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도 이 시간이 버겁다 -웰니스아파트 804호

연작소설 <웰니스족 2>

by 힐링가객

* 연재소설 3회차입니다. 연결된 서사는 여기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healingsiinger/46





온 몸이 땀에 젖어 당장 씻고 싶지만 아직은 내 차례가 아니다. 어젯밤에 시원이가 두 번이나 토해서 한 밤중에 약을 먹이고 재우느라 잠을 설쳤다. 체력이 방전되어 세 아이를 씻기려니 머리가 어지럽다.

규원이는 제법 혼자 씻고 옷도 잘 입는다. 머리 감을 때 귀 뒤의 거품을 남기곤 하지만 샤워부스 사용법을 알려주고 조금 도와주었더니 스스로 샤워를 마쳤다. 수건으로 얼굴만 문지르곤 젖은 몸으로 이부자리에 가서 뒹굴기 때문에 나갈 때 등과 다리의 물기를 걷어주었다. 규원이를 씻겨서 내보내는 동안 쌍둥이는 욕조에서 물장구를 쳤다. 샤워부스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다가도 여러 모양으로 구멍이 난 물놀이 컵을 서로 뿌려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쌍둥이에게 일회용 약물 병에 수용성 물감을 조금 짜넣고 물을 넣어 흔들어주었다. 오렌지색과 파랑색 물감이었다. 물감을 욕조 벽에 바르고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며 놀다가 욕조 물에 한 방울씩 떨어뜨리면서 물속으로 번져가며 오묘한 색감을 보는 것은 두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였다. 지원이는 제 몸에는 물감을 묻히지 않고 욕조며 벽에 바르고 노는 걸 좋아하는데, 시원이는 유난히 물감의 촉감을 좋아해서 손으로 뭉기고 비비며 놀았다. 나중에 보니 머리며 눈두덩이까지 온통 파랑색 물감이 묻어 스머프로 변신해 있었다. 먼저 지원이를 씻겨서 샤워부스를 쥐어주고 오렌지색과 파랑색 물감이 섞여 먹물 빛으로 변한 욕조의 물을 빼면서 시원이를 마저 씻겼다.


피부에 유해성이 없는 친환경 물감이지만 한 번 놀고 나면 뒤처리가 만만찮다. 천연세제를 부드러운 거즈에 묻혀 충분히 거품을 내어 물감이 묻었던 곳을 문질러주고 미지근한 물로 헹궈주었다. 미리 받아놨던 물을 욕조에 부어주고 물오리 풍선들을 띄워주었다. 물놀이 컵을 넣어주면 조루처럼 물이 빠지는 느낌을 좋아해서 오리의 머리에 물을 뿌리며 논다. 어제까지 이틀간 비가 와서 산책도 못가고 집에 가둬놓고 있어서 오늘은 저녁에 물감놀이 하자고 낮부터 약속을 했던 거였다.


제법 굵어져서 안고 시중들기엔 무거워진 아이들이 품 속에서 버둥댄다. 등과 사타구니의 물기를 닦아서 준비한 옷을 입혀 쌍둥이를 욕실 밖으로 내보내고 청소를 시작한다. 세제를 묻힌 솔로 바닥을 문지르고 거품이 일어나지 않을 때까지 물을 뿌리고 보니 벽에도 물감이 남아있다. 따스한 물로 벽과 욕조에 한 번 더 뿌려준다. 부연 거울부터 벽과 바닥 순으로 스퀴지를 이용해 물기를 걷어낸다. 욕실의 수분은 빨리 걷어낼수록 쾌적하다. 청소에 사용한 솔과 스퀴지를 헹구는데 욕실 바닥이 쿵쿵 울린다.


이크! 또 시작이다. 아래층에서 시끄럽다고 사인을 주는 것이다. 물감놀이 하느라 좀 시끄러웠나보다.

‘안 그래도 끝이네, 이제 다 했다고!’


혼잣말을 하고 나와서 욕실 문을 꽉 닫는다. 한참동안 쿵쿵 소리가 들린다. 아래층이 저런다고 욕실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없고, 뭘 어쩌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다행히 아이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욕실 밖에선 그렇게 위협적으로 들리지 않아 다행이다.

