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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손은 뻗을 수 있잖아!

[돈키호테] 나를 일으키는 문장

by wise

어릴 적 꿈은 원대하고 거대했다. 그 꿈은 어느 누구에게도 비난받지 않았고, 손가락질당하지 않았다.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닌 순수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닳아버린 이상들을 꺼내기엔 현실의 패배감이 너무나 깊다. 저 세상으로 떨어져 나간 지난날의 소망들이, 과연 아직도 열려있을까?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고,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뮤지컬 '맨 아라만차(Man of La Mancha)' 중 'The Impossible Dream (이룰 수 없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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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며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귀하게 대하지 않는다. 내가 나를 천대하는데, 누가 나를 인정하고 대우해 주겠는가? 이룩할 수 없다고 단정 짓는다면, 나는 꿈을 가질 수도, 사랑을 쟁취할 수도 없다. 매 순간이 고통스러워 피하고 싶어 동굴 속에 숨어버릴지도 모른다.


혹자는 자신이 가진 잣대로 상대를 평가한다. 그들의 판단 근거는 객관적일 수도, 주관적일 수도 있지만 결국 평가의 중심에는 내가 있다. 돈키호테의 사고와 행동은 틀에 박힌 생각과 고정관념 속에서 우리 스스로를 가두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현실은 이러니 우리는 그 속에서 살아야 해. 너는 어떤 위치와 상황에 있으니 그것에 걸맞도록 하는 것이 마땅해!”라는 판단은 명확한 해석과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 안 되는 건 없다. 무엇이든 망설이지 말고 도전해 보자. 그러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꿈꾸지 못하게 할지도 모른다.

이상적인 면과 현실적인 면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충돌하며 갈등한다. 내가 가진 이상이 허황된 꿈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현실로부터 쏟아질 수 있지만, 현실의 냉정함에 피해를 보지 않으려는 정확한 계산으로 도전하지 않는 나를 이상이 비겁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도 결코 현실을 잊지 않는 산초 판사와, 만신창이가 되도록 부서지지만 결코 불의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 돈키호테는 끊임없는 갈등과 타협이 자기 소멸과 자기실현으로 나아가는 변증법적 삶의 결과를 드러낸다.


“누가 미친 거요? 장차 이룩할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는 내가 미친 거요? 아니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보는 사람이 미친 거요?”-풍차와의 전투 장면 중



현실은 우리를 무겁게 만들다. 하지만 이상은 그 현실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우리가 함께 활동할 때, 세상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돈키호테는 무너지고, 다시 따라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길을 잃어버렸다. 그 길은 쉬운 길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실제로 삶을 추구했습니다.

"잡을 수 없는 하늘의 별을 잡자." 그의 열정은 허황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깨끗한 용기를 다시 불러내는 외침이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바랄 수 있는 가장 큰 승리라 생각한다. 타인의 시선에 너무 얽매이면 정작 중요한 나를 놓치기 십상이다. 한 번쯤 미친 열정으로 꿈과 이상을 향해 도전하는 삶을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나는 진정한 자유인이다.

이렇듯 돈키호테의 문장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우리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우리가 각자의 길을 걸으며 느끼는 고뇌와 갈등은, 결국 우리를 더욱 성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세상의 편견과 고정관념 속에서 나만의 길을 찾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의미가 아닐까. 돈키호테처럼 우리의 이상을 도전해 보자. 실패하는 것이,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더 부분적으로 이해하도록, 스스로를 더 귀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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