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 생활 수급자가 되었다.

빚과 혜택

by 힐링아지매




매달 꼬박꼬박 일정 금액이 통장에 입금된다면 어떨까? 생각지도 못했던 2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이 매달 입금이 되다가 어떤 달은 두 배가 넘게 들어온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서 매월 2만 원이 조금 넘는 돈 생활비로 받고 있다. 그런데 4만 원이 넘는 돈이 벌써 몇 번째 통장에 찍히고 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담당자의 실수가 아닐까 그래서 언젠가는 돌려 달라고 할지도 모른다는 쫄보의 합리적 의심을 하서 그 돈은 쓰지도 못하고 그대로 두고 있다가 결국 동사무소에 가서 물어봤다.(공무원은 실수하는 일도 없겠지만 설사 실수를 했다고 해도 민원인에게 돌려 달라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은 한 참 후에 알았다)


"그 부분은 2개월에 한 번씩녀분들 학용품비지급되는 것입니다."


3개월 뒤에는 또 이런 전화가 왔다.


"20킬로 나와 있으니 오셔서 가져가세요."


기초생활수급자는 말 그대로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국가로부터 자금과 물품 수급(배급)의 혜택을 받는 사람이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서 받았던 혜택
-한 달에 2만 여원의 생활비
-두 달에 2만 여원의 학용품비
-석 달에 한 번씩 쌀 20kg
의료비 혜택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미 건강의료보험료를 납입하지 못해서 병원을 가지 못하는 바람에 그 부분은 잘 모르겠다.


쌀이 없어서 굶어 본 나로서는 쌀 배급(?)은 최고의 베풂이고 가뭄의 단비 같았다. 그럼에도 쌀을 가지러 동사무소까지 갈 때는 고마운 마음과 함께 왠지 모를 수치감까지 들며 부끄러웠다. 처음 쌀을 받으러 갔던 날은 무거운 20kg의 쌀을 어떻게 가지고 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후로는 3개월에 한 번씩 문 앞으로 배달이 왔던 것 같다.


무상으로 받는 쌀이지만 누군가는 찰기가 없어서.., 은 몇 해 동안 팔리지 않아서 쟁여 두었던 오래된 정부미라며 덜대며 불평을 하기도 했지만 난 그저 감지 덕지 고마울 따름이다. 이 상황에서 쌀의 품질이 좋고 나쁘고를 따지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는 생각 다.(실제로 그 쌀이 품질이 좋지 않다고 밥을 지어먹지 않고 떡을 하거나 강정을 해서 먹는 사람도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 자격

영세민 영구 임대 주택에 입주신청을 하면서 이미 기초 생활 수급자(이하 수급자) 자격을 갖추었고 내가 수급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본인 소유의 건물, 주택, 토지, 차량 등 재산이 없었고, 월 수입이 9십만 원 이하이며, 미성년자를 부양하는 편모 가정으로 국가가 정해놓은 영세민 기준에 부합되었기 때문이었고 그로써 정부가 지원하는 각종 혜택을 받았다.

국가의 정책에 휘둘려 집이 사라졌고 집이 없는 덕분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었던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 모든 일이 나의 어리석음으로 일어났고 정부에게 무상으로 받는 혜택들 또한 또 다른 빚으로 느껴졌고 감사하면서도 자존심이 많이 상했었다. (이후 그 빚을 갚는 마음으로 봉사 활동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봉사를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남편이 우리 세 식구에게 남겨주고 간 마지막 돈으로 샀던 작은 우리 집으로 다른 욕심을 부린 적이 없다. 그저 이들과 무난하게 소박하게 잘 살고 싶었을 뿐이다. 생애 처음 내 이름으로 된 등기부등본이 허무하게 사라진 것 누구의 탓도 아니고 오로지 나의 보에 대한 무지함과 삶의 목표나 계획이 없었던 안일함에서 비롯된 일이다.



