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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가객 May 09. 2023

사계절 홍차사랑 -허니밀크티

          

 홍차를 달인다. 차향을 품은 수분이 공간을 채워간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 코 속이 시원하게 뚫린다. 베보자기에 찻잎을 걸러내고 홍차의 원액이 농축될 때까지 약불로 30분을 더 달인다. 홍차가 품고 있는 모든 영양분을 우려내면 특유의 강렬한 풍미로 개성 있는 밀크티를 만들 수 있다. 우려낸 차가 오분의 일로 졸아들면 완성이다. 


 밀크티 2잔 분량을 남기고 나머지는 식혀서 병에 담아 중탕한다. 이렇게 만든 홍차 농축액을 냉장보관하면 두 달 동안 원할 때마다 취향대로 먹을 수 있다. 우리 집에선 가족 모두에게 인기가 좋아 만들어 두기만 하면 며칠 내로 소진된다.         


농축한 홍차가 끓어나면 우유를 넣어 기포가 올라올때까지 데운다



 남겨놓은 2잔 분량의 홍차를 불에 올려 끓어나면 우유를 붓는다. 마블링을 감상하는 것은 밀크티를 조리하면서 얻는 즐거움 중의 하나다. 거품이 일기 직전 보글보글 기포가 떠오르기 시작할 때 불에서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예열된 찻잔에 완성된 밀크티를 담고 꿀 한 스푼을 넣어 천천히 저으면서 마신다. 설탕이나 흑당도 좋지만 중년인 나는 허니 밀크티 애호가다. 평소 꿀을 챙겨먹으라는 권고를 듣지만 일부러 먹게 되지는 않기 때문에 밀크티를 마실 때 첨가한다. 단 것을 즐기지 않는 내 입엔 어떤 당류 보다 꿀을 넣었을 때 우유와 홍차의 조합이 고급스럽다. 

     

따스한 밀크티에 꿀을 넣는다.



홍차 밀크티는 집중력이 떨어지는 오후를 생산적으로 보내야 할 때 마시면 좋다. 처음엔 꿀이 녹지 않아서 담백하고 고소하다. 꿀이 섞이면서 점점 더 달달해진다. 밀크티를 마시면 오후 나른한 시간에 기력을 충전시키기에 그만이다. 너무 완벽해서 다른 간식을 첨가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굳이 함께 먹을 것을 찾는다면 단맛이 많지 않은 스콘이나 견과류, 말린 과일, 치즈 정도가 알맞을 것 같다. 생과일이라면 새콤한 감귤이나 베리류가 좋을 것 같다.     

       

 계절을 불문하고 즐기기 좋은 차 메뉴이긴 하지만 갑자기 밀크티를 만든 이유가 있다. 5월 첫 주, 황금연휴 3일 동안 비가 내렸다. 오랜 가뭄 끝이라 반갑기도 한데 하필 어린이날에 내리기 시작하여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촉촉한 비요일의 서정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라 짝꿍에게 드라이브를 청했다. 바쁘게 사느라 이야기 나눌 새도 없었던 짝꿍이 운전대를 잡았다. 팔당댐을 보고 양평을 지나 남한강 상류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포 보와 여주 보가 나온다. 마음은 무인도인 비내섬까지 날아갔으나 우중이라 이포보에 주차했다. 평소엔 보를 건너는 이들이 많은데 이 날은 텅 비어있었다.     

 

 남한강의 경치를 감상하며 우산을 쓰고 걸었다. 보슬비가 내리는 강 풍경은 싱그럽고 선명했다. 하지만 가까운 산의 골짜기들이 새하얀 안개를 뿜어내는 풍경은 신비로웠다. 이천 쪽에서 보를 건너면 맞은편 이포 쪽 기슭에 전망대가 있었다. 조용히 차를 마시며 강을 조망하기엔 그만인 장소였다.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이용할 수 없어 찾아올 때마다 아쉬웠는데, 역시 어두컴컴했다. 실내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동안 보 아래쪽으로 연결된 당남리 섬을 걸으며 여행기분을 내곤 했다. 이젠 일상을 회복했으니 시민을 위한 공공시설들이 제 역할을 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기대가 생겼다. 설마 하면서 가까이 다가가며 살펴보니 2층에 불이 켜져 있었다.        

 짝꿍과 의기투합해 기대를 안고 옥상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굽이굽이 펼쳐진 넓은 강줄기의  상류와 하류까지 넋을 놓고 보았다. 이틀간 내린 비로 강물은 깊고 넓었다. 경쾌하게 흐르는 물줄기가 어찌나 시원한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아무런 의식도 없이 이루어지던 숨쉬기가 생존을 위한 겨우 숨쉬기였음을 인식하는 순간이었다. 가끔은 이렇게 마음을 위한 호흡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이름이 알려진 센 강이나 다뉴브 강보다 남한강의 지류들이 얼마나 규모 있고 아름다운지, 알려지지 않은 한국의 강들을 꼽으며 2층 카페로 갔다.        

