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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가객 Jun 23. 2023

난징의 겨울 - 우롱차를 만나다

여행에피소드 2


 한여름 못지않은 6월이다. 날씨가 더워지자 조금 특색 있는 향기와 맛이 그립다. 며칠 집을 비우고 떠났던 제주도에서 시계를 가릴 만큼의 자욱한 해무와 메마른 감성을 적셔주는 보슬비가 줄곧 동행하는 바람에 오히려 힐링이 되었다. 빗소리를 좋아해서 우산을 쓰고 강 길을 걷던 어린 시절의 비 맞은 강아지 같은 기분을 실컷 느꼈다. 짝꿍과 함께 함덕의 바닷가에 차를 세워놓고 트렁크에 나란히 앉아 물멍 하던 시간이 그나마 맑았던 시간이다. 6월의 제주도 날씨가 그토록 변화무쌍할 줄은 몰랐다.      


 이번 여행은 머물기보다는 바닷길을 따라 제주도의 외곽을 드라이브 하는 차광(차로 관광하는 여행)으로 보냈다. 애초의 계획이 아니고 궂은 날씨로 인해 자연스럽게 정해진 거였다. 올레 길을 만나면 걷고, 차밭이 나오면 머물렀다. 동쪽의 구좌읍 종달리와 동복 김녕 삼양의 검은모래 해변과 조천의 검은돌 해변들이 눈에 선하다. 가는 곳곳마다 젖어서 더 선명하고 싱그러운 수국 꽃의 향연이 벌써 그립다.      




짝꿍과 차 트렁크에서 물멍하던 함덕 해수욕장, 수국과 '오늘은 녹차한잔' 다원의 차밭

 


 집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비가 주변을 서성인다. 본격적인 장마철인가 보다. 여행 중에도 녹차와 잭살 허브차를 가져간 덕분에 향기로운 여행을 했다. 비가 내릴 때 따스한 차 한 모금은  유용하다. 글을 쓰기 전, 노곤한 정신을 깨워줄 차를 고른다. 오늘 내 마음을 움직인 차는 우롱차다. 침출해서 시원하게 두고 마셔도 좋고, 아예 냉침을 해도 마시기 좋은 차다. 나는 그러나 따스하게 마시는 걸 선호한다. 적정 온도로 우린 우롱차는 향기와 맛은 정말이지 일품이다.       


 오랫동안 사용한 개완에 철관음을 넉넉히 담고 온수를 붓고 즉시 따라버린다. 다시 식힘 그릇에 부어놓았던 온수를 넉넉하게 부어 거품을 흘려보내고 뚜껑을 덮는다. 잠시 우러나오게 두었다가 잔을 한 손에 올려 잡고 다른 손으로 뚜껑을 비스듬히 벌려 향기를 맡는다. 고소하면서도 상큼한 꽃향기가 마음을 환기시킨다. 뚜껑을 잡은 채 찻잎이 나오지 않도록 살짝 기울여 차를 한 모금 마신다. 보드라운 찻물이 혀를 적시고 넘어가자 입안에 단향이 남는다.


중국 계림의 차 시장에서 구입해 20년 동안 사용한 개완. 철관음을 우려마시면 추억들이 떠오른다.


 철관음을 마시고 있으니 그 해 겨울이 떠오른다. 철관음의 향기에 압도되어 추위조차 즐거웠던 추억 한 조각이 중국의 난징대학교를 배경으로 구름처럼 가볍게 스쳐간다. 대학원에서 BK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국가지원금을 받고 한국학을 연구할 때였다. 중국 난징대학교 언어 연수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중국어 회화수업에 참여하면서 난징의 한국어학부에서 한국어 강의를 하고 중문학과 동양철학 사료들을 수집하는 프로젝트였다.      


 학기는 종강했지만 기말 과제 제출 기간이라 소논문을 작성하면서 동시에 출국준비를 했다. 중국 여행이 처음은 아니지만, 내가 간 곳은 북쪽이라 남경은 처음이었다. 기후며 지역의 전통과 문화 등을 열심히 알아보면서 여행 짐을 쌌다. 떠나기 전엔 몰랐다. 내가 준비한 소소한 것들이 얼마나 요긴하게 사용될지를.     

