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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가객 Jun 28. 2023

마닐라에서 차가 퍼졌다       - 코리안 그린 티

- 여행에피소드 3

 영어캠프 말고 영어권 국가에서 체류하기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이었다. 당시에는 방학이 되면 청소년 영어 캠프가 유행했다. 대형 기숙학원이나 대학에서 개설한 특강프로그램 외에도 메이저 학원들이 기획한 '방학특강 영어' 프로그램은 입이 떡 벌어지는 비용으로 진행되었다. 사교육 열풍에 늘 각을 세우던 나는 고민했다. 영어는 필요하지만 본인의 내적 동기도 없이 부모의 열의로 수강을 시킨다고 해서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비용 대비 전인적 교육이 될 만한 체험으로 영어권 국가에서 체류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조건에 맞는 국가와 도시를 찾아보았다.


 당시에도 해외에서 진행하는 영어캠프가 많았다. 하지만 한국의 방학에 맞춰 개설되는 그것 또한 장소만 해외일 뿐이지 결국 한국아이들끼리 모여 진행되는 거였다. 원어민 수업이라고 하지만 그룹 단위로 이루어지고 하루 중 영어를 체험하는 시간은 오전시간이 전부였다. 항공료와 숙박비가 포함되어 있어서 비용은 국내 프로그램의 3~5배였다. 글로벌 감각과 생활영어를 체험시키기 위해 우리 부부가 선택한 방법은 방학동안 비교적 물가가 저렴한 필리핀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거였다. 남편은 가구공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라 자릴 비울 수 었고,  나는 논술강사로 일하고 있어서 손해를 감안하면 휴강이 가능했다.     


 여행의 시작은 남편과 함께했다. 처음 며칠은 휴양지에 머물면서 아이들과 함께 보내고 매트로 마닐라로 돌아가서 숙소를 정한 뒤에 남편은 귀국했다. 두 아이가 방학특강 영어캠프에 참여하는 비용이면 나와 아이들이 방학 내내 필리핀에서 다양한 튜더와 영어 수업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체험을 얻을 수 있었다. 필리핀의 학교는 한국의 방학 기간에 새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시범적으로 학교에 등록해서 다닐 수 있었다.    

  

 남편의 지인은 당시 매트로 마닐라 마카티에 살고 있었는데, 우리는 지인이 하나도 없는 매트로 마닐라 라스피냐스에 숙소를 정했다. 아이들이 평일에 한국인과 만나지 않도록 배수진을 친 거였다. 숙소에서 가까운 학교에 찾아가서 학교장과 교무담당자와 간단한 면담 후에 임시로 입학허가를 받았다. 그리곤 곧바로 등하교를 도와줄 지프니 운전기사를 구해서 계약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후에는 튜더를 불러 각각 수준에 맞게 필요한 영어를 배웠고 저녁이 되면 배운 것을 응용하러 쇼핑센터에 가서 스포츠 게임을 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트라이시클이나 버스를 타고 숙소로 들어왔다. 당시 필리핀 학교들은 대부분 하나의 학교 내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년이 연결되도록 편성되어 있었다. 국제 학생들도 많이 보였다. 딸과 아들은 여름엔 한 달, 겨울엔 두 달 간의 필리핀 학교생활을 체험할 수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등교한 오전에 글을 쓰고 점심엔 아이들의 도시락을 사들고 학교에 갔다. 학교엔 나처럼 아이들의 도시락을 가지고 와서 하교시간까지 기다리는 여자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어린 여성들이었다. 나는 몇 사람과 안면을 트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들은 대부분 타갈로그어만 사용했기 때문에 대화가 잘 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보모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들의 눈에 나 역시도 보모로 보였다는 사실과 또 나를 중국인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을.      


