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찰떡아이스 같은 -웰니스아파트 804호

연작소설 <웰니스족 2>

by 힐링가객

* 연재소설 1회차입니다. 프롤로그에서 이어집니다. 여기 -> https://brunch.co.kr/@healingsiinger/43






인터폰이 다시 울렸다. 냉큼 다가와 내 무릎을 붙잡는 지원이를 안아 올리고 시원이를 돌아보았다. 레고 박스에서 바퀴를 꺼내던 시원이도 나를 올려다보았다. 벨이 울릴 때마다 지원이가 움찔하면서 품속으로 더 파고들었다. 공포의 인터폰이었다. 아이들의 반응에 미처 발하지 못한 화가 솟구쳤다. 피할 이유는 없었다. 응대할 말을 준비하면서 집요하게 울리는 인터폰을 들었다.


“뭐해? 커피 마실 시간 있어?”

느긋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긴장이 풀린다. 904호다.

“그럼요. 오늘은 일거리 없어요?”

“조금 전에 완성품 가져갔고, 오후까진 대기야.”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내 웃음을 감지한 지원이가 수화기를 잡더니 자기 귀에 끌어다 댄다.

“언니가 저의 구원투수에요.”

“왜? 또 뭔 일이 있었어?”

“멘붕 직전이었거든요, 빨래만 널어놓고 올라갈 게요”

“애들 먼저 데려다 놓고 하는 게 빠르지 않아?”

“그럼 더 좋죠.”


어느새 내 품에서 빠져나간 지원이가 팔랑팔랑 걸어가더니 가방을 찾아들고 온다. 30개월 된 여자아이의 센스는 사내아이에 비해 확실히 다르다. 어딜 가든 꽃장식이 달려있는 분홍색 가방부터 챙긴다. 1초 차이로 먼저 세상을 봤지만, 오빠인 시원이는 가방은커녕 제 몸도 못 챙긴다. 그 차이를 나는 그저 사내 아이여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안 그러면 씀벅 눈물이 고이고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다. 첫 아이 규원이의 성장과 비교하면 확실히 늦기 때문에 지금은 기준 자체를 마음 속에서 지워버렸다.

규원이 어린이집 등하원에 동행하는 것 외엔 위층에 올라가는 것이 쌍둥이의 유일한 외출이라 아껴두었던 옷으로 갈아입힌다. 원피스를 꺼내오자 지원이가 입고 있던 바지를 내리고 원피스에 발을 넣는다. 시원이는 옷을 갈아입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손에 쥔 레고를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시원이랑 옷 때문에 실랑이를 벌일 때마다 남편은 그냥 데리고 나가자고 한다. 편한 게 제일이지, 애가 뭘 아냐고. 그냥 나가면 뭐 어떠냐고. 그럴 때마다 답답하다. 나로선 용납이 안 되는 문제다. 성격이 좋은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로 갈등을 접어놓지만 양보할 수 없다.


투정을 피하려고 실내복 차림으로 현관을 나선다고 치자. 보는 사람이 눈살을 찌푸리지 않겠는가? 아기들도 사랑받고 싶은 게 당연한데, 실내복 차림의 아기를 누가 귀하게 예뻐해 줄까. 아기도 인격이 있고 사랑받는 느낌과 거부 받는 느낌을 안다. 그렇게 인간은 아기 때부터 상호작용하면서 성장하는 것 아닌가. 무의식중에 대인관계에서 거부감을 누적해간다면 무슨 자신감으로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말이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보호자도 편견을 피할 수 없다. 아이를 방치하는 게으른 엄마로 보이기 때문이다. 체면이 중요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인간다움을 증명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설득한다.

“시원아 호야 형네 가고 싶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갈까?”

손가락으로 위층을 가리키면서 아이에게 다시 한 번 말해준다. 시원이가 레고를 내려놓는다. 조금 느리지만 반복해서 말하면 알아듣는다. 이른둥이로 태어나 모든 기능이 미숙했던 시원이는 매일의 조바심과 소망을 먹고 자란 아이다. 미숙아를 육아하는 동안 냉탕과 온탕을 오가던 나 역시 시원이 덕분에 단련을 받아 담담해졌다.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자 오히려 성장하는 것도 보이고 반응도 빨라지는 것 같다.