뻐근한 허리를 간신히 펴는데 화장실 문 앞이 아수라장이다. 오후동안 벗어놓은 세 아이의 옷들과 사용하고 던져놓은 수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빨래바구니가 쓰러져 있다. 밟고 다닐 수 없어서 급한 대로 젖은 빨랫감을 모아서 세탁실에 내놓는다.


아이들은 씻겨놓았을 때랑 잠잘 때가 제일 예쁘다. 잠자리 옷을 갈아입고 뒹구는 꼬물이들이 뽀시시하다. 아이들을 재우기 전까지 이 시간은 영어비디오를 보여주는 시간이다. 지원이와 시원이에게 까이유를 켜준다. 많이 봐서 내용을 외우는 규원이는 전에 봤던 걸 다시 보여주기 미안한데, 오히려 노래를 따라 부르고 까이유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말도 따라해보고 웃는다. 지원이도 몇몇 단어는 따라한다. 시원이의 반응이 제일 드라마틱 하다. 전에는 보는 듯 마는 듯 하더니 이젠 노래의 리듬에 맞춰 엉덩이를 실룩이며 팔을 흔든다. 열심히 영상을 보다가 싱긋싱긋 웃는 시원이를 보면 온갖 걱정이 녹는다. 세 아이의 단계에 맞게 보여주면 좋은데 불가능한 일이다. 그냥 복습도 좋은 거라고 자위할 뿐이다.


아이들을 확인하고 낮에 한 번씩 사용했던 거즈들과 주방 행주를 모아 조용히 뒤베란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벌써 날씨가 더워서 하루 저녁도 젖은 빨래를 방치할 수 없다. 먼저 세탁모드를 작동시켜 물을 받는다. 여름 빨래는 땀 때문에 곰팡이와 세균이 번식하기 쉬워 아무리 바빠도 신경 쓸 일이 많다. 세제와 함께 베이킹 소다를 한 스푼 넣어 세탁물에 녹인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과즙이며 국으로 얼룩진 옷들을 표백해야 한다. 세탁전용 플라스틱 비커에 온수를 받고 과탄산소다를 녹여 세제 칸에 부어주어야 하는데, 그럴 짬이 없다.

물이 어느 정도 채워진 걸 확인하고 세탁기를 정지하고 락스를 뚜껑에 반스푼 정도 따라서 세탁물에 섞는다. 이 정도면 세정작용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량이지만 락스의 성분 때문에 색이 빠질만한 것이 있는지 확인한다. 낮에 빨래를 개면서 보니 지난 번 새로 사 입힌 규원이의 군청색 반바지가 얼룩져 있었다. 세제 첨가물이 완전히 용해되지 않아서 생긴 얼룩이라 혼자서 혀를 찼다. 입기 전에 물빠짐이 없도록 소금물에 담갔어야 하는데, 모아서 해야지 생각하다 그냥 입히곤 그렇게 되었다. 세제가 혼합된 물을 손으로 휘휘 젖고는 오염도가 심한 순서로 세탁물을 차곡차곡 집어넣는다. 마지막으로 구연산 가루를 섬유유연제 칸에 넣고는 불림 후 세탁으로 설정하고 시작을 누른다.


“밤에 세탁기 돌리는 거 솔직히 너무 몰상식하지 않아요? 건조기 소리 엄청 시끄럽고 오래 걸리는 거 아시죠? 밤마다 우리 송이가 잠 못 자는데. 우리 애 아프면 책임지실 거에욧?”


한심하다는 듯 쏘아붙이던 아래층 여자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하지만 어쩌랴. 몰상식하다는 말을 백번 들어도 젖은 빨래를 쌓아놓고 잘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아이가 하나일 때와 세 아이를 돌보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나도 규원이 하나만 있을 땐 조심스럽게 두루 살피면서 살았다. 미안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아이들을 빨래처럼 널어놓을 수도 없는데 자꾸 시끄럽다고 하면 어쩌나요?" 말하던 유튜버가 생각난다. 공감 백배다. 나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다. 하지만 아랫집 여자가 요구하는 걸 다 들어주면서 살 수는 없는 상황이다. 오전엔 자기가 재택근무 하는 시간이니 조용해라, 오후엔 송이가 있으니 조심해라. 밤엔 잠을 못자니 목욕도 빨래도 하지 마라.


도대체 그림처럼 살라는 말인가!