 어느 날 딸이 도시락을 받으려고 달려오면서 나에게 ‘마미’라고 부르자 매일 만나던 여자가 웃었다. 나에게 종종 영어로 인사를 하는 여자였다. 딸은 친구들과 먹기로 약속했다고 도시락을 가져갔다. 딸이 가고 난 뒤에 여자가 나에게 왜 ‘마미’라고 부르는지 물었다. 그 애가 ‘마이 도터’라고 말하자 놀라는 거였다. 다음 방학에 가서 또 만났을 때 그녀는 나에게 차이나에 다녀왔냐고 물었다. 정색을 하면서 나는 한국인이라고 말해주었다. 여자가 웃으면서 엄지와 검지가 닿을 듯 얇게 만들어 자기 눈에 가져다 대었다. 다른 사람들이 차이니즈가 또 왔다고 말해서 그런 줄 알았다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두 번째 주가 되었을 때 아이들이 학교 매점에서 파는 음식을 점심으로 사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매점 음식을 확인했다. 몇 종류의 스파게티와 미트볼, 생선튀김 등 음식이 다양하고 값이 매우 저렴했다. 둘러보니 교사들도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과 만나서 각자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내가 고른 것은 오징어먹물 스파게티였는데, 양파와 함께 큼직한 오징어 몸통이 링모양으로 듬뿍 들어가 있었다. 기대만큼 맛있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토마토 스파케티를 먹은 아이들은 정말 맛있게 먹었다. 아직까지도 그렇게 맛있는 토마토스파게티를 먹어보지 못했다고 그리워할 정도다. 식후엔 그린망고에 소금을 얹어서 파는 것을 먹었다. 비린 맛이 단번에 가시고 신선한 세계로 휙 날아간 느낌이었다. 이후부턴 도시락을 끊고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들은 적응이 빨랐다. 학교에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고, 첫 주부터 친구들에게 영어 편지를 받아왔다. 가지고 간 한영사전이 여러 조각으로 나뉠 만큼 두 아이들은 밤새 친구들의 편지에 답장을 썼고, 한영사전 말고 영어사전이 필요하다고 해서 마카티에 있는 지인에게 가서 빌려다가 썼다. 가기 전에 영어로 일기를 쓰기로 계획했으나 있는 동안 점점 더 늘어나는 편지의 답장을 쓰기에도 시간이 부족해서 영어일기는 거의 쓸 수가 없었다.      


 둘째 주부터 아이들은 친구들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놀러 다녔다. 지프니 기사의 가족과 친해져서 나도 지인이 생겼고, 지인의 생일에 초대를 받아 필리핀 가정집의 생일파티를 경험했다. 주로 남자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해서 대접하는 필리핀 가정의 파티 문화는 한국인인 나에게는 매우 색다른 삶의 관점을 부여해 주었다. 생일을 맞은 당사자를 향한 가족들의 노래와 춤, 축복의 기도 등의 퍼포먼스와 공연도 부러울 정도로 재미있었다. 생일선물을 준비하면서 구입한 물건을 포장하는데 시간이 너무 걸려서 직원에게 재료를 받아서 직접 포장했던 기억이 난다.  

    

 또 한 번은 지인의 엄마가 돌아가셔서 필리핀의 장례식장에 참여했다. 완벽한 화장과 치장을 한 고인의 주검이 화려한 장미에 둘러싸인 채 유리관 안에 누워있었다. 고인을 보내는 문상객들의 인사와 축복이 자연스럽고 그 어디에서도 비통함이나 슬퍼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영혼의 영생을 믿는 천주교 국가여서 그런 것이라 짐작할 뿐이었다. 친분이 그렇게 두터운 사이는 아니라 장지까지 따라가 보지 못한 것이 아직도 못내 아쉽다.      


 마닐라에서 지내는 동안 나와 아이들은 매일 저녁식사를 먹기 위해 SM 백화점에 갔는데, 그 곳에서 학교 친구들을 만나 농구 게임을 하거나 센터 지하에서 운영하는 실내 스케이팅을 했다. 그 당시 필리핀의 치안이 안전한 편이라서 그랬는지, 정말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진솔했고,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들과 학교 밖에서 만난 튜더와 숙소의 직원도 친절했다.  