 

 어차피 언어연수이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게 될 것 같아서 궁리가 많았다. 혹시 친해져서 기념품을 주고 싶은 사람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한국의 여러 문양이 새겨진 책갈피며 문구류를 여러 점 구입했다. 체류기간이 길어서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마스크 팩과 화장품 샘플과 선물로 받아놓고 미사용한 앙증맞은 향수미니어처들도 가져갔다.      


 난징의 대학에서 한국어 강의를 하면서 열심히 발표에 참여하는 중국학생들에게 내가 챙겨간 문구류 소품들과 마스크 팩은 물론이고 화장품 샘플들까지 남김없이 나눠주었다. 놀란 것은 중국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과 적극적인 발표력이었다. 한국어를 수강하는 학생들이라서 그런지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K팝과 드라마를 훤히 꿰고 있을 뿐 아니라 연예인에 대한 열성적인 팬 덤엔 놀람을 넘어 의아할 지경이었다.      


 부끄러웠던 점은 외국인인 그들이 좋아하는 한국의 아이돌그룹과 멤버들에 대해 내가 겨우 이름만 알고 있을 뿐이라는 거였다. 지금도 다르지 않지만 그들의 히트곡이나 출연한 작품, 사생활에 대해 나는 너무하다 싶을만큼 무지했다. 정말 곤란한 위기의 상황들이 이어졌다. 나는 그들이 잘 알지 못하는 인디 가수들의 이름을 알려주며 호기심 가득한 그들의 눈빛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내가 신중하게 챙긴 것들 중에는 양모침낭과 한국산 녹차와 전통발효차 잭살도 있었다. 난징에 도착해 열차에서 내리자 찬란한 오후의 햇빛에서 따스한 열감이 느껴졌다. 학교에서 나온 픽업 차량에 올랐을 때 동행한 연구자들이 내 짐 속의 침낭을 놀림거리로 삼았다. 바이칼 호수라도 가는 줄 알았냐며. 부피 때문에 가방에 들어가지 않아 침낭가방을 따로 들고 있었던 나는 바보처럼 웃을 수밖에 없었다.        


 12명의 연구자들은 난징대학교 외국인 기숙사에 머물렀다. 내국인에게 허용되지 않는 난방을 제공했지만 남경의 겨울은 상상했던 것보다 추웠다. 따스한 햇살은 도착한 날 이후론 만날 수 없었고, 흐린 날이 2주간 계속되었다. 간혹 해가 떠 있는 낮 시간에도 그늘이나 건물 안은 운신 못할 정도로 추웠다. 휴일에 시내에 나갔다가 간혹 마주친 아이들은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옷을 잔뜩 겹쳐 입고도 얼굴이 한기로 빨갛게 부풀어 있었다. 난징대 캠퍼스 안에서 마주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움직임이 둔해 보일 정도로 옷을 껴입고 있는 모습은 낯설기 그지없었다.    

  

 난징대학 측으로부터 세 번째 날에 학교 내의 건물들을 안내 받았다. 그러나 예상을 깨는 추위에 시달린 원우들의 컨디션은 좋지 않았다. 불가피하게 몇 명이 빠진 상태로 출발했다. 그날따라 음산하게 빗발까지 휘날리고 있어서 우산을 써야만 했다. 난징대학교 캠퍼스가 넓어서 행군에 가까운 관람을 했다. 캠퍼스 안에 드넓은 자전거 정거장이 있었는데, 어림짐작으로 수천 대는 될 것 같았다. 학생들이 그 많은 자전거 중에 자신의 것을 어떻게 찾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본 곳은 펄벅 기념관이었다.      


 존경하는 작가 펄벅이 머무르며 창작을 했던 건물을 그대로 펄벅 박물관으로 보존하고 있었다. 내가 몇 번이나 재독했던 [대지]의 작가가 오랫동안 머물던 캠퍼스 내의 박물관에 작가가 사용하던 집필기구들과 찻잔 등의 생활 도구들이 보존되어 있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 노신공원에 갔을 때 보았던 노신 박물관과 함께 중국에서 내가 본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였다. 생활도구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펜과 잉크병, 찻잔이다.    

