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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삶이 외로움이 아니며
외로움도 고립은 아니다

[로빈슨 크루소] 나만의 섬에서

by wise

외로움은 인간 존재의 태생적 고뇌이자, 때로는 깊은 자기 탐색의 시간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고독을 품고 살아가지만, 그것이 과연 부정적인 것일까? '로빈슨 크루소'는 비자발적으로, 그리고 갑작스럽게 혼자의 삶을 살게 된 인물이다. 그의 섬은 그가 단순히 외로운 존재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와의 깊은 대화와, 인간 본연의 생존본능을 깨닫는 과정의 상징이다.

분열된 자아도 각자의 사고를 지니기에, 몸이 하나인 다중인격자 역시 개별성을 가진다. 혼자 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삶의 모습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슬픔도, 기쁨도, 나의 존재가 있어야 하는 일들. 학생 시절부터 청년기의 분주한 삶을 지나 중년을 맞이하는 시점까지, 나는 앞만 보고 달리면서 삶의 의미를 뒤로 미뤄두고 살아왔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그동안 나는 과연 나를 얼마나 들여다봤을까? 중년의 문턱에서, 이제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는 길조차 불명확해졌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앞과 뒤를 동시에 살펴야 하는 시점. 여기서 나는 조금 더 성숙한 시각으로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내가 경험하고 배운 모든 것들이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깨달음의 순간이다.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는 외로움과 고립의 상징적 사례다. 그는 무인도에서 홀로 28년을 살아가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생존의 의미를 깨달아 가는 인물로 섬은 단순한 공간적 고립을 넘어, 그의 내면의 혼란과 갈등을 반영한 상징적 장소다. 처음에는 사고로 인해 비자발적으로 고립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무인도에 집을 짓고 농사를 짓는 등 생존을 위해 적응해 나간다. 이는 단순히 생리적 생존을 넘어서, 스스로에 대한 이해와 자아 찾기를 의미한다. 외부의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상황 속에서 그는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물론 크루소의 고립된 삶은 비자발적이었지만, 그가 생존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결국 자신만의 공간을 창조해 가는 과정에서 인간 본능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그는 무인도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고립과 외로움의 두려움조차 넘어서며 자아를 확립해 나갔다.


'로빈슨 크루소'는 단순한 생존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그는 ‘프라이데이’를 구해 그를 문명화시키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18세기 유럽 식민지 개척과 노예 제도의 역사적 맥락을 떠올리게 한다. 이 부분은 당시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정신과 맞닿아 있으며,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읽힐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저자 대니얼 디포는 장로교도의 가문에서 태어났고, 그로 인해 작품 속에는 청교도 정신이 녹아 있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근면과 노력은 신을 섬기는 방법이며, 그런 의미에서 크루소의 생존 방식도 신의 은혜로 해석될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원주민에 대한 착취와 문명화의 과정이 식민주의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빈슨 크루소'는 현대인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고립 속에서도 우리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으며 외로움은 결국 우리를 성장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크루소가 28년간 무인도에서 보낸 시간은 그가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스스로를 이해하는 중요한 과정이었음을 보여준다. 그의 고독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묻는 깊은 내면의 탐구였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러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외로움은 필연적으로 동반될 수밖에 없는 경험이다. 하지만 그 외로움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더욱 강한 의지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현대인의 삶도 '로빈슨 크루소'처럼 고립과 외로움 속에서 자신을 탐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외로움을 부정적으로 느끼는 순간, 그것은 두려움으로 변해 우리의 의지를 흔들 수 있다. 그러나 고독과 불명확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진다면 우리는 더 깊은 자기 확신과 강한 의지를 가질 수 있다. 외부로 오는 두려움은 자기혐오나 삶의 좌절보다 더 크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스스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외로움조차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임을 깨닫게 된다. '로빈슨 크루소의 섬'에서처럼, 우리는 때로 스스로 고립된 공간에 놓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고립이 우리가 성장하는 과정의 일부임을 깨닫는다면 외로움은 결코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남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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