정부는 국민을 대상으로 선심 쓰듯 저리로 대출을 해 주었고 아무 의심 없이 덥석 받아먹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 것이다.

끝까지 집을 증축하지 않았다면, 국토건설부에서 증축 정책을 발표하지 않았다면, 서민을 대상으로 저리 대출을 권장하지 않았다면, 3층이 아니라 2층으로 증축을 했더라면... 지난 선택에 대한 후회에 많은 미련을 떨었다.

국토건설부의 정책은 서민들에게 최저금리로 대출을 해주며 좁은 집을 층수를 높여서라도 내 집에 대한 자부심에 키워준다는 것이었다. 다들 좋은 정책이라고 했지만 누군가에겐 맹독이 되어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놨던 것이다.

정보가 부족했고 제대로 된 계획도, 대책도 없었던 나는 순식간에 국가에 의해, 국가에 대한 채무자가 된 것이다.

그렇게 두 눈 멀쩡히 뜨고 집은 집 대로 빚은 빚 대로 의지는 의지 대로 다 잃어버리면서,
어떻게든지 갚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막연한 생각은 뼈 아픈 상처로 남았고 사람의 앞 일은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영세민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불안정했던 시간에서 조금씩 벗어고 아이들이 편히 지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이 되어 지만 제때 갚지 못하는 바람에 계속 불어나는 연체이자는 여전히 내 발목을 잡고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대출금은 물론이고 각종 연체 고지서들은 바뀐 주소로 다시 착실하게 날아오고 있다. 대출이자는 일자는 못 맞춰도 카드 돌려 막기로 겨우 버티지만 국민연금, 건강의료보험료는 이제 도저히 어찌해 볼 수도 없을 만큼 늘어났다. 연체금과 독촉장은 매월 한 장씩 쌓여가고 있다.


보험회사에서 받는 수당은 여전히 들어오기 바쁘게 지나가고 각종 아르바이트로 받는 현금으로 하루하루 쁜 숨을 가늘게 이어가고 있.


수급자에게 지급되는 혜택은 갈증을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매달 약속을 지켜주는 정기적인 수입으로 작은 위로가 주었다. 만 큰 아들이 성인이 되면서 학용품비가 반으로 줄었고 작은 아들이 성인이 되던 그 해 8월 아들의 생일이 지나자마자 정확하게 모든 혜택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모자 가정, 기초생활수급자라는 꼬리표도 같이 떨어졌다.


하지만 현실은 그때부터 필요한 돈의 단위가 달라졌고 대학 등록금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겨우 맞췄지만 전 학기 내내 본인명의의 학자금 대출을 받으며 어린 나이의 아들들을 채무자로 만들어 버린 무능한 엄마가 되었다.


15화 절망과 희망은 한 끗 차이 / 등록금과 약속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초적인 의식주를 해결할 수 없어 빨간불이 들어오는 순간 죽을 것만 같았다. 그 고통도 어둠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시간들 속에서 더 지독한 키워드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2015년, 보험회사에서 암 진단금을 받았고 그 돈으로 남은 빚을 다 갚으면서 드디어 모든 채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나마 이만 하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지금 주어진 현실에 감사하며 살기로 마음을 고쳐 먹은 것이...)


흔히 인생의 여러 고비를 넘긴 사람들이 산전, 수전을 다 겪었다고 말한다. 나는 거기에 공중전, 우주전까지 보태며 지나온 시간들을 기록하고 아픈 기억들을 비워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나와 같이 지금 캄캄한 터널 속에 있거나 무서운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이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꼭 알려 주고 싶은 것이 있다.


시간은 지나가는 것이고...

세상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 절대로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분명 원하는 날을 맞이할 것이라고...

그리고 한 가지 더... 꼭 해야 할 일은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죽을 것 같지만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죽을 만큼 아프지만 죽진 않았음에... 감사하고

지금보다 더 하지 않고 이만 하길... 감사하고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한다고...


오늘도 저의 글을 읽고 계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언제나 자유롭고 행복하시기 빌겠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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