아이가 조금만 협조해도 육아는 훨씬 수월하다. 옷을 갈아입혀 놓았더니 아이들이 현관으로 달려가 먼저 신발을 신으려고 부딪친다. 저렇게 몸으로 경쟁할 때 보면 사내아이답게 보여서 안심이 된다. 내가 안심하는 순간에 아랫집 여자의 민원이 날아든다는 게 문제지만. 비상계단으로 달음박질하는 아이들의 발소리가 공용 공간을 울린다.

“쉿! 쉿! 시원아 지원아 천천히 가자! 얘들아, 제발 조용히 좀 해!”

뒤에서 안달하며 당부하지만 소용이 없다. 잔뜩 낮춰서 말을 할 수 밖에 없으니 숫제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다행히 위층 언니가 현관문을 열고 나와 있다. 지원이가 먼저 언니의 품에 안긴다. 시원이도 언니의 품안에 슬쩍 기댄다.

“아이코, 시원이 지원이 어여 와아, 울 아가들 이모 보고 싶어서 뛰어왔어?”


아이들을 껴안고 인사하면서 어서 내려가라고 언니가 내게 손짓을 한다. 시원이는 벌써 거실 소파까지 진입하고 있다. 저렇게 뛰고 싶은 녀석을 종일 가만히 있으라고 하니 서로 못할 짓이다. 이산가족이 상봉한 듯 언니의 품으로 파고드는 지원이를 보고 돌아선다. 아이들도 본능적으로 언니네 집이 자유롭다고 느끼는 것이 분명하다.

"밀린 일 처리하고 천천히 와."


등 뒤로 날아온 언니의 말에 엄지와 검지로 링을 만들어 응답한다. 아홉 살 여덟 살 연년생 사내아이를 키우는 언니는 우리 지원이 같은 딸 하나 있는 것이 얼마나 복인 줄 아냐며 부러워한다. 그럴 때마다 촛불이 환한 생일 케이크를 받을 때처럼 쌍둥이 낳은 보람을 느낀다.





베란다 문을 열자 남편의 셔츠며 바지가 바구니 안에 구겨진 채 말라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린넨 소재의 옷은 까다롭다. 세탁 직후에 솔기를 펴서 각을 잡아야 하는데, 아무리 당겨도 구겨진 깃이 펴지지 않는다. 물뿌리개를 찾아와서 앞뒷면과 반팔에 뿌린다. 스멀스멀 짜증이 치민다. 이렇게 사소한 순간에 비감에 짓눌리는 것이 우울증은 아닌가 생각한다. 내 삶의 시간들을 제목도 없는 이런 일들로 탕진해버릴 것만 같아 서러움이 목울대를 치는 것이다. 이런 기분이 드는 것도 잠깐이나마 생각할 틈을 얻었을 때지만.


창밖 하늘이 파랗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보니 창문을 열어놓기도 무섭다. 특히 달리는 차 소리를 듣고 있으면 아이들이 창문에 접근할까봐 가슴이 조인다. 남편의 바지와 규원이의 겉옷을 매만져 건조대에 걸쳐놓고 린넨 셔츠를 가지고 들어온다. 옷걸이에 걸고 깃과 솔기의 형태를 다시 한 번 잡아놓고 스팀다리미로 구김을 펴서 그늘에 걸어놓는다.

거실에 흩어진 장난감들을 정리함에 넣고 청소기를 돌린 후 마지막으로 설거지통에 몰아놓은 아침의 흔적을 정리한다. 등원시키면서 챙겨주려고 했던 규원이의 어린이집 준비물이 식탁 의자에 그대로 남아있다. 체험학습에서 착용할 비닐 앞치마와 갈아입을 옷이다. 이런!


급하게 휴대폰 앱에서 어린이집 프로그램을 확인한다. 체험학습이 끝나가는 시간이다. 이건 순전히 내 실수인데, 어쩌면 좋단 말인가! 크레파스로 개펄에 사는 생물들을 그리고 물감으로 개펄과 바다를 메우는 활동이라 앞치마와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달라고 알림장으로 안내받았던 거였다. 물감 놀이에 빠져서 신나게 활동을 하고 검푸른 물감에 젖은 티를 갈아입지 못한 채로 남은 수업에 참여할 규원이를 생각하자 마음이 납작해진다. 수업진행에 바쁠 담임에겐 연락 할 수 없다. 한숨을 삼키고 원장에게 문자를 보낸다.

“걱정하지 마세요. 행사 때 맞췄던 단체복 남은 것 있으니 갈아입혀 보내겠습니다.”

