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돌려 막기
한 달 30일이 반토막 난 지 오래다. 15일이 지나고 나면 바로 다음 달은 어쩌지 하는 걱정부터 하게 된다. 하루하루를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하게 살아가고 있다. 매달 절반의 시간을 가불 하듯 쓰고 남은 보름은 불안함으로 버티는 시간들이다.
“언니야 이번 달도 되겠나?”
“응, 그렇게 해”
긍정적인 대답을 들으면 온몸의 세포들이 안도의 숨을 쉰다. 하지만...
“이번 달은 안 되겠네, 이미 다른 친구가 써 버려서, 다른 사람 알아봐야겠다.”
때때로 안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은 정신을 못 차리고 마구 요동을 친다.
(가지고 있던 카드가 모두 사용 중지 되면서 그간 하던 돌려 막기가 막혔고 매달 돌아오는 결제일을 넘기기 위해 가장 많이 그리고 흔쾌히 빌려주고 있는 지인 언니에게 매번 도움을 요청하며 사용 여부를 물어본다. 언니는 나뿐만 아니라 가까운 친구에게도 나처럼 빌려주곤 했었다)
마구 나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정신을 가다듬고 이성적으로 차갑게 생각을 해야 한다.
단칼에 거절하지 않을 사람, 어렵게 말이라도 꺼내 볼 수 있는 사람이 떠오른다고 해도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그 사람이 거절하면 어떡하지?... 온갖 생각으로 머리는 아득해지면서 빙글빙글 돌고 몸에는 열이 오른다.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뜬금없는 안부전화를 반갑게 받아 준다.
“오랜만에 전화해서 이런 말씀드리기 죄송한데요. 저... 제가... 3일 정도만... 융통을...”
다음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아이가 학원을 한 곳 더 다니게 됐다거나 큰 가전제품을 새로 구입했거나 집을 넓혔거나 때로는 가족이 병원에 입원을 했거나 하면서 여유가 없다는 이야기를 에둘러 장황하게 설명을 한다.
거절의 마음이 가득 담긴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난 돌이 되어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내 숨구멍을 막는다. 그럼에도 염치 불고하고 날카로운 돌과 함께 침을 꿀꺽 삼키고는 한번 더 말을 꺼낸다.
“3일만 좀 부탁합니다. 오늘 돌아오는 것만 막으면 모레 바로 대출을 받을 수 있으니 약속 절대 어기지 않겠습니다.”
“......................... 그래요 어디로 보내면 돼요.”
간절함이 전달되었는지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서인지 감사하게도 덕분에 고비를 넘긴다.
상기된 이마에 땀이 맺히고 전화기를 잡은 손은 부르르 떨리고 손바닥도 흥건하다. 이제 남은 절반의 한 달을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신종거지가 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매월 카드 결제일만 돌아오면 찌그러진 양푼이처럼 만신창이가 되어 구걸을 하고 있다. 예전에 우리 집을 경매로 구입하고 빨리 집을 비워 달라면서 그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 정도 돈도 없이 앞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 거예요?’ 그녀 말이 맞았다. 나는 지금 2백만 원을 해결하지 못해서 매월 구걸 할 대상을 찾고 동냥질을 하고 있다.
‘고객님의 사용 한도가 하향 조정 되었습니다.’라는 문자를 받으면 카드 한도가 줄어들고 결제금을 맞출 수 없게 된다.
연체이자가 발생하고 은행이나 카드사로부터 공포의 전화를 받는다.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카드는 한 장씩 사라졌고 상환 독촉을 하던 은행은 채무를 대신 받아주는 전문 업체로 나를 이관했고 그때부터는 또 다른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물기도 온기도 없고 그저 악성 연체자에게서 어떻게든 돈을 받아 내고야 말겠다는 비정함만 묻어난다. 그나마 아직 살아 있는 한 장의 카드마저 한도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어 이 마저도 언제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당시는 소득이나 신용에 관계없이 은행과 카드사 각각 따로 발급받을 수 있을 만큼 카드 발급이 쉬웠고 많은 사람은 7~9개까지 발급받으며 너도 나도 돌려 막기를 하면서 카드를 활용하고 있었다.
카드사마다 규정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20세만 되면 소득과 관계없이 발급해 주었고 겨우 한 달 먼저 사용할 수 있는 외상인 줄 뻔히 알면서도 사회초년생 청년들까지 이 카드, 저 카드 마구 긁어 대면서 돌려 막기로 버티는 사람들이 많았다.
결국 정부는 무분별한 카드 발급에 제동을 걸었고 지금까지 무한히 주던 당근을 끊고 채찍을 들었다.
개인의 사용 한도가 줄어들거나 사용이 정지되는 카드들이 생겼고 돌려 막기에 문제가 생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신용불량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여기저기 쓰러지기 시작했다.
개인은 물론 많은 기업이 피해를 입기도 했다. 누군가는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진해서 노숙자가 되기도 하고 독촉을 견디지 못해 최악의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카드 돌려 막기는 ‘꼬시래기 제 살 뜯기’의 형국이다.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사슬에 묶인 것이다.
동생의 급한 사정으로 대출을 받아서 빌려주자마자 두 개의 카드가 사용 중지 되면서 돌려 막기가 막혔고 200만 원 원금은 물론 불어나는 연체이자를 끝내 해결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갑자기 어려워져 돈을 빌려간 동생에게 다시 돌려 달라는 말도 할 수가 없다. 어떤 상황이든 최종 선택은 내 몫이었으니까...
