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따귀라도 맞은 것처럼 -웰니스아파트 804호

연작소설 <웰니스족>

by 힐링가객

*연작소설 4회차입니다. 연결된 서사의 이해를 위해 전편을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https://brunch.co.kr/@healingsiinger/48


미니버스에 오른 규원이를 향해 쌍둥이가 손을 흔든다. 차에 타서 자리에 앉으면 밖에선 더 이상 보이지 않는데도 계속 흔든다. 승하차를 지도하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두 아이들을 향해 상냥한 웃음으로 손을 흔들어준다. 어린이집 등원도 하기 전에 선생님부터 사귀고 있다. 그것도 좋다. 노랑 등원버스가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갈 때까지 차를 바라보는 시원이의 호기심어린 표정이 너무 진지하다. 형아를 영웅으로 아는 시원이가 형아랑 저 버스를 타는 날의 반응이 어떨지, 또 형제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면 큰아이가 작은 아이를 챙기느라 시간시간 동생 반으로 찾아온다던데, 규원이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시원이가 등에 매달릴 때마다 규원이는 레슬링이라도 하듯 시원이를 되치기 한다. 처음엔 다칠까봐 깜짝 놀라 규원이를 야단쳤는데, 지켜보니 규원이도 나름 장난스럽게 동생과 놀아주는 거였다. 바닥에 소음매트가 두툼해서 다칠 염려는 없는데도 몸 장난이 벌어질 때마다 조마조마 하다. 내 반응에 아랑곳없이 시원이는 까르륵 웃음을 터뜨리며 형에게 달려든다. 과격해 보이는 몸의 자극이 감각적으론 좋은 모양이었다.

남편은 한술 더 뜬다. 내가 안달할 때마다 보란 듯이 규원이와 시원이를 소파 등받이로 가둬놓고 샌드위치나 김밥말이를 한다고 아이들을 굴리고 누른다. 규원이는 워낙 단련이 되어 아빠 등만 보이면 뛰어오르는데, 시원이도 덩달아 뛰어오르니 요즘엔 아빠가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다. 어쨌든 셋이 한 몸이 되어 뒹구는 건 우리 집 주말의 풍경이다. 조용히 놀라고 열심히 주의를 주지만 소용이 없다. 그렇게 딸을 원해놓고 정작 지원이는 어떻게 놀아줘야 될지를 모르겠다며 절절 매는 남편을 보면 그저 웃음만 나온다.


해가 뜨거워지기 전 아침의 기온과 바람이 사라지기 전에 산책을 시킨다. 두 녀석은 항상 관심이 달라서 산책로 첫 번째 갈림길에서 시원이는 놀이터로 지원이는 관리실 쪽으로 내닫는다. 이제 발이 빨라서 두 녀석을 따라잡을 수 없다. 그래서 약속을 하고 나왔는데도 어김없이 달린다. 지원이를 잡아서 안아 올리고 시원이를 따라간다. 미끄럼틀이 프라이팬처럼 달궈지기 전에 태워주기 위해서다. 놀이터엔 네 개의 미끄럼틀이 있다. 그 중에 요즘 시원이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 동안 도저히 시도하지 않았던 S모형의 미끄럼틀이다.


난이도가 높은 그것은 규원이도 탄지 얼마 되지 않는 거였다. 형이 타는 것을 보자 관심을 보이면서도 바로 시도하진 못했는데, 입구에서 얼쩡거리다 어느 날 실수로 엎어졌다. 그 땐 정말 놀라서 간이 녹아 없어지는 줄 알았다. 내 반응과 달리 막상 타보니까 오히려 자신감을 얻은 듯 시원이는 곧바로 다시 도전했다. 무모할 정도로 적극적인 도전이라 말릴 수가 없었다. 속도에 공포증이 있는 나는 미끄럼틀은커녕 놀이기구들조차 타 본 것이 없다. 구조가 S자 모형으로 구부러져 있어서 아래쪽에서 올려다봐도 보이지 않는 그 미끄럼틀은 시원이가 탈 때마다 매번 긴장이 되었다. 겁도 없이 그 무서운 공간을 통과하는 걸 보면 녀석은 나름 담대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규원이도 시도하는데 몇 달이나 걸린 최상급 미끄럼틀을. 그러고 보면 성장이 빠른 부분도 있는 건가 싶어서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아니면 그냥 겁이 없는 성격인가? 겁 없는 아이들이 사고 치는데. 나는 얼른 머리를 흔들어 따라붙는 생각을 저 멀리 던져버린다. 걱정을 미리 꾸어다 할 필요는 없으니까.

