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멍하니 앉아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늘 무언가를 이야기로 만들지?”
어릴 적부터 그랬다.
어디를 다녀오면 친구에게 조목조목 설명했다.
어디를 갔고, 무엇을 먹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속상한 일이 생기면, 누구에게든 털어놓아야 마음이 정리되는 것 같았다.
그땐 몰랐다.
나는 끊임없이 경험을 이야기로 바꾸는 사람이었다는 걸.
말로 꺼내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정리됐다.
‘무슨 일이 있었고, 나는 왜 그렇게 느꼈고, 그게 왜 중요한지.’
하나하나 해석하고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저장했다.
기분이 나쁜 날이면, 내 안에서 ‘기분 나빴던 이야기’가 자동으로 만들어진다.
누군가의 말투가 거슬렸고, 나는 그것을 무례하다고 해석했다.
속이 상했고, 표정이 굳었고, 표현하지 못한 내가 또 답답했다.
이 모든 감정이 하나의 줄거리가 된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슬펐던 일도, 억울했던 일도, 짜증났던 일도
그렇게 하나의 ‘스토리’로 남는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야기가 생긴 뒤에는
그 일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이 계속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 이야기를 곱씹으며 다시 슬퍼지고, 다시 분노하고, 다시 불안해진다.
실제로는 아무 일도 없는데,
감정은 또다시 그 한가운데로 끌려간다.
나는 지금 ‘사는 중’이 아니라,
‘기억된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그 이야기들을 걷어내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어떤 일이 일어나도 굳이 정리하지 않고,
느낌과 감각으로만 경험할 수 있다면?
누군가 무례한 말을 해도 ‘무례하다’고 해석하지 않고,
그저 가슴이 서늘해지는 느낌만 느끼고 흘려보낼 수 있다면?
‘짜증 나는 하루’ 대신,
그냥 에너지가 막힌 흐름 하나로만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이야기를 빼는 일’**일지도 모른다.
개념과 해석을 내려놓는 것.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렇게 할 때 나는
조금 더 평안해진다.
왜일까?
이야기를 만들면,
다음 이야기를 위한 목적지가 생긴다.
‘왜 그랬는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나아갈지’.
우리는 끊임없이 결론을 향해 걷는다.
이야기를 쓴다는 건, 작가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여행이 아니라
‘일’에 가까운 감각이다.
하루를 살고, 사람을 만나고, 감정을 느끼는 일이
모두 ‘정리’의 대상이 된다.
삶은 어느새 일처럼 느껴지고,
나는 그 일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야기를 놓으면,
그건 그냥 경험이 된다.
줄거리도 없고, 해석도 없는
‘그랬던’ 사실만 남는다.
비 오는 날처럼.
왜 비가 오는지, 왜 우울한지 분석하지 않고
그냥 창밖의 비를 바라보는 상태처럼.
정리하지 않으면,
감정은 그냥 흘러간다.
흘러가면, 몸은 자기 리듬을 회복한다.
감정도 제자리를 찾는다.
해석과 평가가 사라진 자리에
조용한 숨결 같은 평안이 남는다.
오늘 나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려다
멈췄다.
그저,
가슴이 답답하고
눈이 시리고
몸이 무거웠다.
그 느낌을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 무거움은
조금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