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웰니스족 1>11.승리의 트로피를 넘겨주다
- 웰니스아파트 704호
J의 소식들을 추적해가면서 호기심으로 가슴이 뛰고 숨이 차오르던 순간들이 지나갔다. J와 나 사이에서 함께 어울렸던 주변 친구들의 소식도 덤으로 확인했다. 반도체회사에서 기술영업파트 관리자로 승진했다고 자랑질을 했던 시현이의 게시물엔 사내 대학에서 특강을 했다는 내용과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인생을 인증샷을 올리기 위해 사는것 같다. 사내 결혼을 하고 딩크족으로 살고 있는 시현이는 J와 헤어진 후로 내 의지로 연락을 끊었지만 가장 궁금한 친구이긴 했다. 그래서 소식이 업데이트 될 때마다 확인하고 있었다.
관광대교수인 은지는 게시물이 뜸했다. 일본으로 인턴십을 나가는 학생들과 인천공항에서 찍은 사진이 최근 사진의 전부였다. 은지의 얼굴에서 인위적인 카리스마가 엿보였다. 낯선 모습이라 한참을 확인했다. 은지 옆에 선 당황한 듯 애매하게 웃고 있는 여학생이 은지의 옛 모습과 더 닮아있었다. 놀라운 건 은지와 학생들이 또래로 보인다는 거였다. 솔직히 그거 하나는 부러웠다. 결혼소식을 접한 적이 없는 걸로 보아 은지는 아직 미혼인 것 같았다. 미모야 특별할 거 없지만 괜찮은 조건인데 왜 혼자 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하긴 아직 비혼을 논할 시기는 아니었다.
가장 대박인 건 승주였다. 시나브로 40만 구독자를 달성한 승주는 요즘 일본의 여행지와 먹거리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전에 가끔 찾아보다가 구독을 끊어버린 후로는 한동안 보지 못했다. 일본의 거주지에서 현지의 여성을 불러 포커 게임의 결과로 옷을 하나씩 벗긴다던가, 청소하는 여성들을 불러 티키타카 하다가 성적 상상을 자극하는 대화와 밀착장면을 연출하면서 동영상을 끝내버리는 전략으로 구독자를 끌어 모으고 있을 때였다. 하긴, 복학생으로 왔을 때도 공부는 뒷전으로 놓고 클럽이나 다니던 승주였다. 곧 망할 거라고 생각했던 유튜브 방송이 승승장구 하는 이유가 있는건가 싶어서 최근 게시물을 찾아보았다. 나름 다양한 컨텐츠를 접목하려고 시도한 흔적이 보였다. 일본의 게이샤를 주제로 만든 영화와 전통극을 스포일러하면서 해석을 곁들인 문화적 접근도 있었다. 흥미가 생겨서 몇 편 보았다. 하지만 교양의 한계가 보였다.
나라면, 이런 콘텐츠를, 이따위로 만들진 않겠어.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지만, 어쩌면 승주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본문화와 콘텐츠를 접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뭔가 선점할 기회를 놓친 것 같은 열패감이 들었다. 실력도 없었던 친구들의 잘 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SNS로 확인하는 건 씁쓸한 일이었다. 세상은 빛나게 돌아가고 있었다. 희로애락과 비극은 나의 세계일뿐이었다. 결론 치고는 망친 소스처럼 황당하지만 사실이었다.
이제 눈앞을 가로막는 무뚝뚝한 현실만 남아있었다. 피아니스트의 연주동영상을 확인했다. 왁자하게 세포분열을 하는 내 무의식의 번민을 끝내기 위해서. J와 그의 아내가 협연한 동영상은 J를 향해 이륙하던 내 마음을 추락시켰다. 그들이 함께 연주한 곡은 베토벤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3번 A장조 1악장이었다. 그 특별무대는 심지어 공중파 방송에서 촬영된 거였다. J와 피아니스트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화음을 만들어 가다가 어느 순간 함께 고양되더니 함께 호흡을 끊었다가 다시 절묘한 화음으로 합쳐지는, 바로 그 부분에서 심장이 딱 멈췄다. 찰나의 호흡조차 어긋나지 않는 두 사람의 연주를 보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건반을 쓰다듬다가 격정적으로 튕겨내는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에 시선을 사로잡혔다. 더 이상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핫핑크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단 한 번도 화면을 향해 얼굴을 들지 않았다. 눈빛도 얼굴도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온 몸으로 연주하는 그녀의 리듬에 나는 압도되었다. 동영상을 다시 한 번 재생했다. 마지막으로 J를 보기 위해서였다. 동영상을 끄고 나서야 흐르는 눈물을 자각했다.
J가 재기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점점 더 큰 무대를 향해 J가 성큼성큼 나아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연주자로서 그의 앞길은 매우 밝아서 성공적으로 연주를 마칠 때마다 함께 자축하며 환희의 밤을 보냈다. 그 순간들을 내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이제 J의 모든 것이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일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끝 없는 나락으로 처박히는 내 절망이 안스러웠다.