사실 지원이는 그네나 시소 미끄럼틀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한두 번 타고 나면 흙장난에 몰입한다. 놀이터 관리를 하고는 있지만 모래 속에 간혹 과자 포장지들이 묻혀있는 걸 지원이는 보물을 찾듯이 찾아낸다. 때로는 아이들이 가지고 나와서 놀던 소꿉놀이 소품들도 찾아내서 사탕봉지나 아이스크림 막대기와 함께 가지고 논다. 모래를 파기도 하고 찌르기도 하면서 지칠 줄 모르고 노는 것이다. 마뜩치 않지만 입으로 가져갈 시기는 아니라서 지켜보다가 놀이가 끝나면 관리실에 들러 손을 씻겨준다. 오늘 지원이는 강아지풀을 따서 과자봉지로 포장한다. 꽃다발을 만들려는 듯. 아이들이 노는 걸 보면 어린이집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가 다르게 행동이 영글어가는 시원이를 보면 이제 거의 준비가 된 것 같다. 안 간다고 울지만 않으면, 시원이가 문제없이 적응만 잘 한다면 안 보낼 이유는 없다.

시원이가 미끄럼틀의 사다리를 지나쳐 내게 다가온다. 그리곤 모래를 한 주먹 쥐더니 내 발에 던진다. 내가 놀라 팔짝 뛰며 뒤로 물러나자 까르르 웃으며 다시 모래를 쥐고 쫓아와서 던진다. 이 녀석은 재미를 붙이면 끝도 없이 반복한다. 본의 아니게 쫒기며 소리를 지르는 엄마가 더 재밌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번엔 지원이에게 다가가더니 손에 쥔 모래를 지원이의 머리에 얹는다. 미쳐 말릴 새도 없이 벌어진 일이다. 지원이가 일어나 시원이의 얼굴을 꼬집는다. 내가 소리를 지르자 손을 떼긴 했지만 시원이 입술 옆에 손자국이 빨갛게 남았다. 시원이를 야단치고 손을 털어주는 사이 지원이가 제 머리를 손으로 만진다. 모래알갱이가 떨어지면서 흙가루가 눈에 들어갔는지 눈을 비비며 운다. 지원이를 안아 올려 머리를 아래쪽으로 향하고 털어주자 모래알갱이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묶어준 고무줄을 풀어 머리카락 사이에 박힌 모래를 털어준다. 모래알 성분인 석영이 달라붙어 머리알이 반짝거린다. 웃음도 나고 한숨도 난다. 샴푸거품으로 씻어내야만 떨어져나갈 것이다.





관리사무실에 딸린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겨주고 지원이를 달래 슈퍼로 향한다. 나온 길에 당장 필요한 찬거리와 간식을 구입하면 남편까지 동원하지 않고도 아이들을 챙길 수 있다. 안 그러면 아이들을 재워놓고 불안하게 종종거려야 하니까. 슈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주인 여자가 다가오며 아이들을 반겨준다. 그녀는 심드렁하거나 피곤에 지쳐있는 법이 없다. 풀 충전된 그녀의 에너지를 만나면 뭔가 좋은 일이 있었던 것처럼 기분이 밝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평소 슈퍼 앞을 지나갈 때 귀찮고 면구스러워 그냥 지나치고 싶어도 눈만 마주치면 한걸음이라도 다가오며 반가움을 전한다. 처음엔 상술이라고 생각해서 좀 부담스러웠는데 뒤끝이 없어서 지금은 매력으로 느껴진다. 그녀는 내게 꼭 다둥이 엄마라고 부른다. 다둥이라니, 아이가 대여섯 명도 아니고, 겨우 셋인데 그렇게 부르는 게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했다. 하지만 매번 따스한 격려를 받으면서 그녀가 매우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걸 이해하자 지금은 거부감이 없어졌다.


