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같은 자리를 맴도는 걸까. 분명 예전에도 비슷한 감정의 고개를 넘었던 것 같은데, 반복되는 관계의 갈등 앞에서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타인과 섞여 산다는 건 어쩌면 끝이 보이지 않는 산행과 같아서, 발걸음마다 '왜 또 이 험로인가' 하는 탄식이 얹히곤 한다.
하지만 숨 가쁘게 그 고개를 넘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와 부딪히며 소모했던 그 시간들이 허공으로 무의미하게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통장에 차곡차곡 ‘저축’되는 자산이었다는 사실이다.
갈등을 외면하지 않고 소통으로 풀어내려 애쓰는 이 지난한 과정은, 사실 그 어떤 외적인 성취보다 든든하게 나라는 존재를 지켜줄 실질적인 힘이 된다.
살다 보면 인간관계라는 이름으로 마주하는 필연적인 폭풍우가 있다. 그 안에서는 눈앞이 가려져 관계를 포기하고 싶고 상대가 원망스럽기만 하지만, 비바람을 뚫고 나와 뒤를 돌아보면 보이더라. 폭풍 뒤의 공기가 이전보다 훨씬 투명한 이유는, 우리가 흘린 눈물과 땀만큼 타인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의 너비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만나는 갈등은 피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성장판’과 같다.
마찰 속에서도 결국 대화의 끈을 놓지 않는 그 치열함이 모여, 타인을 이해하는 에너지를 비축하게 한다. 가장 깊은 친밀감이나 연대감은 아마도 갈등을 함께 극복한 뒤, 서로에게 ‘더 큰 사람’이 되어주었을 때 공유하는 마음일 것이다.
서로의 밑바닥을 확인하고 그 부족함을 배려와 관용으로 채워본 경험은 우리를 이전보다 훨씬 더 깊은 사람으로 만들어 놓는다. 타인의 결핍이라는 투박한 원석을 꺼내어 놓고, 그것을 인내라는 정으로 깎아 ‘성숙’이라는 찬란한 결과물로 뒤바꾸는 일. 이 어마어마한 작업을 함께 해낸 관계는 세상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
실수와 결핍을 성숙의 재료로 삼는 법을 터득해 가는 지금, 우리는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 화려한 인맥보다 소중한 건, 비바람이 불 때 내 곁을 지켜준 사람과 그 풍파를 함께 이겨내며 쌓아온 단단한 역사다.
오늘 우리가 넘은 이 고개가 내일의 나를 더 강건하게 해 줄 것을 믿는다. 우리는 오늘도 그렇게, 갈등을 통과하며 나를 치유하고 타인을 품어낼 에너지를 비축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