대기하고 있었던 것처럼 바로 답이 온다. 천만 다행이다. 융통성 있는 원장의 대처에 감사할 뿐이다. 내년에 쌍둥이도 고민하지 않고 같은 어린이집에 보낼 것이다. 새 집에 입주하고 어린이집을 옮길 때는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좋은 곳을 만나서 규원이가 적응을 잘 하고 있다. 담임선생님이 써주는 알림장도 마음에 든다. 규원이가 했던 구체적인 행동에 대한 관찰이 들어있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피드백 속에 보육되고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된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이 시간에 위층 언니는 부업을 한다. 공장에서 출고된 생필품을 선물세트로 재포장하는 일이다. 아이들 학원 비라도 충당하겠다며 시작한 언니의 부업은, 워낙 손끝이 야물어서 갈수록 많은 일감을 배당받고 있다. 단가가 높은 것도 있어서 꽤 수입이 되는 모양이었다. 나도 관심이 있어서 들여다봤는데, 매번 같은 물건이 아니라서 복잡하고 온갖 일에 참견을 해대는 아이들을 데리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슈퍼에 들른다. 카운터 뒤에 걸린 TV 개그프로의 재방송을 보던 주인이 나를 알아보고 반색을 한다. 쌀국수 소면을 찾아들고 과일진열대를 훑어보는데 싱싱한 방울토마토가 반값이라고 말해준다. 이 아파트 입주 후에 규원이를 등원시키러 나올 때마다 쌍둥이랑 아파트 산책길을 걸었다. 슈퍼는 과일음료에 맛을 들인 시원이 지원이의 참새방앗간이 되었다. 쌍둥이를 알게 된 주인여자는 내가 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반값 행사하는 물건을 알려주었다. 소면과 상추 한 봉지와 방울토마토를 카운터로 가져가자 만족한 웃음으로 바코드를 찍어준다.

엘리베이터를 불러놓고 공용현관의 게시판을 훑어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게시판을 확인한다. 보고 돌아서면 기억도 안나지만 신경쓰이는 내용이 없는 걸로 보아 무시해도 되는 것들이다. 일부러는 볼 새가 없어서 무심코 지나쳤다가 낭패를 당할 수도 있는 것이 아파트 게시판이라 기회 있을 때마다 대충이라도 봐둬야 안심이 된다.

땀이 날 정도로 서둘렀음에도 30분이 훌쩍 지나있다. 시원이 지원이가 콩콩대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기껏해야 저 정도인데 집이라도 무너지는 것처럼 반응하는 아래층 여자의 심사가 새삼 얄밉다.





아이들 여벌옷과 슈퍼에서 사온 것들을 가지고 올라간다. 레고 블록에 바퀴를 연결시키느라 두 아이는 제 엄마가 가는지 오는지 돌아보지도 않는다. 시원이는 얼마 전까지 형들이 가지고 놀던 자석 레고만 찾더니, 오늘은 웬일로 클래식 레고를 쌓아가며 놀고 있다. 지원이가 만든 것을 망가뜨리기만 하던 시원이가 형들과 놀더니 손놀림이 야물어져 가는 게 신기할 뿐이다.

“서둘렀지? 천천히 와도 되는데.”

“급한 일 다 하고 왔어요. 음식물 처리까지 한걸요.”

“역시 초능력자라 달라.”

“흐흐 그런 능력이라도 있음 얼마나 좋을까. 쌀국수 사왔는데, 야채 비빔국수 어때요?”

“좋지, 후딱 비벼 먹고 시간 있을 때 간식이나 좀 만들어 놓자.”

“간식이요? 뭘 만들어요?”

“찰떡 아이스. 호두아이스크림이랑 찹쌀가루 사다놨어. 얼마 전에 반죽에 메로나 아이스크림 녹여 넣고 만들었는데, 우리 호호 아들들이 이틀 만에 다 해치우는 바람에 규원이넨 구경도 못 시켰지 뭐야.”

“좋아할만 하네요. 재료 모자라면 더 사다가 만들어 놓자고요.”

“같이 만들려고 넉넉히 샀어. 애들 잘 먹으면, 다음엔 규원이네가 재료 사놓고 불러.”

“오키도키. 애들보다 제가 더 좋아요.”

언니가 냄비 두 개에 정수 물을 받아 인덕션에 올려놓고 한 쪽에 멸치와 다시마를 넣어 육수를 낸다. 레고를 쌓다가 버려두고 아이들은 어느새 호영이 호민이의 애착 게임인 나무 탑 쌓기를 하고 있다. 소리도 없이 잘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한 층 차이가 천국과 지옥만큼 먼 것 같다.