코리안 그린티 - 전통적인 제다기술을 사용하여 맑은 기운을 가득 품은 한국의 덖음 녹차


 주일에 가까운 교민 교회를 물색해서 방문했다. 예배도 드리고 아이들에게 체험시킬만한 좋은 정보가 있는지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평일 오전에 교민들끼리 만나는 자리에 초대를 받았다. 신앙인들이 모인 자리라 편안한 마음으로 갔다. 한국식 점심을 대접받았는데, 김치와 된장찌개를 먹으면서 함께 먹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모인 사람이 나까지 일곱 명이었는데, 전부 여성이었다. 대부분 아이들 교육 때문에 기러기가족으로 살거나 직장에서 남편이 주재원으로 파견되어 마닐라에 거주하는 분들이었다.     

 

 식후에 내가 가지고 간 녹차를 우려서 대접했다. 녹차를 좋아하지 않는 분도 있었고, 티백 녹차만 마셨다는 분도 있었다. 내가 우려서 드린 잎 녹차를 드시곤 이구동성으로 녹차는 원래 떫고 쓴 거 아니냐고 물었다. 내가 녹차의 효능을 이야기하자 이제야 녹차 맛을 제대로 알았다며 앞으로 녹차를 마셔야겠다고 했다. 나는 티백 녹차라고 해도 온도만 맞추면 맛있게 드실 수 있다고 알려드렸다. 끓는 물을 한 김 식힌 뒤에 티백을 넣고 부드럽게 흔들되 1분을 넘기지 않아야 좋은 영양성분을 섭취할 수 있다고. 즐겁게 호응을 해주어서 보람이 있었다. 교민 분들이 고국에서 건너온 녹차의 맛을 특별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이후에 몸에 좋은 녹차 음료로 건강하시길 바랄 뿐이었다.  

         





 여행 중 차가 퍼졌다     


 마닐라에 두 번째 갔을 때였다. 한국은 겨울 방학이었지만 필리핀은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남편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4일간 한국에선 볼 수 없는 특별한 것을 보여주길 원했다. 그래서 우리는 남편 지인의 안내로 화산마을을 향해 출발했다. 느린 차로 두 시간 동안 달렸지만 주유소만 있을 뿐 상점 하나 보이지 않았다. 화려한 간판과 밝은 조명 아래 군것질거리가 진열된 상점 같은 건 정말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갑자기 차가 멈춘 곳은 깃발 하나만 걸려있던 주유소를 지나 10분쯤 비포장 길을 달렸을 때였다. 부드등 드르응! 그게 끝이었다. 차는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그 때 가이드를 맡은 분은 남편의 지인이었는데, 필리핀에 십 년째 거주 중이었다. 그 분이 현지인 기사와 함께 차를 점검했다. 그러더니 30분 정도 기다리라고 했다. 기사가 마을로 들어가더니 한참 만에 돌아와서 두 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했다. 나와 아이들은 무조건 그 곳에서 시간을 보내야했다.      


 우리는 일단 마을길을 따라 들어갔다. 허름한 창고가 띄엄띄엄 몇 채 보이는 황폐한 시골이었다. 무료함에 빠질 것 같은 기분과 오늘 안에 차를 고쳐 빠져나가지 못하면 어딘지 알지도 못하는 곳에 꼼짝없이 갇혀서 망가진 차 안에서 다 같이 밤을 보내야하는 건가 싶은, 쓸데없는 걱정으로 심난했다. 겁도 없이 낯선 시골길로 들어가는 아이들이 걱정스러워 모험을 하는 심정으로 따라갔다.      


 차가 보이지 않는 휘어진 길을 돌자 둔덕 옆에 낡은 집이 한 채 보였다. 그 곳에 작은 공터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와 유소녀들에게 타갈로그어로 쿠무스타(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면서 우리는 천천히 다가갔다. 아이들은 별로 경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기만 보면 깜빡 홀려버리는 딸아이가 아기 앞에 앉아서 예쁘다고 웃어주자 여자아이들도 웃음으로 반응했다. 곧 이어 남자 아이 둘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아이들은 술래잡기를 하듯 휙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다시 올 땐 다른 친구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순식간에 우리는 10명의 아이들에게 둘러 싸였다. 나이차이가 나는 아이들이었고 처음에 보았던 아이들은 두 살에서 다섯 살 정도 되어보였는데, 나중에 온 아이들은 청소년이었다.