   

 우산을 썼으나 바람을 따라 마구 방향을 바꾸는 비를 피하지 못해 어깨 아래쪽은 이미 척척하게 젖어버렸다. 추워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따끈한 밀크티가 간절했다. 돌아가는 길에 천서리에 들러 짝꿍이 좋아하는 메밀막국수를 먹자고 계획했으나 이대로는 찬 음식을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커피를 마시기엔 늦은 시간이었다. 카페에서 짝꿍은 생과일 주스를 먹으려 했으나 재료가 없어 망고 스무디를, 나는 밀크티를 마시려했으나 메뉴에 없어 뱅쇼를 주문했다. 몸을 덥혀줄만한 차 음료는 눈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마침 자리가 나서 테이블을 차지하고 강의 풍경과 보의 낙차가 만들어내는 물보라를 부감했다.        

   

 주문한 음료는 실망스러웠다. 인스턴트 음료의 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음료를 마시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왔다. 오는 길에 들른 막국수 집의 멸치육수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집에 오자마자 홍차를 찾아보았다. 세 종류가 있었다. 초봄에 방문한 친구가 얼그레이 홍차 티백 한 상자를 가져왔다. 팬데믹 기간에 랜선 데이트 하면서 내가 홍차를 즐겨 마시는 걸 기억하고 선물해준 거라서 진심 고마웠다. 그 후에 주문한 아쌈 잎차도 있었다. 오렌지 향이 좋은 트윙스 레이디 그레이는 3년 전에 돌아가신 최정례 시인께 받은 선물이라 선생님을 기념하는 날에 마시려고 아껴둔 홍차였다. 가향차인 얼그레이 홍차도 부드럽고 향기로운 밀크티로 즐기기에 좋지만, 우유와 적절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아쌈 홍차로 만든 밀크티는 강렬해서 또 좋다. 나는 두 가지 버전으로 내 취향의 밀크티를 만들었다.     

     

 홍차 원액을 추출하여 농축할 때 설탕을 넣어서 만들면 더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찬 우유와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도 먹을 수 있고 데운 우유를 넣어 따스하게도 먹을 수 있다. 끓여서 농축하는 방식은 차의 모든 성분들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건강한 이들을 위해 추천하고 싶다. 그만큼 각성작용도 뛰어나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의 강렬한 효능을 얻을 수 있다. 홍차의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듯 밀크티를 만드는 방법도 무궁무진하다. 너무나도 매력적이기 때문에 밀크티를 한 번 맛보면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지난해에 초등학교 시절 동창의 초대를 받아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였다. 외식을 하고 들어간 친구의 집 장식장에 아름다운 찻잔이 그득했다. 찻잔만 보고 있어도 컬러 테라피가 될 만큼 개성 있는 잔들이었다. 홍차 애호가를 만났구나 싶어 반가웠다. 하지만 친구는 잔을 좋아할 뿐 커피를 주로 마신다고 했다. 친구와 나는 아시아커피연맹의 시험관인 이수진 바리스타로부터 커핑을 배웠기 때문에 이전부터 커피취향을 공유하고 있었다. 친구는 홍차를 배우고 싶다며 선물로 받은 홍차를 보여주었다. 고급스러운 영국산 가향홍차였다. 


 센스 있는 친구가 과일 트레이에 깔끔하게 썰어놓은 수박과 참외를 꺼내 플레이팅 하고 나를 위해 핸드드립커피를 내리는 동안 나는 냉침 밀크티를 만들었다. 다음날 친구가 냉장고에서 숙성된 밀크티를 걸러서 마시고 있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덕분에 홍차에 입문했다고 기뻐하는 친구와 홍차를 배우기에 좋은 정보들을 공유했다. 나로 인해 누군가 차를 접하고 활용하는 것이 그렇게 뿌듯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나라마다 밀크티를 만드는 방법도 다양하고 불리는 이름도 다양하다. 영국의 밀크티나 일본의 로열 밀크티 외에도 우유에 홍차를 넣어 끓이는 스리랑카 밀크티, 인도의 짜이나 몽골의 수테차, 티베트의 뵈자(버터차) 등등 세계 여러 나라와 지방에서 만드는 밀크티 계열의 차들을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밀크티를 만드는 방법도 다양하다. 개인적인 취향이나 건강상의 이유로 쓴 맛의 폴리페놀이나 카페인을 원하지 않는다면 끓이지 않고 6~8시간 동안 우유에 넣어 냉침 하는 방식으로 더 부드럽고 맑은 밀크티를 얻을 수 있다. 또 시험 공부를 하는 청소년 자녀를 위해 탄산수에 홍차를 넣어 냉침하면 고급스러운 아이스티를 얻을 수 있다. 소화를 촉진하고 집중력을 높이기 때문에 수험생에게 좋은 음료다. 청소년들이 시험기간에 복용하는 시판 되고 있는 각성제들이 많은데, 잠이 안 오게 하는 약을 습관적으로 함부로 먹는 것보다는 차를 이용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이렇게 개성 있게 즐길 수 있는 밀크티는 홍차가 아닌 다른 재료로 만들 수도 있다. 주 원료를 추출해 우유에 넣어 먹을 수 있도록 농축하는 방식이다. 태국에서는 루이보스 밀크티를 마신다. 2022년 코엑스에서 열린 커피 박람회에 갔을 때, 카모마일 밀크티를 비롯해 허브티를 원료로 만든 다양한 밀크티를 맛보았다. 임산부와 수유부를 비롯해 약을 복용중인 분들을 위해 개발된 허브 밀크티 종류를 시음하면서 그 신박한 아이디어에 찬사를 보냈다. 수유를 시작한 딸에게 허브 밀크티를 선물했다. 카페인 때문에 즐기던 차와 커피를 끊어야 하는 수유부의 고충을 옆에서 지켜보기 안타까울 때가 많은데, 아기를 돌보느라 당 보충이 필요한 딸에게 맞춤인 음료였다.           