아이들은 언니가 만들어주는 것이면 뭐든 잘 먹는다. 커다란 주머니가 달린 비닐앞치마를 입혀주자 국수 가락을 흘려가며 포크와 손으로 국수를 먹는다. 호로록 호로록, 면을 빨아들이는 입술이 야무지다. 언니가 한주먹씩 새로 말아주자 그것도 금방 먹어치운다. 나중에 보니 비닐 앞치마 속에 국수 가락이 한 움큼씩 들어 있었다. 숟가락질이 서툴러 흘린 국물에 온몸이 젖어버렸다. 시원이는 국물그릇을 엎어 바닥이 흥건했다.


욕실에 데려가 대강 씻기는 중에 지원이랑 시원이가 샤워부스를 서로 가지려고 싸운다. 욕실에 들어갈 때마다 샤워부스가 장난감이다. 시끄러울까봐 못하게 하니까 욕구불만이 생겨서 더 집착하는 것이다, 샤워부스를 주면서 설명한다.

“형아네 집엔 욕실에 물건들이 많아서 물 뿌리면 안 돼요, 그러면 형아가 화낼 거야. 여기 욕조랑 벽에만 뿌리면 괜찮아. 알았지?”


하지만 시원이는 곧바로 지원이를 향해 샤워부스를 내민다. 얼굴에 폭포를 맞고 옴팍 젖어버린 지원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언니가 지원이를 달래서 데리고 나간다. 시원이에게 다시 설명했지만 소용이 없다. 샤워부스를 뺏자 발작적인 울음을 터뜨린다. 언니가 호영이 형아꺼라면서 리모컨으로 작동되는 장갑차를 꺼내준다. 눈물을 매단 채 시원이가 후다닥 욕실 밖으로 나간다. 붙잡아 수건으로 물기를 걷어주고 옷을 입히는 동안 리모컨 버튼을 눌러서 자동차가 현관문으로 내달린다. 언니가 도망치는 척하면서 위험하다고 소리 지르자 시원이가 까르르 웃는다. 지원이도 슬며시 다가가 움직이는 장갑차를 만져본다. 작동이 서툴러 장갑차 방향을 예상할 수 없는 게 재밌는지 시원이가 코를 실룩이며 몰입한다.

언니가 썰어 주는 야채들과 갖은 양념을 넣어 쌀국수를 비빈다. 내가 사온 상추도 손으로 뜯어 넣는다. 나는 비빔국수엔 항상 오이 당근 콩나물을 넣었는데, 언니가 상추를 듬뿍 넣어서 만들어준 뒤로는 상추비빔국수 맛에 빠져버렸다. 쌀국수는 밀국수처럼 금방 불어나지 않아서 식감이 좋다. 계절 야채들이 듬뿍 들어간 비빔국수는 역시 여름날의 별미다. 양념이 매워서 언니도 나도 입술이 빨개져서 호호거리다 방울토마토를 먹고서야 한 숨 돌린다. 손이 빠른 언니가 캡슐커피를 내려준다. 커피마실 시간을 물어서 올라왔으니, 이제야 오늘의 미션을 실행하는 셈이다. 향기가 기막히다.






찹쌀가루에 녹인 버터와 아이스크림을 섞어 렌지에 돌려놓고 식탁에 재료들을 내놓자 지원이가 달려와서 식탁의자로 올라온다. 언니가 그럴 줄 알았다며 만들어놓았던 밀가루 반죽을 냉장고에서 꺼내준다. 이럴 때 언니의 모습을 보면 육아의 신이 강림한 것 같다. 지원이 손에 들린 반죽을 보곤 시원이도 다가온다. 지원이 손에서 반죽을 받은 언니가 반으로 썰어 두 아이에게 나눠준다. 내가 시원이의 반죽에서 한 움큼 반죽을 떼어내자 시원이가 발을 동동 구르며 다시 달라고 보챈다.

"시원아 두 개가 되었네? 자 봐라, 짜잔! 다시 하나가 되었지? 이거 봐봐. 다시 커졌잖아?"


