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힐링가객 Jul 26. 2023

에어비앤비가 기가 막혀      - 허브차를 만나다

 - 지도보고 유럽여행 계획하기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집 안의 가장 번듯한 공간, 아이들이 머무는 공간에 항상 지도를 걸어두었다. 세계전도는 거금을 들여야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모서리를 테이프로 둘러서 끝이 말리거나 구겨져 파손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지도는 식탁 유리 밑이나 거실 벽에 걸어두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집 거실엔 TV와 소파가 없다. 아이들과 지도를 보면서 서바이벌 학습만화 “00에서 살아남기” 시리즈를 읽었고, 이원복 작가의 먼나라 이웃나라를 읽었다. 학습백과와 세트로 구입한 지구본은 손으로 돌리면서 볼 수 있어서 아이들의 최애장품이 되었다. 그 때 아이들과 약속을 했다.      


 “너희들이 성인이 되면 그 때 유럽으로 가족여행을 떠나자. 어딜 가고 싶은지 지금부터 공부하고 방문할 코스를 정해보는 거야.”  

   

 아파트 입구의 재활용품 코너에 책이 나와 있는 날이면 유심히 보았다. 언젠가 컬러판 백과사전이 나와 있어서 냉큼 집으로 옮겨다놓고 백과사전 안에 있는 사진들을 마음껏 오려서 도화지에 옮겨 붙이며 잡지를 만들었다. 주제를 정하고 제목을 붙이고 자료를 찾아 붙이면 아이들은 저절로 따라했다. 신문을 보던 그 시절 아침에 배달된 신문은 구문이 되기도 전에 활동적인 교구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서 남아나지 않았다. 그런데 네모난 성격의 나보다 아이들은 항상 더 창의적이고 기발했다. 독서논술 강사로 활동하던 그 시절 나는 아이들에게서 더 풍성하게 확장하는 법을 배우곤 했다. 우린 잊을만하면 한 번씩 약속을 확인했다.  

    

 “유럽으로 가족여행 갈 준비는 잘하고 있는 거지?”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또 하나의 문화 속에 아이들을 참여시켰다. 아이들과 차를 마시는 일이었다. 종갓집 장손인 남편에겐 찾아오는 손님이 많았다. 명절과 제사로 시가의 손님들도 끊이지 않았다. 어른들이 모이면 아이들을 다른 공간으로 보내는 것에 나는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아이들 눈에 부끄럽지 않도록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어른들의 활동이 건전하길 바랐다. 내 의견을 존중해주는 남편 덕분에 식사를 하던지 차를 마시던지 아이들을 참여시켰다. 물론 일정시간 함께 한 후에는 양해를 구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갈 자유를 주었다. 어른들을 응대하기 위해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도, 대화를 경청하는 것도 질문을 하거나 눈치껏 삼가야 하는 것도 아이들이 배우고 경험해야 할 귀중한 삶의 과정이었다.      


 청소년기에 기독교를 접한 남편은 개화기 전후부터 한국전쟁 전후까지 한국에 신문물을 이식하며 헌신하다 죽어간 선교사와 그의 가족들의 희생과 뜻을 귀중하게 여겼다. 하여 그 또한  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크리스천 공동체를 통해 해외 선교사역을 지원했다. 지역의 교회에서 장로의 직분을 받은 그는 지금도 학교가 없는 난민지역 아이들에게 교육선교를 지원하는 일에 뜻을 가지고 협력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한국에 연고가 없는 선교사님이 입국하면 우리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교회의 선교 활동에 있어 크리스천 형제들과의 교류도 활발해서 외국인 형제들이 여러 행사로 한국에 방문하면 우리 집에서 묵어갈 기회가 많았다. 그 때마다 외국인 손님들께 차를 대접하면 아이들도 동석했다. 어떻게든 다국적 경험을 접하게 해주고 싶었던 소망과 남편의 사역이 맞물려 많은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성장해가면서 통역도 도와주고 사역에 합력할 기회도 그만큼 많아졌다. 그렇게 외국의 문화를 접하고 다양한 국가의 언어를 학습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자 애쓰면서 잊을만하면 한 번씩 ‘유럽여행’을 환기시켰다.     