J를 부활시킨 피아니스트, 내 곁에서 희망이 없었던 J를 무대로 데려간 그녀의 존재를 나의 이성이 나의 감성에게 각인시키고 있었다. J의 아내가 된 그녀에게 복합적인 감정이 일었다. 첫 마음은 질투였지만, 그 다음은 절망이었다. 고백하건데 피아니스를 향한 내 마지막 감정은 고마움이었다. 이로서 J에게 품었던 부채감, 죄의식이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어리석게도 J의 긍정적 재기에 대해선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J를 무대로 끌어올려준 피아니스트에게 승리의 트로피를 넘겨주었다. 상상이지만 내 인생의 한 막이 이렇게 끝났다는 것을 내 자신에게 명확하게 선언했다. 동시에 온 몸의 피가 빠져나간 것처럼 맥이 없었다.
며칠이 무감각 속에서 흘러갔다. 누워 있어도 어지러웠다. 윗집의 소란도 나를 일으키지 못했다. 나락으로 떨어진 내 인생, 소생할 가능성 없는 내 청춘을 조문했다. 어린이집에 등원하기 전에 송이가 걱정스러운 듯이 내 이마를 짚어보고 아프냐고 물었다. 송이의 얼굴에 드리워진 J를 보는 것이 서글펐다. 아니 그 그림자 속에 살아갈 날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의욕이 사라진 마음을 들여다보고서야 내 감정의 실체를 알아차렸다. 실연을 겪고 있는 거였다. 내 의지로 J를 배신하고 미뤄두었던 감정의 숙제를 이제야 치르고 있는 거였다.
환멸을 느끼면서도 일상의 바퀴는 굴러갔다. 감정을 닫아놓고 감각을 꺼버렸다. 그저 무심하게 하루하루 일과를 치러냈다. 송이를 등하원 시키느라 움직인 것이 유일한 외출이었다. 기계적으로 회사의 업무를 처리하고 늘어져 있다가 윗집 아이들이 소란하면 일어나 침실에 들어가서 암막커튼을 치고 누워 있었다. 앱으로 식사를 배달 시켜 송이에게 저녁을 먹였다. 좀처럼 하지 않는 일들이었지만 최소한의 에너지를 유지할 방법이었다. 정신을 추스르는데 시간이 필요한 거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혼란했던 속이 가라앉아 무뎌지길 기다렸다. 스펀지 캡슐 속에 들어있는 것처럼 외부의 자극이 둔하게 감지되었다.
매운 쌀국수가 생각난 건 이제 그만 현실을 직시하자고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식욕이 완전히 떨어져서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볼과 눈꺼풀이 퀭해진 내 얼굴을 화장실 거울 속에서 발견했다. 날짜를 확인하고 놀랐다. 두 주일이 삭제되어 있었다. 한 번 떠오른 쌀국수는 걷잡을 수 없는 식욕을 불러일으켰다. 차 키를 챙겨들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면서 너무 오래 시동을 걸지 않아 차 상태가 괜찮은지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늘 주차하는 자리에 차가 없었다. 밤늦게 나다니지 않기 때문에 거의 지하 1층에 주차할 자리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세컨드 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다 방문객이 많을 땐 자리가 없어서 2층에 두기도 했다. 그럴 땐 다음 날 송이를 등원시키고 내려가 차를 옮겨두었다. 같은 지하라도 1층과 2층은 천지 차이였다. 엘리베이터는 지하 1층까지만 운행하기 때문에 2층은 비상계단을 이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지하의 눅눅한 공기에 하수로의 냄새가 배어 훨씬 더 습하고 불쾌했다. 그렇다고 지상 층에 대놓을 순 없었다. 주변에 도로가 많아서 먼지가 뽀얗게 덮이고 재수가 없으면 그 위에 새똥과 나뭇잎까지 쌓였다. 무엇보다 고양이들이 차 밑에 들어가 있는 것이 찝찝했다. 키를 눌러 위치를 확인했더니 아랫층에서 소리가 울렸다.
이런!차를 지하 2층에 둔채 방치하다니, 아예 정신 줄을 놓고 있었구나!
한탄이 절로 나왔다.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무익하게 죽어나간 시간이 어이없었다. 퀴퀴한 냄새가 잔뜩 배었을 거였다. 짜증이 치밀었다. 비상계단을 내려가는데 담배연기 냄새가 느껴졌다. 이건 또 뭐지? 순간 혈압이 상승하는 게 느껴졌다.계단을 내려가 방화문을 열자 탁한 담배냄새가 코로 훅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미간이 확 찌그러졌다. 2층엔 아무도 없었다. 키를 눌러 내 차의 위치를 확인하고 다가가는데, 통로에 떨어진 담배꽁초가 보였다. 즉시 휴대폰에 저장해둔 관리실 번호를 찾아 전화했다. 전화 받은 직원에게 지하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우게 놔두면 어떻게 하냐고 따져 물었다. 직원이 몇 동 몇 호냐고 물어서 대답해주었더니 관리실장을 바꿔주었다.