 

[대지] 작가, 혼혈인의 어머니 펄벅 소설가


 펄벅은 선교사인 부모님을 따라 생후 3개월 만에 중국 강소성으로 건너가 중국식 교육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강소성에도 펄벅 기념관이 보존되어 있다. 펄벅은 어머니의 권유로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중국으로 돌아간다. 결혼과 함께 난징대학교에서 영문학교수로 재직하며 글을 쓰다가 1943년 중국의 공산화로 52살에 미국으로 돌아가 퓰리처상과 노벨상을 수상했다. 펄벅은 집필활동을 하면서 2차 대전 후 미군으로 인해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태어난 혼혈아들을 구제하기 위한 입양사업을 한다.      


 한국에서도 1965년 펄벅재단 한국지부를 설립하고 유한양행 설립자인 유일한 박사로부터 1만평을 기증받아 한국전쟁으로 인한 혼혈아동을 돌보기 위해 부천시 심곡본동에 소사희망원을 세웠다. 펄벅은 한국을 사랑해서 매년 한국에서 2~3개월 머물며 혼혈아동을 직접 돌보고 집필을 했다. 혼혈인의 어머니로 불리는 펄벅은 최진주라는 한국 이름으로 서울시로부터 1967년 명예시민증을 받았고, 유언에 따라 ‘사이전주(賽珍珠)’라는 중국식 이름을 묘비명에 남긴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살아있는 갈대], [한국에서 온 두 아가씨]. [새해] 등의 작품을 남겼다.      


 펄벅에 관한 일화 중 내 마음을 붙든 것이 있다. 몇 년 전에 칼럼에서 읽은 내용이다.* 선교사인 부모님의 중국 이주로 인해 중국인들 틈에서 성장기를 보낸 펄벅은 자신이 중국인인줄 알았다고 한다. 가뭄이 심하게 들었던 해에 마침 펄벅의 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 백인인 펄벅의 어머니가 신을 노하게 하여 가뭄이 들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분노한 농부들이 펄벅의 집으로 몰려올 때, 소식을 들은 펄벅의 어머니는 집안에 있는 찻잔을 모두 꺼내 차를 준비하고 케이크와 과일을 접시에 담아 놓고 대문과 집의 문을 모두 열어놓고 기다렸다. 그리곤 열린 문으로 들이닥친 사람들을 환영하며 정중하게 차와 음식을 권했다. 멈칫거리던 사람들은 천천히 차와 케이크를 먹고 마시며,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어린 펄벅과 그녀의 어머니를 바라보다 그냥 돌아갔다. 그 날 밤에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고 한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인가. 그토록 무서운 순간에 분노한 사람들에게 차와 음식을 대접할 여유와 지혜를 소유한 펄벅의 어머니가 생각할수록 대담하게 느껴진다.  격한 감정에 휩싸여 몰려온 사람들을 순간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은 그녀의 환영과 극진한 차 대접이었다. 차를 마시면서 어린 펄벅이 노는 모습을 바라본 마을 사람들은 마음이 안정되고 이성이 회복되어 찬찬히 상황을 판단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순교를 각오하고 신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선교지에 들어간 펄벅의 부모였으니 그 땅의 사람들과 친분과 신뢰를 쌓아가던 중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생각할수록 놀라운 일화다. 위대한 작가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이지만 차와 관련된 일화이기에 나에겐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           


 난징대 숙소에 입실한 첫날부터 나는 고민하지 않고 양모침낭에 들어가 머리까지 지퍼를 올리고 잤다. 당시 남쪽지방이라 난방이 없다는 말만 듣고 별 준비 없이 간 다른 연구자들은 첫날밤을 보내고 난 뒤에 기숙사 관리실에 찾아가 난방 온도를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관리실에서 전기를 충전해 줄 테니 돈을 내라고 했다. 문제는 충전을 하고 온도를 올려도 그다지 따스해지지 않았다는 거였다.      


 당시 나와 함께 숙소를 사용하던 원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밤이면 사정없이 내려가는 기온 때문에 한밤중에 일어나 외투를 챙겨 입고 다시 누웠다. 다음날 원우는 예비로 가져온 오리털 점퍼를 꺼냈다. 패딩 점퍼의 지퍼를 올리고 모자까지 눌러 쓰고 외투를 덮고 그 위에 제공된 침구를 덮었다. 움츠린 채 잠들어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다고 했다. 결국 원우는 심한 감기몸살에 걸리고 말았다. 아파서 고생하는 원우에게 숙소에 비치된 티 포트로 한국에서 챙겨간 발효차를 끓여주었다.         