시급 3천 원의 아르바이트와 100만 원도 되지 않는 수당으로는 세 가족 생활 하기에도 빠듯했으니 도저히 갚을 길이 없었다.
돌려 막기의 마지막은 고금리 캐피털 대출이었다. 카드가 막혀도 신용이 없어도 돈을 빌려준다는 곳, 먹으면 죽는 쥐약인 줄 뻔히 알면서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증축을 위해 빌린 돈의 원금 상환일자가 다가왔고 아무리 읍소를 해도 감액도 안되고 연장도 안되고 무조건 갚아야 했다. 신용도 없고 수입도 없고 어디에서도 그 큰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고금리 캐피털 금융을 찾았고 스스로 새로운 족쇄를 채웠다.
캐피털의 상환 요청은 협박만 아니었지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날카로운 칼이 되어 가장 아픈 곳에 날아와 꽂혔고 전화를 받을 때마다 소름이 돋을 만큼 온몸의 세포가 두려움으로 떨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동냥을 하면서 돌려 막기를 해도, 하루에 3개씩 아르바이트를 해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결국 보다 못한 지인들의 조언으로 신용회복위원회에 문을 두드렸다.
신용회복위원회는 각종 채무로 인해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해 주는 기관이다. 이용자는 꾸준하게 경제 활동을 하면서 조정받은 방법으로 착실하게 갚아 나가기만 하면 된다.
(신용회복위원회에서 모든 채무에 대해 상환기간 연장, 분할 상환, 이자율 조정이나 감면을 통해 이용자가 경제적으로 재기를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제는 결제 일이 돌아와도 구걸하지 않아도 되었고 칼 같은 독촉 전화의 고통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갚아야 할 빚이 모두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조금씩 마음이 편해지면서 ‘신용회복위원회를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면서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토록 치욕적이고 두려운 극한의 고통을 겪기 전에, 조금 더 일찍 정신줄을 잡았더라면...
지금도 늦지 않았고, 이만 하길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새롭게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남은 과제는 아주 단순하다. 신용회복위원회의 할부금 상환하기, 둘째 아들 대학 등록금 준비하기 그리고 생활비 벌기.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무조건 해야 한다. 그간 본업인 보험 영업에 집중하지 못했던 이유와 핑계들을 떨쳐내고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모든 아르바이트를 끊고 본업에 집중하며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체력을 키우고 열정을 다시 끌어올리지 않으면 지금까지 겪은 일을 또다시 겪을 수도 있다. 그러니 무조건 해야 한다.
문제는 보험회사의 수당은 한 달이 밀려서 입금되는 시스템이기에 수입이 없는 한 달을 어떻게든지 버텨야 한다. 한 달 동안 더 아끼고 더 많이 뛰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자고 다짐한다. 현재로서는 그것 밖에는 딱히 다른 방법이 없다.
초심으로 돌아가 정말 열심히 미친 듯이 앞만 보고 달리면서 1년을 버텼다. 1년 전, 100만 원도 되지 않던 수당이 2백50만 원이 되었고 기본으로 돌아가서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한 1년 동안 놀라운 결과를 만들었다.
처음 보험 영업을 시작하면서 겪었던 이상한 일들을 핑계 대지 않고 견뎠더라면... 그동안 겪은 모든 고통과 고생은 순전히 나의 잘못된 판단과 신중하지 못한 선택이 불러온 결과들이었다는 것도 뼈저리게 깨달았다.
신용불량자라는 꼬리표는 여전하지만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시급 파출부를 하지 않아도 되고 손님이 주는 술 한 잔을 눈치 보며 거절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응원과 지지도 큰 위로가 되어 주었다.
"지금의 깨달음도 어려움을 겪어 봤기 때문에 알게 된 거잖아, 그 시간이 없었다면 이 순간도 귀한 줄 몰랐을 거야"
"어떤 일이든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때가 있고, 모든 것을 다 깨달았다고 할 때, 그때는 아마도 생을 마감하는 때가 아닐까?"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이 편해야 잘할 수 있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며 열정을 쏟을 때 확실히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다시금 알게 되었다.
(세상에 공짜는 절대로 없다,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서야 깨달음을 얻었으니...)
39살, 40살, 41살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었는지... 54살에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부족했던 나의 지난 시간들을 이해 할 수 있었다.
자존감은 바닥이고 주어진 일은 무슨 일이든지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그 어떤 일도 선뜻 시작하지 못하는 용기 없는 사람.
항상 부족한 사람이라고 주눅 들어 있었고 그저 주어진 대로 반항 없이 이견없이 살면서 주변 사람들의 평가에 레이더를 세우고 눈치 보며 살기에 급급했던 못난 사람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하루라도 빨리 이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았다면 상담을 받은 이후부터는 이 생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내가 행복하고 즐거운 일만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후로 직업도 바뀌었고 생각도 사람도 모두 바뀌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도 그때 그 시간 덕분이다.
지금까지는 힐링아지매의 지독하고 치열했던 30대의 이야기였습니다.
산전, 수전, 공중전, 수중전, 우주전까지 견뎌내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흴링아지매의 이야기는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다음 편부터는 힐링아지매의 40대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계속에서 많은 관심 부탁드리면서
아울러 여러분 모두 언제나 자유롭고 행복하시기를 빌겠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