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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씨티 Jan 02. 2023

결혼도 10년마다 갱신하면 안 돼?

미친 소리처럼 들리지는 않는 것 같아

나는 30대 중반을 넘기고 있는 한국 여자다.


명절이 되면 부모님에게 결혼에 대한 잔소리를 듣고, 데이트를 하면 한 번 정도 결혼 이야기가 나오는 게 자연스러운 나이다. 내 주변의 반절 정도는 결혼을 했다. 그중에 80%는 육아를 한다. 결혼을 하면 한대로, 안 하면 안 한 대로, 아이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이유가 결혼 생활이나 싱글 라이프 한쪽을 찬양하기 위함이 아님을 먼저 알려주고 싶다. 다만 연말에 여행을 갔다가 결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아서 마음이 가는 대로 글을 써보기로 했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서 결혼에 대한 환상도 많이 깨졌고 동시에 결혼에 대한 나쁜 고정관념도 함께 없어졌다. 내게 누군가와 적어도 50년이 넘는 평생을 약속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대 때 7년을 만났던 사람과 '우리끼리의 약혼'같은 약속을 한 적은 있었지만 사랑이 뭔지 몰랐던 과거의 나는 그 약속을 저버렸다.



나이를 먹어서, 때를 놓치면 안 되니까, 아이를 낳아야 되니까, 안 하면 못나보여서, 한 번은 해봐야지 등등 여러 가지 '사회적으로 정상이다'로 보이는 관념들을 따르기 위해서 결혼을 목적으로 두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나이가 서른 중반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싱글인 내 나이가 전혀 많지도 또한 적지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살아가다 보니 서른 중반쯤 나이가 든 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마찬가지다. 


그냥 그쯤 나이가 든 당신이다. 

결혼의 여부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비이성적인 행위인지. 그럼 그 대단한 결혼, 여러 번 하면 아주 잘난 사람들인 건가? 그럼 왜 세 번도 네 번도 하지 그래? ㅋㅋ 


우리 엄마는 이제 더 이상 내게 결혼에 대한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예전에 한창 결혼 안 하냐고 닦달을 했을 때 이렇게 받아쳤었다. "엄마~ 결혼이 그렇게 좋으면 엄마가 또 해~ 두 번도 하고 세 번도 해. 응? ^^" 

어이없어하는 엄마 얼굴을 보는 게 너무 재밌었다. 그리곤 엄마도 그냥 웃어넘겼다. 그 이후부터였을까...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 외로울까 봐 걱정하는 내색은 비추지만 예전 같은 닦달은 멈췄다. 


요즘에는 '돈 있으면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라' 말하는 열린 부모들도 많다지만 만약 우리 부모님께 내가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과 결혼하는 것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결혼을 택하실 것이다. 세상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있는 내게 이 현실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지 원... 무튼 그래서 내 상황이 더 재밌다.



내게 결혼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오래 서로에게 기대고 성장하면서 멋있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나누고 싶을 마음이 들 때, 그럴 때 하고 싶은 약속이다. 결혼하려고 적당이 핏이 맞아 보이는 사람을 찾아 '자, 오늘부터 사랑하자' 애쓰는 게 아니라... 사랑해서 결혼을 한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변하고 헤어지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처음부터 사랑이 없다면 그 관계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계약 같은 결혼관계, 과연 괜찮을까? 서로의 욕구만 채워주는 관계는 더 이상 그 욕구가 채워지지 못할 때 끝이 난다. 


'진짜 사랑'을 경험하려고 드니까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구나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무엇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그 반대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진짜 사랑이 뭔지 알기 위해선 그 반대인 '사랑받지 못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빛의 소중함을 알기 위해서 어둠이 필요하듯이. 