“다둥이 엄마가 오셨네. 어서 와요. 우리 쌍둥이 어디보자. 어이쿠 그새 많이도 컸네!”

인사하면서 막대사탕을 하나씩 쥐어준다.

“큰애 보내면서 산책하러 나왔어요. 낮엔 너무 뜨거워서요.”

“그렇지, 벌써 이렇게 더운데 낮엔 못 놀지요. 다둥이 엄만 참 부지런도 해요. 딸내미 하나 키우는 것도 나는 절절맸는데, 우리 시어머니가 다 키워주는데도 힘들다고 울고 다녔어. 난 그래서 애기 엄마들은 그냥 다 대단해 보여요.”

“말도 마세요. 큰애 준비물 싸놓고 잊어버린 게 몇 번인지 몰라요.”

“그런 실수 나도 숱하게 했어요. 아유, 애 하나도 온전히 챙기는 거 힘든데, 쌍둥이 동생까지 있으니 오죽하겠어.”

“어떨 땐 제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워요. 모자란 것 같아서요.”

“다둥이 엄마, 잠 못 자고 피곤해서 그려. 애들 키울 땐 잠 한 번 실컷 자봤음 소원이 없겠다 싶잖아요. 겨우 하나 키우면서도 잠 못 자는 게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더라고.”

“맞아요. 실컷 자 보는 거, 그거 한 번 해보면 소원이 없겠어요.”


여자의 위로에 거칠게 솔았던 마음이 가지런해진다. 내 속에 들어와 보기라도 한 것 같다. 누가 알아주기만 해도, 약간의 공감만 받아도 견딜만해지는 모양이다. 여자가 아이들에게 막대사탕을 집어주며 이야기하는 사이에 얼른 바구니를 챙겨들고 묶어 파는 우유와 1+1 포장이 붙어있는 요거트 세트를 담는다.


“쌍둥이 엄마 오늘 계란 좋아요. 메추리알도 5판에 만원, 계란은 두 판에 만원이니까 아이들 장조림 만들어줘요.”

나는 두말없이 추천해주는 계란과 메추리알을 카운터에 가져다 올려놓는다. 그저 고마울 뿐이다.

“오후 시간에 전화하면 우리 남편이 나와 있으니까 내가 가져다줄게요. 급하고 아쉬울 땐 그래도 돼요, 다 그럴 순 없지만 다둥이네는 특별하니까.”


말만 들어도 고맙다. 버터와 알새우 애호박을 차례로 골라 담는데 여자가 반갑게 인사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을 챙겨야 할 상황인 것 같아 고개를 빼고 확인했더니 두 녀석이 얌전히 막대사탕을 빨아먹으면서 프로모션 장난감이 붙은 과자 코너를 구경하는 중이다. 포장이 요란해서 눈길을 빼앗긴 모양이다. 나는 서둘러 파와 두부를 바구니에 담는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오늘 과일이 좋아요. 수박도 최상품이 들어왔구요, 참 그리고 아보카도 특품을 주문해서 받았는데 한 번 보실래요?”

슈퍼주인의 목소리에 나긋한 텐션이 느껴진다. 인사와 안내에도 대꾸가 없는 ‘사모님’이 궁금해서 돌아다보니 검은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과일진열대 앞에 서있다.