 아이들은 성년이 되자마자 내 품에서 달아났다. 몇 년이 훌쩍 지나가는 동안 딸은 해외 인턴십을 나갔다 돌아와 한국외국어 대학원에 들어갔고, 아들은 태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그 곳에서 취업을 했다. 판데믹이 시작되기 전, 유럽으로 가족 여행을 계획했다. 관광경영학을 공부한 아들과 영어교육학을 전공한 딸이 여행기획을 맡았다. 성인이 된 자녀와 함께 떠나는 여행인데다 오래전부터 약속된 가족행사여서 몇 주 동안 지도를 펼쳐놓고 의견을 조율했다. 자유여행이라 숙소와 관광지 코스 및 교통, 현지 가이드 등을 아이들이 예약했고 나와 남편이 꼭 가고 싶은 곳도 논의에 포함시켰다.      





- 에어비앤비가 기가막혀


 코스를 짜는 동안 크로아티아를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논의하다가 아쉽게 제외했다. 다음기회에 가자고 다독였다. 날짜와 비용을 정해놓고 일정을 짜보니 생각보다 많은 곳을 볼 수 있었지만, 각자 가고픈 곳들을 다 들르기엔 역부족이라 합리적 기준을 세워가며 많은 곳을 제외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여행을 우리 가족의 1차 유럽여행이라고 이름 붙였다. 일단 출발을 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가는 곳마다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우리가 머문 곳 중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체코의 프라하와 이탈리아의 피렌체 숙소였다. “집 떠나면 개고생” 이라는 말이 왜 시절도 없이 유행하게 되었는지 경험한 사건이다. 덕분에 고생이 추억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첫 기착지였던 프라하에서 머문 첫 번째 에어비앤비는 바출라프광장에서 그리 멀지않은 위치의 건물 3층에 있는 매우 넓은 집이었다. 현관을 통과하자마자 펼쳐진 공용 공간의 클래식한 분위기를 아들이 한마디로 표현했다.      


쩐다!     


 우린 다함께 웃었다. 하고 많은 감탄사 중에서 ‘쩐다’라니! 고등학교 졸업 후 오랫동안 해외생활을 한 아들은 한국에서 유행하는 신조어를 제때에 업데이트 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아들이 수능에 마음 졸이던 고등학생 시절 ‘할많하않(할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의 상황들을 대변하던 단말마의 감탄사를 무의식중에 내뱉었던 것이다. 아들의 감탄사가 말해주듯 근사한 유럽식 인테리어를 보니 여행지에 도착했다는 현실감이 들었다.      

 

 커다란 침대가 두 개씩 놓여있는 방들과 넓은 사다리모양의 라디에이터가 설치된 욕실도 쾌적했다. 전에 여행할 때 동유럽 국가들의 화장실 컨디션이 불량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 점이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내가 화장실을 체크하고 있는 동안 먼저 주방을 둘러본 아들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뭔 일이라도 있나싶어 주방으로 이끌려 들어간 나는 그저 말문이 막혔다.    

  

 파티를 벌일 만큼 커다란 응접실과 아일랜드식 주방이 펼쳐져 있었다. 응접실 규모로 보면 대저택이었다. 화가나 예술가의 작업실이 연상될 만큼 아름다운 그림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었고, 기둥과 기둥 사이의 샹들리에도 화려했다. 에어비엔비 숙소로 대여하기 전엔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을까 궁금해지는 구조였다. 10명 내외의 단체 여행객이라도 함께 머물 수 있을 듯 했다. 아쉬운 건 이 넓고 아름다운 파티 공간에서 식사를 만들어 먹을 일이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의견을 모았다.     

 

 ‘저녁에 간식을 사들고 조금 일찍 들어와서 이 공간을 누리자!’     


 우리는 짐을 풀고 식사를 하기 위해 시내로 나갔다. 구글 맵을 보면서 바출라프 광장을 지나 몇 블록을 걸었는데, 생각보다 멀고 길이 복잡해서 비슷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지나고 또 지나갔다. 돌아올 길이 걱정될 만큼 복잡한데도 불구하고 중세를 옮겨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거리에 시선을 빼앗겨 사진을 찍으면서 걸었다. 동유럽 입성 첫날을 축하하면서 체코식 식사를 하고 프라하의 옛 거리를 돌았다. 증기로 운행하는 시계탑에도 올라갔다. 자유로운 영혼인 남매는 각자 호기심도 주장도 만만찮아서 우린 항상 다시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자유시간을 가졌다.     