그래서일까? 죽기 전까지 '진짜 사랑'을 경험해보고 싶은 나는 정말 사랑을 많이 받는 경험들도, 반대로 상당히 가슴 아픈 경험들도 해오고 있다. 왜 이렇게 사랑에 집착하나 싶을 텐데... 이게 아마 내가 이번 생에 태어나서 깨야하는 퀘스트 중에 하나인 것 같다. 이건 내 직감이다. 내가 힐링씨티를 작정하고 연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간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소같이 해나가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진정한 사랑은 내게 퀘스트 같이 내 마음속에 항상 자리 잡고 있다. 유난스러워서 대단하거나 특별한 사랑을 찾거나 기다리는 게 아니다... 지금 나는


특별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연말을 이용해서 15일간 태국으로 휴가를 떠났다. 


코사무이에 도착해서 배를 타고 30분 들어가면 코팡간이라는 작은 섬이 나온다. 이 섬에 있는 원더랜드라는 힐링센터에서 휴가의 10일을 보냈다. 낯설지만 매일 돌아가는 프로그램도 바뀌고 웰니스를 공통 관심사로 가진 사람들을 만나 크고 작은 영감을 받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저녁엔 같이 모여서 밥을 먹었는데 매일 같이 먹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기 보단 그날에 느낌대로 삼삼오오 모인다. 이 날은 나까지 5명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브라질, 영국, 스위스, 인도, 한국까지 다섯 개의 나라 사람들이 모였는데 우연히 영국에 살고 있다는 브라질 친구에게 아일랜드 어학연수 시절 이야기를 하게 됐다. 


아일랜드 생활 초창기에 더블린의 한 아파트 쉐어를 했었는데 5명의 브라질 친구들과 함께 6개월간 산 적이 있었다. 나이도 비슷하고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온 친구들이라 학원에서 돌아오면 붙어 다니면서 장 봐서 같이 밥도 해 먹고 파티도 종종 하고 그랬었다. 그 이후에는 한 번도 다시 만난 적은 없지만 SNS로 소식은 알고 있는데 놀랍게도 다섯 명 모두가 30대가 되기 전에 결혼을 했다.


그 친구에게 브라질 사람들은 원래 결혼을 일찍 하는 편이냐고 물었다. 그는 30대 후반의 싱글남이었는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추세였는데 요즘엔 좀 변하고 있다고 했다. 자기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해서 아이를 갖고 있지만 자기 같은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어쩌다가 각 나라별로 결혼에 대한 트렌드를 나라별로 듣게 되었다. 나도 한국 사람들의 결혼관과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해줬고 나를 이어서 스위스 친구가 스위스 이야기를 해줬다. 스위스 사람들의 이혼율이 거의 60%에 달한다고 했다. 결혼보다는 동거를 더 많이 하는 게 유럽문화인지라 이혼율이 낮을 줄 알았는데 적잖은 충격이었다. 우연인지 모르겠는데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적게는 22살부터 많게는 38살이었는데 모두 싱글이었다. 재밌고도 속 시원했던 건 그 누구도 이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는 거다.


왜 아직 결혼 안 했어요? 


한국에서는 새로운 사람 만나면 단골로 받는 질문인데... 그런 분위기에 있는 내가 편안해하는 걸 느꼈다.

대화가 한창 무르익으면서 결혼과 데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스위스에서 온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난 지금 같아선 결혼하지 않을 것 같아. 10에 6이 이혼하는데 무슨 소용이 있어? 한 사람이랑 평생을 약속하는 건 지키기 힘든 약속 같아. 결혼이란 제도도 회사같이 10년마다 갱신되어야 된다고 생각해.

그게 우리 인간의 본성에 더 맞는 것 같아."


자리에 있던 모두가 당돌하고도 발상의 전환시킨 그의 주장에 눈이 동그레지면서 같이 웃었다. 그가 한 말이 사실 맞는 말 같은데 왜 사람들은 여전히 결혼을 통과의례같이 여기는 걸까.


우리의 대화는 다른 주제로 넘어가 한참 더 이어졌다. 그 날의 분위기가 이 글에 잘 담겼길 바래본다.

한국 여자의 몸에 갇힌 '유럽인'이라는 이야길 들어본 적이 있는 나는 그 곳이 참 편안햇다 :)


내가 죽기 전에는 결혼갱신제도 생기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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