비디오는 혼자 돌아가고 지원이가 그림퍼즐에 둘러싸여 있다. 위층 형들이 규원이에게 물려준 건데 아직은 어렵고 정교해서 손이 닿지 않는 자리에 정리해 두었던 것이다. 어떻게 뺐는지 모르겠다. 꺼내다가 퍼즐이 쏟아졌나보다. 웬일로 시원이랑 규원이가 얌전히 누워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규원이가 선잠에 빠져드는 중이다. 어린이집에서 물놀이 활동을 다녀와 고단했던 모양이다. 형아 곁에서 뒹구는 걸 좋아하는 시원이의 눈에도 졸음이 잔뜩 들었다.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아이들을 재워놓는 것이 매일의 목표다. 잠깐이라도 정리를 해놓으면 피곤에 지쳐 돌아왔을 때 집이 쉼터처럼 아늑해 보일 거라는 생각만 간절하다. 하지만 이 시간이 되면 몸은 굼뜨고 아이들은 요구가 많기 마련이라 내가 하루 종일 뭘 했는지 표시도 없다. 그래도 군말않고 잠든 아이들을 하나씩 만져주면서 흐믓해하는 남편의 등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남편은 퇴근하고 맥주 한 잔 하는 걸 좋아한다. 투잡으로 일주일을 너무 피곤하게 보내기 때문에 빠른시간에 깊이 잠들기 위해서다. 어떤 날엔 함께 하자며 제로맥주를 사온다. 쌍둥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주말이면 그럴 듯한 안주를 시켜서 분위기 잡고 와인도 한잔씩 나누곤 했다. 이젠 추억이 되었지만, 종종 그런 여유가 그리워진다. 남편은 무슨 재미로 살까 생각하면 가슴이 저릿하면서 뭔가 챙겨주고 싶어진다. 어쩌면 오늘은 규원이를 따라서 일찍 잠들 수도 있겠다. 영어비디오를 끄고 조명을 1단계 수면등으로 바꾼다.


잠자리에서 읽어주려고 침구 가까이 정리해놓은 책들을 꺼낸다. 시원이가 옆에 와서 뒹굴며 책을 뺏는다. 지원이는 다른 책을 가져온다. 아이들이 뭘 하든지 상관하지 않고 손에 잡힌 책을 읽기 시작한다. 완전 재미있는 걸 본다는 듯 소리와 모션을 흉내 내면서. 그러면 아이들이 슬며시 다가온다. 두 아이의 시선에 책의 그림이 잘 보이도록 엎드렸다 앉았다 자세를 바꾸면서 읽어간다. 지원이는 제법 집중하면서 내가 손과 몸동작으로 읽는 말을 따라한다. 시원이는 무조건 책장을 넘기려고만 한다. 관심을 표현하는 저 녀석의 방식이다. 시원이에게 읽은 책을 넘겨주고 지원이가 들고 온 새 책을 읽는다. 지원이가 먼저 자리를 잡고 눕는다. 뒹굴면서 책을 보다가 자장가를 불러주면 잠드는 것이다.

어느새 시원이가 규원이의 몸을 타고 벽 쪽으로 넘어간다. 느닷없는 장애물에 놀란 규원이가 잠결에 발을 탕탕 구른다. 시원이가 까르르 웃으며 형아를 따라서 발을 구른다. 이불 밑으로 방바닥이 울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시원이를 말린다. 재미있는지 시원이가 이번엔 발 뒤꿈치로 벽을 찬다. 역시나 놀라서 시원이를 붙들어 앉히고 주의를 준다. 녀석은 이제 장난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가는 중이다. 내려놓자마자 내 눈치를 살피며 또다시 발을 구른다. 버릇이 되기 전에 고쳐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원이를 붙잡고 훈육한다. 요즘들어 적극적으로 관심을 요구하며 엇나가는 행동을 한다. 반응을 보여주기만 해도 반가워서 뭐든 허용해주었던 지난 시간들을 반성하면서 늦기 전에 올바로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지난 주말에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시원이는 서운함이 많고 민감한 성격이라 엄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바닥에 버둥대며 울음을 터뜨린다. 선잠이 들었던 규원이가 일어나 짜증을 부린다. 시원이를 내려놓고 규원이를 달랜다. 오늘밤도 조용히 재우긴 글렀다. 쌍둥이가 태어난 뒤로 규원이는 남편이 따로 데리고 잤다. 하지만 남편이 물류센터 일을 시작한 뒤로는 귀가시간이 늦어져 지금은 쌍둥이와 함께 재우고 있다. 시원이는 버릇없다 싶을 만큼 규원이의 몸을 타고 놀기 좋아한다. 가끔 거칠게 방어해서 울리기도 하지만 규원이도 간지러워하면서도 동생을 이뻐한다. 하지만 이런 날은 예외다. 규원이는 잠을 방해받으면 거칠게 저항한다. 인터폰이 울린 것은 그 때였다. 아래층 여자가 다짜고짜 물었다.


