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얼굴이 생각났어요.
어머니, 집이 이상해요, 형아도 없고
겁에 질린 작은 아들이 울면서 전화를 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손발이 저려온다. 머릿속이 하얗다. 전화를 끊고 발이 땅에 닿는지 마는지도 모르게 집으로 가는 동안 공포로 떨리던 작은 아들의 우는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몸은 직장에 있지만 아이들이 학교로 가는 시간, 집에 오는 시간, 학원 가는 시간과 돌아오는 시간등 모든 것들을 알지 못하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아이들과 가족회의 통해 합의를 가장한 엄마의 강압적인 약속이었지만 다행히 잘 따라주고 있었기에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큰 아이에게서 아침부터 전화 한 통 없고 종일 전화도 받지 않는다. 사고가 난 건 아닐까?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기에 연락이 없는 건지? 오만 가지 걱정과 불안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온종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불안해하던 차에 받은 전화다.
택시에서 내린 후에도 발은 또다시 허공을 헤맨다. 활짝 열린 현관을 들어서니 아수라장인 마루에서 작은 아들은 불안한 얼굴로 엄마에게 선뜻 다가오지도 못하고 눈치만 살피고 있다.
마루에는 안방에 있던 장식품이 널브러져 나와 있고 남편의 사진이 있었던 액자가 부서지고 유리 조각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액자 속에 있던 남편 사진이 보이지 않는다. 흡사 큰 싸움이 있었던 것처럼 난장판이다.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큰 아이와 연락할 길이 없다. 어디에 있을까? 친정에 전화를 해도 모른다고 하신다. 자초지종을 설명할 수가 없어 대충 얼버무리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큰 아이의 친한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보지만 아이의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무작정 나서서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다. 매일 같이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 연락은 받았지만 정작 사라진 아이의 행방을 찾는 데 도움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두 시간 넘게 온 동네를 돌아다녔지만 아들의 흔적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고 허수아비가 허공을 걷는 것처럼 허우적대고 있는데 골목 저 끝에서 보이는 실루엣이 큰 아이와 닮았다. 안도와 함께 참았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고 다시 한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아들을 꼭 안았다. 아들은 키가 커가듯이 마음도 크고 있다는 것을 나는 왜 몰랐을까.
마루를 정리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아들이 먼저 입을 연다.
불만이 있지만 자기들을 위해 너무 고생하는 엄마에게 불만을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 자신이 나쁜 아들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엄마가 자기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못하는 이유는 모두 자신들을 두고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탓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런 아버지가 그립고 보고 싶은 만큼 원망스러웠던 것이다. 엄마에 대한 서운함과 불만을 장례식 때 사용했던 아버지의 사진에 다 풀었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인사하면서 마주 했던 그의 사진은 사라졌고 지금까지도 그 행방을 모른다. 어떻게 했냐고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학교에 갔는데 옥상으로 가는 문이 잠겨 있었고 높은 아파트 옥상마다 다 올라가 봤는데 문이 다 잠겨있었고 마침 옥상이 열린 아파트 한 곳이 있어서 옥상 난간에 올라섰는데 갑자기 동생과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어요"
37살 어른도 견디기 힘든 시간들을 13살 아들은 어떻게 견뎠을까? 내 아픔과 감내해야 할 책임감에만 눈이 멀어 아이들의 아픔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아직 까지 7살, 5살 어린아이로만 생각했고 아들들의 힘든 마음을 우격다짐으로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의 아픔과 눈물에 그저 고맙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고 힘껏 안아주는 게 다였다.
무지한 엄마 탓에 얼마나 숨이 막혔을까?
친구들과 오락실을 갔다고 하면 아들을 오락실에 데리고 간 친구들을 나쁜 아이들이라고 치부하며 야단쳤고 그런 아이들과는 같이 놀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런 엄마에게 아들은 언제나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10대 아이들에게 친구는 생명처럼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 왜 그것을 좋아하는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내 입장만 계속 몰아붙이기만 했다.
