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에 올라앉다

무지렁이, 남의 돈은 절대로 손대면 안 된다.

by 힐링아지매


원고 OOO은 일주일 안으로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지불한다.
'땅땅땅'



“재판장님 저는 돈이 없습니다. 다음 세입자가 들어오고 전세금을 받으면 돌려주는 방법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법정에 섰다. 출석 통지서를 받은 날부터 떨리던 가슴이 이제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머릿속은 하얗게 되던 그때를 정확히 기억한다.

재판장님에게 최고의 용기를 내여 할 수 있었던 말은 그것뿐이었고 가슴 아픈 진심이었다.


일주일 안에 세입자의 전세금을 돌려주라는 법원 판결을 받았다. 일주일 안에 2,3층 세입자에게 내줘야 하는 돈이 3천만 원이다.

증축하면서 받은 대출금의 이자도 제때 갚지 못해서 연체가 되고 연체이자는 점점 몸이 불어나고 있는 지경에 어떻게 그 큰돈을 구한 단말인가?



"내 돈 내놔라"

법원에서 준 기한이 넘어가자 2층 세입자는 전세금을 받기 위해 우리 집을 경매에 넘겼고 1,2차 유찰이 되었고 결국 3차 경매에서 집주인이 바뀌었다.


이제는 빚을 갚는 것보다 우선은 우리 세 식구가 살 곳을 찾는 것이 급선무가 되었다. 최종적으로 집주인이 바뀌었다는 판결을 받은 이후부터 그 집을 나오는 한 달간 아이들과 나는 매일 피 말리는 공포에 떨었다.


“아줌마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면서요. 왜 우리한테 이야기도 안 하고 사과 한 마디 없어요.”


아이들이 아직 등교하지 않은 이른 시간, 아침을 먹으려는데 문을 두드린 3층 세입자의 아내가 사과를 요구한다.


“경매를 받은 사람이 언니라서 나는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새댁을 만나지를 못해서 말을 못 했어요, 미안해요.”


“언니는 언니고 우리한테도 사과를 해야지요!”


“미안해요”


순식간에 살던 집에 사라지게 된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스러웠던 상태라서 3층 세입자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못했다.


거듭 미안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생각지도 못하는 일들이 자꾸 일어난다. 놀라고 서럽고 꿈같은 아침을 보냈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날 아침 또 그 시간에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이번에는 3층 세입자 남편이다.


“아줌마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면서요. 왜 이야기 안 했어요.”


“어제 새댁한테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는데...”


“그건 우리 집사람에게 한 것이고 나한테는 안 했잖아요.”


“두 사람은 부부니까......”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이 아줌마가~! 빨리 사과하세요.”


아이들은 밥숟가락을 놓고 숨을 죽이고 있다.

“미안해요”


무슨 영문인지, 왜? 뭘?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어제는 아내가 오늘은 남편이 차례대로 내려와서 사과하라고 고함을 쳐댄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도 같은 소리가 ‘쾅쾅’ 들린다. 계단에서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흡도 진정이 되지 않는다.


“아줌마 우리 돈은 언제 줄 거예요?”

“새댁, 이 집은 언니가 경매를 받았고 세입자가 들어오면 새댁네 전세금은 해결되는 거잖아요”


무지하고 단순하고 어리석은 나의 계산은 그랬다. 우리가 이사를 가면 새 세입자가 들어올 것이고 그러면 부족한 전세금은 해결되는 것이라고 아주 단순한 셈으로 계산을 했다. 하지만 그들의 계산은 전혀 달랐다. 경매로 인해 전세금 전체를 다 변제받지 못하고 남은 8백만 원을 달라는 것이다. (법적으로도 전 집주인이 전 세입자에게 나머지 차액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오늘 아침은 새 집주인이 된 2층 세입자 남편이 문을 두드린다.


“아줌마 언제까지 집을 비울 수 있어요. 한 칸짜리라도 얻어서 빨리 나가시고 집 비워주세요.”


지금 내 수중에는 빚 말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연체이자는 괴물처럼 늘어나고 있고 내 머리로는 아무런 대책이 없고 막막하기만 하다.