“찾으시던 임실치즈 오가닉 요거트도 받아놨어요. 이쪽 냉장 칸에 있으니 한 번 보셔요. 비싸서 찾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가져가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약간의 긴장이 느껴지는 여자의 말투에 기분이 묘해진다. 뭐지? 나에겐 항상 반값 세일상품을 권하는 그녀가 아닌가. 순간 괴리감이 느껴진다. 그냥 필요한 걸 권하는 것뿐이잖아. 가볍게 생각을 전환하려고 했지만 뭔가 비교를 당하고 있는 듯 찜찜한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걸 자격지심이라고 하는 거야! 일그러지는 마음을 잡아당기며 카운터로 간다.


지원이는 장난감 안에 초콜릿이 들어있는 걸 양손에 하나씩 들고 있다. 시원이가 들고 있는 상자는 자동차가 들어있다. 장난감 가게라도 온 줄 아는 모양이다. 이 녀석은 요즘 차에 관심이 많다. 내가 아이에게서 물건을 받아서 올리자 그녀가 바코드를 찍지 않고 자연스럽게 카운터 아래에 내려놓는다. 아이들은 그것이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고 엄마의 짐 속에 있다고 기대하면서 슈퍼를 나서는 것이다. 내가 인사하자 그녀가 아이들에게 인사하며 입구까지 따라 나와 손을 흔들어준다.


다시 놀이터로 가려는 시원이를 말리고, 빨리 장바구니에서 장난감을 꺼내달라는 지원이를 설득하면서 우리 동 엘리베이터에 겨우 다다른다. 계란이 두 판이나 있어서 손이 자유롭지 않다. 두 녀석이 서로 눌러서 올라가는 버튼과 내려가는 버튼에 동시에 눌렸다. 18층에 멈춰있던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동안 공용 현관에 걸려있는 게시판을 훑어본다. 2일 후에 물탱크 청소를 한다는 공지를 확인한다.


지난달엔 물탱크 청소하는 날 게시 글을 미쳐 못 봐서 전쟁을 치렀다. 식수와 허드렛물을 받아놓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단수라니,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다. 내가 못 봐도 남편이 보고 이야기해주는데, 전날 내가 아이들과 잠이 들어서 말할 기회를 놓치고 아침에도 바쁘게 출근하느라 잊은 거였다. 나도 하필 아이들을 씻기느라 관리실에서 내보내는 안내방송을 알아듣지 못했다. 수압이 약해지는 걸 감지했지만 그대로 끊겨버렸다. 직수 정수기라 당장 먹을 물도 없는 상태가 되어 위층 언니한테 전화를 했다. 언니가 화장실이랑 물 쓸일 있으면 올라오라고 하면서 식수를 한주전자 내려다 주었다. 아쉬운대로 위기를 넘기고 두어 시간을 언니네 집에 올라가서 보냈다.


아이들과 엘리베이터에 올라 막 문이 닫히려는 순간 공용현관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 보인다. 문이 닫히지 않도록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며 쌍둥이에게 문 쪽으로 나가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부탁한다. 천천히 걸어와서 엘리베이터에 오른 사람은 다름아닌 아래층 여자다. 손에 든 비닐 백을 보니 방금 슈퍼에서 보았던 바로 그 여자. 내가 인사를 건네자 고개를 까딱 하면서 눈썹을 치켜뜬다. 여자가 7층을 누른 후에 내가 아이들에게 배꼽 인사를 시켰다. 여자가 웃지도 않고 아이들을 보았다. 그 시선에 기가 눌린 듯 수줍게 인사를 얼버무린 아이들이 내 다리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여자가 돌아서더니 내 얼굴을 똑바로 보고 말한다.

“한 가지 부탁할게 있는데, 통로에선 조용히 좀 해주시겠어요? 아침마다 엄청 울려서 신경 쓰이거든요.”

따귀라도 맞은 것처럼 눈에 경련이 인다.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자기 집 번호를 누르는 그 여자의 뒤 꼭지를 본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올라가서 다시 열린다.


‘통로에서, 아침마다! 하악.’


