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상징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사용하기에 따라 마음의 관점을 바꿉니다. 왜냐하면 상징은 의미 부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단어에는 의미가 부여되어 있고, 부여된 의미에 따라 인지사고가 흘러갑니다.
"무엇"과 "어떻게"라는 단어를 가지고 살펴보죠. "나는 무엇으로 살 것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한쪽은 고민과 신중함을 키우고, 다른 쪽은 방법과 실행력을 키웁니다.
관점은 바라보는 방향이기에 여러 관점을 지닌다는 것은 여러 방향을 둘러본다는 것입니다. 생각과 마음이 넓어지겠죠. 그러면 세상은 "틀리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르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르다"는 것은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폐쇄적인 곳은 다름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틀리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르다"는 마음의 문을 열고, "틀리다"는 마음의 문을 닫습니다. "너와 나는 생각이 달라", "너와 나는 생각이 틀려". 그래서 한쪽은 사고를 열어주고, 다른 쪽은 사고를 닫아줍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닫는 게 단어 하나로 가능하다니 대단하지 않나요?
인지사고의 관점에서 보면 "다르다"는 건 다양성의 인정으로 사고가 흘러갑니다. "너와 나는 생각이 달라", "너와 나는 피부색이 달라", "너와 나는 성별이 달라",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사는 거야.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건 자연스럽게 열린 사고를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틀리다"는 것은 폐쇄적이고 닫힌 사고를 만들어 줍니다. 나라 정책으로 본다면 차별적이고 쇄국적입니다.
"다르다"와 "틀리다"가 어떤 느낌인지 잘 느껴보세요. "저번 주는 무척 즐거웠는데, 이번 주는 우울해서 이전과 "다른 생각을 해"." 그렇구나, 이번 주는 우울해서 이전과 다른 생각을 많이 했구나! 다양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겠네. 이제 "틀리다"를 써볼게요. "저번 주는 무척 즐거웠는데, 이번 주는 우울해서 이전과 "틀린 생각을 해"." 그렇구나, 이번 주는 우울해서 이전과 틀린 생각을 많이 했구나! 위험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겠네.
"틀리다"는 좋게 말하면 판단이고 강하게 표현하면 심판이며 흑백 논리입니다. 왜냐하면 "틀리다"는 것은 "맞다"와 한 짝입니다. 내가 "틀리다"를 쓴다는 건 난 "맞다"를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정답을 알고 있다는 거죠. 인생에 정답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닌데, 하나만 있는 것처럼 시야가 좁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전과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하면 그냥 다양한 경험을 한다로 사고가 흘러가지만, 이전과 "틀린" 생각을 한다고 하면 위험에 빠졌다는 착각에 휩싸여 부정적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생각에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내 생각을 내가 판단하고 심판해 봤자 괴로움만 커집니다. 우울해서 우울할 만한 생각을 하는 건 자연스러운 거고, 이전과 다른 경험을 하는 것뿐입니다. 날씨로 본다면 추운 날에 비 맞는 경험을 하는 거죠. 하지만 우울해서 틀린 생각을 한다고 사고하면 내가 경험하는 건 잘못되고 나쁜 거라 착각하게 되고, 부정하고 심판하게 됩니다. 가뜩이나 추운 날 비 맞았는데 그걸 핑계로 위험한 행동을 했다고 벌까지 받는 거죠. 엄청 억울하고 속상할 겁니다.
우울한 순간에도 다양한 생각을 허용하고, 자신을 심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인생의 여정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추운 날에 비 맞는 경험처럼, 우울한 순간도 그저 우리의 삶의 한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