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내 목소리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by 호연


어머님,
제 선택을 존중해 주세요.

결혼 9년 만에 처음으로 입 밖으로 꺼낸 말이다.

태연한 척했지만 목소리는 떨렸고, 가슴은 쿵쾅거렸다.

용기 내어 '존중'을 원한다고 말한 순간 단단한 벽 하나를 허물고 나온 느낌이 들었다.


나의 부모님은 신실한 불교 신자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매일 4시에 일어나 새벽예불을 가셨고, 나는 방학이면 아빠를 따라 절에 가곤 했다. 고요한 사찰에서 절을 하는 것도 좋았고, 차분하고 고요한 느낌이 편안했다. 예불을 마치고 나오면 깜깜했던 하늘이 밝아져 있었고, 산속 공기가 주는 맑고 상쾌한 기운은 심장 가득 평온함을 채웠다.


그러던 내가 기독교 집안 며느리가 되었다. 결혼식은 주례 없이 진행하고 싶었지만 시어머니는 목사님의 주례와 기도로 진행하길 바라셨고, 다른 건 몰라도 '교회에 나오는 거 하나만은 약속하면 좋겠다'는 강경함을 보였다. 처음에는 목사님 주례에 불편함을 느낀 아빠였지만 한 스님의 이야기로 생각이 바뀐 건지 '너는 이제 결혼을 했고 출가외인이니 어머님 말씀을 따르라.'며 한발 물러섰다. 결혼식은 목사님의 설교와 예배로 진행되었고, 결혼 후 나는 매주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종교는 개인의 자유인데 내가 왜 그래야 하나'는 반발심이 들었지만 어릴 때부터 어른의 말에는 '네네.' 대답하며 순응하며 살았고,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습관처럼 몸에 배어있었다. '매주 한번 교회에 나가는 게 뭐 어렵겠어'라는 생각으로 무거운 마음을 누르며 그렇게 현실에 순응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불편함이 삐져나왔다.

나는 특정 종교에 국한되고 싶지 않았다.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아니야, 교회 사람들도 다정하고, 점심도 주고, 아이들도 가면 친구들과 잘 놀잖아’라며 교회의 장점을 들어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렇게 8년을 보냈다.


매년 노트에는 종교에 대한 고민이 적혀있었다.

'내 생각을 존중받고 싶은 마음'과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것' 두 가지 선택 속에서 나는 매년 같은 고민을 반복하고 있었다. 작년 오늘 똑같은 고민이 적힌 글을 본 순간 '이 지점'을 들여다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1.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

'살면서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한 적이 있었나?'

어른들 말에 따르고, '~해야 한다'는 삶을 살아오다 보니 나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

거절하지 못하고 내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두려움이 존재했다.

'혼나는 것이 두렵다.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두렵다. 버림받는 것이 두렵다.'

'미움받는 게 두렵다. 욕먹는 게 두렵다.'

'갈등이 두렵다. 평화와 안정이 깨지는 것이 두렵다.'

내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두려움들을 마주하며 두려움을 정화하는 여정이 필요했다.


3. 타인의 기대와 내 선택 사이에서
건강한 경계를 짓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


4. 의식전환

반복되는 고민을 들여다보니, 내 무의식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갈등을 ‘나쁜 것’으로 여겼다. 평화를 유지하고 싶었고, 갈등 상황이 두려웠다.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면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발현되었다. 상대의 감정까지 책임지려 했다. 상대가 화를 내고, 감정적으로 몰아칠까 봐 두려웠다. 조용히 참고, 동조하며 웃는 아이가 되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1.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을 스스로 존중하는 것.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뭐지?'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교회에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과 가정의 평화를 위해 교회를 가는 두 선택지 사이에서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도 고민했다.


타인의 기대와 요구로 살아가는 삶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서 작은 선택부터 연습했다.

출근길에도 “지하철로 갈까? 운전으로 갈까? 오늘은 뭘 원하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작은 결정들을 쌓아가며 내 마음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책을 읽다가 감동받는 문구를 마주하면

“나는 이 문장이 왜 마음에 들었을까? 나는 어떤 생각을 하는가”를 적어봤다. 그렇게 하나씩 나의 생각을 단단히 다져나갔다.


2. 두려움 정화

정말 중요한 포인트이지만 '표현해야지. 거절해야지' 아무리 다짐해도, 나를 막고 있는 두려움이나 무의식 에너지가 크다면 이 부분은 정화가 필요하다. 정화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나는 따뜻하고 강한 치유의 에너지로 정화하고 있다.


두려움이 정화되고 비워졌을 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선명해진다. 감정이 너무 큰 상태에서는 이성적이며 진실된 선택이 어렵기 때문이다.


3. 건강한 경계 짓기


'타인에게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

내가 나를 알고, 표현하고, 나의 경계를 지키고 싶었다.


