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짝사랑
7살, 5살 엄마바라기였던 아이들이 이제는 엄마의 사랑과 관심이 잔소리로만 느껴지는 나이가 됐다. 큰 아들은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고 작은 아들은 고2, 엄마, 아버지 어느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엄마는 마흔을 넘기면서 아들들의 치열한 사춘기를 함께 지나고 있다.
큰 아이는 자라면서 점점 더 붕어빵이 되어간다. 얼굴은 물론이고 식성이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손가락 모양까지, 섬세하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 닮아도 너무 닮았다. '씨 도둑은 못한다'는 옛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어릴 때는 외탁을 했다는 작은 아들도 중학생이 되면서 서서히 변하더니 이제는 세 부자가 똑같이 닮았다. 소개 자리에서 첫눈에 들어온 남편의 선한 미소가 이제 두 아들들 얼굴에서도 보이기 시작한다.
성인이 코앞인 우리 아들들, 이제 한시름 놓고 책임의 무게를 조금 덜어 내도 되려나?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으려나?
“100일 동안 매일, 자고 있는 아이들 머리맡에서 업 닦음이다 생각하고 참회의 절을 해라.”
지금의 삶이 힘든 이유는 전생에 지은 업 때문이라면 참회의 절을 하면서 용서를 빌라고 한다.
“두 아이 모두 19살이 되기 전에 절명할 사주이니 칠성고를 풀어서 조상들에게 업닦음을 해줘야 해~!, 쌀과 초, 실 그리고 태워줄 아이들 속옷 한 장씩과 기도비 60만 원을 준비해서 오시오”
칠성고(?)를 풀어주지 않으면 두 아들을 19살이 되기 전에 잃을 수 있다고 한다.(칠성고를 푼다는 의미에 대해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무슨 기도를 해야 한다면서 밤 12시경에 오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죽을힘을 다해 사는데 왜 이렇게 안 풀리는지? 이유나 좀 알아보자."
평소 친하게 지내는 언니들이 복채까지 대신하면서 용하다는 점장이에게 데리고 갔다.
“사방 천지 아무도 없구나, 외로워서 어찌할고, 부모 형제 누구 하나 나를 도와줄 사람도 의지할 사람도 없이 사방팔방으로 네발에 동태(바퀴) 달고 돌아다니는구나ㅠ” (당시 영업을 하고 있었고 점장이는 나이만 묻고는 방울을 흔들면서 자신이 먼저 울었다)
왜소한 몸집과 매서운 눈빛의 점장이가 짤랑짤랑 방울을 흔들어 대면서 서럽게 엉엉 운다. 언니들도 나도 덩달아 꺼이꺼이 울었다. (한 번 입 밖으로 뱉어내면 그 감정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깊이깊이 꾹꾹 눌러 두있던 서러움이 무방비로 마구 쏟아졌다.)
“하루 중에 가장 어두운 때가 언제인지 알아요?
해뜨기 직전인 새벽이 제일 어두워요. 그러니 이제 곧 해가 뜰 겁니다.”(철학관에서 철학적으로 얘기 해준 나의 사주 풀이었다)
용하다는 점쟁이와 철학관을 찾아간다고 해서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서럽고 억울했고 그리고 무서웠던 내 마음을 알아주는 그들에게서 내가 내는 복채만큼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또 다른 간절함
과거 전생에 어떤 잘못을 얼마나 했는지도 모르고 매일 저녁 ‘용서해 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참회의 절을 한다. 100일 동안 정성으로 그렇게 빌면 조상님과 천지신명들이 나의 앞날을 도와주신다고 한다.
하지만 용서를 비는 참회 기도보다 더 간절한 소원이 있었다. 매일 밤 빌고 빌었지만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던 소원, 함부로 꺼내면 안 되는 말, 절대 해서도 안 되는 말을 이뤄달라고 빌었으니 누가 들어줬겠는가?