“예 사모님 불편하셨죠? 저희도 권유는 하고 있습니다만, 저희 아파트가 주차장 흡연에 대한 뚜렷한 규정이 없어서 단속이 어렵습니다. 양해 좀 해주세요.”
기가 막혀서 더는 좋은 말로 따져 물을 수가 없었다. 나는 차를 끌고 주차장을 빠져 나가서 곧바로 관리실 앞으로 갔다. 나를 설득하던 실장이 사무실로 들이닥친 내 얼굴을 보더니 당황하며 전화를 내려놓았다.
“규정이 없다고 했어요? 단속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돼요? 그럼 지하주차장에 흡연실이라고 써 붙이세요. 아이들이나 노인도 지하 주차장을 이용하는데 간접흡연을 방기하는 게 관리실에서 할일인가요? 입주민들의 불편을 방기하면서 무슨 명목으로 관리비를 받는 거죠? 대체 뭘 관리하는 겁니까? 간접흡연이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서 그래요? 이제부터 나는 관리비 못 냅니다. 입주민의 권리와 안전을 보호해주지도 않는 데, 무슨 관리비를 냅니까? 신문사 기자들과 방송국에 이 아파트 제보할거에요. 그래도 됩니까?”
내가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관리소장이라는 작자가 왔다. 호출이라도 받은 모양이었다.
“사모님 저희가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권유해서 앞으로 지하주차장에서 흡연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입주민의 불편사항으로 접수했으니 동 대표 회의에서 의견을 모아 규제화 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겠습니다. 관리문제로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전 이 아파트가 웰니스 아파트라고 해서 입주했어요. 최소한, 상식적으로, 이름값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입주민의 건강을 해치는 중요한 문제니까 책임지고 꼭 처리하세요.”
다행히 소장이라는 자가 말귀를 알아듣는 것 같아 약속과 사과를 받고 나왔다. 어떤 인간이 공용공간에서 범죄를 저지르는지 CCTV를 돌려봤어야 하는 건데, 왜 생각이 안 났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1차전이었다.
단지를 빠져나가 쌀국수를 먹고 오랜만에 카페에 가서 허브차를 마셨다. 체인점 카페의 시그니처 커피를 시켜볼까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냄새가 그럴 듯해도 시켜보면 그저 그럴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커피 향을 맡으니 확실히 환기가 되었다. 마음을 앓는 동안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이 미치자 금단현상이 올라왔다. 집에 가서 오랜만에 핸드드립 커피를 마실 생각을 하니 기분이 풀렸다. 나는 스콘 두 종류와 송이가 좋아하는 사과타르트를 사가지고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주유소에 들러 자동세차를 했다. 차종에 비해 내부가 넓은 중형차라 세차를 하고 보니 외양도 아직은 쓸 만해 보였다. 지하 1층에 자리가 있어 주차해놓고 내려서 심호흡을 해봤다. 퀴퀴한 지하의 냄새에 배어있는 담배연기 냄새가 아직도 희미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처리하는지 어디 한 번 지켜보겠어!
집에 돌아와 오랜만에 창문을 열어놓고 청소를 했다. 윗집 아이들의 소리가 마음을 헝클어뜨리기 전에 문을 닫고 커피를 내려 마셨다. 송이가 올 시간이라 여유를 누리진 못했지만 일상의 리듬을 회복한 기분이었다. 하원시간에 맞춰 내려갔을 때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공용현관 문을 여는데 딱 봐도 똥으로 보이는 덩어리가 보였다. 아차, 하는 사이에 문에 덩어리가 뭉개져 내용물을 확인하고 말았다.
아우 정말! 내가 지키지 않으면 도대체 이놈의 아파트는 품위가 지켜지질 않는다니까!
짜증이 폭발했다. 정말 이렇게 엉망이 되게 둘 수는 없었다. 개똥을 방치한 자가 누군지 찾아서 매운 맛을 보여줘야 했다.
하원하는 차에서 송이를 데리고 곧바로 관리실로 갔다. 관리실장의 당황한 얼굴을 일별하고 CCTV 녹화 화면을 확인할 수 있는지 물었다. 이유를 묻는 사무직원에게 공용현관에 개똥을 방치한 사람이 누군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송이를 접객용 소파에 앉혀두고 직원과 함께 녹화된 내용을 돌려보았다. 내가 내려오기 직전에 덩치가 커다란 개를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남자가 보였다. 그 전으로 돌려보았지만 현관문까지는 촬영범위가 미치지 않아서 확인할 수 없었다. 관리실 직원과 엘리베이터에 붙일 경고문을 가지고 우리 동으로 건너왔다. 그런데 개똥이 보이지 않았다. 그새 치운 모양이었다. 직원에게 개똥이 묻어있던 문틀 아래쪽을 확인하고, 경고문은 게시판에 붙이라고 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