또 다음날은 3층의 세입자 아내가 내려와서 동네가 떠나갈 듯 소리를 지른다.


“내 돈 내놔요. 내 돈, 언제 줄 거야. 내 돈 내놔 내 돈!!”

그 후로는 아침뿐만 아니라 수시로, 밤낮으로 문을 두드렸고 나는 '미안하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단칸방이라도 얻어서 나가요 제발

옆집은 벽하나 사이로 바로 한 집과 같은 구조다. 매일 아침 일어나는 일들을 훤히 다 알고 있었다. 어느 날은 저녁에 또 현관문을 두드린다. 덜컥 내려앉는 가슴을 부여잡으면서 문을 열었다. 세입자가 아니라 옆집 아저씨다.


남편이 남긴 퇴직금으로 마련한 보금자리는 산동네로 불리는 곳의 15평으로 방 두 개에 주방과 거실을 겸하고 있고 우리 세 식구가 살기엔 부족함이 없다.

중학생일 때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왔을 당시는 80만 원이었던 집이 우리가 들어올 때는 2,500만 원이었다.

평수는 작지만 2층에 전세 들어 있는 사람이 있었기에 남편의 퇴직금으로 살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졌던 가장 큰 재산이고 처음으로 가진 내 집이었다.

산동네의 특성상 평수가 작은 집들은 옆집과 한 지붕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증축을 하려면 두 집이 같이 해야 했던 것이다.

뻔한 내 형편으로는 대출을 받아서 까지 증축을 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너무 커서 도저히 할 수가 없다고 누차 말을 해도 우리가 하지 않으면 옆집도 못하니까 제발 같이 하자고 여러분 부탁을 하는 바람에...

결국 대출을 받아서 옆집은 4층 나는 그나마 3층으로 증축을 했다.


나의 불행이 누군가에겐 행운의 기회였다.

"매일 아침마다 저 소리를 듣는 것이 우리도 힘든데 아이들은 무슨 죕니까.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네요. 단칸방이라도 구해서 하루라도 빨리 여기를 벗어나는 게 맞지 싶습니다."


나도 하루빨리 이 지옥을 벗어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도대체 방법을 못 찾겠다.


갈 곳도 없고 500만 원 하는 단칸방도 얻을 여유가 없다. 한 달 안으로 비우지 않으면 법원에서 집행자가 나와서 강제로 쫓아낸다고 한다. 말 그대로 길바닥으로 내몰리는 것이다. 한 달 안에 우리 세 식구가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침이 되면 아이들도 나도 서로 눈치만 보면서 애써 괜찮다고 허세도 부리며 아이들에게 안심하라고 힘없는 용기를 주지만 이런 지옥은 처음이다.

(어른인 나도 힘든데 아이들이 느꼈을 공포는 상상할 수가 없다)


“단칸방 하나 얻을 여유도 없어요 새댁, 당분간 좀 살게 해 주면 안 되겠어요”


또다시 쫓아 내려온 새 주인에게 사정을 빌어 보지만...


“앞으로 아이들 데리고 어떻게 살려고 하세요. 지금까지 그 돈도 안 모으고 어떻게 살았어요?”


경멸의 눈빛으로 흉측한 벌레를 보듯이 흘겨볼 뿐 전혀 동정의 여지는 없다.


할 말이 없다.

정말 지금까지 나는 어떻게 살아온 것일까?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된 것일까?


남편 퇴직금으로 장만한 집도 날아갔고 한 푼도 써보지 못한 3천만 원의 빚만 생겼다. 보험영업도 하고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을 써도 겨우 백만 원 남짓이고 이자는 물론이고 세 식구 생활도 뒤죽박죽 엉망이 되었다.


그나마 내가 손을 내밀 곳은 친정 밖에 없는데 친정아버지도 나와 똑같은 처지에 있다. 전세는 통상 서로 밀고 밀리면서 자금이 도는 것인데 계약일자가 넘었지만 다음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았고 아버지도 국토개발부의 재건축 정책 자금을 대출받아서 집을 증축했으니 금액만 다를 뿐 궁지에 몰려 딸의 상황을 알면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친정에는 동생내외와 조카들까지 한 지붕 두 가족이 살고 있어서 우리 세 식구까지 보탤 여지가 없었다)


친절한 마약 같은 독약 처방

당시 정부는 산동네에 선심 쓰듯이 재건축을 허락했고 국토개발부에서는 재건축 비용까지 대출해 주는 친절한(악마 같은) 정책을 펼쳤고 무지하고 무지한 백성은 그게 마약 같은 독약인 줄 모르고 덥석 받아먹었다.