 

 긴 여행의 시작이었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으려고 시간을 정하고 옮겨다녔지만, 거리 연주들을 보면서 ‘조금만 더’가 두세 번 연장되자 늦은 저녁이 되었다. 기진맥진한 우리는 다음날을 위해 택시를 탔다. 돌아오면서 보니 길이 정말 멀고 복잡해서 걸어서 나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숙소에 들어갈 때만 해도 우리는 럭셔리한 에어비엔비 숙소에서 며칠을 내 집처럼 묵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며 감격했다. 집은 추웠다. 빨리 따스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었다. 순서를 정하고 딸과 내가 먼저 씻으러 욕실에 들어가면서 보일러를 올려달라고 아들에게 부탁했다.      


 그런데, 오들오들 떨면서 옷을 벗고 욕조에 들어간 나는 이제나 저제나 따스한 물을 기다리며 머리감기를 시작했으나 머릿골이 시리다 못해 감각이 없을 만큼 얼어버렸다. 샤워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서 물수건을 만들어 한 번씩 닦아내는 것으로 끝냈다. 그 사이 아들과 딸은 욕조 커튼 밖에서 분주했다. 남편도 보일러 시스템을 들여다보며 낯선 신호들을 해독했다. 하지만 그날 밤 끝내 따스한 물은 나오지 않았다. 보일러가 고장이었다. 다행히 전기는 살아있어서 포트에 끓인 물을 섞어서 미지근한 물로 나머지 가족들이 머리를 감고 씻었다.  

    

 주인에게 연락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다른 조치를 해주지 않았다.그 일로 아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두 남매가 나와 남편을 위해 발의 피로감을 최대한 덜어줄 쿠션 좋은 신발을 물색해서 날짜 안에 배송 받으려고 애를 쓸 만큼 세심하게 준비한 여행인데, 첫 번째 숙소부터 문제에 봉착했으니 오죽이나 곤혹스러웠으랴. 숙소에서 3일을 머물렀는데, 집주인이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댔다. 집요하게 개선을 요구하니까 원래는 고장이 없었다는 트집까지 잡으면서 자기가 해외에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숙소 변경도 불가하고 환불도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정말 어처구니없고 불쾌한 일이었다. 이런 감정적인 소모를 겪다보면 그 공간이 아무리 아름답고 훌륭해도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뭐지? 호구 코리안 이라고 착각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보일러는 고장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토록 마음이 상한 것은 숙소 주인의 수준이하의 대처와 그가 사용하는 언어 때문이었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밖에는 눈이 쌓여 있는 겨울인데, 관광으로 녹초가 되어 숙소에 들어오면 보일러가 작동이 안 되어 냉수로 씻고 냉장고처럼 차가운 공간에서 잠들어야 했다. 아들의 오리털 점퍼를 나와 딸이 이불처럼 덮고 잤다. 감기에 걸릴까봐 서로 걱정하고 챙겨주는 수밖에 없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아들이 에어비앤비 협회에 부당한 행태를 고발 접수하고 홈페이지에 후기를 올렸다. 그제서야 집주인이 취하해 달라고 사정하면서 환불해 주었다.]    

 

 덕분에 여행 중 컨디션 조절에 쓰려고 챙겨간 차들을 유용하게 사용했다. 밤에는 들장미열매 로즈힙에 계피차와 히비스커스 허브차를 블랜딩 해서 마시며 한기를 녹였다. 아침엔 발열 기능이 좋은 보이차와 황차를 충분히 우려마시고 숙소를 나섰다. 주방과 드넓은 응접실에 모여 앉아 차를 마시면서 우리 가족은 나름 정이 들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십여 년간 가족이 함께 모일 시간은 거의 없었다. 아들이 군대에 입대하기 위해 입국했던 기간에도 1주일 정도 같이 보냈을 뿐이었다. 그랬기에 저녁과 아침의 따스한 차 나눔은 특별했다. 프라하에 머무는 며칠간 가져간 차를 거의 다 소비하고 녹차만 남겨둘 정도였다.   