“잘 시간에 왜 이렇게 쿵쿵대는 거에요?”

“아, 그게요. 애들 재우는 중인데 이 녀석들이 굴러다니다 소리를 냈네요. 주의 시킬게요. 죄송합니다.”


사과를 하자마자 인터폰이 뚝 끊긴다. 긴 말 안하고 끊는 방법도 있었다니. 속사포처럼 서너 발 쏘고 나서 듣지도 않고 끊는게 여자의 주특기였다. 앞으론 사과부터 하면 되는 건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등에 와서 기대는 지원이를 안아서 눕혀주고 소등했다. 2단계 수면등을 켜자 지원이가 베개를 베고 뒤치락거리며 잠든다. 이 녀석은 성격이 참 칼칼하다. 요구도 선명하게 하듯 졸릴 때도 조금만 분위기를 맞춰주면 거침없이 잠들어서 예쁘다. 시원이와 규원이 사이에 누워 두 아들 녀석의 머리카락을 만져주며 자장가를 불러준다. 세 아이 키우면서 밤잠 재울 때 유용하게 통하는 방법이다. 거실에서 울리는 인터폰 소리에 순간 가슴이 울렁거린다. 또 무슨 일인가. 아이들이 잠들기 직전엔 남편이 퇴근하는 소리도 거슬린다. 아이들이 조용해진 시간이라 아래층 여자가 걸었을 리는 없다. 가만히 몸을 일으켜 문을 열고 나간다.

“이거 또 무슨 소리죠? 사람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뭘 이렇게 계속 두드리는 거에요?”

“저희 집은 조용한데요? 아이들이 다 잠들었거든요.”

여자의 고음에 얼른 수화기를 막고 목소리를 낮춰 대답한다.

“뭔소릴 하는 거에요? 지금 이 소리, 이 기계 소리는 그럼 뭐냐고욧!”

억울하지만 아이들이 깰까봐 큰소리로 말할 수가 없다. 여자가 너무 흥분해서 섣불리 대꾸보다는 오해를 풀도록 해야 할 것 같다.

“저기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잠깐 올라와서 확인하셔도 돼요.”

“거짓말하면 모를 줄 알아요? 이상한 집이네 정말.”

내가 대꾸가 없자, 여자가 소리를 지르고 끊었다.

“내가 당하고만 있을 줄 알아? 두고 보라고!”


거짓말이라니, 정말 이상한 여자였다. 누가 누구에게 당한다는 말인지, 정작 거짓말 하는 게 누군지 궁금한 건 나였다. 사실로 말하자면 이웃 간의 배려윤리를 어긴 건 아래층 그 여자였다. 이런 억지를 부린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전에도 우리 아이들이 뭘 타는 거냐며 따진 적이 있었다. 그 때도 다짜고짜 너무 고압적으로 말해서 기가 막혔다.


“아파트 공용스피커에서 방금 나온 안내방송 못 들었어요? 적당히 좀 하세요. 인터폰으로 직접 말할 필요 없게, 기본 예의는 지켜야 살 것 아니겠어요?”


그 날 안내방송은 아이들이 심야에 바퀴달린 장난감 등을 실내에서 타고놀지 않도록 층간소음을 주의하라는 내용이었다. 솔직히 우리 집엔 커다란 놀이감이 거의 없다. 시원이가 다칠까봐 들이지 않는 것도 있지만 물건이 많으면 세 아이가 활동하기에 좁아서 둘 곳이 없다. 바퀴달린 말이나 자동차, 탈것들은 아예 없다. 공이나 블록 퍼즐을 가지고 놀 뿐이다. 그 날도 만나서 조곤조곤 따져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세 아이가 모이는 저녁시간은 시끄러운 것이 사실이니까. 하루이틀 살 것도 아니고 앞으로 계속 살아야 하는데, 굳이 긁어부스럼 만들면 앞으로 더 불편해질 것 같아서. 억울한 마음이 치고 올라오는 걸 누르고 지나갔던 것이다.