아이들이 인사를 해도 냉랭하게 바라본 이유가 그 때문이었나 보다. 인정한다. 아이들 입막음을 온전하게 하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하지만 아이들이 물건도 아니고 어떻게 조용히 움직일 수 있을까. 이렇게 억압적으로 강요해야만 하는 건가? 아니 모멸적으로?


아이들을 집안으로 들여보내고 잠깐 망설인다. 바로 아래층 여자를 만나 이야기를 좀 나누자고 해볼까? 그런데 그 여자랑 말이 통할까? 절망스럽다. 엘리베이터는 그 사이 10층으로 올라가 멈춘다. 잠시 후에 엘리베이터 안내 음과 함께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동물들이 내는 소리는 심심찮게 들려온다. 반려동물이나 주인도 나같은 스트레스를 당할까? 내가 아는 한 그런 일은 없다. 누구도 뭐라고 하는 걸 보지 못했다. 안내 방송조차 들은 적이 없다. 동물은 말을 못하는 보호대상이니 괜찮고 아이들이 내는 소리는 안 되는 건가? 결과적으로 사람이 반려동물만도 못한가? 동공에 물이 고여 눈앞이 침침하다. 이런 비교까지 하게 되다니 비참한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키워본 적은 없었다. 단독주택에 살게 되면 집 밖에선 꼭 키우고 싶다. 시원이가 현관문을 두드리며 우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들어간다.


두 아이를 붙잡고 쉴 새 없이 집안일을 했지만 영혼 없이 하루가 갔다. 생각할수록 아래층 여자의 태도가 거슬렸다. 계속 빈정이 상하면 죽이고 싶도록 미워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까짓것 무시하고 싶다가도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와서 부딪힐 상황을 만들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부터 다 같이 규원이를 배웅하러 내려가는 일을 그만두었다.

누군 아침마다 어린이집 차에 타는 큰 애를 베란다로 내다보고 싶겠는가. 그 아이가 차에 타면서 엄마 얼굴을 찾아 올려다보는데 다녀오라고 소리치고 싶지 않겠는가. 등원하는 첫째를 배웅하고 아파트 산책로를 한 바퀴 돌아오던 쌍둥이 육아의 오전스케줄은 강제로 종료되었다. 그런 일상의 즐거움을 번잡스러운 소음으로 몰아 부치고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이웃 덕분에 침묵의 등원을 시키게 된 거였다.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물놀이를 다녀왔다. 남편이 좋은 곳이 있다고 해서 따라나섰는데 1시간이 걸려서 도착한 곳은 그리 넓지 않은 열미계곡이었다. 위쪽에 수련장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명한 곳인 모양이었다. 나무 그늘이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그늘막 텐트도 쳤다. 아이들이 뒹굴며 놀 수 있도록 매트와 비치 볼과 오리튜브도 가져갔다. 총각시절 캠핑감성에 푹 빠져살던 남편이 가장 신나보였다. 그런데 계곡물이 너무 차가웠는지 다음날부터 콧물이 나더니 규원이만 멀쩡하고 두 녀석이 열과 기침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아프면 주부는 무박 비상근무에 돌입한다. 월요일엔 택시를 불러 타고 아이들과 병원에 다녀왔다. 3일치 약을 먹이는 동안 전쟁 아닌 전쟁을 치렀다. 어젯밤엔 서너 시간동안 이어서 눈을 붙일 수 있을 만큼 회복이 되었다. 그런데도 피곤이 가시지 않는다. 오늘 아침에 위층 언니가 소고기육수로 만든 야채죽을 가져다 줬는데, 입맛이 떨어졌던 아이들이 며칠 만에 밥을 제대로 한 그릇씩 먹었다. 그래서 그런지 확실히 어제보다는 짜증이 덜하다.

