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덮는다. 1년 이상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책이다. 활자에 체한 것처럼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던 시간, 이온 음료처럼 유일하게 읽힌 책, 나를 위로하고 존재하게 해 주었던 내 생활의 바이블을 서가에 꽂는다. 마치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그래서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주인공의 지리멸렬한 삶의 여정과 다양한 대처 전략에서 나는 내 상황에 맞는 해석과 힌트를 얻었다.
쌍둥이를 조산하고 두 아이가 각각 미숙아로 인큐베이터에 있는 동안, 나 또한 위기를 넘기느라 사경을 헤맸다. 초유를 먹이지 못한 채 삭제된 날들이었다. 먼저 회복한 나는 혼자 집으로 돌아온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텅 빈 세계로 추방당한 거였다. 지독하게 비현실적인 자괴감을 덮은 채 매 순간을 견뎌야만 했다. 하루하루 위험을 넘기며 사투를 벌이는 내 아가들 걱정으로 감정은 타서 녹아버렸다.
그 상실감과 무력감이 내 삶의 배수진이 되었다. 일각이 여삼추라던가! 숨이 넘어갈 듯 갈했던 두 달을 넘기고 일주일 차이로 무사히 쌍둥이를 퇴원시켜 집으로 데려왔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이 전의 정상적인 일상을 영위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육아전쟁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살다보니 전쟁은 집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의도하지 않아도 외인의 침입이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그러나 집 안팎에서 일어나는 전쟁보다 존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파괴력이 컸다. 종전도 없고, 휴전도 없는 내면의 전쟁은 지리멸렬 자체였다. 그 위에 일상의 전쟁이 덮치고 또 덮쳤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곳이 지리멸렬 행성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전략의 쓸모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