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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가객 Aug 23. 2023

여름의 끝에서 - 로즈메리 허브티

          

  험악한 여름을 통과하고 있다. 폭우로 인한 수재 앞에서 안타까움에 가슴 죄며 밤을 새웠고, 한낮의 불볕더위에 온열 피해자들의 뉴스를 보고 탄식했다. 또 한 번의 태풍이 경상남도 지역에 피해를 주고 지나갔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해마다 추석 무렵에도 수해를 입는 지역이 있었다. 아직 몇 건의 태풍 소식이 남아 있는 것일까? 국민 스스로 각자의 안전을 대비하고 국가와 관련 기관에서는 맡겨진 위험대비 업무를 철저히 해주어 자연재해로 인한 안타까운 인명피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수마가 무섭지만 화마는 더욱 잔혹하다. 하와이 마우이 섬의 화재로 희생자가 수백 명은 될 것이라는 보도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인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있을 때, 캐나다 BC주의 웨스트 켈로나시에서 시작된 화재가 하루하루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천 건 이상 확산되고 있다. 2주째 수만 명이 대피한 가운데 실종자와 희생자를 찾는 유족들을 보면서 함께 오열한다. 이상 기후라는 자연현상 앞에서 인간은 무력한 존재이다.    

  

 그러나 자연재해 못지않게 무서운 건 인재 사고다. 불특정다수를 살해하려는 명백한 의도로 행한 칼부림에 너무도 많은 시민들이 해를 당했다. 이어 다수의 장소에서 살해와 강간폭행 계획이 공표되고 실제로 생활권 안에서 폭행이 자행되면서 선량한 시민이 희생되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모방범죄에 숨 막히게 삼엄한 낮과 밤들이 지나가고 있다. 자연재해 앞에서 인류애로 흥건했던 뜨거운 눈물을 적대감과 수치심으로 급랭 시킨 묻지 마 폭행에 시민들은 당혹스러운 분노와 두려움에 휩싸였다. 남북 대치의 휴전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국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고 보전해 왔던 치안이 시험을 치르는 중이다.      


 늘 지나다니던 그 장소에서 일어난 끔찍한 흉기난동의 후유증으로 이웃 중 한 분은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 산책도 나서지 못하며 후드티를 입은 남성을 마주치기만 해도 놀라 식은땀이 흐른다고 털어놓았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묻지 마 범죄였기에 트라우마를 갖게 된 이들도 많을 것이다. 이에 따른 대응으로 경찰청장의 특별치안활동 선포가 있었다.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고 범행시 현장의 법집행이 엄중하게 이루어져 더 이상 무고한 시민이 희생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또한 시민의 일상생활이 자율적 질서 안에서 회복되어 상식적인 안전사회, 배려와 존중이 작동되는 교양사회로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태풍 카눈의 경로를 살피던 8월 9일 오후였다. 저녁 하늘에 화사한 쌍 무지개가 떴다. 경기도 광주지역이었고, 운전하면서 보았다. 신호에 걸렸을 때 카메라를 꺼내 촬영하고 보니 퇴근하던 시민들이 무지개를 촬영하는 모습이 보였다. 곤지암 역을 지나 산업도로를 달리는데, 건널목이나 정류장, 상가 앞에서도 무지개를 촬영하는 분들이 많았다. 동행하던 지인이 가족 톡에 올리고 짝꿍에게 무지개 보라며 전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 가족 단톡방에도 딸이 촬영해서 올린 무지개 사진이 들어왔다.      


 무언가 굉장한 일이 있을 때처럼 순간 기분이 들떴고, 하늘 배경으로 떠있는 그 화사한 무지개를 빨리 공유하고 싶었다. 자연현상인 무지개를 보고 이렇게 흥분할 일인가? 무지개가 뭐라고, 그런 생각을 슬며시 붙잡는 해석이 있었다. 잇따라 발생한 사회적 범죄와 자연재해 앞에 누구도 예외 없이 걱정과 공포 경직에 사로잡혀 두껍고 뻣뻣한 공기를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를 바라보는 그 순간만은 온전히 자연이 주는 힐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아무 걱정 없이 공유할 평화롭고 즐거운 풍경으로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환기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해 질 무렵에 선명하게 뜬 쌍무지개, 8월 9일 7시 20분에 경기도 광주에서 촬영했다.