나는 요즘 방광이 자주 저릿하다. 제 때에 화장실에 가야하는데 아이들 돌보느라 조금씩 늦어지는 게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감각을 잘 모르겠다. 평소에 괜찮다가도 몹시 피곤하면 한 번씩 방광이 불편한데 오늘은 따가운 통증이 심하다. 혹시 스트레스 때문인가? 정신이 피폐해질 정도로 피로감을 주는 아래층 여자의 얼굴이 지나간다. 생각만 났을뿐인데 송곳이 지나가는 것처럼 마음에 스크레치가 남는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이정도면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닐테다. 피로에 스트레스가 겹친 결과다. 그렇다고 당장 병원에 갈 수도 없다. 그저 혈뇨가 있는지 확인하고 물을 챙겨 마시면서 요의를 느끼면 바로 화장실에 가는 정도다. 조금 신경 쓰이는 건 잔뇨감이다. 화장실에 다녀와도 개운하지가 않다. 뭔가 항생제라도 처방받아야 하는 건가? 찜찜한 마음으로 물을 내리고 손을 씻었다.


화장실에 있어도 귀는 아이들 소리에 열려있다. 시원이의 기척이 심상찮아 서둘러 나왔더니 시원이가 기침과 함께 방금 먹은 음식물을 모조리 토해버렸다. 화장실에 들어가면서 쥐어준 요구르트 병을 떨어뜨려 옷이며 바닥 매트에 요구르트가 쏟아졌다. 빨래거리에서 수건 두 장을 찾아 토사물과 쏟아진 음료를 대강 닦아내고 시원이를 안고 욕실로 들어갔다. 옷을 벗기자 토사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지원이가 뒤따라 들어오려는 걸 오지 말라고 하자 울상이 되었다. 버둥거리며 ‘시어’를 외치는 시원이를 씻겨서 수건을 싸서 내놓았다. 욕실 바닥에 옷을 털고 국물 얼룩에 식초를 뿌려 애벌빨래를 해놓았다. 욕실바닥에 떨어진 토사물을 물휴지로 대강 싸서 분리하고 욕실 바닥을 물로 씻어내고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시원이가 정수기에 까치발로 달라붙어 출수버튼을 누르고 소꿉놀이 컵으로 받고 있다. 씻어서 개운한지 얼굴이 말갛다. 옷을 입지 않아서 통통한 배와 엉덩이가 너무 귀엽다. 기울어진 컵에서 물이 팔과 옆구리를 타고 흘러내린다. 그 옆에서 지원이도 소꿉놀이 그릇을 들고 서있다. 차례라도 기다리는 모양이다.

“시원이 물먹고 싶었어? 시원이 컵 줄게 이걸로 해보자.”

실리콘 컵을 쥐어주고 높이에 맞게 안아 올려 주었다. 정수기 아래쪽에 유소아용 출수버튼이 있어서 규원이가 사용하는데 그걸 유심히 봐둔 모양이었다. 나름 소꿉놀이 컵까지 들고 출수 버튼을 눌렀다니 그런 의견을 냈다는 것이 기특해서 마음이 울컥했다. 키가 자라 정수 버튼에 손이 닿은 것도 놀랍고, 지원이도 하지 않는 걸 시원이가 시도한 것이 놀라워서 좀 전에 삼킨 한숨이 감탄사로 터져 나온다. 시원이는 이래저래 내 눈에서 눈물이 솟게 만든다. 마음이 캄캄해지기도 하고 벅찬 기쁨이 분수처럼 솟아나게도 하니까.


시원이에게 보송한 옷을 입혀주자 쪼르르 달려가 오디오 리모컨을 들고 온다. 의견이 말짱하다. 동요 CD를 플레이하고 내가 몸을 흔들자 바로 나를 따라 춤을 추기 시작한다.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팔을 흔들기도 하면서. 저런 모습을 남겨두면 두고두고 볼 수 있을 텐데, 반짝 지나가는 생각일 뿐이다.

