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삶을 용서하기로 했다

엄마, 악마가 되었다

by 힐링아지매



나에게는 돌아가신 OO의 아내라는 꼬리표가 달려있고 그 꼬리표는 편안함을 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특채, 미망인, 청상과부라는 꼬리표가 같이 있었기에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은 참 다양한 메시지를 보낸다.

거기에 내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새 인물의 신입사원이라는 이유로 영양가 없는 농담을 날리기도 하고 이 말들이 와전이 되면서 벌써 재혼을 했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확실히 흔치 않은 캐릭터는 맞다. 아직 아가씨처럼 보이는 외모의 신입 여직원, 알고 보니 죽은 전 동료의 아내이고 5,7살 되는 두 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씩씩하고 잘 웃는 사람이라면서 긍정적인 반응으로 멋지다, 안쓰럽다는 사람과 '그래도 그건 아니지...'라며 험담으로 쑥떡대는 사람까지 생기면서 이목이 집중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도 않은 일이 터졌고 나에게 붙은 꼬리표도 떼고 나의 캐릭터를 명확히 만드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별정직 직원 중에 선임 여직원이 근무 시간에 전화교환실로 불러 갔는데 막상 나를 부른 사람은 아무 말이 없고 그 아래 직원이 팔짱을 끼고 곁눈으로 바라보며...


“OO 씨 에게 할 말이 있어서... OO 씨는 왜 인사를 잘 안 해?”


“네, 무슨 말씀이신지?”


입사를 하면서 남편이 마지막까지 다니던 직장이라서 말과 행동을 더욱 조심하자는 마음으로 누구에게나 무조건 깍듯하게 인사를 하는 바람에 '인사 잘하는 신입 사원'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는데 인사를 잘 안 한다니... 나의 업무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전화교환실 직원이 나를 따로 불러서 물어보는 말이...


본인이 기분 나빠서 선임이 부른다는 말을 해가며 나를 부른 것이다. 출, 퇴근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안녕하세요’ 라며 인사하는데 그냥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언니 안녕하세요’라고 해야 한단다.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아서 기분 나빴고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있는 네가 거슬리니 이참에 군기도 잡고 서열 정리를 해야겠다는 것이 그녀가 부른 이유다.(전화교환실 직원들과 서열 정리를 해야 할 이유도 없을 뿐더러 엄연히 직급과 직책이 있는데 서열 정리라니... 요즘 관점에서 보면 그냥 직장 내 괴롭힘이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이도 아니고 직장 내에서 같은 부서도 아니고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언니'라는 사적인 호칭 사용은 아니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지금은 직장 동료지만 불과 한 달 전 남편 퇴근을 위해 회사에 왔을 때 ‘OO 사모님이시구나’ 했던 그 사람이 나보다 두 살이 많다는 이유로 아랫사람 대하듯이 서열을 따지며 질책을 하고 있다.


“언니라는 말은 친한 사이에나 하는 말이고 특히 직장에서는 적당한 호칭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나이 어리다고 해서 직장 동료에게 반말을 하면서 막 대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나는 누가 됐던 하루라도 나보다 어리면 반말해”


“저는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서로 친해지고 편해지면 몰라도 무조건 존대합니다.”


서로가 자기주장만 세우며 말싸움을 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나도 그녀도 각자의 생각을 굽히며 서로에게 공감해 줄 생각이 전혀 없다. 내가 호락호락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말을 듣지 않자 그제야 나를 처음 호출했던 직원이 ‘둘이 색깔이 너무 다르니 그만해라’며 상황을 매듭지으려 한다. 그녀가 나를 불러 놓고는 이제 와서 중재하는 것처럼 나서는 모습이 어이가 없지만 그 덕에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 사건은 앞으로 직장 내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결정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망인이 되었고 특별채용으로 입사를 했지만 나는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었고 누구에게도 기죽을 필요 없고 미안해하면서 눈치 볼 일은 더욱 아니다. 내가 당당해야 먼저 간 남편의 마음이 편할 것이고 우리 아이들도 떳떳하게 살아갈 것이고 내게 힘이 있어야 아이들도 나도 제대로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나의 표정 하나에도 자기들 마음대로 의미를 붙여서 흉을 보기도 하고 남편 없는 사람이니 무시하고 보자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 것이다.(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이혼이든 사별이든 혼자 사는 여자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제 달라져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무관하게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울고 화가 나면 화를 내고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편한 대로 행동할 것이다.


길고 긴 '인생'이라는 영화에서 나의 배역이 조금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주부, 엄마, 아내의 역이었다면 이제는 남편 없이 두 아들을 책임져야 하는 조금 더 비중이 있는 가장의 역할을 맡은 것뿐이다.

