싶었나 보다.

앞으로는 매일 노트에 글을 쓰자고 방법을 바꾼 것뿐인데, 나는 나와의 신뢰를 저버렸다 생각한 걸까?


'나 이렇게 꾸준히 노력하고 있어요.'

행동하며 신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나 보다.


누군가에게 신뢰를 주어야 한다는 이면에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굳건히 존재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약속은 목숨처럼 지켜야 한다는 아버지의 신념이 나에게도 강하게 박혀 있었다.


이제는 이 바위처럼 단단한 믿음에서 유연해질 시간인가 보다.


여기서 말하는 유연함은

타인과의 약속이 아닌,

내가 정한 목표, 완벽주의에 관한 부분이다.


스스로 정한

'반드시, 꼭, 해야 한다.'라는 생각에

유연함과 말랑함을 한 스푼 떨어트려 보는 것이다.


목표를 설정하되

방법은 유연하게 수정할 수 있다.

방법 수정은 더 나은 과정을 만들어 가는 시간이다.

나는 그런 시간을 쌓고 싶다.


sunset-8516639_1280.jpg

돌아보면 참으로 오랜 시간 징한- 완벽주의로 살았다.


작은 실수와 실패,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나에겐 죽음과도 비슷한 공포였다. 초등학교 때의 나는 준비물을 빠짐없이 잘 챙겼는지, 혹시라도 빠트린 것은 없는지 하루에도 10번이 넘게 책가방을 확인하던 아이였다. 오랜 습은 흉터처럼 남아 여전히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과정이 소중하다 말하지만 결과를 보며 쉽게 좌절하고 나의 부족한 현실을 마주하면 온몸에 기운이 쭉 빠지기도 한다.


완벽은

이미 더할 나위 없이 완전하고 결점이 없는 상태다.

더 이상 배울 것도, 나아질 것도 없이 결론지어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완벽은 지금의 상태로

정체되어 있다는 의미다.


완벽주의는 자신의 실패와 결점, 흠을 견디지 못하고 인생이 끝났다는 좌절감을 느끼기 쉽다.

결과적으로 보이는 내가 중요하기 때문에 나아지고 노력하는 나는 보잘것없고 하찮은 것이다.

멋진 결과로 하루빨리 나를 증명하고 싶다. 과정 속의 나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무엇이며 부족하고 못난 나를 사랑하기 어렵다.


KakaoTalk_20250126_124030059.jpg

올해 초등생이 되는 둘째가 몇 주 전 줄넘기를 꺼내 들었다.


첫째는 6개월 정도 태권도를 다녀 줄넘기 대회도 참여하고, 나름 줄넘기와 친하지만

둘째는 힘들다며 태권도 참여수업 이후로 가지 않았다. 줄넘기와 대면대면한 사이라 엉성한 폼으로 줄을 돌리고, 발은 엇박자로 뛰어들어 걸리기 일쑤다. 그런 아이를 보며 귀여워 웃음이 나왔고, 아이가 줄을 넘으려는 시도를 보며 그저 하나의 놀이처럼 여기나 보다 싶었다. 발 뒤꿈치를 들고뛰는 법을 몰라 두 발에 온 하중을 실어 쿵쿵 내려찍는 아이의 무릎과 발목이 걱정되어 방법을 알려주지만 아직 그것까지 신경 쓰기에는 어려운지 여전히 쿵쿵 어설픈 줄을 넘긴다.


하루, 이틀, 매일 줄넘기를 들고 어설픈 점프를 시도하던 아이가

어젯밤에 갑자기 "엄마 나 봐바" 하더니

하나, 둘, 셋, 넷........... 열,,,,, 스무 개를 넘겼다.


와.....


체구도 키도 또래보다 작아 더 어려 보이는 아이. 그런 아이가 잘 되지 않는 줄을 넘어보겠다며 매일 줄에 걸리고 다시 쿵쿵 뛰어 보더니 이제는 어설픈 자세로 스무 개를 해내는 모습을 보는 데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한 발, 한 발, 첫걸음마를 내딛을 때의 환희와 감동이었다.


아이는 어떤 마음으로 줄을 잡았을까.

하나라도 뛰어 보자는 생각이었을까.

언니처럼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을까.

그저 재미있어 보여하게 된 가벼운 시도였을까.


아이의 하루하루가

그저 놀이처럼 대수롭지 않았던 시도가

줄을 제법 넘게 되는 순간

소중해서

고마워서

아이를 품에 안았다.


떠올려보니

실뜨기도 그랬고,

한글을 배우는 일도 그러했다.


언니가 가져온 실뜨기에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보이지만

방법을 몰라 옆에서 멀뚱멀뚱 구경만 하던 아이가

어린이집 선생님께 배워 오더니

이제는 헤매는 엄마를 가르쳐 준다.


"와.. 엄마가 살면서 실뜨기를 이렇게 오래 해본 건 처음이야. 너 정말 멋지다.!!"

차분히 집중하며 실뜨기를 오래 이어가는 아이가 멋있어 보였다.


해보고 싶은 건

배워와서 시도하고

잘 모르는 누군가를 알려주는 단계가지 이르는 아이.


이 작은 아이가 걸어가는 세상을 바라보니

우리가 삶에서 발견해야 할 보석은 작은 노력 속에 숨어 있음을 알았다.


못하고 어설퍼도 괜찮은 마음으로 시도하며

'우리는 모두 미완인 상태로 배우고 성장한다.'

이것이 내가 바라 볼 삶의 자세와 소중한 방향이었다.


미완성의 작고 아름다운 아이가

한 없이 부족하고 어설픈 엄마에게 날아와

느끼고 보여주는 보석 같은 세상이 고마워서 벅차다.


작은 미완의 존재는

나의 크고 단단한 바위 같은 두려움을 괜찮다며 어루만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걱정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