                           

 아침에 뉴스를 확인하는 일이 큰 스트레스다. 그럼에도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지만, 나는 될수록 오전엔 무거운 뉴스들을 자세히 읽지 않는다. 먼저 일기를 확인하고, 태풍이나 화재 등 민간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진행 중일 땐 헤드라인만 훑어본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사회적 정치적 국제적 사건 사고들로 하루의 시작점부터 휘둘리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건강한 삶을 지속하기 위해선 기상, 운동, 식사, 업무, 수면 등의 정해진 행동 패턴이 필요하다. 한 번 무너지면 타격이 큰 일상의 루틴은 개인의 체질과 성향에 따라 다르다. 시간이 아까워 잠자는 시간은 짧을수록 유익하다는 신념으로 10년을 보낸 후 호된 대가를 치렀다. 나이 마흔에 구안와사를 시작으로 뇌 치료를 받았고 염증질환으로 고생한 후에 수면의 중요성을 공부하고 필요를 인정했다. 그러므로 내 루틴은 나의 필요에 의해 내가 정한 것일 뿐이다.      


 아침에 묵상을 하고 나면 짝꿍과 산책을 한다. 요즘은 너무 더워서 한낮에 가장 더운 시간에 에어컨이 켜진 실내운동 시스템을 찾아가 각자 운동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미룬다. 간단한 과일야채식으로 아침을 먹기 시작한 지 5년이 되었다. 짝꿍은 허리 벨트를 두 칸 줄였고, 당뇨와 고혈압 심장질환을 개선해가고 있다. 나 또한 지천명을 맞이하고 여섯 해를 맞이했지만 탈모나 백모 없이 건강하게 적정체중을 유지하고 있다.      


 나와 짝꿍은 대화가 많은 편이다. 일상적인 부부의 대화 속에는 생업과 맡은 사역과 자녀와 부모님과 이웃의 이야기들이 오간다. 주제는 항상 우리 부부 각자의 역할을 확인하고 지지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고 특이점이 있으면 휴대폰 노트에 메모하고 묵상 노트에 옮겨 적는다. 내 깜냥으론 답을 찾아낼 수 없는 문제들,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인생의 고난들이 무시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헤쳐 나온 길을 돌아보면 그 상황을 만든 나의 선택과 실수를 복기할 수 있다. 또 그 상황을 허락하시고 통과하도록 인도하신 그분의 뜻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짝꿍과는 성향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이해하는데 평생이 걸렸다. 하지만 대화를 포기하진 않았고, 함께 세월을 맞으면서 점차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부부 관계에서 서로를 위해 노력하는 건 자율성과 취향 존중이다. 졸혼이 유행어로 등극한 후에 누군가는 해혼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완혼을 제안한다. 그 누구도 동일하지 않고 놓인 상황과 관계도 다르기 때문에 그 어떤 것이든 완전한 해답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명언처럼 인간은 믿을 존재가 아니라 사랑할 존재라는 말에 동감한다. 나 또한 나와 타인이라는 내 안팎의  존재와 일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생명이 있는 동안, 내 안에 사랑이 있다면, 내 역할을 선한 방향으로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딸이 사준 칼슘세제에 방울토마토를 닦았더니 저런 오염수가 되었다.



 습하고 더운 요즘, 될수록 조리 기구를 가동하지 않으려고 꾀를 쓴다. 지인이 공유해 준 앙증맞은 머신에 단호박과 당근 감자 계란을 쪄서 곁들이기도 한다. 딸이 사준 칼슘세제를 한 스푼 풀어서 과일과 야채를 담그면 농약성분과 기름때와 먼지들이 녹아 나와 누렇고 뿌연 오염수가 된다. 맑은 물로 씻어내면 과일 야채 본연의 새뜻한 색감에 윤기가 난다. 이토록 편리한 세상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에 매일 소소한 감사를 느낀다. 내가 과일야채를 준비하는 동안 짝꿍은 청소기를 돌린다. 바지런한 정리의 달인인 짝꿍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다.  

    

국산 2단 찜기, 15분이면 계란과 뿌리채소를 한번에 조리할 수 있다. 불없이 요리하고픈 여름에 강추!






