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웃도 이웃나름이지 - 웰니스아파트 804호

연작소설 <웰니스족 2>

by 힐링가객

* 연재소설 2회차입니다. 여기에서 연결됩니다.->

https://brunch.co.kr/@healingsiinger/44





소분해서 비닐 백에 담은 찰떡아이스를 냉동실에 넣는다. 마음이 뿌듯하다. 만들어지는 즉시 언니가 냉동실에 넣었다가 내려올 때 꺼내줘서 이미 단단하게 얼었다. 감자 박스에서 쪄먹기 좋은 크기의 감자알을 넉넉히 꺼내 수돗물에 씻는다. 감자 버터구이는 규원이도 좋아하지만 위층 호영이 호민이도 좋아한다. 고마운 마음은 식기 전에 갚는 것이 제격이다.


시원이 지원이가 덤벼들었으면 간식이고 뭐고 다 망쳤을 텐데, 밀반죽을 가지고 놀다가 잠이 들었다. 바쁜 언니가 시간을 내준 덕분에 하루가 잘 지나갔다. 24시간 육아에 치어 숨 쉴 틈이 필요했던 나에겐 ‘신과 함께’한 행운의 시간이었다. 규원이가 하원할 시간이 되었는데 곤히 잠든 아이들을 언니가 깨우지 못하게 해서 두고 왔다. 어차피 일감 배달이 늦어져 괜찮다고 했다. 아이들을 같이 키우는 건 이래서 좋다.


오늘 같은 행운은 드물게 찾아온다. 언니에게 부업 일감이 쌓여있는 날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 점심을 같이 먹을 땐 주로 언니가 찬을 챙겨서 내려온다. 두 집 반찬을 모아놓으면 순식간에 한식뷔페가 된다. 언니가 불러서 올라가도 일감이 밀려있으면 커피를 내주곤 다시 일거리를 잡는다. 언니의 손끝에서 초단위로 포장되는 상품을 보면 마음이 바쁘다. 신기한 건, 민폐가 될까봐 눈으로 마음으로 위층을 노크하는 그런 날, 텔레파시가 통한 듯 언니가 커피타임을 선언하며 인터폰을 하는 것이다. 잠깐을 머물다 돌아와도 내겐 피로회복제나 소화제보다 효과 좋은 약이 된다.


그런 날엔 아이들에게 외출복 입혀 현관문을 나선 길이라 언니네 집에서 나와 아파트 산책로를 걷는다. 뛰어놀고 싶은 아이들의 욕구를 발산시킬 기회로 삼는 것이다. 보통은 규원이의 하원에 맞춰 산책을 간다. 초봄에 입주하고 몇 달 동안은 점점 날씨가 풀릴 때여서 오후에 외출하기 좋았다. 하지만 이젠 하루가 다르게 더워지고 있다. 날씨가 더 뜨거워지면 산책 시간을 아침저녁으로 옮기고 낯 시간엔 물놀이 한차례 시키고 영어 비디오 까이유와 책을 보여주면서 지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동안 교육적인 활동으로 운용하고 싶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지원이와 시원이의 수면 리듬이 달라서 산책 한 번 나가는 것도 시간을 정하기 어렵다. 지원이는 저녁에 잠드는 시간이 조금 늦지만 아침까지 푹 자는 편이다. 리듬이 불안정한 시원이가 가끔 새벽에 일어나 보채다가 규원이 등원시간 전후에 잠든다. 두 녀석이 왕성하게 얼크러지는 시간은 그래서 오전 10시가 넘어서다.


아이들은 추울 때보다 더울 때 더 짜증스럽다. 더운 한여름에 비라도 오면 침과 땀으로 노상 젖어있다. 에어컨을 켜고 있으면 콧물 기침 미열 증상이 감기로 이어져 지긋지긋한 항생제를 먹여야 한다. 그렇다고 문을 열어놓자니 시끄럽고 꿉꿉하다. 웰니스아파트에 입주하기 전에 살았던 다세대주택은 정말 습했다. 방바닥을 물걸레로 닦고 나면 마르지 않아서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걷어내야 할 정도였다. 장마철이 되면 알루미늄 새시로 마감된 베란다 문틈으로빗물이 들이쳤다. 배수 상태가 좋지 않아 장마가 걷히면 벽에 얼룩이 생기고 곰팡이가 피었다. 생기는 즉시 닦아내고 락스물과 식초물을 분무기로 뿌려 관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스에 담아 베란다에 내놓았던 가방들과 아이들 옷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올 봄에 입주한 이 아파트는 신축 건물이다. 결혼하고 줄곧 다세대 주택에서 살았기 때문에 처음 살아보는 새 아파트에서 아기들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매일 에어컨을 돌려댈 수는 없지만 아파트는 그래도 쾌적한 편이다. 위층 언니네 집에 올라갈 기회도 있고 호야 형들이 내려와 같이 놀 수도 있으니까.