       

 다행히 여행 중에 차를 파는 유명한 상점들을 들러 새로운 차를 구입했다. 오래된 찻집들을 휴식타임으로 배치해 준 아이들의 센스 덕분에 좋은 경험도 얻었다. 카프카 박물관 주변에서도 오르세 미술관 주변에서도 찻집에서의 따스한 시간을 선물로 받은 것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 웃지 못 할 에피소드

                  

 에너지가 넘치는 청년기의 자녀와 여행을 계획하면서 내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 있었다. 그렇게 배려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계획하고 예약한 관광 스케줄을 모두 소화하기엔 체력에 한계가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새벽형 인간이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숙소를 나서면서 시작된 관광은 지도를 들고 예약한 곳을 향해 일보의 망설임도 없이 진행되었다. 현지인 가이드와 함께하는 야간투어까지 따라다니다 나는 그만 두 손을 들었다. 미안하기 그지없는 일이었으나 여행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다른 수가 없었다.          


 당시 나는 족저근막에 염증이 생겨 체외충격파 치료를 받은 직후였다. 165cm 키에 신발 사이즈가 225mm로 작은 축에 속하지만 그 전까지 걷는 것도 산에 오르는 것도 문제없이 잘 해내던 내 발이 처음으로 문제를 일으킨 거였다. 10회의 치료를 받았는데도 온전히 회복되지 않아 아들이 환자용으로 주문한 신발을 신고 있었다. 배와 택시, 버스와 기차, 비행기를 타고 움직이는 동안 무리가 왔던 모양이었다. 저녁식사를 하고나면 나는 숙소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기대했던 스케줄이 어긋나 어느 날은 딸이, 어느 날은 아들이 실망했다.               

      

 로마에서는 아이들이 보고 싶어 했던 쇼핑몰의 폐점 시간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웬만하면 시간낭비 없이 여행하도록 참아보려 했지만, 전날 바티칸 공화국 관람을 하면서 무리했던 모양이라 발목까지 아팠다. 때마침 비까지 내려 식구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결국 아이들끼리 야간 투어를 나가기로 했다. 내가 숙소에 혼자 있어도 괜찮다고 했지만 남편도 가지 않았다. 어차피 택시를 타야해서 따로 움직여도 될 것 같은데, 굳이 아이들이 나와 남편을 숙소에 내려주고 거기서 다시 출발했다.      


 그때 느꼈다. 아이들은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일찍부터 고국을 떠나 공부하던 아이들이 한국을 벗어나자 나와 남편을 역으로 보호하고 있는 거였다. 얼마 살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덧 내 인생에서도 세대 간의 역할 전도가 일어났다고 생각하니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여행 중 기록한 글에, 민폐가 부끄럽기도 하고, 배려가 고맙기도 하고, 아이들이 성장한 것이 뿌듯하기도 하다고 쓰여 있다. 가족에게 민폐를 끼치면서 발을 아꼈지만 돌아왔을 땐 족저근막염이 심해져 꽤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다.        






- 야경이 죽여준다는 피렌체 에어비앤비


 여행이 반이 지나 피렌체에 도착했을 때였다. 아들이 예약한 숙소는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식료품 거리의 외진 건물이었다. 5층이었는데, 결정적으로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아들, 예약할 때 엘리베이터 없는 거 알고 구한 거야?”

    

 “아뇨. 노을과 야경이 죽여준다는 후기가 많아서요.”   

     

