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다는 말 하지 마

내 마음 들여다보는 중

by 힐링아지매

검지 손가락을 앞으로 쭉 내밀고 얼굴을 잔뜩 찌푸리면서 싫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이 싫어서 나는 가지 않겠다고 하는데 왜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지?




나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많아도 지정석이 있거나 하면 를까 정해진 시간보다 빨리 가서 좋은 자리를 잡아야 한다거나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려야 한다거나 하는 곳을 가야 한다면 이미 생각만으로 지치고 마음이 힘들어지면서 아예 나서기를 포기해 버린다.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흔히 말하는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더 잘 먹는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아들들을 키우면서 지역 축제에도 가본 적이 없고 꽃구경, 바캉스, 단풍놀이, 눈썰매 등등 계절별 여행을 갔던 기억 없다.

두 아이를 데리고 하루 코스 여행이라도 나서려면 챙겨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간식 챙기고, 교통편 알아보고, 맛집도 찾아야 하고(난 심하게 길치라서 제일 어려운 일) 무엇보다 집을 나서서 돌아올 때까지 긴장 상태여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아예 엄두 초차 내지를 않았던 것이다.


정말 한 번도 없었나?

기억을 더듬어 보니 93년 대전 엑스포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이른 새벽 ktx를 타고 셔틀버스를 타고 전시장 오픈부터 마감 때까지 심히 돌아다니다가 적이 있고, 어린이 공원 두 어번 갔고 어떤 모임에서 지리산 백무동 계곡으로 1박 2일 갈 때는 대형 버스로 움직이고 정해진 프로그램에 참여만 하면 되는 거여서 큰 아이만 데리고 갔었던 기억은 사진으로 남아서 가끔 들여다보곤 한다.

그리고 부모님과 동생네 가족들과 함께 남편 산소에 가서 점심 먹고 오는 것이 우리 가족 나들이의 전부였다.


나 역시도 모님 슬하에 있을 때 가족 여행을 했던 기억이 없다. 그 당시 가족여행은 아마도 큰 집안 행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처럼 넘치는 정보가 있는 시절도 아니고 교통편이 원활하지도 않았을 거고 맛집 투어라든가 하는 테마를 가지고 하는 그런 여행은 아예 생각도 못하던 ~~라때 시대였으니 (아닌가? 안 다녀봐서 내가 모를 수도 있겠다)


그나마 기억 속의 한 장면은 가족탕에서 엄마는 나를 씻기고 아버지는 동생을 씻어 주었고 동생과 둘이서 객실 침대 위에서 팡팡을 하면서 놀았던 어렴풋한 기억만 있다.

나와 동생이 결혼을 하고 성인 되어서는 가끔 엄마와 이모들 그리고 이종 사촌들과 함께 대가족이 천렵을 하거나 물놀이를 했던 적은 있지만 딱히 기억에 남는 가족 여행은 없다.


각설이 너무 길었다. 그런 이유들로 난 사람이 많은 곳이거나 시즌에 여행하기 좋은 곳으로 나서는 것이 언제나 나의 계획에는 들어 있지 않았고 해보지도 않고 지레 겁을 먹는 일 중에 한 가지가 되었다.




싫다는 말 하지 마

그녀가 싫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말과 표정 속에서 평소 그녀가 가지고 있던 나에 대한 생각이 순간 '툭' 튀어나온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집에 와서 곰곰이 되씹어 보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하고...


개인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하지 않거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식으로 우유부단하거나 어느 쪽이 나은지 눈치를 살피면서 소위 말하는 낭창거리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게 보면 신중하다고 할 수 있지만 어찌 보면 너무 속 보이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지극히 내 편견으로는 좋게 보지 않는다.


누구든지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만 어리석게도 나는 못 먹어도 고 하는 타입이다. 그러다 보니 정말 얻는 것이 없다. 실리보다는 명분을 더 중요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 삶이 여유롭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아고, 맘 아포라)


조금만 이재에 밝고 남이 뭐라 하든지 내게 이익이 되는 선택을 했더라면.... 그랬더라면 난 지금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고 내 잔고를 들여다보면서 다른 글을 쓰고 있으려나? 혼자 피식거려 본다.