규원이 등하원 시간에 마주치는 같은 어린이집 자모들과 맘카페 회원들이 나에게 묻는다. 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지. 그럴 때마다 조금 천천히 보낼 거라고만 이야기한다. 내 나름의 사정이 있다. 이른둥이로 태어났지만 자궁의 위쪽에 있었던 지원이는 1800g의 몸무게로 태어났다. 아래쪽에 있었던 시원이는 겨우 1460g이었다. 출산휴직을 기다리면서 소변이 안 나오고 부종이 심해지는데도 쌍둥이라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미련하게 정기 검진일까지 기다린 것이 위험을 가중시킨 원인이었다.


임신중독증 진단을 받고 입원할 때만 해도 갑자기 신청한 출산휴직이 마음에 쓰였고, 종일반에 맡겨졌다가 아빠에게 안겨 잠깐 병원에 들른 규원이에게 마음이 쓰였다. 32주라 출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며칠 지켜보면서 관리를 받고 퇴원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혈압이 치솟으면서 경련이 일어나는 바람에 대처할 틈도 없이 급박하게 수술이 진행되었다. 나와 아이들이 다 위험한 상황이었다. 출산 직후 나와 아이들은 의료적 처치에 의지해서 각자 생존해야 했다. 하루하루 버텨낸 그 시간 중 어떤 순간은 뇌리에 사진처럼 박혀서 잊히지 않는다.




지난해 여름에 2인용 웨건에 쌍둥이를 태우고 다니던 때가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다세대 주택의 좁은 공간에서 버틸 수가 없어서 규원이를 등원시키고 나면 매일 아이들을 데리고 습한 공간을 탈출해 몇 시간씩 집 밖에서 보냈다. 두 녀석 중 하나가 잠들면 깨어있는 녀석과 놀아주었다. 때로 두 녀석이 같이 잠들면 행운이라도 잡은 것 같아서 모기장을 씌워 그늘에 놓고 편의점 커피를 마셨다. 모처럼 찾아온 자유시간을 제대로 누리면 좋았으련만 나는 좀 미련한 성격이라 숙제처럼 미뤄놓았던 고민을 껴안고 씨름했다.

만삭이 되어 태어난 다른 아이들의 발육 속도를 거의 따라잡은 지원이는 출생 직후에 겪었던 폐와 간의 미숙함을 이겨내고 양호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기특하게도 몸무게와 운동신경, 지능발달의 모든 면에서 적정속도로 발육하여 걱정을 잠재워 주었다. 말과 행동을 모방할 때나 원하는 것을 표현할 땐 규원이의 성장속도와 비교해도 빠른 면이 있었다. 자라갈수록 여자아이라 그런지 애교로 우리 부부의 마음을 녹였다. 하지만 지원이를 보면서 마냥 즐거워할 수가 없었다. 발육이 지연되고 있는 시원이의 상태가 더 확실하게 비교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가장 큰 문제는 대근육의 발달이 현저하게 지연되는 거였다. 20개월이 되었지만 혼자서 걸음조차 떼지 못했다. 서서 버티다 움직이면 곧바로 넘어지고 부딪쳤다. 야무지게 악기 교구를 작동하며 소리를 듣고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지원이와 달리 시원이는 물건을 조작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저 더듬고 미는 수준이었다. 그런 시원이를 보면서 눈물을 삼키며 웃어주느라 목울대가 뻑뻑해지곤 했다.


생각할 틈이 있을 때마다, 아니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모든 시간에 나를 지배했던 건 죄책감이었다. 그것은 깊은 우물과 같아서 한 번 빠지면 나올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내 몸에서 태어난 생명이니까, 내가 그 때 몇 주만 더 일찍 출산휴직을 했더라면, 그 전에 내가 내 몸을 좀 더 소중히 간수했더라면, 내가 평소에 건강을 위해 신경을 썼더라면, 내가 몸에 좋지 않은 그 몹쓸 짓들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 지나온 시간들이 전부 후회스러웠다. 아니 혐오스러웠다.


