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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인가 집착인가? 미치려면 제대로 미쳐라.

[모비 딕] 멈출 수 없는 광기, 방향을 바로 세워라

by wise

에이헤브 선장의 처절한 외침.
“모비딕은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 않는다! 나는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리라. 지옥 한복판에서 너를 찔러 죽이리라!”

이 강렬한 선언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며 집념을 품고, 그것이 삶의 의미이자 우리를 자극하는 원동력이 된다. 어떤 이들은 그 목표를 통해 세상을 이끌기도 하며, 역사를 발전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과정이다. 에이헤브 선장의 집념은 복수를 향한 집착이었고, 그 집착은 그의 선원들과 자신의 생명까지 위협하게 된다. 집착이 가져오는 고통은 그를 스스로 함정에 빠뜨리게 하고, 결국 자신의 정체성마저 잃게 만든다.


우리 모두는 때때로 세상에 대한 분노나 상처로 인해, 복수를 꿈꾸기도 한다. 나를 괴롭힌 자에게 똑같이 앙갚음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만약 지금 당장 힘이 없다면, 언젠가 능력을 갖추게 될 때, 상대의 틈을 노려 보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집착은 결국 더 큰 고통을 가져온다. 고통은 해소되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져만 가며, 우리는 점차 본질을 잊고 그 고통에 사로잡히게 된다.


에이헤브 선장과 그의 선원들은 ‘모비 딕’을 잡겠다는 신념으로 뭉쳤다. 고래는 그들에게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넘어야 할 산이자 극복해야 할 존재였다. 고래를 잡는 것은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고, 그 신념으로 살아가는 삶의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필요하지만, 잘못된 판단과 실수를 바로잡지 못하면 길을 잃고, 결국 자기 자신을 잃게 된다. 정체성을 잃으면, 삶의 의미마저 사라진다.


‘피쿼드호’에 오른 선원들은 고래를 잡는 일에 몰두한다. 고래가 발견되면 그들은 보트를 타고, 작살을 던져 고래를 잡는다. 그리고 고래의 시체에서 기름을 추출하고, 나머지는 바다에 버린다. 이 과정은 반복된다. 고래를 잡고, 고래 기름을 얻고, 다시 반복하는 일상이 이어진다. 이 반복적인 삶은 단순한 양적 충족에 그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무 의미 없는 반복은 결국 지루하고 무의미한 인생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일상이 지루해지고, 고통이 쌓여만 가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를 잊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원들은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고된 일상 속에서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한다. 몸은 지치고, 때론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하루를 마감하지만, 그들은 내일을 위해 다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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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내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우리는 때때로 길을 잃고, 시련에 갇히기도 한다. 그때 우리는 원망과 분노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삶은 나의 계획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가 시련을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태도를 정할 수 있다. 적개심이나 흥분에 휘둘리지 않고, 바다로 나가는 진짜 이유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에이헤브 선장처럼 복수에 집착할 수도 있지만, 일등항해사 스타벅처럼 그 진정한 목적을 찾고 삶의 의미를 되새길 수도 있다. 스타벅은 말한다.


“우리는 고래를 잡으러 왔지, 선장의 원수를 갚으러 온 게 아니다. 복수에 성공한다고 해도 고래기름 몇 통이나 얻을 수 있겠는가? 고래는 단지 맹목적인 본능으로 공격했을 뿐, 이건 미친 짓이다.”



모비 딕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다. 에이헤브 선장의 집착과 광기는 결국 자신의 삶을 위협하게 된다. 우리는 자신의 목표와 신념을 가질 필요가 있지만, 그것이 집착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복수와 증오에 휘둘리기보다는, 삶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를 돌아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어쩌면, 그 길에서 진정한 평온과 자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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