평소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리랜서 강사로써, 대중 앞에 마이크를 잡고 말을 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달라서는 안된다는 각으로 최대한 언행일치를 하려고 한다. 강단에서 하는 말과 내 생활이 다르다면 그건 대중들을 기만하는 일이 되는 것이므로...


그러다 보니 좋은 건 좋다, 아닌 건 아니다고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편이다. 그 부분이 그녀에게는 좋게 보이지 않았던 같다.

좋을 때 좋다고 하는 것은 뭐가 그리 큰일이 될까만 싫을 때 싫다고 표현하는 것이 부정적인

말로 느껴졌던 것이다.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잘 웃고 밝은 사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사람, 언제나 자신감 있고 당당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편인데 싫다고 말하는 순간 그녀에게는 내가 언행불일치로 느껴졌었나?


그 순간을 다시 돌아본다.


'싫은 걸 싫다고 하는 왜? 싫다고 하지 말라는 거야'


'좋고 싫은 게 어딨냐? 그냥 가만히 있다가 할 수 좋으면 하고 아니면 그냥 안 하면 되지 굳이 싫다는 표현으로 상대방 기분을 상하게 할 필요 없다는 거지'


그녀가 가기로 한 그곳에 대한 기대로 좋아하고 있다가 나의 싫다는 말에 기분이 상했고 난 그걸 배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서 그녀와 의 생각이 다르다.

싫은 것은 싫다고 분명히 얘기를 하는 것은 그 말을 듣는 순간은 기분이 상할지 모르지만 상대가 기대를 갖지 않게 는 나름의 예의라고 생각하는데 그녀는 아니었던 거다.

그녀는 굳이 부정적인 말로 분위기 흐리지 말자였고 나는 정확한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평소 그런 표현을 하지 않던 그녀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참의 시간이 지나고 는 그녀가 내게 주고 싶었던 메시지를 알아챘다.

자신의 기분이 상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의 본질은 바로....


'의 색깔을 너무 드러내지 말고 조금 유연해지는 것은 어떠냐?'


그런 의미의 이야기를 상한 기분에 짜증을 섞어서 전하고 있었던 거였다.


맞다.

나에게 부족한 여러 가지 중에 유연함은 top3에 해당되는 것이다. 굳이 변명 거리를 찾아보자면 모든 일을 혼자 결정하고 그 결정의 책임 역시 모두 나의 몫이었기에 어떤 결정 앞에 단호하게 '못 먹어도 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보면 못 먹어도 고를 하는 바람에 채워지지 않았던 허기는 꼭 물질적인 것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내 삶에 조금만 더 여유를 갖고 내 주변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돌아봤더라면 아이들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였다면, 내 아이들도 나도 그리고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과 더 따뜻하게 지내고 지금보다 덜 외롭지 않았을까...


무 어린 나이에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는 채로 가장이라는 이름표를 이마에 붙이고 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쓰러지지 않으려고 더 센 척해야 했고 내 몸 구석구석에서 최대한 당당함이 뿜어 나와야 했다.

유연하거나 부드러움은 상대방이 나를 얕잡아 는 구실을 줄 수도 있고 군가는 동정심으로 바라보는 시선까지도 차단하며 나를 꽁꽁 싸매고 또 다른 페르소나를 수밖에 없었다.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되고 세상과 부딪혀 가며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되고 나 하나만 잘 지키 된다.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거운 가면들은 벗어서 조용히 추억 속에 넣어두고 편안하게 유연하게 살아도 되는데...

지금까지 가졌던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바꿀 수 없는 일도 아니니 이제라도 두텁게 쌓았던 벽도 허물고 가슴에 박혀 있는 옹이들을 빼고 그곳에 밴드를 붙이고 새 살이 돋아나기를 기다린다.


상처에 붙일 밴드는 바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글을 쓰는 것이다.

땅 속 깊이 묻어 놓고 한 번도 열어 보지 않은 김치 독 속의 묵은지의 감칠맛처럼 나의 기억과 감정 세포들이 나에게 개운함을 주리라 확신하면서 꾸준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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