  

 감기에 걸렸을 때 차를 달이면 더운 수분으로 가습효과를 볼 수 있고, 발효차의 발열기능이 몸의 한기를 녹여준다. 차에 풍부하게 함유된 미네랄과 비타민 영양소들이 감기의 증상을 호전시키는 효과도 볼 수 있다. 내가 가져간 한국산 발효차는 홍차의 종류인 잭살이었다. 지금은 약발효차인 백차나 황차를 구할 수 있지만 그 때는 잭살만 먹었다. 잭살은 하동에서 복원한 한국전통 완전발효차다. 소엽 녹차의 세작 이후의 차를 발효시켜 여리고 달다. 성분 또한 따스하다.      


 2~3일 동안 밤새 추위에 떨던 원우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대형마트에 가서 전기요를 사왔다. 난징에 있는 동안 동행한 11명의 원우 중에 소화제가 필요한 원우에게도 차를 대접했다. 원우 중 한 분은 계속 약을 먹고 있는데도 변비 증상을 해결하지 못해서 그에게도 차를 마시도록 했다. 결과는 물론 좋았다. 체온관리를 열심히 한 덕분에 나 또한 연수를 마칠 때까지 컨디션을 잘 지켜낼 수 있었다.      


  나중에 중국어 회화 시간이 누적되면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자 담당 강사가 자기 집 바닥에 한국식 보일러를 설치했다는 의외의 이야기를 했다. 보일러의 온수 시스템이 가장 마음에 든다는 거였다. 집이 추워서 부모님과 아기가 고생했는데, 이제 더 이상 춥지 않다면서, 한국식 보일러가 정말 좋다는 거였다. 부모님 집에도 보일러 설치 공사를 예약했고, 지인들도 시공한 집이 많다는 소식에 자부심을 느꼈다.          

 

 며칠 만에 감기 증상이 호전된 원우와 함께 나도 난징의 대형마트에 갔다. 원우의 전기요와 털실내화를 구입하고 차 코너도 구경했다. 정말 많은 종류의 차들이 있었지만 품질을 확인할 수 없어서 구경만 하고 차 전문점을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어렵지 않게 차 전문점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저울에 달아서 파는 여러 가지 차를 시음했다. 암녹색의 찻잎은 동그랗게 말려있어서 콩알 같았다. 중국에 다녀오신 지인들로부터 선물로 받은 차와 모양이 같아서 반가웠다. 하지만 맛은 완전히 달랐다. 내가 받은 차는 가향차인 모리화차였고, 그 때 구경하고 시음했던 차들은 약발효차인 철관음이었다.     


 철관음은 얼마나 향기가 진한지 들숨과 날숨에 온 몸이 향기로 그득 찼다. 찻잎이 퍼지면서 맛도 고소하고 오미 중 단맛이 좋았다. 차는 묵직하면서도 목 넘김이 부드러웠다. 그런데 종류별로 맛의 차이가 컸고, 그만큼 값도 차이가 났다. 차의 종주국답게 같은 종류의 차들이 무수히 많았다. 마실수록 매력이 느껴지는 차였다. 차의 기운은 센 편이었고 뒤끝이 길어서 여러 번 충분히 우러났다. 나눠먹다 보니 구입한 차도 조기에 떨어져서 나는 그 찻집을 여러 번 방문해야만 했고, 덕분에 인터넷과 논문들을 찾아 철관음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었다. 보이차와 대홍포는 즐겨 마시고 있었지만 철관음의 매력에 빠진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개별진공포장된 철관음과 알미늄통에 담겨 유통되는우롱차


 철관음은 청차로 분류되며 40% 내외로 산화시켜 만든다. 우렸을 때 수색은 금황색이다. 중국 복건성 안계 현에서 주로 생산되어 안계 철관음으로 불리기도 한다. 찻잎의 모양이 관음과 같고 무겁기가 철과 같다고 하여 청나라 건륭 제에 의해 하사된 이름이다. 관음이란 관세음보살의 약자로 자비로운 부처를 가리킨다. 청대의 불교문화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이름이다.      


 봄에 생산되는 철관음은 풀 향과 과일향이 독특하며 부드러운 단맛이 돌고, 가을에 생산되는 철관음은 화려한 향기와 함께 오래 우러나오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철관음의 종류도 다양해서 산지마다 지형에 따라 찻잎도 다르고 발효의 정도에 따라서도 다르게 구분이 된다.    