가장 답게 세상이 뭐라고 하든지 누가 어떤 흉을 보고 어떻게 무시하든지 나는 내 아이들을 지키는 울타리가 될 것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아이들이 둘이서 차례로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간다. 엄마가 고개만 숙이고 있어도 내 눈치를 살피는 녀석들을 위해서 나는 허리를 세우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힘을 내야 한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어떻게든 채워서 아이들이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있게 해야 한다.(여기까지의 생각과 결심이 가장 최선이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해보지도 않고 미리 겁먹고 섣부른 선택을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때는 그게 최선인 줄 알았다.


내 삶에서 용서하고 싶은 세 번째 어리석은 결정

엄마, 아버지 두 가지 역할을 다 잘 해낼 자신이 없어서 둘 중 한 가지 역할만 하기로 했다.

아직 어린 아들들에게 언젠가는 사춘기가 올 것이고 그러면 나 혼자 감당할 수 있을까? 아버지 없이 혼자서 아들들을 키울 때 가장 힘든 시기가 사춘기라고 하는데 우리 아이들 역시 사춘기가 되면 혼자 있는 엄마를 무시하지는 않을까? 엄마를 호락하게 보고 사고를 치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엄하게 하면서 엄마 말을 잘 듣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자상하고 따뜻한 엄마 대신 강하고 엄한 아버지로 살아가자는 결정을 했다. 강하면 부러지고 부드러우면 휘어진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깨닫지 못했고 따뜻한 엄마는 해보지도 않고 미리 겁을 먹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5살, 7살, 나는 고작 30살이었고 우리는 모두 너무 어렸고 우리 셋 모두 채울 수 없는 상실감으로 힘들었다. 아이들은 그나마 의지처가 되어 줄줄 알았던 엄마를 잃었고 나는 여자를 지우고 모성을 외면했다.


두 아이가 다 초등학생이 되면서 나는 점점 더 독한 폭군이 되어갔다.


“우리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람들이 이민을 가거든 너희도 엄마가 정한 규칙이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엄마한테 가도 돼”

(도대체 이게 아이들에게 할 말인가?)


“학교 갔다 와서, 학원 갈 때, 학원 마치고 집에 오면 언제나 엄마한테 전화해”

(아이들이 얼마나 숨이 막혔을까?)


“친구 집에 가서 자는 것은 절대로 안 돼”

(또래와 함께 하면서 성장하는 시기에 난 그 시간들을 나서서 막았다)


“자기가 먹은 밥그릇은 자기가 씻어 놔야 하고 엄마가 법이라는 것 잊지 마”

(강하면 부러진다는 말과 강할수록 상대는 더 튄다는 말은 눈곱만큼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만든 규칙이라면서 옴짝 달짝 못하게 했고 내가 만든 울타리를 벗어나면 절대로 안된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얼마나 무섭고 싫었을까? 하지만 싫다는 표현조차 못할 만큼 엄마는 아이들에게 곁을 주지 않았고 매 순간 체크하고 지시하고 확인하는 것이 아이들이 안전하게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너희들의 마지막 행적을 알아야 너희에게 무슨 문제가 생겨도 찾을 수가 있는 거야' 나의 논리는 단순했다. 등, 하교, 학원, 집 그 이상을 벗어나면 엄마가 불안하다는 말을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난 아이들에게 정서적 학대를 가한 것이다)


하지만 어린 두 아들은 그렇게 무서운 엄마지만 엄마마저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따라주었다. 하루 종일 엄마 품이 그리웠을 아이들에게 나는 항상 정해진 규칙을 들이댔고 내가 정한 규칙에 ‘너희들도 함께 정한 약속이잖아’라는 억지를 붙이며 몰아붙였다. 가끔 전화하는 것을 잊거나 설거지통에 그릇이 그대로 있는 날은 온 집안이 찬바람이 쌩쌩 부는 위태롭고 살벌한 곳으로 만들어 버리는 엄마에게 변함없이 '사랑해요' 아끼지 않는 아들들...


그날도 무슨 규칙을 어떻게 어겼는지 두 아이들을 화장대를 세우고 거세게 몰아붙였고 ‘잘못했습니다. 어머니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자기들 방으로 간 뒤, 거울 속에 있는 악마를 보고 경악했다. 엄한 아버지도 아니고 규칙을 들먹이는 못된 엄마도 아니고 어디에도 없을 무서운 악마가 나를 보고 있다. 방금까지 아이들은 엄마가 아니라 악마와 함께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내 아이들이 이 공포를 견디며 살고 있었다는 생각에 미안하고 아프고 슬퍼서 밤새 울었다.




종일 업무로 피곤하다가도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10분이라도 빨리 가서 아이들을 보려고 서둘러 유니폼을 갈아입었고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와서는 순식간에 그렇게 악마로 돌변하곤 했던 것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정하게 안아주는 엄마였고 편안하게 웃으며 어리광 부리고 싶은 엄마였는데 어느새 나는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못되고 무서운 악마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때 본 거울 속의 악마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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