미모사 신경초와 꽃 , 출처 -남쪽하늘님의 블로그

      

 당시 초등학교 3학년과 5학년이었던 아들과 딸이 그 아이들과 소통을 시도했는데, 어린 아이들은 타갈로그어를 쓰고, 학령기의 두 아이가 영어를 썼다. 우리는 타갈로그어는 인사말 몇 단어 외엔 몰라서 처음엔 당황하다가 큰 아이들이 합류하면서 대화에 활기를 띄었다. 서로 필요한 말은 정말 간단했다. 여행 중에 차가 고장이 났다는 걸로 충분했던 것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신기한데, 아이들은 정말 쉽게 친해졌다. 특별한 도구도, 많은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처음에 아이들은 풀을 들여다보며 놀았다. 자귀나무의 잎과 비슷하게 보이는 그곳의 식물이 사람의 손이 닿자 움직였다. 마치 저녁 무렵의 땅콩 잎 같았다. 해가 지면 수면활동을 하는 식물처럼 활짝 펴고 있던 잎을 순식간에 마주 붙이는 거였다. 우리가 신기하게 봤더니 한 아이가 개미를 잡아와서 식물에 얹었다. 개미가 움직이자 식물이 즉각 반응했다. 위험을 알아챈 개미는 바로 탈출해 땅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잎은 그대로 닫혀버렸다. 나중에 한국에 와서 찾아보니 미모사 신경초의 한 종류였다.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들이 공기 돌을 받으면서 어울려 놀았다. 성격이 밝고 호기심이 많은 딸의 추임새와 행동을 여자아이들이 금방 따라했기 때문에 가르쳐주면서 놀 수 있었던 거였다. 긴 생머리를 묶어 올린 여인이 나왔다. 피부 톤이 보통의 필리핀 사람들보다 밝았고 몸이 매우 마른 체형이었다. 여인이 웃자 앞 이빨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아름다웠다. 여인은 드문드문 영어 단어를 말하거나 알아들었다. 영어에 서툰 나와 비슷한 수준인 것 같았다. 모여 있는 아이들이 모두 자기 자녀라고 했다.


 나와 여인은 영어 단어들을 매개로 이야기 했다. 만국공통어인 바디랭귀지가 유용해지는 순간이었다. 여인은 긴 생머리를 풀어서 손가락으로 빗더니 다시 올려 묶고 나를 향해 웃어주곤 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아기를 안고 나타났다. 기저귀만 채운 맨살의 갓난아기였다. 열한 명의 자녀라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기는 볼이 볼록하고 눈이 엄청나게 컸다. 눈을 떴다 감았다 할 때면 짙은 속눈썹이 부채처럼 움직였다. 게다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방글방글 웃어서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여인의 앞니가 보존되지 못한 이유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아기의 손을 살며시 잡았더니 여인이 나에게 아기를 안겨주었다. 얼굴을 끄덕이는 여인의 웃음에서 피로감이 느껴졌다. 순식간에 내 품에 안긴 아기는 낯도 안 가리고 방긋방긋 웃었다.      


 얼마 후에 남편이 우리를 찾으러 왔다. 모바일 폰으로 주문한 차의 부품이 도착해서 수리가 되었다는 거였다. 갑작스런 이별의 상황에 놀이에 빠져있던 아이들이 아쉬워했다. 나 역시 우연히 얻은 이국의 여인과 소통할 기회가 끝나버린 것이 아쉬웠다. 무사히 떠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몰랐다. 낯선 곳에서 천사 같은 갓난아기를 안겨주는 여인과 아무런 긴장도 경계심도 없이 마음을 나눈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메고 있던 가방에서 개봉하지 않은 한국산 잎 녹차를 꺼내 여인에게 건넸다. 다행히 코리아 그린 티 라는 말 중에서 그린티를 알아듣고 살라맛(감사해요) 하며 인사하는 거였다. 큰 아이가 코리아 그린티에 대해 여인에게 타갈로그어로 이야기 하면서 ‘차’라고 강조했다. 타갈로그어로도 ‘차’라고 부른다는 걸 나중에야 확인했다.      