  

 많이 알려진 우롱차는 불완전 발효차인 청차 전반을 아우르는 명칭으로, 오룡차의 번역이다.*2 오룡차는 까마귀처럼 까만 찻잎에 용처럼 구불구불한 모양을 가졌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화 정도와 향미에 따라 구분이 되는데, 철관음, 수선차, 백화오룡차, 무이 암차 등이 포함된다. 내가 철관음을 처음 만났을 때는 우롱차의 범주를 알지 못하고 각각 다른 차로 알고 있을 때였다. 한동안 철관음이 우롱차와 전혀 다른 차인 줄 알았던 것이다.     


 타이완의 대표적인 우롱차 상표가 동방미인이다. 차의 싹이 동물의 털과 같이 하얗다고 하여 백호오룡차였으나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동방의 미인과 같다고 하여 얻은 별명이 동방미인이다. 대만에 다녀온 지인에게서 아리산 오룡차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정말 향기가 공간을 그득 채울 만큼 진하고 맛도 풍부해서 잊을 수 없다. 가깝지만 아직 가본 적이 없어서, 대만을 여행할 기회가 오면 꼭 구해오고 싶은 것이 아리산오룡차다.  


 철관음(우롱차)은 체내 중성지방을 분해하여 비만을 억제하므로 다이어트에 효과가 좋은 차로 널리 알려져 있다. 풍부한 항산화성분 안에는 미네랄이 다른 차보다 다량 함유되어 있어 골다공증이나 치아건강에도 좋다. 폴리페놀 성분은 노화방지에 도움을 주며, 이뇨작용이 탁월해 부종을 가라앉힌다. 이 폴리페놀 성분이 풍부한 차가 철관음이다.*3     


자사호에 우롱차를 우린다. 금황빛 수색이 아름답고 꽃향기가 은은하다.



 우롱차는 산화도에 따라 우리는 방법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예사의 숙련도에 따라 결과물의 질이 크게 달라진다. 다예사가 아닌 우리가 우롱차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은 산화도가 낮은 차는 낮은 온도로, 산화도가 높은 차는 높은 온도로 우리는 것이다. 산화도의 정도는 건 잎의 빛깔이 진할수록, 또 우렸을 때의 빛깔이 진할수록 높은 것이다. 일반적인 우롱차는 80°C 정도의 물로 우리면 문안하다. 하지만 산화도가 낮은 경우는 65°C에, 산화도가 높은 무이암차는 90°C에 우린다.      


주의할 점은 우롱차도 녹차와 마찬가지로 카페인성분이 있다는 것이다. 개인차가 있지만 카페인 분해속도가 늦은 분의 경우엔 수면에 방해를 받을 수 있다. 차의 주의점이 궁금하신 분은 ‘약되는 녹차 VS 독되는 녹차 ( https://brunch.co.kr/@healingsiinger/23)’를 참고하면 좋겠다.     


 우롱차는 여러 번 우려도 그 때마다 향과 맛이 다르다. 건 잎의 차도 향이 좋지만, 고온의 물을 만났을 때 향기가 폭발한다. 우롱차를 운치 있게 즐기는 방법은 향기를 음미하기 위해 고안된 문향배를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향배가 없어도 향과 맛을 함께 느끼기에는 문제가 없다. 일반적으로 자사호나 뚜껑이 달린 1인용 개완을 사용하면 용이하게 우려 마실 수 있다.      



다관이면서 개인 잔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개완에 간단하게 철관음을 우린다.



 덥고 습한데 몸은 허한 6월의 아침에 우롱차를 우린다. 하루 종일 생각날 때마다 온수를 부어 마셔도 끊임없이 찻물이 우러날 것이다. 뒤끝이 장렬한 우롱차의 기운이 노곤한 몸을 조율하는 것이 느껴진다.           












참고 *1 [중국을 사랑한 ‘대지’의 작가 펄벅], 김건흡 칼럼, 중앙일보, 2017.     

       *2 [차생활문화대전], 홍익재, 2021.

     






PS.

- <소설가의 다실>을 구독해주신 작가님, 독자님, 감사드립니다.

- 위클리 매거진으로 발행하던 차 에세이를 비정기적으로 발행하려고 합니다.

- 좀 더 나은 컨텐츠로 찾아뵈려고 하오니 라이킷과 댓글로 응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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