오로지 아이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서 내 눈앞에 있는 것이 가장 중요했고 내 시야에서 벗어나 있는 모든 순간들이 불안하고 두려웠다.
뭐가 그렇게 나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을까?
아이들 말처럼 내가 아이들을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엄마는 아이들의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아버지가 내게 그렇게 했던 것처럼,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한 번도 거스러지 않고 토를 달면서 내 마음을 표현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나 역시 그렇게 하면 우리 모두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내 아이들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자라면서 점점 더 아버지를 닮아가는 아들은 내게 아들이고 친구였고 남편이었다. 엄마에게 언제나 친절하고 부드러웠던 아들들이 언제부턴가 입을 닫고 눈도 감아버렸다. 그런 아들에게 불안한 엄마는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아이들의 불만은 무엇인지 더 많이 질문하고 더 많은 대답을 듣고 싶어 했다. 아들이 속마음을 털어놓고 다 말을 해주면 엄마는 어떻게 해서든지 다 해줄 수 있는데 도대체 말을 하지 않는다. 청소년 상담소를 찾아가서 상담을 했다. 상담 선생님은 엄마가 아이들에게 잘못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엄마에게 잘 못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라며 엄마가 조금만 기다려주라고 한다.
그 시기가 아들의 사춘기였지만 사춘기를 겪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저 당황스럽다가 화가 나다가 스스로에게 답답해서 울기도 하면서 나 역시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사춘기를 겪고 있었다.
"어머니 이제 저도 다 컸어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 거니까 지켜봐 주세요, 제발"
(아들은 자신들을 믿고 지켜봐 달라고 수도 없이 내게 이야기를 했다)
"혹시 너희에게 사고라도 생기면 너희의 행적을 찾을 수 있게 어디에 가는지 언제 오는지 전화하는 것만은 절대 양보 못한다."
(아이들이 집에 없으면 쓸데없는 걱정과 불안함을 견디지 못하는 미성숙한 엄마는 계속 아이들을 몰아붙였다)
"엄마가 하라는 것만 다 잘하면 아무것도 간섭 안 할게"
(아이들이 원하는 것만 빼고 다 들어준다고 한 정말 어리석은 엄마였다)
"왜 그래야 하는데요, 다른 집 엄마들은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것도 허락하고 이렇게 매일 전화하라고 하지 않는데 어머니는 왜 그러시는데요."
(정말 뭐가 그렇게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는지... 굳이 변명을 대자면 아버지의 훈육을 그대로 따랐다는 것 밖에는 달리 변명할 이유가 없다.)
"엄마가 정해 놓은 규칙이 마음에 안 들면 너희가 맘에 드는 친구 엄마한테 가서 살아"
(말이야 방귀야~~!! 정말 말도 안 되는 억지로 몰아붙였으니 아이들은 얼마나 갑갑했을까?)
6학년이 된 아들은 너무나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조리 있게 말을 하지만 '나는 엄마니까 그럴 수 있고 너는 아들이니까 엄마 말을 들어야지'라는 말이 전혀 설득력이 없음에도 목소리만 점점 키우면서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엄마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라'
훗날 아이들은 이 말이 가장 듣기 싫었다고 했다. 보는 사람마다 ‘엄마 말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해서 빨리 돈 벌고 엄마에게 효도해야지.’라는 말이었단다. 누구도 아이들이 얼마나 힘든지 아픈지 물어봐 주는 사람 하나 없었고, 가장 의지하고 기대고 싶은 엄마조차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는커녕 도리어 더 힘들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52살 늦깎이 대학생이 되어 상담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아이들에게 무슨 잘못했는지 뒤늦게 깨달았고 되돌릴 수 없는 아이들의 사춘기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절대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나의 반성과 후회를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고 있는 나 자신에게 '나는 내 삶을 용서하기로 했다'는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어루만져 주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 부모가 되기 전까지 짧은 경험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아이들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가 문제가 아닐까. 어른들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책도 더 많이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고 해도 우리 아이들에게 최초의 어른이고 스승은 바로 부모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