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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씨티 Dec 26. 2018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본 소감

미니은퇴 중간 리뷰.

미니은퇴 리뷰, 

아무런 심적 저항 없이 무계획으로 살아보는 한 해를 보내고 2018년 연말에 서있다. 놀랍게도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들이 나에게 주어져 있다. 이 모든 일들은 올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 지난 두세 달 사이에 일어났다. 계획한 일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가고 싶은 큰 방향만 잡고 꾸준히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내가 경험하고 싶었던 재밌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올해 나는 나 자신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내 안에 숨겨진 불안감을 발견했고 그 느낌을 다 끄집어 내어 마주해봤다. 내 정서적 바닥에도 내려가봤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계속 내게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왜 이런 기분이 올라오는 걸까? 30여 년 평생 내 감정에 집중할 여유가 있었던가?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렸던 지난날엔 유쾌하지 않은 감정들은 보이지 않게 마음 속 깊숙이 쑤셔 넣었다. 그리고 그 부정적인 감정들을 잊기 위해 계속 외부에서 행복감을 주는 일을 찾아 헤매며 내 인생 3분의 1을 살았던 것 같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고요한 하루하루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과 하나하나와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결론적으로 내 마음을 편하게 해준 나를 향한 위로의 한마디는 이거였다. 

It's okay to do nothing.
It's alright just to be myself even if I am not making anything


올해 나는 처음으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보았다. 직업도 없고, 월급도 없고, 누군가의 여자친구 역할도 그만두었다. 그래도 매일 숨을 쉬고 있고 밥을 먹는다. 평생 학생, 유학생, 직장인같이 인생과업을 따라 지내다가 가족을 제외한 사회적 소속감이 모두 없어지자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같이 느껴졌다. 처음 이걸 깨달았을 때,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있는 내가 쓸모없는 인간같이 느껴졌다. 돈을 벌던, 일을 하던, 여행을 하던, 모임을 가던, 사랑을 하던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doing) 있어야 내 존재에 의미가 있는 것 같은 날들이었다. 그런 내가 딱하게 느껴졌다. 나는 내 존재(being)만으로는 나를 사랑하지 않고 있었구나. 특별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아도, 숨만 쉬고 있어도 괜찮은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이것도 무조건적인 사랑의 한 종류일까. 

내가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 없는데,
다른 누군가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명함이 없어진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땐 더 당당하게 내 소개를 하려고 노력한다. "네, 저는 지금 직업이 없어요. 백수죠." 여기서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판단해버릴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필터링이 된다. 내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들어보려는 호기심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내 귀중한 시간을 함께 쓸 사람들이다. 내 과거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예쁘게 꾸미고 있지 않아도, 그냥 나란 사람 자체에 호기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나도 마찬가지로 특별하지 않지만 궁금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순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의 에너지랄까. 올해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괜찮은 친구들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내가 올해 가장 원했던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이루어냈다. 내가 죽을 때가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확신 갖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도움이 될 것 같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긍정적인 스트레스(Eustress)는 나를 지치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양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꿈이 있지만 그 꿈을 더 빨리 이루려고 아둥바둥하지 않아도 된다. 혼자 가는 새로운 길에는 먼저 앞서가기 위해 비교할 사람도 없지만, 하루하루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노력하면 된다. 인생의 큰 방향이 내가 원하는 쪽으로 맞춰져 있고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하루하루 만족감이 든다면 그 중간 어디서 멈춰도 나는 행복할 거니까. 누군가 내게 새로운 일로 빨리 성공해서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참 씁쓸하다. 왜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행복해하는 나는 보지 못할까? 내가 작년같이 눈에 보이는 그럴싸한 직업과 안정적인 수입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내 표현이 부족했나? 매일 더 말하고 다닐까? 

'나 정말 아직 크게 성취한 건 없어보이지만 너무 행복하다!!!'라고 

나도 무얼 하면 더 빨리 앞으로 나갈 수 있는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먼저 벌여놓고 나를 피곤하게 하고 싶지 않다. 내 속도대로 천천히 하루하루 즐기면서 가고 있는 중이다. 오늘이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할 수 있다. 불행한 오늘 하루를 참고 견뎌낸 후 어떻게 될지 모를 내일로 보상받고 싶지 않다. 이 마인드풀한 일상을 이어 나가다 보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에서 죽을 때까지는 행복하겠지. 100세 시대에 사는 내가 운 좋게 사고 없이 내 자연 수명 끝까지 산다고 치면 그중 3분의 1정도를 살았다. 앞으로 이렇게 두 번만 더 살면 내 인생은 끝이 난다. 이렇게 짧은 인생에서 작년과 달리 오늘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오늘 내 인생에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내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기대된다. 


1년으로 끝이 날까했던 내 미니은퇴는 나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이끌었다. 뉴트리션팩츠 영상에 한국어 자막을 번역하는 자원봉사자가 된 것도, 브런치 작가가 된 것도 단순한 우연은 아닐거다. 오는 2019년엔 우연일지 필연일지 모를 어떤 색다른 인생 이벤트들이 벌어질 지 기대가 된다. 새해에 내가 의도한 일과 의도하지 않은 사건들이 내 인생에 마구 일어나도 모든 사건들에 지혜롭게 대응할 수 있는 지혜가 생겼으면 좋겠다. 온 우주가 나만의 고유한 인생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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