'어머님 저는 교회에 가고 싶지 않아요. 제 선택을 존중해 주세요.' 이 한 마디를 종이에 적고, 말로 뱉으며 연습을 해보았다. 그렇게 9년 만에 처음으로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었다.


이 말에 어머님은 격앙된 목소리로 감정을 쏟아내셨다. “약속이 틀리지 않느냐. 애초에 아들한테 믿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라고 누누이 얘기했건만. 그럴 줄 알았으면 멀리 떨어져 살았지. 가까이에 산 것도 다 믿음의 가정을 만들려고 한 거였잖니.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신앙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어머님의 대답에 나는 반복해서 “제 생각을 존중해 주세요.”라는 답을 하며 상황을 마무리했다.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내 의견을 말하고, 경계를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의 감정적인 반응에 대한 한 편의 찜찜함이 있었지만 ‘상대의 감정은 나의 책임이 아니다.’를 되뇌었다.


다음 날, 어머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강요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번에는 내가 부탁하마. 지금까지 네가 8년간 교회를 다녔으니, 앞으로도 8년 더 다녀다오. 지금까지 일들을 다 잊고 이제부터 새로 시작하자.” 어머님 삶에 신앙이 얼마나 큰 부분인지 다시금 느끼는 순간이었다.


상대의 부탁을 거절했을 때, 후폭풍은 일어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혼나는 아이가 아니라, 내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 어른이다. 타인의 감정은 내가 책임질 영역이 아니다. 나는 단지 내 선택을 말할 뿐이다.


4. 갈등과 거절에 대하여

갈등은 관계에서 일어나는 한 부분이다. 갈등상황에 놓였다면 우선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상황을 보고,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생각에만 빠져있으면 객관적인 원인을 알 수 없으니, 가급적이면 내 생각을 정리한 뒤에 상대와 대화를 해보면 좋을 것이다.


갈등을 돌아보면 나의 부족했던 부분을 인정하고, 배울 수 있다. 오해가 있다면 풀고, 서로 감정이 상하는 지점은 앞으로 어떻게 해보면 좋을지 대화를 나누면 된다.


글로 보면 참 심플한 해결책인데, 막상 그 상황에 놓이면 힘들 때가 있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조율점이 보이지 않을 때, 또, 감정적으로 많은 부분이 얽혀 있다면 지혜가 필요하다.


거절에 대해서도 일'과 '존재'를 구분해야 했다. 거절은 '일'에 대한 부분인데, 나의 '존재'를 거절한다고 받아들이며, 내가 부족하고 못나서, 사랑받지 못해서 거절당한 거라 느끼던 나를 발견했다. '거절'은 상황에 대한 표현이라는 것을 잘 분리하면서 거절의 표현을 내 삶의 일부로 조금씩 들여놓고 있다.


마무리하며

이 글은 9년간 '종교'에 대한 고민을 반복하며 겪은 내면의 과정이자, 몇 개월 전까지 고민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지금은 교회에 가고, 안 가고는 큰 고민거리가 아니게 되었다. '내 의견이 존중받지 못한다.'라고 여겼던 생각이 변화되기도 했고, 얽혀있던 두려움도 이전보다 정화되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교회에 가는 것은 어머님의 강요였지만 이제는 만약 교회에 나간다면 그건 온전히 나의 선택이다.

누군가의 강요로 가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해서, 내가 괜찮다고 느낄 때만 가는 것이다. 나는 교회를 나갈 수도 있고, 나가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소중하다고 느끼면, 그 시간을 함께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모든 결정이 내가 만든 결정이라는 점이다. 이 단단한 경계가 나를 자유롭게 했다.


나는 그동안 어른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평화라고 믿었다. 갈등은 피해야 하고, 착하게 행동해야 하며, 거절은 상처 주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 안에서 나는 나의 생각과 감정을 억누르고 살았다. 그렇게 9년을 살아온 끝에 나는 진짜 나의 감정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됐다. 갈등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고, 그렇게 서로가 건강한 경계를 세워가면 된다.


평화는 타인의 기대에 맞춰 억지로 따르는 데서 오지 않는다. 진짜 평화는 내 마음을 따르며 사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 문제를 통해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어떻게 하면 더 자유롭고 평온해질까?”

“나는 어떤 삶을 선택하고 싶은가?”

깊은 질문을 안고 상황과 삶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건강한 경계와 표현하는 용기는 “어머님, 제 선택을 존중해 주세요.” 이 한마디를 시작으로 쌓아가고 있다.

여전히 배우는 중이며 완벽하지 않아도 조화롭고 단단해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한 걸음 내딛고, 힘들 땐 멈춰서 진짜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본다. 그리고 진짜 마음에서 우러난 내 목소리를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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