 팬데믹에 실내 활동은 물론 공원까지 폐쇄하던 때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상하기 그지없는 데, 동의할 수 없는 유치한 조치들이 남발되던 때였다. 가족 모임조차 몇 명 이내로 규정하고, 명절에 부모님을 만나는 것까지 제한하던 비이성적인 시절이었다. 결혼을 앞둔 딸과 예비 사위와 인사를 나눠야 하는데 관계를 입증할 수 없어 옆자리에 따로 앉아 식사를 해야만 했다. 업주의 입장에선 적발되면 벌금을 물어야하는 상황이라 양해란 없었다. 서로 감시하고 고발하여 포상금을 받도록 규정했던 그 시절의 비정상적인 조치들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웃지 못할 상황들도 많았다. 카페는 테이크아웃만 가능해서 사가지고 나왔지만 모든 벤치에 모여 앉지 못하도록 줄을 쳐놓아 들고 걸으면서 커피를 마실 때만 마스크를 내리고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딸의 혼사 전후에 사둔과의 상견례 상황이다. 코미디도 그런 블랙코미디가 없었다.   

   

 그 시절에 태국에서 여행사에 다니던 아들이 여행업의 존폐위기로 인해 실업자가 되어 일시 귀국했다. 이후에 대학원 진학으로 태국에 나가 다시 취업하기까지 아들과 몇 달을 함께 보냈다. 스무살 이후 처음 있는 아들과의 시간이었다. 그 때 밀크티를 만들어 매일 따끈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암울했던 팬데믹 시절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 때 홍차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을 본 아들이 휴가를 얻어 잠깐 귀국하면서 태국에서 유통되는 다양한 홍차를 구해왔다. 한국에서 유통되지 않는 것도 있어서 즐거운 시음시간을 가졌다.          

  


홍차 농축액 만들기     


 스테인리스 냄비나 유리 포트에 1L의 물을 끓이다 2g들이 홍차 티백 열 개를 넣는다. 진한 농축액을 얻고 싶다면 열다섯개를 넣는다. 홍차가 완전히 우러날 때까지 1~2분 동안 끓이다 건져서 티백을 짜낸다. 우린 홍차를 중불로 30분간 가열하여 농축한다. 이때 설탕 혹은 취향에 따라 당류를 넣어 농축할 수도 있지만, 나는 꿀을 이용한 허니 밀크티를 좋아하기 때문에 당류를 넣지 않는다. 5분의 1 분량으로 졸아들면 불을 끄고 식힌 후에 살균한 병에 넣어 중탕하여 냉장고에 보관한다. 필요할 때마다 취향대로 아이스나 따스한 밀크티를 즐기면 된다.     


 완전 발효차인 홍차는 습기나 다른 냄새가 배지 않도록 밀폐하여 보관하면 오래 두고 마실 수 있다. 상미 기간이 지났다해도 보관상태가 양호하면 마실 수 있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원액을 추출하여 농축해 두면 간편하게 고급스러운 밀크티를 즐길 수 있다. 계피나 월계수 등 좋아하는 허브식물을 첨가하여 우리면 향기가 독특한 밀크티를 얻을 수 있고, 당류의 종류도 다양하게 선택하여 취향에 맞는 것을 찾으면 된다. 최고의 밀크티를 얻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도 즐거운 여정이 될거라고 생각한다. 레몬 홍차만 즐기던 내가 허니 밀크티를 찾은 것처럼.      




얼그레이 홍차 티백을 준비하는 동안 물을 끓인다


티백을 2분간 끓여서 우려낸다.
충분히 우러나면 티백을 건져 짜낸다
우려낸 홍차 원액을 30분간 졸여 농축한다.


농축한 홍차에 우유를 넣어 끓어나면 찻잔에 옮긴다
홍차 농축액은 병에 담아 중탕하여 냉장보관한다


새소리 왁자한 발코니에서 마시는 허니 밀크티는 일상힐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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