첫인상이 왜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사실 나는 새 아파트에 입주하면 진짜 이웃이랑 잘 지내고 싶었다. 그래서 아래층 여자가 이사 오던 날 환영의 인사로 삼계탕을 끓여서 가져갔다. 그 날 여자는 이미 식사를 했다며 내가 내민 냄비를 손으로 밀어냈다. 무슨 혐오스러운 음식인가 의심하는 것 같아서 뜨거운 냄비를 무릎으로 받치고 뚜껑을 열어서 보여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먹을 사람도 없고, 만들어놓은 음식은 먹지 않는다면서 야멸차게 거절했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좀 눈치 없다는 건 인정한다. 그러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추어탕을 끓여서 또 가져갔으니.


“우린 이런 거 안 먹어요. 필요 없으니 앞으로도 이런 거 가져오지 마세요.”


쟁반을 내밀자 움찔 뒤로 물러난 여자는 쌀쌀맞게 말하고 쥐라도 본 듯 나를 밖에 세워둔 채 현관문을 닫았다. 물론 거절이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음식에도 취향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 이미 고백한 것처럼 내가 눈치가 없었다는 걸 인정하고 반성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꼭 그렇게 무안을 주면서 거절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 여자의 혐오를 드러낸 표정과 깔보는 듯한 목소리는 잊지 못할 것 같다. 첫 대면에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 날 일이 생각날 때마다 후회가 된다.


“내 먹기도 모자라는 데 좋은 사람이나 실컷 먹으면 되는 거지 뭐한다고 싫다는 사람한테 자꾸 치성을 드리나 그래. 내 다 먹을 테니 걱정 마라. 추어탕이 남아서 좋구만 그래.”


남편이 놀리듯 내 마음을 풀어주느라 한 말이다. 어디서 났는지 미꾸라지를 잔뜩 사와서 내가 징그럽다고 기겁했더니 삶아서 갈아서 뼈까지 걸러주었다. 이웃 형님들과 나눠먹자고 한 건 정작 자기였으면서 내가 거절당하고 무안해 하니까 다독이는 거였다.

“그런 스타일의 사람도 있구나! 나와는 지향점이 다르구나! 하고 그냥 무시하는 게 낫지. 그런 사람은 애쓴다고 달라지지 않아. 그런 거 안 통하는 부류도 있는 거야.”

위층 언니의 말이었다. 언니 말을 듣고 보니 맞는 것 같았다. 그 날 이후 아래층 여자의 반응을 있는 그대로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마음먹었다. 후일담이지만 그 날 추어탕은 사실 대히트를 쳤다. 나는 그저 얼려놓은 시레기에 된장과 매운 고추와 부추를 넉넉히 넣었을 뿐인데 맛집 추어탕이 부럽지 않았던 것이다. 위층 형부네도 좋아했고, 앞집 803호 아저씨도 추어탕 덕분에 사귀게 되었다. 고추를 뺀 어죽탕을 아이들도 맛나게 먹어서 나름 흡족한 요리경력이 된 사건이었다.

나도 신선놀음 안 해본 건 아니다. 첫 아이 때 육아에 집중하느라 다른 것들은 보이지도 않았던 시간을 지내봤으니까. 여자아이 하나 키우는 그 여자가 내 형편을 알 리가 없으니 이해하자고 마음먹었다가도 막상 부딪히고 보면 격하게 야속하고 서러워져서 억울했던 기억을 소환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셋이 된 후엔 전세를 얻기도 눈치가 보여서 내 집에 들어가면 마음이 편안할 줄 알았다. 쌍둥이가 태어나고 6개월 됐을 때의 일이다. 병원에서 퇴원한지도 몇 달 되지 않았고, 나와 쌍둥이는 아직 온전히 회복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살던 집의 주인이 바뀌고, 계약 기간까지 만료되었다. 연장할 수 있을거라고 기대했지만 새 주인은 인테리어를 다시 하고 본인이 입주할 거라고 했다. 분양받은 이 아파트 입주 날짜까지는 1년 남짓 남아있었다. 나는 아기들을 데리고 움직일 수가 없어 인터넷과 전화로 집을 알아보았고 남편은 주말마다 집을 보러 다녔다. 사정을 딱하게 여긴 중개사가 급한 사정으로 잔여기간동안 세를 놓으려는 집을 찾았다며 연락을 주었다. 다행스럽게도 다세대주택 1층이었다.


