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의 나는 완전히 사라지고
겨울에 꺼내보는 어느 봄 날의 기록
피부에 닿는 공기로 계절의 변화를 체감한다.
두텁던 옷차림이 한결 가벼워지고 색색의 빛깔로
수 놓은 꽃 위로 살랑이며 자유로운 나비를 본다.
아름답고 예쁘다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중,
아이가 귀엽다며 잡아온 애벌레는 손사래 치는
내 모습을 보며 잠시 멈칫했다.
아름다운 나비는
본래 애벌레 였다는 것을.
하나의 생명이 자신을 탈바꿈하여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살아내는 자연의 이치가
신비롭고 궁금했다.
애벌레는 어떻게 나비가 될까?
막연히 번데기 안에 들어간 애벌레가
다리, 더듬이, 날개가 생기며 조금씩 형태가 변화하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애벌레는 번데기 안에서 녹아 액체가 된다고 한다.
자신의 몸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성충원기라는 핵심 조직만 살아남아
이 세포를 바탕으로 새롭게 태어난다고 한다.
이전의 나는 완전히 사라지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이전의 나는 완전히 사라지고
애벌레의 변태 과정은 인간의 삶과 닮아있다.
애벌레가 번데기 안에서 녹아내리듯
우리는 익숙한 자신을 무너뜨려야 할 때가 온다.
나에게는 엄마라는 역할이 그러했다.
아이를 낳기 전, 호기심 많은 애벌레 처럼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하고 싶고 궁금한 것들을 했다. 자기계발로 퇴근 후와 주말까지 채워진 삶을 살며
나름 잘 살고 있다 여겼다. 무기력과 우울이 올라올 때면 부정적인 것은
나와 어울리지 않고 내 안에 사라져야 한다며 외면하고 감추기에 급급했다.
그러다 갑작스레 찾아온 아이는 나를 아내와 엄마 역할에 급히 적응하도록 했다.
아이를 낳고 바쁘게 했던 일, 사람들로 부터 멀어진 채 혼자만의 동굴로 들어갔다.
아이와 나.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며 그동안 돌보지 못한 나의 내면의 것들이
마구 튀어나왔다. 우울, 무기력, 분노, 슬픔, 외로움, 부정적인 생각, 고정관념, 세뇌, 편견 등등
내가 바라봐야 했던 무의식들이 내 안에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애벌레가 번데기에 들어가 듯
나는 나의 내면으로 들어갔다.
나비가 되기 위해 애벌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워낸다.
나는 나의 '감정, 생각, 마음'을 들여다 보며
내려놓고, 비우고, 정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30대의 나는 인정받고, 환영받으면서
아이를 낳고도 커리어우먼의 모습으로 살거야.'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하며 교육에 대한 일을 키워가고 싶던 시기에 했던 생각이다.
'내가 하는 일 = 나 자신'으로 바라보며
누군가 내 일을 인정해주면 나는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가치 있는 일을 해야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부족하고 못나고 쓸모없고 가치없는
내가 되는 것이 두렵다는 마음이
자꾸만 나를 쉬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스스로를 되돌아 볼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달리던 때는
이런 생각과 마음이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가정주부가 되니
일을 하지 않는 내 모습
돈을 벌지 못하는 내 모습
경제적으로 아무런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나는
한 없이 작아지고 무가치한 것 처럼 느껴져 자존감이 한 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머리로는 생명을 낳고 키우는 것이
얼마나 가치있고 귀한 일인가를 생각했지만
마음과 몸과 삶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너가 집에서 하는 게 뭐가 있냐'는 말을 들었을 때
한없이 낮아진 자존감은 와장창 무너져 깨지기도 했다.
이때 해야 하는 것은
'맞다'고 믿고,
'그리 되야한다'며 놓지 못했던
'내가 내린 삶의 정답'을 깨고 나오는 것이다.
'내 삶은 이런 모습이여야 한다.'
'엄마는 이래야 한다.'
'남편은 이래야 한다.'
'아이는 이렇게 키워야 한다.'
그럴 듯하고 근사한 정답으로 삶에 틀을 만들고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틀리고 잘못된 거라는 생각들이
나를 불행하게 했고, 불안하게 했다.
내가 내린 기준과 틀이 강할 수록
그것과 벗어나는 삶은 고통처럼 느낀다.
주말은 아이들과 밖에서 신나는 경험을 해야 잘 보낸 것이라 생각한다면,
집에서 하루종일 있게 된 날은 우울하고 답답하게 느낄 것이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고, 다정해야 한다고
강하게 믿는다면 그렇지 못한 남편의 모습을 볼 때
저 사람은 잘 못하고 있고, 남편으로서 탐탁지 않는 마음이 들 수 있다.
강한 믿음, 정답, 기준, 틀
내려 놓지 못하는 생각을 들여다 보면
고통의 실체가 어디서 출발하는 지 알 수 있다.
애벌레가 자신을 완전히 녹이는 과정은
우리가 쥐고 있던 모든 생각과 고집스런 정답을 내려놓는 일과 닮아 있다.
그 순간은 아마도 어둡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삶의 고통이 내 마음과 생각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역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놓지 못한 것들을 내려놓고 비워내는 과정은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막막함이기도 하다.
삶은 때때로 우리를 번데기로 밀어 넣는다.
어쩌면 모든 것을 놓아야 한다고 말하며
손에 꼭 쥔 감정과 기억,
끝끝내 내려놓지 못했던 마음들마저 비우라 강요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 우리는 모르는 사이
더욱 단단하고 찬란한 나비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비워낸 자리에서 새롭게 태어난 모습은
마치 나비의 날개짓처럼 가벼워진다.
과거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번데기를 깨고 나와
봄의 꽃 위를 유유히 날아오르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이전의 나는 사라졌지만
그 흔적 위에서 새로운 날개가 피어나는 것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 데미안. 12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