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무엇이든 너무 빨리 이름 붙인다.
“이건 좋은 일”, “그건 나쁜 일”, “나는 지금 실패 중.”
세상은 익숙하게 해석을 재촉한다.
그 결과, 자주 멈춘다.
무언가 말하려다가, 정리하려다가, 속으로 해석하려다가,
그냥 숨 한 번 쉬고 멈춘다.
그럴 때마다 이유를 묻게 된다.
나는 왜 자꾸 무언가를 덧붙여 해석하려 하는 걸까?
“나는 이런 사람이야.”
“그때는 이런 상황이었어.”
“내가 왜 상처받았냐면…”
내가 했던 말, 행동, 감정, 그리고 지금의 나조차도
어딘가에 정리해서 설명하고 싶은 욕구.
그 욕구는 참 끈질기다.
어쩌면 나는 해석을 통해 ‘살아 있음’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의미 있는 해석으로 바꾸지 않으면,
그 경험이 헛되게 느껴지고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허전해진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고,
슬펐던 과거에 의미를 덧입히고,
지금의 나를 해석해낸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게 정말 나일까?
나는 종종 ‘해석’이라는 틀을 쓰고, 그 틀에 갇힌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은
나를 이해시키는 동시에, 내 스스로를 가두는 말이기도 하다.
그 해석에 갇히면, 나는 그 해석대로 살아야만 한다.
벗어나면 내가 아닌 것 같고,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사실, 나는 해석 바깥에서도 늘 존재하고 있었다.
해석은, 내가 이 삶을 감당하기 위해 만든 구조였는지도 모른다.
불확실한 현실을 다루기 위한 나만의 방어막.
그 구조 안에서 나는 나를 설명하고, 이해하고, 방어하고, 증명한다.
조금씩 알게 된다.
해석으로 정리하지 않아도, 나는 존재하고 있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걸.
지금 이 감각, 이 숨, 이 느낌이 곧 나다.
설명 없이도, 나는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오늘은 굳이 해석하지 않고,
그저 있는 나로 남아보려 한다.
해석 없는 나도 괜찮을까?
소개할 일이 생기면, 나를 설명할 일이 생기면,
머릿속이 텅 빈다.
예전엔 늘 준비된 해석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걸 꺼내는 일조차 불편해졌다.
그 해석이 더 이상 ‘진짜 나’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해석 없는 나는 괜찮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르면
마음이 싸하게 식는다.
괜찮지 않다면?
사라지는 건 아닐까?
무의미해지는 건 아닐까?
해석이 없으면,
내가 견뎌온 시간과 다름, 아픔까지
지워질 것만 같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해석 없는 순간에도 나는 여기에 있었다.
숨을 쉬고, 하늘을 보고,
물컵을 들고 있었다.
그저, 조용히 존재하고 있었다.
해석이 없다고 해서 내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조금 더 가벼워졌다.
비교하지 않고, 포장하지 않고,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로.
사실, 나는 해석 속 나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조용하고,
자유로운 존재였다.
그렇기에 이제는 해석하지 않고,
그냥 바라보려 한다.
창밖의 고양이가 마당에서 졸고 있을 때,
그 모습에 아무 이름도 붙이지 않는다.
그저 고요함. 존재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무엇.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알게 된다.
해석이 없을 때가 더 아름답다는 걸.
해석이 없는 나,
존재 그 자체로 충분한 나.
오늘은 그렇게 살아보려 한다.
해석 없이도, 나는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