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베란다 물난리 -웰니스아파트 804호

연작소설 <웰니스족>

by 힐링가객

* 연재소설 6회차입니다. 연결된 서사의 이해를 위해 이전에 발행한 글을 보시면 소설의 흐름을 즐겁게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 -> https://brunch.co.kr/@healingsiinger/52





시원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 소품들을 정리하면서 사진을 찍는다. 색감이며 모양이 시원찮다. 렌즈를 닦아냈더니 조금 더 선명하게 찍힌다. 4시나 5시에 일어나 보채다 규원이 등원시간에 잠들던 시원이의 밤잠이 조금 길어지더니 지금은 7시 전후에 깬다. 덕분에 나도 새벽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어 아침이 편안해졌다. 낮잠 시간도 늦어져 요즘은 쌍둥이의 리듬이 비슷하다. 오늘도 점심을 먹고 씻겨주자마자 노곤해서 커다란 쿠션을 올라타고 뒹굴다 두 녀석이 함께 낮잠에 빠져들었다. 무언가 정체된 일들을 해치울 기회는 이 시간뿐이라 며칠 동안 베란다에 분류해 놓았던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다.


중고물품 거래를 위한 온라인 마켓에 이미지를 올리는 것도 벼르고 별러야 실행되는 일이다. 무료 나눔이지만 필요한 사람이 확인할 수 있도록 사용감이며 용도며 내놓는 사연을 최대한 친절하게 안내한다. 특히 세트 중에 분실한 것이나 고장 난 부분은 확실하게 밝힌다. 나눔에 실패하면 재활용 쓰레기로 내놓을 수밖에 없는데,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버리기는 아깝다. 멀쩡한 물건을 버려야 할 때는 죄책감도 크다. 하지만 육아 용품들은 지나가면 더 이상 쓸 수 없다. 지인들에게 선물로 받았거나 캐럿 마켓에서 무료 나눔 받은 것들이지만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게 가서 잘 쓰였으면 좋겠다.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구할 수 있는 마켓이 있어 얼마나 편리한지 모른다. 캐럿 마켓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좋은 교구들을 풍족하게 사용하면서 쌍둥이를 키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외벌이로 5인 가족이 살아가기엔 솔직히 무시무시한 물가가 아닌가. 전세대출금을 갚아갈 즈음 집을 분양받았는데, 운대가 맞지 않았던 것인지 감염병이 돌았고, 끝나갈 무렵부터 주택담보대출금의 금리가 계속 올라서 지금은 배로 물고 있다. 그렇게 소원하던 재산세를 내게 되었지만, 오히려 월세를 사는 것처럼 지출만 늘린 꼴이다. 더 기가 막힌 건 분양받을 때보다 집 값은 떨어졌다는 것이다. 어차피 살고 있는 집이니 올라간대도 세금이나 더 낼 뿐이라 좋아할 것 없다지만, 그래도 겨우 마련한 부동산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니 기운 빠지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집이 애물단지가 될 줄은 몰랐다. 매달 가계부 지출계획을 세울 때마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럴 때마다 며칠씩 구직을 고심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대소변을 가리게 되었지만 시원이는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기저귀를 썼다. 기저귀 값도 천차만별이라 살 때마다 비교하고 또 비교하면서 골랐다. 어쩌다 캐럿 마켓에 쓰고 남았다며 싼값에 내놓는 기저귀를 만나면 손에 땀을 쥐며 주문을 넣고 유레카를 외쳤다.


사람사는 세상엔 어디나 얌체도 있고 따스한 성정으로 친절을 베푸는 사람도 있다. 마켓에서 알게 된 셀러에게 식탁용 아기의자를 구입했을 때였다. 그분이 아기가 몇 개월이냐고 물으면서 필요하면 주겠다고 이것저것 물어보시는 거였다. 쌍둥이인 걸 알고 나서 필요하면 나눔을 하겠다며 개봉하지 않은 이유식과 쓰지 못하고 지나간 기저귀까지 보내주셨다. 그 뿐이 아니었다. 얼굴도 보지 못한 사이에 내 상황을 배려하여 요긴하게 쓸 생활 동화며 장난감 소품들까지 손수 포장해서 배송해주셨다. 너무 고마워서 그 분의 주소로 레드향 귤 한 상자를 보내드렸다. 그랬더니 새것과 다름없는 옷과 장식품들을 또 잔뜩 보내주셨다.


마침 지원이보다 10개월 이른 여자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보내준 물건이 주로 지원이에게 필요한 것들이었다. 여자아이가 좋아할 만한 앙증맞은 백이며 신발이며 모자, 구두, 소꿉놀이 장난감까지 물려받았다. 그 때마다 톡을 하면서 반듯한 그 분의 성정을 느낄 수 있었다. 무료 나눔이지만 팔 수 있을 만큼 깨끗하고 쓸 만한 것들만 보내주셨고, 응대를 할 때도 항상 예의와 배려가 넘쳤다. 집안에 아이가 하나라 들어오는 선물이 많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세상엔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사를 오지 않았다면 그 분과 같은 지역 안에 살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언젠가 만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지역도 다르고 아직은 외출이 번거로워 피하고 있지만 말이다. 언젠가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식사라도 한 번 대접하고 싶다. 지금은 일단 그 분처럼 누군가 필요한 분에게 내가 받아서 쓴 물건들을 나누는 시간이다.


