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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씨티 Jan 19. 2020

포르투갈에서 계획 없이 한 달 동안 지내기로 했다.

마인드풀하게 돌아다니면서 힐링하는 첫 번째 주 일상


새로운 십 년을 맞이하는 2020년, 작년에 제대로 쉬지 못하고 창업에 모든 열정을 쏟아내고 첫 발을 잘 디딘 나에게 포상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작년에 벌인 일을 마무리하고 어쩌다 보니 휴가를 연초에 가게 되었다. 새로운 십 년을 맞이하는 역사의 첫 획은 이렇게 무계획으로 떠나는 휴가가 되었다. 사실, 준비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 더 맞다. 비행기 티켓과 첫 번째 에어비앤비 3일만 예약한 채로 떠나왔다.   


헬싱키에서 경유하는데 연결편 비행기편이 급 캔슬되서 예약한 에어비엔비보다 좋은 호텔에서 잘 자고 리스본에 도착했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개인적인 여행 스타일은 20대와는 많이 달라졌다. 

철두철미하다 못해 전투적인 자세로 매 순간을 살았던 20대의 나는 여행할 때조차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동하며 사진을 남기기에 급급했다. 뭐하나 놓치는 것 없이 다 보고 가려고 애를 쓰며 여행했다. 짧은 시간에 흥분되는 새로운 경험을 사기 바빴다고 할까. 물론 이런 여행 스타일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건 회사원 신분으로 휴가기간이 제한적이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그러나 서른 중반에 접어든 내게 여행은 완전히 다른 의미가 있다. 이제 여행은 바쁜 도시 생활에 지친 나를 힐링하고 채우는 귀중한 시간이다. 사람들을 힐링하는 것이 업이 되어버렸기에 스스로 충전하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내 에너지가 완충되어야 사람들에게 더 좋은 에너지를 듬뿍 나눠줄 수 있다는 좋은 이유가 생겼다. 


귀국 삼일 전에 마친 힐링씨티 신년회 이벤트


지난 한 해는 정말 일만 하고 지냈다. 생각해보니 제대로 된 데이트 한 번 못한 기록적인 한 해였다. 

가끔 일을 하다 보면 마치 빚을 내는 것 같다. 하면할 수록 끝나지 않고 더 늘어만 간다. 계획했던 모든 일을 마치고 청소를 깔끔히 끝낸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다. 금세 이거 하나만 더하면 진짜 더 잘될 거 같은 일들이 수두룩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 많은 일을 다하다간 아마 일만 하다가 생을 마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선 일에서 손을 놓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이럴 땐 과감하게 환경을 바꿔줘야 한다. 그래서 한국과 아주 다른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나 보다.  


서른이 넘어 여행 장소를 선택할 때는 최대한 시간이 느리게 갈 것 같은 장소를 선호한다. 그리고 느긋한 로컬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일상을 관찰하면서 그들의 느긋한 일상을 따라 해보려고 한다. 이렇게 잠깐 대도시에서의 나와 여행지에서 나를 분리할 수 있게 되는데, 놀라운 것은 여행지에서만은 정말 내가 현지인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이다. 잠시나마 남에 인생을 대신 들어가 살아보는 것 같은 짜릿함마저 든다. ‘저렇게 사는 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하는 대신 잠시 동안은 저렇게 한번 살아보는 거다. 



로컬 사람들처럼 살아보고 싶다면 먼저 로컬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다만, 원래 내 취향을 고이 간직한 로컬이 잠시 되어보는 것이다. 아침엔 평소같이 알람 없이 눈이 떠지면 일어난다. 샤워하면서 자연히 잠에서 깨어나고 옷을 입는다. 심신이 깨끗해진 컨디션에서 명상을 마치고 문밖으로 나선다. 전날 봐 둔 분위기 좋은 브런치 카페로 향한다. 


유럽 대부분 카페는 채식 메뉴가 있고 우유 대신 아몬드 밀크나 두유로 커피를 주문할 수 있어서 분위기만 마음에 들면 미리 체크하지 않고 들어가는 편이다. 비건 레스토랑에 가면 나랑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가끔 나같이 혼자 밥을 먹는 여행자나 로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기초적인 여행 팁을 자연히 얻게 된다. 관심사가 비슷한 여행자나 로컬 사람들이 주는 팁은 어느 여행 가이드북 리뷰보다 가치가 있다.  


색감부터 테이블 데코까지 모두 마음에 드는 아침식사


양분이 되는 좋은 음식으로 나를 채우고 나면 움직일 준비가 된다. 이제부터 마인드풀 하게 주변을 관찰하면서 걷기 시작한다. 걷다가 주요 관광 명소인 것 같은 곳이 보이면 멈춰서 들여다본다. 충분히 둘러보는 시간을 가진 뒤 다시 이동한다. 그렇게 걷다가 사람들이 모여 붐비는 곳이 보이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하고 잠깐 멈춰 들여다본다. 이렇게 기대감 없이 걷다 보면 순간순간이 모두 선물 같다. 보통 여행하면서 계획을 너무 많이 세워두면 소위 사람들이 ‘절대 놓치면 안 되는 리스트’를 놓치지 않으려고 혈안이 돼서 돌아다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리스트를 놓치게 되면 깊은 허무함마저 든다. 


하지만 계획 없이 움직이는 여행은 그런 초조함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오히려 ’ 운이 얼마나 좋은지 지나가다가 이런 것까지 다 보게 되네’ 하는 순간들로 휩싸인다. 마치 온 우주 내게 경험해야 할 것은 다 보여주고 우연히라도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은 다 보내주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혹시라도 시간이 안 맞아져서 못 들어간 곳이 생기면 다음 날 다시 가보면 되고, 그래도 놓친 볼거리가 있다면 다음에 다시 또 이곳에 돌아올 로맨틱한 이유가 생긴다. 이렇게 지금 여기 천천히 리스본을 둘러보고 있다. 리스본이 지루해지기 시작할 때쯤 다음 도시로 떠날 티켓을 살 예정이다. 


아침먹고 글쓰면서 커피 한잔 더


창밖 뷰가 잘 보이는 리스본 카페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창밖으로 트램이 지나가면 잠시 멈춰 바라보다가 한 단락 써 내려간다. 잠시 후 창밖으로 강아지 산책시키는 사람이 지나가면 잠시 멈춰 바라본다. 로컬 사람들의 느긋한 일요일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음엔 포르투갈 어디에서 글을 쓰고 있을까. 나도 내 행적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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