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지 않는 옷, 보험설계사
"그 사장님이 나보고 애인 하자고 하고, 엉엉엉 ㅠ, 한 달에 용돈 100만 원 주면 되겠냐고 하고 어허 엉엉"
"어떤 ㅅㅂ XX가 그런 소리를 합디까?"
소장은 난생처음 듣는 욕과 함께 흥분하며 화를 내고 나는 그때까지도 주체할 수 없는 서러움과 멈추지 않는 눈물로 진정이 되지 않는다.
김해에서 사무실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은 계속 같은 생각만 빙빙 돈다. '내가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 내가 무엇을 어떻게 했기에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나?'
자본 들지 않고 내가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해서 선택했다. 덕분에 잔고가 없던 통장에 숫자가 찍히고 그 돈으로 쌀도 사고 아이들 학용품도 사고 죽을 것 같았던 시간에서 겨우 벗어나 작은 숨길이 생겼는데 이런 일이 터졌다.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가망 고객이었다. 두 번째 방문이었고 회사 직원들과 같이 점심 식사를 하고 상담을 위해 두 사람만 남은 자리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한다. 첫인상은 아주 점잖고 매너가 좋은 사람으로 보였었다. 그런데 'OO 씨 그냥 내 애인이나 해라, 한 달에 100만 원씩 용돈 주께'... 머리 밑에서, 겨드랑이에서 모든 구멍을 통해 쏟아지는 땀으로 온몸이 젖는다. 몸속의 피가 모두 빠져나간 것처럼 어지럽고 목을 죄는 것 같은 답답함으로 숨을 쉴 수가 없다.
당시만 해도 여자 보험 설계사에 대한 인식은 그랬다. 젊은 여자가 보험 영업을 한다는 자체로 색안경을 끼고 봤고, 남자 XX가 오죽 못났으면 마누라가 보험을 하게 하는 거야? 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사회의 인식과 시선은 아직 남아 있었다. 심지어 보험 회사에 들어갔다는 이유 만으로 '네가 갈 때까지 갔구나.'라는 말을 들었다는 동료도 있었다. 그만큼 여자 보험 설계사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고 재수 없게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지금이라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말이고 당장 고소감이겠지만 그때는 암암리에 그런 일들이 있었다.
선배 설계사는 '네가 예쁘니까 그랬나 보다.' 라며 울고 있는 내 등을 토닥거린다. 갑자기 욕지기가 올라온다. '본인이 겪었거나 가족 중에 이런 일이 일어나도 과연 이렇게 말할까?' 애먼 사람에게로 불똥이 튀면서 또 다른 화가 일었다.
6년 동안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 직장이라는 조직에서 만난 인간 군상들, 세상 물정도 모르고 자신의 셈을 잘 못하는 것은 어떤 사람들에겐 최고의 먹잇감이라는 것도 두 번의 장사 실패로 알게 되었다.
보험 설계사는 조직 생활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본을 투자하고 이윤을 내야 하는 그런 일도 아니다. 내 노력으로 이뤄내는 성과만큼 대가를 받는 일이라고 해서 선택한 일인데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일은 대체 어떤 세상이란 말인가? 얼마나 더 다치고 깨져야 할까?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생각들을 하며 살아가는 걸까?
보험설계사 일을 선택한 이유는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두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고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니까 충분히 잘할 수 있고 나이 제약이 없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할 기회도 많아지니 내겐 안성맞춤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간과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내가 정말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냥 지금까지 있었던 실수와 실패로 인해 힘들어진 현실에 마음이 바빴고 불안했고 채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안은 채로 성급한 선택을 했다.
자동차 보험과 화재 보험은 의무 가입이지만 자동차 한 대에 5~6명의 설계사가 경쟁을 했고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양질의 고객을 많이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한 건의 계약이 이루어지면 소개를 요청하고 새로운 고객을 소개받으면서 고객의 폭을 넓혀가야 하는 것이다.