요구르트와 토사물을 닦아낸다. 음료는 여러 번 물걸레로 닦아내야 끈적이지 않는다. 발바닥이 새큰거리도록 자잘한 일에 치이다 보면 오늘 하루도 지나갈 거였다. 내가 뭘 했나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하찮은 일들인데도, 피하거나 방치할 수 없는 것이 육아니까. 일이 힘들다고 푸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 일상을 비루하게 만들어버린 아래층 여자 때문에 한탄이 터지는 것이다.






하루에 한 두 번은 꼭 전화를 하는 남편이 점심시간이 지났는데 연락이 없다. 영업직이라 손님과 식사를 하게 될 때면 화장실에 가면서라도 별 일 없냐고 전화를 하는데. 아침에 조금 언성을 높였던 것이 마음에 걸린다. 정말 별것도 아니었는데, 순간 혈압이 오르면서 감정을 조절할 수 없었다.

늦잠 자는 규원이를 여러 번 깨워놓고 씻고 준비하는 동안 식사준비를 했다. 아이를 부르러 화장실에 갔더니 없어서 방을 들여다봤다. 이불 귀퉁이에 또 누워 있었다. 곧 있으면 등원차량 시간인데 마냥 늘어지는 거였다. 할 수 없이 씻겨주고 옷을 꺼내주었다. 하지만 밥도 옷을 입는 것도 의욕이 없었다. 속이 터질 것처럼 메슥거렸다.


딱 그러고 있을 때 남편이 전화를 했다. 영수증 모아놓은 것과 중요한 서류를 빼놓고 왔다는 거였다. 남편이 말한 곳을 찾아봤는데 없었다. 규원이 등원시간에 쫒기는 중이라 마음이 분주해서 좀 있다 찾아보고 연락한다고 말하고 끊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전화했더니 남편이 서류를 찾았다고 했다. 차에 잘 둔걸 착각했다고. 다행이라고 끊으려는데 어젯밤 나눴던 이야기를 꺼냈다. 소음문제로 아래층 사람들을 만나봐야겠다고. 나중에 이야기하라고 했더니, 뭘 그렇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마음을 졸이냐며 그냥 마음 편히 지내라는 거였다. 나도 알아들었다. 남편의 말뜻을. 하지만 멀쩡한 사람을 신경증 환자 취급하는 편리한 어법에 순간 혈압이 올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간단한 해결방법이 있었으면서 빨리 해결을 하지 그랬냐고, 그 여자한테 트집잡히는 일 없게 제발 이제부턴 원천봉쇄 해달라고!’


문제는 없는데, 내 안달이 문제라는 것처럼, 그 순간엔 그렇게 들렸다. 괜히 남편에게 화를 전가한 것이다. 못나게 스리.






삶아서 냉동해놓은 옥수수 열 댓 개를 꺼내서 해동한다. 팬에 마요네즈와 설탕을 분량대로 섞어 약 불로 녹여 소스를 만들어놓는다. 녹인 버터에 삶은 옥수수를 뒤집으면서 노릇하게 굽고 만들어둔 소스를 얹는다. 아이들이 좋아할 고소한 냄새가 퍼져가니 행복감이 밀려온다.

사실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아이들은 더 좋아한다. 쌍둥이가 태어나기 전 다세대 주택에 살 때는 우리 집에서 동네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맞벌이 하는 집 아이들도 밤늦도록 우리 집에서 먹고 놀다가 데려가기 일쑤였다. 사람은 북적이며 살아야 하는 거다. 아이들은 더더욱 몰려다니며 커야 건강하다. 아무리 아파트라 해도 이렇게 각박해서야 어디 사람 사는 곳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랑방처럼 사람이 드나드는 집에 복도 머무는 거다. 나는 맛난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고, 나눠먹는 것도 좋아한다.