지원이가 20개월이 되었을 때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던 도형놀이 교구들과 소리 듣기 장난감들을 적응하기까지 시원이는 7~8개월이 더 걸렸다. 지원이가 그랬듯이 시원이도 원리를 파악한 것은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다. 거칠게 다루지 않고, 늘 열심히 닦고 소독해서 상태가 깨끗한 편이다. 아기들 물건은 비싼 만큼 좋은 재료로 만들기 때문에 할 수만 있다면 재활용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생산자에겐 딜레마가 될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아기용품이 비싼 이유도 그런 걸 감안하기 때문이 아닌가! 내 멋대로, 내 편리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약시에 내사시를 보여주는 시원이의 눈은 아직 관찰 중이다. 미숙아망막병증을 치료했기 때문에 추적검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정기검사를 하면서 지켜보고 있다. 사시 증상은 왼쪽 눈이 심하다. 무언가에 걸려 넘어질 때도 신체발달이 미숙해서인지 약시가 원인인지 몰라 고심했지만, 개월 수가 됐는데도 도형을 틀에 끼워 맞추지 못할 때는 물체를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시력이 문제인가 싶어서 가슴이 조여들고 밤마다 아이의 행동을 복기하면서 잠들지 못했다. 도형을 정확하게 맞추고 끼워 넣게 되었을 땐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벅차서 혼자서 기립박수를 치고 남편에게 톡을 보내고 난리를 쳤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점잔을 빼면서 나를 핀잔했다.


‘거 봐. 기다리면 된다니께. 당신이 안달복달 않허먼 괜찮어 지잖여.’


남편 말대로 느릴 뿐이지 시원이는 시원이의 시간을 착실히 살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31개월을 채워가던 즈음, 시원이가 소파에서 뛰어내리는 걸 처음 보았을 땐 정말 놀랐다. 어느 정도 균형을 잡으며 손과 엉덩이와 발이 동시에 바닥에 떨어진 거였다. 머리를 다치거나 나동그라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인데, 꽤 안정적이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 날의 기쁨을 잊지 못한다. 일주일도 못되어 아래층 여자한테 협박전화를 받았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당혹스런 불쾌감보다 기특함을 더 크게 느낀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남편이 쉬는 주말에 키즈 카페나 플레이방방에 데려가서 실컷 뛰고 놀게 해준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긴장 없이 해방감을 누리고 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다고 아이들이 인형처럼 얌전한 건 아니지만.


‘무료나눔’이라는 키워드 때문인지 마켓에 올리자마자 채팅이 들어온다. 바로 승낙을 하자 30분 이내로 가지러 오겠다고 한다. 빠른 진행에 체증이 가시는 듯 시원해진다. 주소를 알려주고 박스에 메모를 붙인다. 현관문 밖에 내놓으려고 문을 열자 커다란 박스가 놓여있다. 뭐지? 하나 내놓으니까 하나 들여놓게 되는 건가? 수신자 이름에 내 이름이 적혀있다. 박스가 무거워 간신히 문턱 안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는다.

시골에서 오빠가 보낸 농산물이다. 마늘과 비트가 들어있다. 옆에 봉지 안에 까서 말린 강낭콩도 들어있다. 2주 전에도 감자와 당근을 받아서 먹고 있는데, 또 보내준 것이다. 농사철이 되면 한 달에 한두 번씩 농산물을 보내주는 오빠에게 전화한다. 받지 않는다. 받을 수 없는 상황인가? 여섯 번째 벨이 울릴 때 끊는다.





친정 오빠는 도시에서 사는 나를 안타깝게 여긴다. 뭐 하나라도 다 사먹어야 하니 얼마나 아쉽겠냐며 걱정이 태산이다. 모르게 보냈으면 몰라도 보나마나 올케 언니한테 잔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결혼하고 두어 번 갔을까. 들를 때마다 올케 언니의 눈초리가 냉랭해서 마음이 불편했다.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이라고 안부전화 할 때마다 오빠는 자주 와서 푸성귀며 곡식이며 갖다 먹으라고 성화를 해대지만 이런 저런 핑계로 회피하는 이유다.

