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삶을 용서하기로 했다

나는 가장입니다.

by 힐링아지매





저녁을 준비하는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찌개 냄새가 섞어 온 집안에 퍼진다. 이 냄새와 소리가 좋아 남편의 발걸음은 더없이 가볍고 설렜을 것이다. 종일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활짝 웃으며 현관을 들어서는 그의 얼굴이 말한다.


불과 3년 전 우리는 그런 저녁을 가졌다. 하루 중 퇴근 시간이 제일 편하고 좋다고 말하곤 했던 사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직원들의 인기투표에서 남편은 언제나 꼴찌 거나 뒤에서 두 번째였단다. 이처럼 순한 사람이 회사와 집에서의 모습이 180도 달랐다. 언제나 웃고 있는 선한 얼굴로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는 사람이 여직원들 사이에서는 까칠하고 말 없고 차가운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단다.


남편은 부모님의 강요에 밀려 자신의 꿈과는 무관하게 은행원이 되었다. 당시는 우리의 미래도 꿈도 직업도 모두 부모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하던 때였다. 남편은 갖은 핑계로 진학을 준비했지만 부모님 뜻을 거역하지 못하고 착한 아들을 둔 부모님의 자랑이 되었다. 그때는 은행원은 엘리트 직군이었고 다들 부러워했지만 정작 본인은 그 일에 적응이 힘들어 애써 버티며 견뎌내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까지 그의 업무는 스트레스가 가장 많은 대출담당이었으니 직장을 벗어나는 퇴근 시간이 제일 행복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에게 집은 최고의 안전지대였고 가장 편안한 곳이었다. 아침마다 힘들게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가장의 무게가 바로 그런 것이었으리라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이제는 내가 집으로 오는 길이 하루 중에 가장 행복하다. 어스름 해가 넘어가고 아파트에 하나 둘 따뜻한 불빛이 피어나는 시간이 되면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유니폼을 갈아입는 내 손길은 바빠지고 뒤꿈치는 날아갈 듯 가볍다. 아침에 헤어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너무 그립고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 어떤 날은 아이들이 오는 시간에 현관을 열어두고 기다리기 위해 조퇴를 하기도 했다. 열린 문 안에 외할머니가 계신 줄 알고 ‘할머니 학교 다녀왔습니다.’하고 들어서다가 뜻밖에 나타난 엄마의 얼굴을 본 아이들은 있는 힘껏 달려와 품을 파고 들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얼굴로 비비고 만지고 난리법석이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벌렁벌렁 가슴이 벅차다.


“어머니~~~!!!”


얼마나 우렁차고 높게 큰 소리로 불러 대는지, 그러니 조퇴를 할 수밖에... 매일 이렇게 아이들을 기다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벅찬 사랑을 받는데 엄마는 아직 표현하는 것도 지키는 것도 모두 서툴다. 하루에 수도 없이 하는 질문, 어떻게 이런 천사들이 나의 아들이 되었을까? 남편과 나는 우리의 아이들을 잘 지키며 잘 키우자고 약속했는만... 부족한 엄마는 언제나 미안하고 아프다. 행복해야 하는 아이들인데... 이 한밤이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매일 밤 기도하며 잠들지만... 나의 기도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고 나는 아직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설프고 낯설다.


나 자신도 이렇게 못 미더운데 지켜보는 어른들의 눈에는 얼마나 불안해 보일까? 내 아이들의 아픔을 보면서 나를 보는 부모님의 아픔도 남 다르게 다가온다. 위태롭고 불안한 딸은 여전히 오락가락 위태위태하다. 잘할 수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 안심하시라고 말은 하지만 딸의 두려움도 외로움도 아픔도 부모님 눈에는 다 티가 나는 모양이다.


부모님은 딸을 믿으며 더 이상 재혼등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지만 이젠 나를 위하고 염려한다는 주변 사람들이 입을 댄다. 재혼을 안 할 거면 누구라도 만나서 외로움도 달래고 경제적인 도움을 받으며 좀 편하게 살라고 하고 누군가는 젊은 나이가 아까우니 애인을 만들어 즐기며 살라고 하면서 누군가 소개해준단다. 일단 한 번 만나보라는 권유에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결국은 나갔다.(내가 기대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도심 속 커피숍이지만 비교적 조용하고 손님도 많지 않다. 만나기로 한 사람과 나는 서로 얼굴도 모른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데스크에서 이름을 부르며 손님을 찾아준다.


