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던져진 나, 누구를 위한 삶인가?

[인간의 굴레] 무의식, 사랑 그리고 평온

by wise

태어날 때 우리는 왜, 어떤 이유로 세상에 던져졌을까? 존재의 시작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 이유를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창조를 믿는 이들은 신의 이름으로, 진화를 믿는 이들은 자연의 법칙으로 각자의 믿음에 따라 삶을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둘을 선택할 수도 따를 수도 없다. 다만 부모로부터 육신을 얻어 세상에 나왔고, 그 이후로 살아가며 스스로의 정신을 다듬고 있을 뿐이다.

간혹 이런 궁금증도 생긴다. 태어날 때, 나는 무엇을 갈망하며 세상에 나왔을까? 정념보다도 생존 본능에 충실한, 순수한 동물의 상태였던 때. 무엇이라기보다 세상 밖의 공포와 욕망에 의해 형성되는 무의식이 내 존재를 이끌어가는지도 모르겠다.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의 주인공 필립은 그러한 의미를 찾아 헤매며 끊임없이 방황한다. 필립은 자신이 바라는 삶 대신 어머니의 기대에 의해 성직자의 길로 위탁되었다. 목사 큰아버지의 보호 아래에서 자라지만, 필립의 삶은 편안하기보다는 고독하고 외로운 여정이었다. 신체적 결함으로 인해 또래로부터 받는 괴롭힘과 세상의 편견 속에서 그는 점점 자신의 자아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신에게 의지해보지만 대답 없는 기도 속에서 그는 점차 혼란을 느끼며 스스로의 길을 찾기 위한 여정에 들어선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평범함을 인정하고 수용하게 된다. 이 수용은 때로 패배처럼 느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필립에게 평온을 주는 지지대가 된다.

이윽고 필립은 한 여인, 밀드레드를 만나게 된다. 그녀와의 관계는 필립의 결핍을 더욱 자극하며, 그는 그녀에게 집착하고 애정을 갈구한다. 그러나 그녀는 필립이 바라는 만큼 그를 사랑하지 않으며, 오히려 속물적인 면모를 드러내며 그를 떠난다. 필립은 그녀를 놓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녀에게 집착하며 자신의 자존감을 더욱 갉아먹게 된다. 필립과 밀드레드는 각자의 시선으로 사랑을 찾으려 하지만, 필립은 그녀를 지나치게 집착한다. 밀드레드는 결국 다른 남자의 아이를 품고 떠돌며, 필립은 그럼에도 그녀를 떠나지 못한다. 그의 집착은 결국 그녀를 거리의 여자로, 필립을 파산한 남자로 만들며, 둘의 관계는 슬픈 결말을 맞는다.

사랑의 상처와 아픔은 지나가면서도 지워지지 않으며, 그는 과거의 결핍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가 선택한 길은 늙고 병든 큰아버지의 유산을 기다려, 스페인으로 떠나는 것이다. 그의 삶의 새로운 방향은 결국 그가 의도한 대로, 의사 면허를 따고 샐리라는 여인과의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샐리로부터 아이를 가졌다는 고백은 그를 현실에 안주하게 만든다. 그는 이전의 집착과 굴레에서 벗어나, 인생의 끝없는 만남과 이별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사랑과 실패를 통해 필립은 깨닫는다. 삶의 의미란 타인이 아닌 스스로 찾는 것이며, 불완전함을 수용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필립이 자신의 결점을 수용하고, 자신의 기준에 맞는 삶을 찾아나가면서 비로소 자유와 평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완벽하지 않은 삶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실패와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다.



'인간의 굴레'는 우리가 인생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답을 던져준다. 삶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어떤 이들은 이를 받아들이지만, 어떤 이들은 이를 혐오하고 벗어나려 애쓴다. 우리는 인생에서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그 결과를 우리가 마음대로 좌우할 수는 없다. 신이든, 자연의 법칙이든, 그 어떤 것이 답인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나 자신을 인정하고 그 과정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다. 필립이 결국 평온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스스로의 굴레를 벗어나 자아를 회복하고 인생의 본질에 다가설 때, 비로소 진정한 자존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손은 뻗을 수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