남편 역시 사람을 좋아한다. 집안에 사람이 북적거리면 사는 재미가 난다. 아이들 웃음소리와 뛰어 노는 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인생 살면서 그렇게 빛나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아이들이 내 곁에 머무는 기간도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다. 쌍둥이가 크는 걸 보면 너무 빨라서 아쉽다. 오랫동안 젖을 물리고 꼬물거리는 걸 보고 싶었는데, 벌써 훌쩍 커서 아기태를 벗고 있지 않은가. 다시 올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이 이렇게 또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대견하기도 하지만 너무 아쉽다.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남겨놓고 싶지만 그마저도 찍을 여유가 없다.


이웃과도 마찬가지다. 따스한 소통을 주고받으며 챙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 세상에 이웃 간에 퍽퍽해져서 살인도 나고 죽어나가도 모른다는데, 그러고는 못살겠다. 우리 부부가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우리 가족이 주택에서 살아야 하나?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택단지를 재개발해서 아파트로 바꾸는 이 시대에 아이들을 같이 키울 주택을 어디 가면 구할 수 있을까? 우리 형편에 가능키는 한가? 생각이 현실의 궤도를 이탈한다. 마음이라도 웰니스 아파트를 탈출하고 싶은가보다.


위층 아이들과 같이 먹다보니 한 달 사이에 감자를 세 박스째 먹고 있다. 지금은 옥수수 한 접을 삶아서 냉동보관 해놓고 소모시키는 중이다. 감자나 옥수수 버터구이는 규원이가 좋아하는 간식이다. 윗집 호영이랑 호민이도 좋아한다. 시원이 지원이는 설탕을 듬뿍 뿌려주어야 좋아한다. 쌍둥이는 단 맛이 없는 건 아예 입에 넣지 않으려고 한다. 단 음식이 좋을 턱이 없지만, 슈퍼에서 파는 과자나 상가의 군것질거리, 하다못해 냉동 반제품도 온통 단 것들 뿐이라 어느새 아이들의 입맛이 그렇게 길들어버렸다. 규원이 키울 때는 4살까지 먹이지 않던 것들을 쌍둥이는 벌써 다 먹는다.


언제부턴가 식재료나 첨가물 내용을 읽어보지 않으면 불안했다. 당도가 설탕의 200배나 되는 합성 감미료를 첨가한 가공식품들, 보존제와 착향제가 들어간 것들이 재미있는 캐릭터 포장지에 담겨 아이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위층 언니와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차라리 설탕을 먹이는 게 낫다고 결론짓고, 될수록 만들어서 주자고 다짐했다. 그 뒤부터 서로 기회가 닿는 대로 재료를 조달하고 공동작업으로 간식을 만들어 먹이고 있다.

위층 언니는 무슨 이야기든 통하는 편이다. 뿐만 아니다. 급할 때 파 한 뿌리 마늘 한 쪽도 주거니 받거니 나누어 쓰면서도 미안하거나 부끄럽지 않았다. 건망증이 있는 언니가 가스레인지에 곰탕거리나 빨래를 올려놓고 외출했다가 불 좀 확인해 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었다. 가까워지면 서로 실례도 할 법한데, 언니가 뒤끝 없는 호탕한 성격이라 바로바로 마음을 드러내서 대하기가 편하다.


노릇하게 구워져 버터 향기를 풍기는 옥수수가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어제 야채튀김을 만들어 가져다 준 언니네 쟁반에 종이호일을 깔고 덜어낸다. 내가 아이들끼리 만나면 감기 옮는다고 오지 말라 했더니 얼마전에 앓고 지나가서 괜찮다며 내려와서 같이 간식을 먹고 놀다가 올라갔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옥수수 버터구이 준비한다고 약속을 했더랬다. 곧 규원이가 도착하면 가지고 올라가 같이 먹일 계획이다. 마침 호영이 호민이도 태권도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이다.


시끄러우니 통로에선 조심하라고 경고한 아래층 여자 이야기를 언니에게 아직 전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우리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언니네 호영이 호민이도 우리 집에 올 때는 우당탕탕 떠들면서 내려오니까. 그 여자 때문에 남편과 언성까지 높였는데, 과연 언니는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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