온몸의 구멍이 흥건하게 젖는다. 아무리 잘 봐도 쉰은 넘어 보이는 어른이다. 차를 마셨는지 밥을 먹었는지 이야기는 나누었는지 기억도 없이 한 시라도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어떤 이유로도 그 자리에 있는 자체가 잘못이라는 생각으로 얼굴이 달아오르고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볼까 두려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벌써 몇 번째 삐삐가 울어댄다. 계속 같은 번호로 8282 숫자까지 적어서 연락하라고 재촉한다. 지난주에 만났던 사람의 메시지다. 그 자리를 주선한 어른에게 분명히 거절 의사를 밝혔지만 그런 사람을 거절하는 내게 당돌하다는 말도 안 되는 욕까지 해놓고는 정작 당사자에게는 전달하지 않은 것인지 집요하게 연락이 온다. 내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며 그럴싸하게 포장을 하지만 내용은 돈 많은 유부남의 애인이 되어서 젊음을 바치고 그 대가로 돈을 받고 그 돈으로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데 보태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끝까지 거절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나갔던 자체가 치욕스러운데... 세상 물정을 모르는 소리를 한다고 질책까지 받았다.


50여 년 전, 그때는 이혼한 여자는 하자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숨겨야 했다. 심지어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하더라도 참고 살지 않은 여자에게 탓을 돌리던 시절이니 사별한 경우에는 주인 없는 여자라고 함부로 대하며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던 그런 시절이기도 했다... 요즘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그땐 그랬다.

그 일 덕분에 나는 자신에게 더 엄한 잣대로 다스리고 누구에게도 가볍게, 불쌍하게 보이지 않도록 더 당당하게 자신있게 살아가리라 결심을 하는 계기가 됐다.



"난 여자이기 전에 두 아이의 엄마이며 한 집안의 가장입니다."



또 아버지 생각이 난다. 계시는 동안 평생 나의 울타리가 되어 주셨던 아버지, 남편이 우리 곁을 떠나던 날 그 자리에도 아버지는 불쌍하고 불쌍한 당신의 어린 큰 딸을 지켜주셨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시댁의 어른들이 염을 주관하고 입관을 준비하지만 아버지는 울고 있는 내 손을 붙잡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궜다. 마루에서는 안 사람이 남편 염하는 거 안 보고 뭐 하냐고 호통치고 빨리 나와서 입관을 지키라고 하지만 아버지는 완고 하셨다. 그날은 진정으로 나의 아픔보다 더 나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버지 단 한 사람뿐이었다.


“어미야 보겠나?”


“ㅠㅠ”


“안 봐도 되니 그냥 하세요!”


메마르고 단호하게 말씀하셨고 시댁 어른은 이런 경우는 없다 하셨지만 아버지는 입관을 마칠 때까지 내 손을 꼭 잡고 함께 우시며 울타리가 되어 주셨다.

(입관을 보면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 살아가는 동안 더 힘들 수 있으니 안봐도 된다 하셨고 나 역시 두려워 볼 수 없었다)

또 아버지는 남편의 친구, 선배, 후배 누구라도 심지어 시동생도, 남동생조차도 남자는 절대 믿지 말라고 하셨다. 세상은 남편이 없는 여자에게는 그런 곳이라고 하셨다. 오늘에야 아버지의 그 말씀이 더 다가왔다. 그 자리를 주선한 어른은 아버지와도 호형호제하던 분이었기에 더욱 그랬다.(그 분은 나를 위한다는 명분이지만 자신의 이득을 위해 거래처 사람에게 나를 빌미로 득을 보려고 했던 것이다)




세상의 시선은 불쌍하고 힘없는 청상, 부모님에게는 한 없이 아픈 자식, 세상 물정 모르는 무방비의 어리고 부족한 엄마, 그래서 나는 강해져야 했다. 그 누구도 다시는 나와 아이들을 얕보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게 더 차갑고 냉정해져야 했다.

세상은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비굴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여자이기 이전에 가장이고 아이들을 지켜야 하는 엄마는 그렇게 모질어지리라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나의 아이들에게만은 그러지 말아야 했다.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보다 약한 아이들에게 강하고 독하게 구는 모진 엄마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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