자책을 하면 할수록 음울한 후회들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우물 속으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자동화된 무의식의 코드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스스로의 의지와 다투지 않아도 되었다. 방전된 것처럼 의지를 풀어놓는 그 순간만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면하지 않아도 되었다. 너무 익숙해서 그 느낌 속에 있는 것이 차라리 편안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우물 속에 머물 수 없었다. 우물에서 나와야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그 날 나는 강력한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다. <지리멸렬행성 탈출기> 에서 “우물에서 나오기” 편을 읽고 또 읽은 뒤였다. 하지만 그 때까지는 눈으로만 읽었을 뿐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머리로 인정하고, 이제부터 그러지 않겠노라고 작정했다고, 그 즉시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열패감에 사로잡혀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고 스스로 비하하고 자책하는 것이 익숙한 그 곳에 머물 수 있는 방법이었다는 것을 그 순간에 비로소 깨달았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을 직면한 거였다.


나는 시원이의 잠든 얼굴을 보았다. 그 곁에서 잠들어있는 지원이도 보았다. 완벽하게 사랑스러운 아기들이었다. 지금까지 내게 속해있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순간 아기들이 나에게 맡겨진 우주의 생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아기들에게 나는 특별히 선택받은 양육자였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는 특별히 이 아기들을 위해 자격시험을 통과한 단 하나의 적격자였다. 생각이 작동하는 동안 스스로 놀랐다. 그런 인식은 처음이었다. 나 때문에 태어난 아이들이 아닌 나를 필요로 하여 나를 찾아왔다는 그 순간의 해석으로 인하여 갑자기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나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어둠이 사라졌다. 하늘과 바람과 지나가는 사람들도 새롭게 보였다. 그 날을 계기로 나는 죄책감의 우물을 닫아버렸다.


그렇다고 그 날 이후 육아가 편해졌다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잠이 모자라 퉁퉁 부어있고, 선풍기 바람만 지나가도 찢어지는 듯 시린 산풍으로 아무도 모르는 고통에 시달렸다. 임신 중독 후유증으로 만성 고혈압을 얻어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하지만 더 이상 죄책감의 우물에 빠지지 않았다. 대신 아이들에게 더 집중하고 애정으로 양육하고 있다. 후회를 내려놓은 것처럼 걱정도 미리 하지 말자는 것이 ‘탈출기’를 읽으면서 내가 얻은 가장 소중한 지혜다.


발육이 비약적으로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20개월 마지막에 발짝을 뗀 시원이는 22개월이 지나자 제법 안정적인 걸음으로 짧은 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다. 이제 30개월이다. 아직도 부딪치고 넘어지지만 요즘은 제 발로 뛰기를 좋아해서 쫒아 다니며 말려야 할 정도가 되었다.




어쨌든 내가 계획하고 있는 쌍둥이의 어린이집 등원은 세 돌이 지난 후에나 이루어질 일이다. 36개월까지는 뭔 일이 있더라도 집에서 돌볼 생각이다. 겨울을 보내고 봄 학기가 되면 세 아이가 등원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즈음에 어떤 일이든 시작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출산 후에 퇴직을 결정한 이후부터 육아와 병행할 직업을 모색했지만 고민하면 할수록 마음이 구겨진다. 궁리만 무성하고 대안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아기들을 어린이집 종일반에 맡겨두고 일터에 가서 집중할 수 있을까. 아이들을 떼어놓을 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는 생각이 자동반사적으로 치고 올라온다. 혹시라도 시원이에게 필요한 의료적 시기를 놓치고 후회하게 될까봐 걱정스럽다. 아무리 궁리해도 자유롭지는 못할 것 같다. 다시 원점이다. 이 부분에 부딪히면 생각이 진전되지 못한다.


내 이웃은 모두 워킹 맘들이다. 803호 앞집 여자도 그 위층의 903호 여자도 직장인이다. 위층 언니도 부업을 하고 있다. 나 역시 품질관리사로 근무하던 직장을 결혼 후에도 계속 다녔고, 규원이 출산 후 육아 휴직 6개월 만에 복직했었다. 쌍둥이를 임신하고 무거운 몸으로 근무하면서도 퇴직을 고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예정보다 두 달이나 먼저 출산하게 되었고 아이들의 발육 상태가 너무 미숙해서 인큐베이터에서 꼬박 두 달을 보냈다. 그 기간에 이른둥이를 잘 기르는 것에 집중하자고 마음먹고 퇴직을 결정한 거였다.