그러나 그 건물의 맨 위층에 사는 집 주인이 아이가 셋인 것이 걸린다며 말썽이 생기면 집을 비워준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명기해 달라고 요구했다. 서러웠지만 써줄 수밖에 없었다. 그 집에 사는 동안 내내 전전긍긍하며 지냈다. 쌍둥이가 한꺼번에 울면 주인이 사는 4층까지 울음소리가 들리기 전에 달래야했다. 집 앞에 편의점이 있어서 아쉬운 것은 바로 구입할 수도 있었는데, 나갔다 마주친 동네 사람이 아이들 소식만 물어도 무조건 사과부터 했다. 사람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음식물 쓰레기는 한밤중에 처리하고, 생필품은 퇴근길에 구입해 오도록 남편에게 부탁했다. 집이 찜통처럼 더운 한낮엔 짐가방과 함께 쌍둥이를 웨건에 태우고 조금 떨어진 아파트단지까지 밀고가서 산책로를 돌아다니다 들어오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캄캄하고 우울할 때면 새 아파트 입주 날짜를 카운트다운 했다. 이사 나올 무렵엔 동네 분들과 안면을 터서 따스한 인사말을 들었다. 알고 보니 주인집 말고는 푸근한 분들이었다. 바쁘게 사는 중년의 이웃들은 생각보다 호의적이어서 한 번씩 나갈 때마다 알은체를 해주시고 아이들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네주셨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토마토며 상추며 농사지은 푸성귀를 챙겨주시던 앞집 아주머니와는 헤어지기 아쉬울 만큼 정도 들었다.


“지금 힘들어도 나중엔 든든할 거여. 지금은 답답 혀도 애들 잘 키우는 거이 애국도 허고 돈 버는 것이여. 애기엄마 잘 될 것이니 걱정 말어!”


덕담을 건네주시던 아주머니한테 마지막 인사를 드리면서 엄마 생각이 나서 찔끔 눈물을 훔쳤다. 이삿짐 정리해놓고 아이들을 앞세우고 한 번 찾아가 고마웠던 마음을 전해드리자 생각했지만 그런 여유는 아직 없다. 그땐 내 집에 입주하고도 전셋집 시집살이보다 더 한 꼴을 당하게 될 줄 몰랐다. 그러니 이런 현실이 기막힌 것이다.





나 역시 이 시간이 버겁다. 육아는 내가 포유류 암컷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을 날마다 확인시켜 준다. 태아가 쌍둥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예쁜 딸 쌍둥이를 떠올린 건 충격적인 소식을 낭만적 환상으로 치환해버린 방어기제였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그림 같은 가족사진을 기대하면서 핑크빛 꿈을 꾸었더랬다. 첫아이 규원이를 키우면서 힘든 것만큼이나 좋은 일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지나간 육아 시간을 낭만적으로 왜곡시켜 기억에 담아두었던 대가는 너무 엄청났다. 쌍둥이가 태어난 후 만 2년이 지나도록 인간다운 삶은 먼 나라의 환상일 뿐이었다. 첫 아이 때 주말마다 바지런히 찾아다니던 체험 여행은커녕 화장실에 혼자 들어가 마음 편히 볼일이라도 볼 수 있다면 원이 없을 지경이다.


