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내 마음 들여다 보는 중

by 힐링아지매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어른들의 소리를 듣고 자란 세대이다. 여기 저기 우물을 파다보면 하나도 제대로 못할 수가 있으니 한 곳에,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인 줄 안다. 하지만 처음부터 물이 나오지 않는 곳을 파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무리 한 우물에 집중한다고 한들 목마름을 해결 할 수 없면 한 우물을 고집하는 것이 맞을까? 그것 보다는 보이지 않는 땅 속의 물길 찾는 안목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한 것은 50대 중반에 들어서 음으로 개 상담을 받으면서 나를 탐구하고 나는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 알게 되었다.

대체적으로 한 번쯤 가져보는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고 왜 사는가? 하는 등의 고민을 하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은 기억이 없다.


평범한 집안에 살림 밑천인 맏딸로 태어나서 부모님 속 썩히지 않고 착한 딸이 되기 위해 내 생각, 내 마음, 내 꺼,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생각하거나 알아볼 생각도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정해 놓은 규칙과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하는게 집안 조용하고 내 맘도 편하다는 것을 중학색이 되면서 이미 깨달았고 혹시 '아버지 저는요' 라든가 '것을 이렇게 하고 싶은데...' '다른 아이들은...' 이라는 말을 할라치면 버지의 장황한 훈계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불미스러운 사고에 대한 걱정까지 다 듣고 내 마음에 불안함이 잔뜩 자리를 잡고 나면 마지막엔 '그 집이 좋고 친구 부모가 좋으면 그 집에 가서 살아라'로 마무리 되는 시간까지 나는 부모님에게 걱정을 하게 하 불효를 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 속의 생각을 입 밖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되고 부모님에게 물어보기 전에 친구 집을 가고 싶다거나 친구들과 놀거리를 미리 포기하면 되고 나의 희망 사항을 얘기 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만약에 아버지가 어떻게 나오실 지 모르지만 무작정 떼를 쓰거나 뒷 일은 생각하지 않고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았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그렇게 점점 수동적이 되어 갔고 무슨 일이든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아버지를 먼저 찾게 되었고 아버지의 선택이 맞고 틀리고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그냥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강압적이거나 화를 내거나 하시는 것도 아니었다. 당신이 한번 뱉은 말을 주워 담거나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거나 그럴 수도 있겠다와 같은 공감과 이해을 할 생각이 없고 궁지에 몰린 쥐가 '찍'소리 한 번 낼 수 없게 논리적으로 몰아 붙였던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180도 태도를 바꾸셨다.




애지 중지 들고 있던 어린 딸을 시집을 보내고 끊었던 약주를 다시 하시면서 목놓아 우셨던 그날 아버지는 나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셨던 것일까?


어른들을 모시고 살면서 식구들이 왔다 갔다 하면 북적거리는 것이 좋다고 했던 나의 기대에 부응해서 우리의 신혼은 시부모님과 시동생까지 있는 시부모님 댁에서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어머님은 아버님의 사랑으로 깊은 생각없이 하고 싶은 대로 다하는 철부지 어린아이 같은 분이었다. 그래서 어머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필터 없이 날 것 그 자체로 밖으로 튀어 나와 내 가슴에 박히기 일쑤였다.

(만약에 사람 사이에서, 비록 부모 자식간이라도 내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연습이 되었더라면 한 달동안 밤마다 혼자서 울지 않았을까?)


그럴 때 마다 아버지가 생각 났고 아버지라면 뭐라고 말씀 하셨을까를 먼저 생각하면서 잘 견디다가 어느 날 통화에서 '아버지 이럴 때는 어떻게 해요' 여쭤보는데 아버지의 대답은 예상 밖이였다.


이제 시집을 갔으니 나에게 물어 보지 말고 무슨 일이든지 O서방하고 의논 해라.


아버지가 그렇게 끔찍하게 아끼던 딸의 안전과 미래를 이제는 당신 소관이 아니라 사위의 몫으로 넘기면서 아버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나의 대한 사랑을 보내 주셨다. 모든 의논은 남편과 하지만 내가 하는 모든 결정과 생각들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든든한 나의 백그라운드가 되기로 하신 것이다.

'폭삭 속았수다' 드라마의 관식이 만큼 다정하게 표현을 하신 것은 아니지만 니 뒤에는 언제나 아버지가 있으니 걱정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그 믿음과 사랑은 두 아들과 함께 친정으로 돌아 왔을 때 부터는 더 진해지고 뚜렸해졌다.

(만약이 아버지의 인생에 하나 사위가 지금까지 건재 했다면 울 아버지 마음의 책임감은 좀 더 가벼웠을까?)


사위를 믿어서 였는지 딸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난 홀가분 한 마음으로 그랬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여전히 아버지는 나를 사랑과 믿음으로 나를 지켜 주신 거였다.

( 만약에 지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고 다치기도 하면서 스스로 회복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지켜봐 주셨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나의 한 우물은 남편이었다. 그 흔한 미팅도 한 번 못해 보고 가슴 아픈 이별도, 군대 간 남친에게 연애 편지 한 번 못써보고 그저 처음 만난 사람과 결혼을 하는게 맞다는 얼척 없는 가치관을 가진 연애의 쑥맥인 내가 판 한 우물.


한 우물이 아니라 여기 저기 파댔더라도 이 사람과 결혼을 했을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내게 필요 했던 것은 한 우물이 아니라 갈증을 제대로 해소 할 수 있는 물길을 찾는 방법이었다.


한 남자를 소개 받고 두 번 만나서 데이트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있을 뿐이었는데 그저 착하고 솔직해야 했던 딸은 두 번 만난 사람에 대해 시시콜콜 다 얘기 했고 그 정보들을 가지고 아버지는 그의 직장까지 가서 사람을 확인하고 나서야 '얼굴이 하얗고 미끔하고 착하게 생겼더라' 하시며 교제를 허락 받았고 아버지까지 다 알게 되었으니 그 사람과 결혼 하는 것은 더욱 당연하다 여겼다.

(만약에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하고 몰래 데이트를 하면서 더 시간을 보냈더라도 그 사람과 결혼을 했을까?)


그 일로 나는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손바닥에 피멍이 들 정도로 바닥을 치면서 대들었고 아버지 가슴에 대못을 박는 구실이 되고 말았다.


한 우물을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그 곳에 왜 우물이 필요한 지, 그 곳에 우물을 내야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주변 지형과 상황에 대해 제대로 파악을 했는지, 물이 나오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제2, 제3의 후보지는 생각하는지 등의 그런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회와 점검이 더 필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최종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을 알면서 아무 소용도 없는 '만약에' 라는 전제를 생각면서

내 마음을 들여다 보는 중이다.

한 번도 먼저 가버린 그 사람을 원망한 적도 없고 우리의 인연이 잘못이었다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지만 문득 만약에 라고 생각해본다.

만약에 다음 생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고 다시 울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고 다시 그 사람을 만난다면 아버지 몰래 데이트도 하면서 머리채도 잡혀보고 지금 가진 강단과 판단과 이성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사랑을 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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