과할정도로 의무감이 강한 남편은 현재 투 잡을 뛰고 있다. 쌍둥이를 임신하고부터다. 처음엔 낮엔 영업직으로 근무하고 저녁엔 오토바이로 음식 배달하는 일을 했다. 지금은 퇴근 후 물류센터 냉동 창고에서 일한다. 주말에만 할 수 있는 일이 조건도 좋다면서 N잡러로 가려는 남편을 극구 말렸다. 아이들이 아빠를 볼 시간이 없어서 안 된다고 했지만, 사실은 남편의 체력과 건강이 걱정되어 그것까지 허락할 수가 없었다. 외벌이로 살아가기 벅찬 세상이라 육아를 하면서도, 복직을 고민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이른둥이 출산으로 전업주부가 된 나를 자극하는 레전드는 아래층 여자다. 첫 대면부터 껄끄럽게 굴어서 남다른 특권의식이 있나보다 할 뿐인데, 가끔 꼭지가 돌 정도로 화를 불러일으킨다. 낮 시간에 재택근무 한다는 말을 별스럽게 강조할 때마다 복직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것이다. 전에 슈퍼집 주인이랑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기에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라고 했는데, 대답을 못 들었다고 한다. 무슨 비밀 잡을 수행하느라 그렇게 유난을 떠는지 그거 하나는 궁금하다. 내가 재택근무를 하지 말라고 한 적은 없다. 하지만, 층간소음 때문에 일을 못한다고 하니 더 궁금한 것이다. 혹시 생활소음이 섞여 들어가면 안 되는 첩보활동이라도 하는 건가?



금수저니 흙수저니 방송에서 떠들어도 그런 건 그저 웃자고 하는 말인 줄 알았다. 내가 금수저의 실존을 확인한 건 이 아파트에 입주한 후였다. 당시 나는 새로 만나게 될 이웃들에 대해 기대감이 있었다. 특별히 위 아래층 사람들과는 돈독한 친분을 쌓고 싶었다. 첫 대면부터 깐깐했던 아래층 여자에겐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예의를 다했다. 의자 끄는 소리에 주의하라는 관리실 안내방송을 들은 날 의자와 식탁 다리에 작아서 신기지 못하게 된 쌍둥이의 양말을 신겼다. 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이동할만한 가구소품들은 모두 받침대를 천으로 감싸서 케이블타이로 묶었다. 아이들의 발소리가 시끄럽다고 아래층 여자가 처음 인터폰을 걸어온 날엔, 소음매트를 추가로 주문해서 빈틈없이 깔았다. 나도 할 만큼은 했다는 말이다.


‘우리 송이가’로 시작되는 그 여자의 요구는 정도가 지나치다. 어떻게 아이들이 아무 소음도 내지 않을 수가 있을까! 아이가 아니라 생각이 있는 성인이라 해도 사람이 살아가려면 최소한의 생활소음은 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은 삶이 가능하기는 할까. 아이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내는 소리에 그 집 아이가 잠을 못 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아이 핑계로 트집을 잡아 화풀이를 하자는 거겠지.

아래층 여자에게 내가 전전긍긍하는 건 순전히 애가 셋이라는 것과 윗집에 산다는 이유뿐이다. 나도 엄연히 공용면적과 전용면적의 지분을 소유한 ‘웰니스 아파트’ 입주민인데, 마치 자기 건물에 얹혀사는 것처럼 말한다. 깨알 같은 생활소음을 일일이 추궁당하다 보면 스스로 비루해진다. 일곱 살 규원이 하나 키우는 것에 만족했으면 좋았을 텐데 괜한 욕심으로 쌍둥이를 낳았구나 하는, 불경한 한탄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평범한 주부인 내가 일상의 평화까지 아랫집에 저당 잡힐 이유는 없다.


변명을 하자는 게 아니다. 오늘 일만 해도 그렇다. 첫째인 규원이를 깨워놓고 쌍둥이 아이들을 차례로 씻겨 아침을 먹일 때만 해도 평안한 일상이었다. 시원이랑 지원이는 아직 숟가락질이 설어서 먹은 자리며 옷이 말이 아니었다. 식탁을 정리하고 두 아이를 다시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다. 규원이가 등원하고 설거지를 마치기도 전에 시원이가 화장실 바닥에 미끄러졌다. 냉큼 달려가 아이 입을 틀어막고 달랬다. 시원이가 울음을 진정한 뒤에 다친 곳은 없는지 살폈다. 물만 보면 사고를 쳐서 화장실 문은 닫아 두는데, 규원이가 나간 뒤에 미처 확인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었다.