 세상에나! 아들에겐 편리성보다 야경이 중요하다는 걸 그 때서야 알았다. 말이 5층이지 중층 구조로 되어 있어서 8층정도 되는 높이였다. 캐리어를 들어 올리느라 아이들이 고생했다. 일단 숙소에 들어가자 구조도 좋고 조망하기에 그만이었다. 하지만 필요한 게 있으면 적어놨다가 부탁해야 했다. 주로 아이들이 나가고, 나는 낮 관광을 마치면 숙소에서 시간을 보냈다. 소에서 보이던 야경을 잊을 수 없다. 사진 찍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남기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우리 부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천천히 산책을 하면서 여행지의 낮선 풍경을 될수록 많이 둘러보는 편이다. 새벽의 여명 속에서 피렌체 거리가 깨어나는 모습과 눈썹을 꿈틀대며 반갑게 맞아주던 이탈리아인의 치즈가게 전경이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피렌체 에어비앤비 구조는 독특해서 파르테논 신전의 내부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흰색 벽과 기둥으로 공간이 나뉘어져 있었다. 공간도 넓고 호텔 못지않은 푹신한 침대와 럭셔리한 욕식 컨디션 덕분에 피로를 풀 수 있었다.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은 외지고, 많은 계단 때문에 힘들었지만 숙소에 들어오기만 하면 최고급의 편안함과 안정감이 있었다. 솔직히 아들은 야경이 죽여준다고 했지만 내 기준에서는 공간의 쾌적함과 아담한 두 번째 응접실이 압권이었다. 그 응접실 덕분에 나는 여행기록문을 쓰고 정리할 수 있었다.      


 명성이 있는 상점들을 방문해 허브차를 종류별로 구입한 덕분에 숙소에서 힐링하면서 마실 차가 부족하지는 않았다. 허브차의 매력에 푹 빠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다 피렌체 에어비앤비에서 남겨온 한국 녹차를 마셨다. 몸이 불편하거나 마음이 힘들면 고향 생각이 나지 않던가. 식사 때마다 특별히 아이들이 고심해서 골랐지만 한식취향인 나는 소화에 부담이 많았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소화불량이나 변비 증상을 개선하기 위해 챙겨온 발효차를 프라하 첫 번째 숙소에서 이미 몽땅 소진했기 때문에 나는 아끼며 남겨둔 녹차를 꺼내 마셨다. 내 몸에 효소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강력한 소화효소이면서 동시에 해독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녹차였다. 샤워 후 편안한 실내복 차림으로 휴식을 취할 때 덕음 녹차만큼 정갈한 것도 없었다. 찻잎이 풀어지는 것을 보며 한 모금 향기를 머금고 있노라면 여독이 풀리고 편안해졌다. 남편도 감탄을 거듭 했다.    


“이게 이런 맛이었나?”          

“기름진 음식을 먹어서 그런가, 맑은 차가 좋으네요.”          

“좋군. 역시 녹차만한 게 없어.”          

“한국의 덖음 녹차는 말이 필요 없지요.”          

“….”               


  아무리 좋은 차를 마셔도 역시 첫사랑 한국 녹차를 능가할 음료는 없었다. 녹차를 나누며 나는 글쓰기로 남편은 독서로 빠져들었다. 집중력이 좋은 남편은 책을 한 챕터 읽고 내재된 행동성향대로 서성이다 결국은 방을 탈출했다. 계단을 내려가 주변 상가들을 돌아보고 치즈와 잼 갖 구운 야채와 베이컨 등 군것질거리를 사들고 한참만에 돌아왔다. 신박한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아침식사 재료들이었다. 아침이면 누룽지와 함께 어떤 것이든 먹어치우는 위대한 가족이 있으니까. 차와 함께 해외 여행을 나설 때마다 반드시 준비하는 것이 누룽지다. 혹시라도 탈이 났을 때를 대비해 사정없이 부수어 밀봉해서 가져가는 필수템, 그 어떤 상황에서든 위를 편안하게 해주는, 내게는 약보다 좋은 비상식품이다. 여행을 할수록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지혜를 얻는다. 감사한 일이다.

  

 유럽으로 가족여행을 가기 전까지 나는 에어비앤비를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이제 생각이 많이 달라져서 에어비앤비를 고려하게 되었다. 하지만 호스트가 올린 사진과 소개, 숙소에 대한 후기만 참고할 수 있으니 계약 전에 반드시 확인하고 살펴봐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기억해두어야 한다. 가족 여행 덕분에 기준이 될만한 경험을 한 셈이니 그 또한 감사하게 생각한다.         

                       

※ 에어비앤비(airbnb)는 세계 최대의 숙박 공유 서비스이다. 호스트가 에어베드 같은 잘 곳을 빌려주고 아침도 함께 하자는 (airbad & breakfast) 의미로 출발한 사이트지만 지금은 조금 변질되어 방 하나 정도가 아니라 여러 개의 방을 고쳐서 집 전체를 빌려주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무위키)



*대문 사진은 직접 촬영한 프라하의 야경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