 이번 주간엔 중년에게 좋은 로즈메리 허브티를 곁들여 아침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베란다에서 식사를 한다. 로즈메리 허브티에는 식물화학물질이 풍부한데 그 영양소들의 효능이 매우 좋다고 알려져 있다. 효능을 정리해 보면 로즈마리산과 카페산이 암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가 있다. 항산화 및 항우울 효과도 좋아서 불안을 관리하는 데 효과가 있으며 기억상실을 예방한다고 한다. 카르노솔이라는 성분은 간 손상을 예방하고 항염 기능이 있다고 한다. 박테리아 곰팡이 여드름 물집 등에 효과가 좋아 노화를 방지하고 탈모를 관리하는데도 좋은 음료다. 소화를 돕고 비만을 예방한다고 알려져 있어 예로부터 다이어트에도 이용되고 있다.   

   

 로즈메리는 향기가 역하지 않고 민트의 청량감이 좋아서 기분을 전환하기 좋은 차다. 심신을 안정시키는 허브차들 중에 구입하기도 쉽고 우려먹기도 용이하다. 건조한 차를 한 스푼 넣고  90도의 물에 3분 정도 우려서 먹는다. 여러 번 우릴 수 있으며 재탕할 땐 시간을 늘려서 우린다. 지중해 연안이 원서식지인 로즈메리는 오랜 세월 인류에게 향신료와 치료제로 사용됐고,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문학작품에도 등장하는 식물이다. 각종 비타민의 보고인 로즈메리에는 비타민 A, B군과 비타민C도 다량 들어있으며 엽산과 리보플래빈과 다양한 종류의 미네랄 영양분이 풍부하다.     

 


지인이 덖어서 보내준 제주산 로즈메리, 달큼하고 향기롭다.


 지난겨울 제주도에서 한라산 자락인 중산간 지역에 거주하는 지인이 뜰에서 키운 로즈메리를 차로 덖어 보내주었다. 받자마자 뽀얀 털로 덮인 찻잎을 열고 향기를 들이마셨다. 여름에 들렀을 때 뜰 안에 가꿔놓은 허브정원을 보고 감탄을 연발했는데, 바비큐 시즈닝에 생잎을 넣으면서 겨울이 되면 차를 덖어서 나눠주겠다고 호언을 했다. 하지만 겨울이면 귤 농사로 손이 없을 때여서 기대할 수도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잊었다. 얼마나 귀하게 가꾸고 손질했을지 상상이 되기 때문에 그 향기를 맡을 때마다 감탄하며 고마움을 느낀다. 심신이 불편할 때마다 로즈메리 향으로 마음을 전환한다. 특히 요즘처럼 습한 날씨에 강추하고 싶은 차다. 아침에 로즈메리를 우린 날에는 하루종일 마신다. 끝도 없이 우러나는 차향과 민트의 화함이 마음에 낀 때마저 벗겨내어 맑아짐을 느낀다.     

  

 내성적인 나와 달리 외향적인 짝꿍 덕분에 많은 관계를 확장할 수 있었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로즈메리를 보내준 지인은 매년 겨울 무농약 귤과 함께 귤피차도 만들어 보내준다. 짝꿍의 인연으로 만난 부부 모임이지만 소박하고 환경 친화적인 산사람의 향기가 늘 그립다. 제주도에 갈 때마다 초청을 해주어서 여름엔 모깃불을 피워놓고, 겨울엔 이불을 두르고 모여 앉아 밤샘 이야기꽃을 피웠더랬다. 물론 우리 집에 와서도 찻잔을 나누었지만 정작 덖어준 차를 함께 마신적은 없어 빚진 마음이 크다.   

  

 고소한 아보카도와 향긋한 사과를 먹고 로즈메리 허브티를 마신다. 노랑 빨강 파프리카와 토마토를 먹고 또 로즈메리 허브티를 마신다. 달큼하고 향기로운데, 후미까지 맑다. 여름의 끝에서 머뭇거리며 우리 곁을 서성이는 습한 더위를 물리치기엔 더없이 좋은 차다. 이렇게 아침의 기분을 조율하면 가지런한 마음으로 창작을 시작할 수 있다. 연작소설 속의 웰니스족을 만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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