평소엔 보여주지 않는 애니메이션 영상을 켜주고 아침 일찍 돌려놓은 빨래를 꺼내 분류했다. 탈수한지 한참 지나 빨래에서 개운치 못한 냄새가 났다. 건조기에 일부는 넣고 일부는 베란다에 널기 위해 가지고 나갔다. 아이들이 따라 나오면 시끄러워질까봐 베란다 문을 닫았다. 슬쩍 들여다보니 쌍둥이가 보조 소파를 서로 차지하려고 밀고 당기며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꼭 넓은 자리 놔두고 비좁은 데서 싸운다. 지원이 뒤를 따라다니기 바빴던 시원이가 이제 지원이가 하는 건 뭐든 참견하고 겨루는 걸 볼 때면 순간 뿌듯한 감동이 밀려온다. 시원이를 향한 발육부진의 초조감을 안도감으로 바꾸는 순간이니까.


인터폰 소리를 듣고 베란다에서 들어왔더니 TV 장식장에 올라선 시원이가 인터폰을 들고 울먹거리고 있었다. 할 줄 아는 몇 마디 말 중에서 여버셰어를 반복하면서. 불길한 마음으로 전화기를 뺏었다. 역시나 아랫집 여자였다.


“너희들 계속 그렇게 쿵쿵거리면 올라가서 혼내줄 거야. 아줌만 정말 무서운 사람이거든. 경찰을 부를 거야. 경찰한테 널 잡아가라고 할거야. 경찰이 …”

순간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지금 협박한 거예요? 할 말이 있으면 어른들끼리 해야지 왜 아이한테 이래요?”


“내가 언제 댁의 아이를 협박했다고 이래요? 좋은 말로 타이르는 거잖아요.”


“지금 경찰 부른다고 협박했잖아요? 조심을 시키는데도 허구한 날 이렇게 닦달을 해대니 대체 어떻게 해드리길 원하세요. 아이들을 묶어놓기라도 해야 되요?”


“묶어놓든 말든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내가 일하는 시간엔 조용히 해달라는 거잖아요. 설마 내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그게 그 말이지 뭐에요? 그렇게 조용히 살고 싶으면 단독주택에서 살던가, 왜 공동주택에 들어와서 남의 집 아이들을 괴롭혀요? 아래 위층을 바꿔서 살아보던가.”


여자가 뭐라고 하는데, 틈을 주지 않고 인터폰을 끊어버렸다. 지난 몇 달 동안 시달리며 고였던 말들이 설사처럼 쏟아져 나온 거였다. 처음이었다. 이렇게 언쟁으로 맞선 것이. 지원이는 얼어붙은 듯 나를 올려다보고, 시원이는 소파 옆에 쭈그리고 앉아 나를 보면서 코를 파고 있었다. 시원이는 무언가 불안하면 무의식중에 코를 파는 버릇이 있었다. 소파에 앉아 시원이와 지원이를 안아주었다. 아침부터 답답함이 와락 밀려왔다. 아이들 데리고 시간 보낼만한 곳이 없을까 궁리하고 있을 때, 또 인터폰이 울려서 긴장했던 것이다. 오늘 같은 날 탈출구를 마련해 준 언니에겐 고맙다는 말로는 내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다. 나를 불쌍히 여긴 엄마가 천국에서 내 곁으로 보내준 천사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압력밥솥의 버튼을 밀자 김이 빠지면서 익은 감자 냄새가 난다. 왕소금을 뿌려서 쪄낸 감자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버터에 노릇하게 구워놓으면 아이들이 좋아한다. 뜨거운 감자의 껍질을 벗긴다. 쌍둥이가 내려오기 전에, 규원이가 오기 전에 버터구이를 완성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아래층 여자를 위해 집을 비운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론 그런 셈이 되었으니 오후에 아이들이 우리 집에 모여서 놀지 못할 이유는 없다. 여자가 사과할 때까지 나도 눈치 보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 집에 살면서 이렇게 전전긍긍할 이유는 없다, 죄 없는 아이들에게 하루에도 수십 번 조용히 해라, 뛰지 마라, 주의를 주는 것도 못할 일이다. 정작 그 여자는 ‘우리 송이, 우리 송이’하면서 자기 아이만 싸고도는데 결과적으론 내 아이들만 몰아세우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마음이 짠했다. 이웃도 이웃 나름이지 더 이상 그 여자의 요구에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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