 그 때만 해도 코리아를 아는 외국인을 만나는 건 드문 일이었다. 만나서 인사하면 곧바로 받는 질문이 ‘차인이즈 오어 재패니즈?’ 이었으니까. 아이들끼리 이야기를 나눈 뒤라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어쨌든 무료하거나 공포스러울 뻔했던 두 시간이 여인의 마당에서 무사히 지나갔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추억을 만들고 나는 나대로 필리핀 시골의 대가족을 만나는 경험을 해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가방에 가져간 녹차라도 있어서 마음을 나눴으니 다행이었다. 서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화산마을을 보고 보라카이에 가서 며칠 머물렀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들과 스쿠버다이빙을 했다. 나는 물을 싫어하는데, 스쿠버다이빙은 금방 좋아져서 있는 동안 여러번 입수했다. 하다보니 내 생애 처음으로 몸으로 하는 일에 재미를 붙인 스포츠였다. 다이버를 입증하는 오렌지색 팔찌도 받았다. 한 낮의 낚시와 수영은 아이들과 남편만 보내고 나는 숙소에서 머물렀다. 싸가지고 간 글감들과 읽을 책들이 있었다. 그런데 들고 온 녹차 한 봉을 여인에게 내줘서 마실 차가 없었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커피는 사약처럼 썼다. 매일 두 개씩 제공되는 티백 홍차를 스트레이트로 우려 마셨다. 질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숙소는 바다에 붙어있는데 블래티가 종이로 포장되어 있어서 눅눅했고 잡내도 많이 났다. 깔끔한 향기의 한국 녹차가 너무 그리웠다.  

   

 마닐라로 돌아와 쇼핑몰에서 그린티를 구해서 먹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내 혀를 길들인 맛과 비교할 수 없었다. 겨울 방학은 길어서 이민국에 찾아가 체류기간을 연장했다. 연말에 남편이 아이들을 보러오겠다고 해서 녹차를 부탁했다. 거의 한 달 동안 한국산 녹차를 마시지 못하자 까다로운 기준이 생겼다. 한국의 덖음 차의 차별성을 또렷이 구분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세계인이 즐겨 찾는 한국 덖음 차의 매력은 차가 품고 있는 담백한 감칠맛과 풍성한 향을 올곧게 드러낸다는 데 있는 것 같다.


 가지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증제차와 한국의 덖음차를 함께 찍어 보았다. 햇차가 아니라 비교를 할 수는 없고, 한국의 덖음차의 특징만 보면 좋겠다.      

   

왼쪽부터 국산 덖음차, 일본 증제차 중국 동정벽라춘이다.




TIP 1. 

- 녹차를 구입할 때는 불투명한 식품 전용 알미늄 포장이 된 것으로 용량이 적을수록 좋다. 특히 여행 갈 때 휴대하는 녹차는 20g이나 30g 이하로 포장된 것이 좋다. 개봉 후 시일이 지나면 습이 들고 향이 빠지기 때문이다. 대용량일 경우 소형 지퍼백이나 손 안에 들어가는 크기의 밀폐가 가능한 병(냄새가 배어있지 않은 것)에 덜어서 가져간다. 미세플라스틱에 의한 오염도가 심각하기 때문에 티백이나 종이컵은 될수록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허브차나 홍차 티백을 이용할 경우 빛과 습에 노출되지 않도록 밀폐된 것이 좋으며 개별포장된 것을 추천한다. 휴대용 티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면 언제라도 간편하게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다.      


TIP 2.

- 생수병에 잎차를 한꼬집( 3~5개의 잎) 넣고 흔들면 연한 녹차음료가 된다. 상온의 물에서 우리기 때문에 카페인이나 폴리페놀의 쓴 맛이 덜하다. 피로를 회복시키며 안정과 정신집중에 좋다. 마실 때 입으로 차잎이 들어갈 수 있으므로 바로 삼키는 것을 주의하고 입에 들어온 찻잎은 씹어서 함께 먹는다. 녹차의 잎을 씹어서 섭취하면 충치를 예방하며 구취를 없애주는 효과가 있다. 잎 녹차를 넣은 음료는 4시간 안에 마신다.


생수 병에 잎녹차 한꼬집을 넣고 두 시간 후 - 생수와 비교했을 때 음료의 수색이 연한 노랑빛으로 우러났다.







*미모사 신경초 대문 사진의 출처는 네이버 이미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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