다시 말하지만 아이를 셋이나 낳을 계획 같은 건 없었다. 요즘처럼 아이 키우기 힘든 세상에 내가 무슨 갑부라고 자식 욕심을 그렇게나 낼까. 내게도 사연이 있다. 첫 아이 낳으면서 단산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딸은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남편이 만류했다. 외동이로 자란 남편이 간절히 딸을 원했다. 규원이를 안고 가면서도 여자아이를 보면 눈을 떼지 못했다. 결혼 전에 남편이 원한 건 딱 하나였다. 될수록 아이는 많이 낳아서 울창한 가족을 만들자. 아이들도 형제자매가 있으면 험한 세상에 의지하며 살 수 있지 않겠냐 했고, 나도 동의했다. 나 또한 언니나 여동생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외로웠기 때문에. 하지만 맘과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렵게 임신을 확인하고 기뻐할 새도 없이 유산했다. 연속으로 두 번이나. 담당의는 계류 유산인데다 나이도 많아서, 더 이상은 어려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기대를 내려놓을 즈음에 기적적으로 임신이 되었다. 쌍둥이라고 했다. 상상 밖의 일이었다. 산부인과에서 잡아준 일정대로 정기 검진을 받는 동안 임신기간이 지나갔다. 첫 아이 때 특이사항 없이 건강하게 출산했기 때문에, 예기치 않은 임신성 고혈압 진단을 받을 때 까지만도 그렇게 걱정하진 않았다. 20주 검사 때도 정상이었다. 혈압은 걱정할 수준이 아니었고 단백뇨 증상이 없어서 잘 관리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30주가 지난 뒤부터 갑자기 엄청난 부종과 함께 소변을 보는 것이 힘들어졌다.


신청해놓은 출산휴가를 기다리면서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나면 휴게실에 앉아 잔뜩 부어오른 다리를 주무르곤 했다. 무심코 정강이를 손가락으로 눌렀는데 스펀지처럼 쑥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걸 보고 여기저기 눌러봤던 그즈음의 기억은 늘 생경하다. 눌린 자국이 엠보가 되어 복원되지 않는 다리를 보면서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피곤해서 잠시 벗었던 신발을 다시 신을 수 없을 만큼 발이 부어있었다. 병원에 연락해서 담당의사와 상담을 했다. 다음날 검사를 했고 바로 입원했다. 그 후엔 너무 급박하게 위기상황으로 치달았다. 출산 전에 정리하고 준비할 것들이 많았지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두 달간 신생아집중치료실에 있던 아이들을 퇴원시키고 나서는 정신을 챙길 새가 없었다. 쌍둥이를 키운다는 것은 매일 나의 한계를 갱신하는 일이라 불과 2년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다. 만약 내게 1박2일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대로 잠들어 깨어나지 않을 거였다.

규원이를 출산했을 때 산후 조리원에서 만난 동기 중 하나는 나와 같은 입장인데, 첫애가 여자아이였다. 지금도 가끔 통화를 하는데, 큰 애가 보모 역할을 다 해준다고 자랑을 한다. 내겐 허락되지 않은 복이다. 규원이는 동생들과 어울리기만 하면 거칠어진다. 제 딴에는 형 노릇을 하고 싶은데 동생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이다.


간절히 원해도 허락되지 않는 복이 하나 더 있다. 집을 분양 받을 때 1층을 원했으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1층이 나오기만 하면 이사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 동에 한 가구는 어린이집이 차지하고 있고, 다른 가구는 연세 많은 분들이 입주하고 있다. 주변 부동산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부탁해두었다. 어느 동이든 1층이 나오면 무조건 1순위로 알려달라고.


이사하기 전부터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하필 운 나쁘게도 까다로운 아랫집을 만난 것이다. 무슨 큰일을 저질러서 그러는 거라면 말도 안한다. 값비싼 소음방지 매트를 빈틈없이 깔았지만 그것도 소용이 없다면 무슨 방법이 있다는 것일까. 자기도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 아이들이 내는 사소한 일상소음조차 다 거슬린다고 저 난리를 치는데.

덮고 지나간 억울한 일이 하나 더 생각난다. 시원이는 자고, 지원이만 내 옆에 붙어 앉아 있다가 인터폰을 받은 날이었다. 대체 뭘 하는데 이런 소리가 나냐며, 설마 일부러 소음을 만드는 거냐고 몰아붙이는 거였다. 아무 소리 안내고 있었다고, 올라와서 확인해보라고 했더니 뻔뻔하다며 전화를 끊었다. 정말이지 억울한 일이었다. 그 후로 소음의 출처를 찾았는지 한동안 그런 생트집은 없었는데, 오늘 또 시작한 것이다.


나는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또 이런 억지를 쓰면 아래층 여자를 불러 우리 집을 보여주어야겠다고. 만일 올라오지 않겠다고 하면 내려가서 멱살이라도 잡고 올 거다. 그러면 적어도 오해는 풀릴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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