소개 고객을 우리는 콜드(cold) 고객이라고 한다.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콜드 고객군은 차가운 고객들이다. 콜드 고객들에게 신뢰를 받고 좋은 인간관계가 형성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설계사와 고객을 갑과 을로 나눌 수는 없겠지만 가망고객들은 계약이 체결되기 전까지는 대개가 갑의 자리에 있다가 보험 계약이 체결이 되고 나면 그 태도는 또 달라진다.
설계사의 자리가 을이라는 것을 이용하는 가망 고객의 무례함과 거친 매너를 견뎌내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몰상식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요령도 생기고 처음처럼 울거나 서러워하기보다는 살짝 뻔뻔해지고 알게 모르게 조금씩 단련(?)이 되어 갔다.
하지만 보험 설계사라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특히 가망 고객을 소개해주겠다고 저녁 술자리에 가자고 하거나 본인의 거래처를 만나는 자리에 와서 명함을 돌리고 영업을 하라는 사람들의 말은 나의 정서와는 절대 맞지 않았다.(결국 나의 활동 시간을 직장인처럼 6시에 마감을 하는 이유가 된다.)
보험가입은 보험설계사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 스스로를 위해 가입하는 것이라고 교육을 받았다. 상담을 하면서 아무리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고객들은 설계사를 도와준다거나 보험 한 건 들어줘야지라고 말한다.
보험 계약이 이뤄지면 계약자 본인이 납부하는 보험료로 보험 혜택을 보는 것은 설계사가 아니라 계약자 본인임에도 말이다.
설계사는 그 계약으로 인해 발생하는 수수료를 회사로부터 받는다. 계약자 입장에서는 본인이 내는 보험료로 설계사가 수당을 받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고객이 내는 보험료의 최고의 수혜자는 다름 아닌 바로 고객 자신이다.
회사가 아무리 성장을 해도 회사원들은 매달 정해진 월급만 받는 것처럼 설계사 역시 회사를 대신해서 계약자를 모집하고 그 대가로 약속한 수당을 받을 뿐이다.
실제로 보험 혜택을 본 사람들에게서 ‘그때 가입 권유를 받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종종 받는다.
선진국에서는 보험 설계사를 ‘화이트칼라’의 직업군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의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설계사는 이유도 모르고 언제나 의문의 1패를 하는 직업이다.
사람들은 내가 영업을 잘할 것 같다고 말한다. 깔끔한 정장 차림에 반듯한 자세로 미소 띤 얼굴에 말도 잘하니까...
하지만 정작 영업을 잘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자신의 삶에 목표가 뚜렷하고 끈기가 있으며 승부욕도 있고 인내심이 많은 사람들이 영업은 물론이고 무슨 일이든지 잘한다.
영업을 잘하게 생긴 나는 뚜렷한 목표도 없고(아이들 밥 굶기지 않는 것) 좋아서 하는 일도 아니고 잘하는 일은 더더욱 아니고(생각해 본 적 없는 일) 전략도 없고 성실하기만 했다. 그저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한, 하루를 살아내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일하는 목표가 '우리 아이들 입에 밥만 들어가면 된다' 했고 딱 그만큼만 벌어서 우리는 딱 그만큼 밥만 먹고살았다.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인가?
돈이 되는 일을 할 것인가?
잘하는 일을 할 것인가?
어떤 일을 해야 내가 행복하고 돈도 벌 수 있을까?
돈이 되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할까? 좋아하는 일은 아니지만 돈이 많이 벌리면 행복할까? 행복하지 않아도 잘하는 일을 하는 것이 맞을까? (설계사 일을 선택하기 전에 이런 고민을 했다면, 내 그릇을 크기를 키우려고 노력했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지만 굳이 꼽자면 지금처럼 글 쓰는 것이 좋다. 그래서 일단 쓴다. 무엇이든지 쓰는 시간은 행복하니까...
그리고 혹시 언제가 내가 쓴 글이 책이 되어 나오는 매직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대박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