“내일 아침에는 제발 눈을 뜨지 않게 해 주세요, 저 스스로는 삶의 끈을 놓을 용기가 없습니다. 어딘가 신이 계신다면 이 밤에 제 삶을 거둬 가 주세요.”
아이들에 대한 나의 사랑은 책임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만큼 딱 그만큼 견뎌내고 완수해야만 하는 책임의 무게가 너무 버거웠다.
그토록 간절하게 기도하지만 매일 아무런 기대 없는 아침을 맞으며 실망을 한다. 계속되는 불면으로 퉁퉁 붓고 푸석푸석한 얼굴이지만 고객들에게도 식당 사장님을 보면서도 웃었지만 정작 내 웃음이 필요한 아이들 앞에서는 웃음끼 하나 없이 험악하게 찌푸린 채로 무서운 얼굴로 대했다.
하루 종일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엄마는 퇴근 하자마자 큰소리로 인상을 쓰면서 화를 내고 야단부터 친다. 숙제와 학습지는 다 했냐? 집안은 왜 이렇게 어질러놨느냐? 먹은 그릇은 왜 씻지 않고 그대로 설거지통에 있느냐?.... 의미 없었던 하루의 스트레스를 어린 아들들에게 쏟아내곤 했다.(종일 엄마의 퇴근만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에게 먼저 안아주고 사랑한다는 표현부터 했더라면...)
따뜻함이라고는 없는 엄마 얼굴을 보는 아이들의 얼굴도 점점 어두워지고 내 눈치만 살핀다.
너희들 덕분에 엄마가 살고 있다고 말을 하지만 정작 아이들에게 그 마음을 제대로 전한 적이 없다.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만 사랑과는 거리가 먼 얼굴을 하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얼마나 불안하고 무서웠을까?
남편과 나의 사랑의 분신인 아이들 그래서 혼자서라도 아들들을 잘 키워야 하고 잘 해낼 거라 자신했지만 지난 11년 동안 참 많은 일들을 겪으며 별의 별짓을 다 했다.
칠성고를 풀기 위한 기도비가 없어서 결국 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점사와 달리 두 아들은 19살을 무사히 잘 넘겼고 이제 둘 다 마흔이 넘었다.
영문도 제대로 모르고 100일 동안 아들들의 머리맡에서 했던 참회의 절은 이제는 매일 아침마다 나와 인연 지으진 모든 사람들의 행복하기를... 비는 기도로 바뀌었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지 않게 해 달라고 했던 간절한 기도는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하루가 감사할 따름이다.
아이들에게 무섭게 인상을 쓰며 웃음이 사라졌던 나는 14년 전부터 웃음치료 강사가 되었고 지금도 여기저기 찾아주는 곳이 많다.(처음 섭외한 곳은 있어도 한 번만 초청 한 곳은 없다는 그런 웃음치료사, 힐링아지매가 되었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처럼 그럼에도 참 잘 살아왔다. 아직 남은 숙제는 아들들의 마음속 깊이 곳에 묻혀 있을 아픔이 자신도 모르게 녹아내리길 빌며...
어린 시절 겪었던 엄마에 대한 두려움과 서운함, 미운 마음과 또 같이 살아내면서 생긴 애정들의 양가감정의 갭이 최대한 줄어들기를 빌 뿐이다.
영원한 짝사랑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이 '사람이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했듯이 지금도 두 아들의 얼굴에는 남편의 선한 미소가 있다. 그래서 두 아들에 대한 나의 짝사랑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무서운 엄마였고 부족한 엄마지만 언젠가는 우리 셋이서 살아내기 위해 별의 별짓을 다하며 살아온 엄마를 더 이해하고 그 시절의 엄마를 용서하고 이제 세월 속에 묻혀 가는 엄마를 가슴으로 안아 주면서 아들들의 마음이 편해지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Every man over forty is responsible for
his own face."- Abraham Lincol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