정보의 부재고 무지함의 결과다. 정부는 저리로 대출해 준다는 미끼를 던졌고 산동네 작은 집에 옹기종기 모여 살던 사람들은 너도 나도 3층, 4층 증축을 했고 결국 1년도 못 가서 수요보다 전세 공급이 훨씬 많아졌다.

그 틈을 이용해 정부는 집 없는 세입자들의 피해를 줄인다는 미명하에 또다시 집주인들에게 전세자금 대출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빌려 주면서 나 같은 빚쟁이들을 대거 만들었다.(나처럼 순전히 대출로 증축한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거리로 나앉았고 그나마 돈이 있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애써 모은 돈을 대출금과 이자와 맞바꿨다)


재건축 정책이 발표되고 3년 사이에 작지만 아늑했던 우리의 보금자리는 돈 많고 머리 좋은 세입자에게 넘어갔고 이번에는 빚더미에 앉으면서 또다시 알거지가 되었다.

한 푼도 내 손을 거치지 않은 3천만 원의 빚과 3층 세입자에게 줘야 하는 8백만 원 그리고 아버지 집 1층으로 이사를 하기 위해 빌린 1천5백만 원까지 총 5천3백만 원의 빚이 생겼다.


집이 없고 수입도 적으니 모자가정에 차상위계층이 되면서 영구 임대 아파트 신청 자격이 되었고 다음 세입자가 들어오면 바로 갚을 수 있다는 조건으로 4명의 지인에게 1천5백만 원을 빌려서 아버지 집 1층으로 이사를 할 수 있었다.


내게 남은 빛은 오로지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던진 국가의 이름으로 포장한 미끼를 덥석 물고 걸려든 탓이었다.


재건축 대출자금의 유예기간이 지나고 매월 갚아야 할 이자는 우리 집 생활비의 반을 넘게 차지했고 이미 늦은 후회는 고통으로 이어졌다. 집을 증축하겠다는 결심을 한 대가가 내 인생에서 가장 부끄럽고 처참한 일을 겪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재건축 계획을 준비하면서 전세의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을 것까지 예상하고 다음 해에 전세자금대출까지 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것일까? 정말 그랬다면 그들은 아마도 천벌을 받았을 것이다.(힐링아지매 피셜)
그래서 선거철마다 들려오는 '민생을 위한 공약'이라는 말을 절대로 믿지 않게 되었다.



무지렁이, 남의 돈은 절대로 손대면 안 된다.

무지렁이’ 그 말이 딱 맞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무지렁이였던 것이다. 먼바다에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처음엔 잔잔한 파도를 만들지만 결국은 큰 파도와 태풍까지 몰고 올 수 있는 전조라는 것을 몰랐다.


사실 지금도 그런 안목은 없다. 하지만 이젠 아닌 것은 아니라고 고집할 수 있는 배짱과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지혜는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때 증축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끝까지 대출을 받지 않았더라면 결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국가든 개인이든 남의 돈은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라는 뼈아픈 교훈과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던 시절이었다




2층 세입자의 8백만 원은 5년에 걸쳐서 매달 조금씩 갚았고 마지막에 50만 원을 탕감해 주었다.


남편이 있었다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었고 내가 좀 더 지혜롭고 현명했더라면 겪지 않았을 일들이라고 가슴을 치며 울던 날들이었다.


굳이 긍정적으로 해석을 하자면,

집이 없어지면서 미성년의 아이들이 둘이나 있고, 남편이 없는 모자가정으로 선정이 되었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서 영세민 영구 임대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국가 정책 때문에 거리로 나 앉았고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의 시간도 어느새 잊고 다시 국가가 내놓는 달콤한 제도 덕분에 숨을 쉴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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