이야기를 하면서 얼른 붙여준다. 반죽이 다시 붙은 걸 보고는 시원이가 덩어리를 떼어냈다 붙였다 따라서 해본다. 언니가 지원이에게 반죽을 달라고 하니까 지원이가 내준다. 반죽을 떼어내곤 나머지를 돌려준다. 떼어낸 반죽을 손으로 둥글게 굴린 다음에 바닥에 놓고 납작하게 밀고는 컵을 눌러서 동그랗게 잘라낸다. 그리곤 더 작은 컵으로 가운데 구멍을 내더니 들고 돌린다. 도넛이 되었다가 링이 될 때까지 손목에 끼우고 돌린다. 두 아이가 눈을 빛내며 언니의 손목에서 돌고 있는 반죽 링을 본다. 언니가 웃으면서 링을 빼서 쟁반 바닥에 내려놓고는 이야기한다.

“시원아 지원아, 여기 커다란 마을이 있는데, 여기는 지원이네 울타리야. 시원이네 울타리도 말들어볼까?

시원이가 고개를 끄덕거려서 내가 얼른 링을 만들어 다른 쟁반에 놔준다.

“울타리 안에 뭐가 있을까?

“강아지, 토끼, 악어, 물고기,”

아이들이 서로 동화책에서 본 것들을 이야기한다.

“오, 동물친구들이 많구나, 또 뭐가 있을까? 동물친구들은 뭘 먹고 살지?

“당근, 사과, 수박 빵”

“아하 그렇구나. 동물친구들이 좋아하는 맛있는 과일들을 만들어서 울타리 안에 넣어주자. 동물 친구들이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나눠먹을 수 있게.”

두 아이가 만들기 전에 언니가 먼저 동그란 몸통에 손발 없이 귀만 길쭉한 토끼를 만들어 깡충깡충 울타리 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구연동화를 연출한다. 이건 일종의 재능인데, 언니는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엉뚱한 놀이를 찾아내는데 천재다. 볼 때마다 혀를 내두를 정도다. 두 아이가 신기해하면서 입을 삐죽 내밀고 뭔가를 만드는데 몰입한다.

“아래층 그 여자가 또 전화했어?

언니를 따라 익반죽을 손 안에 넣고 둥글게 굴리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언니가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오늘은 또 뭐가 문제래?”

“만날 똑같죠 뭐. 애들 노는 거 시끄럽다고요.”

“쯧쯧, 애들이 뭔 죄라고. 그것 때매 규원엄마가 멘붕 온 건 아닐 거잖아?”

“제가 전화를 못 받았거든요. 빨래 때문에 베란다에 나가있어서. 그랬더니 애들한테 협박을 하더라고요.”

“에구야, 뭔 일이래? 아기들이 뭘 안다고!”

때마침 언니의 휴대폰이 울린다. 일 때문에 걸려온 전화다. 전화가 두 세 차례 반복된다. 일감의 배분과 시간 약속 때문인 것 같다. 당장 하던 일을 멈춰야하나 마음이 급해진다. 어떻게 내 마음을 읽었는지 언니가 아직 여유시간이 있다며 안심시킨다.

언니가 통화하는 동안 엉뚱하게도 찰떡아이스가 철학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질적인 두 재료를 안팎으로 배치만 잘해도 기막히게 조화로운 간식이 된다는 게 신기함을 넘어 교훈을 담은 동화처럼 느껴진다. 찰떡아이스라고 부르는 병렬식 이름도 마음에 든다. 어쩌면 서로에게 찰떡아이스 같은 인연이 되어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건가 싶다. 동시에 언니와 나, 나와 아래층 여자가 떠오른다. 좋은 마음으로 관계를 가꾸기 위해 노력한다면 조화를 이루지 못할 인연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의문이 든다. 교훈적인 정답 앞에서 느껴지는 답답함이다.

사실 어렵게 마련한 내 집에 입주했으니 편안하게 오랫동안 살아야 하는데, 이웃 그 누구와도 불편해지길 원치 않는데, 아래층 여자에게 더 이상 어떻게 다가가야 좋을지 막막하다. 오전에 받은 전화 때문에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아서 더 그렇겠지만 생각할수록 괘씸하다. 깔보는 듯한 그 여자의 눈빛이 떠오른다. 솔직히 오늘 일은 그냥 덮고 지나갈 순 없는 일이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자기가 한 행동을 돌이켜 생각이라는 걸 할 텐데. 그런 코드가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아이에게 그렇게 말하지도 않았으려나. 아무튼 그런 행동을 유발한 그 여자의 생각이 어떤 건지 알고는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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