처음 새언니를 데려왔을 때 선녀가 들어오는 것처럼 예뻐서 그 날부터 흠모했던 나였다. 농사가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올케를 탓할 마음은 없다. 내가 대학생활과 아르바이트로 정신없이 살고 있을 때 갑자기 엄마가 돌아가셨다. 고향이 통째로 사라진 것만 같았는데, 결혼을 하고보니 친정이 없다는 것이 그렇게 마음 허전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오빠가 있다는 것이 마음의 의지가 되는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올케언니가 결혼했으니 이제 남이라고 밀어내는 듯 한 느낌만은 서운했다. 지청구를 들으면서도 동생을 위해 챙겨 보내는 오빠의 마음을 알기에 농산물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누워서 침 뱉는 것 같아서 집안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지만 올케 때문에 오빠와 엄마가 속을 깊게 앓았다. 나는 모르는 척 했지만, 올케는 시골살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농사짓는 집에 시집왔지만 주부의 일 외에는 집밖을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육아를 시작했고, 아이 둘이 학교 갈 시기가 되자 교육을 핑계로 시내에 방을 얻어 나갔다. 어차피 농사가 업인데 시골집에 엄마만 두고 갈 수 없었던 오빠는 그렇다고 가정을 방치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출퇴근을 하는 농부가 될 결심으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이사준비를 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올케가 오빠와 함께 살기를 원치 않았다. 올케가 완강하게 주장했기 때문에 결국 오빠는 시골집에 남았다.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올케는 시골집에 일 년에 한두 번 왕래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올케는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이 기숙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심산이었다. 그래도 오빠가 생이별하지 않고 아내와 한 집에서 살고 있는 것만도 다행이라 여겼다. 착하기만 한 오빠는 그저 올케가 하는 일이면 다 들어주었다. 아이들만 행복하다면 속 썩는 건 자기 몫이라고 생각하는 건지도 몰랐다. 내 생각엔 가정만 지킬 수 있다면 뭐라도 감내하겠다는 그 지점이 나와 오빠가 공유한 트라우마다. 우리 남매를 키우면서 엄마는 평생 아버지를 기다리셨다. 내가 어렸을 때 집을 나가서 가끔 한 번씩 다녀가시던 아빠, 내 아빠는 나쁜 남자였다.


사춘기가 되었을 무렵 마을회관 마루에 모여 앉은 동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다. 오빠의 이름을 거론하는 소리에 모퉁이를 돌자마자 걸음이 멈춰져 엿듣게 된 거였다. 오빠의 아빠가 서울여자랑 사느라 조강지처를 버리더니 큰일을 당했다는 이야기였다. 회관이 쩡쩡 울리게 저주를 퍼붓는 할머니들의 말소리에 한여름 땡볕에서 얼굴이 붉어지고 수치에 휩싸였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들은 말을 오빠나 엄마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에 엄마는 오빠와 나를 데리고 고속버스와 시내버스를 갈아타면서 장례식장에 갔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대면을 하고 어색한 인사와 조문을 했다. 나쁜 남자 내 아빠의 웃는 얼굴이 영정 안에서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아빠의 장례식인데 우리는 상복조차 입지 않았다. 우리의 자리가 없는 기묘한 장례식이었다. 엄마는 죽은 사람의 얼굴로 굳어있었고, 오빠와 나는 엄마 옆에 어색하고 무겁게 앉아있었다. 나는 돌아가신 아빠를 향해서는 아무 감정의 소요도 일지 않았지만 몇 시간 동안 수치심과 반발심으로 굳어있었다. 엄마는 오빠와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오빠를 따라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우리 사이의 불편한 기운을 우리 힘으로 걷어낼 수 없음을 알았다. 집안에 드리워져 있는 무기력감의 정체를 완전히 알아버렸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음날 내려오신 엄마는 수척했지만 조용히 일상으로 돌아갔다. 늘 그렇듯이 금기인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은 긴장이 있고, 조금은 어둡고, 조금은 어색한 순간들을 각자의 몫으로 나누어 침묵했다. 나의 사춘기는 그렇게 억눌린 채 끝나있었다. 그리고 후유증은 이렇게도 질긴 트라우마가 되었다. 처녀시절엔 결혼이 무서웠고, 결혼을 하고나자 가정을 지키려고 전전긍긍하며 무거운 생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배우자에게 무한 허용을 하면서 말이다.


남편의 사소한 말에 신경이 곤두서 언쟁을 벌이는 나는 오빠에 비해선 덜한 편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다른 부부도 다 그런가 싶을 만큼 남편에게 전전긍긍하며 맞추려고 애쓰는 부분이 있다. 요즘 부쩍 가까워진 이웃들과의 관계에서도 남편이 좋아하니까 모임의 중심을 떠맡게 된 측면이 없지 않다. 내가 거부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들을 겪게 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적당한 선이 있어야 하는데, 남편은 사람을 너무 좋아한다. 형제가 없으니 외로움에 사무쳐서 그런다는 걸 이해 못하는 건 아니어서 남편의 뜻대로 끌려가다보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문제의 발단이 어디서부터였는지는 따져봐야 하겠지만, 관계를 열어가기 위한 시도는 내가 주도적으로 했다. 그건 사실이니까 인정한다.





추어탕을 나눠주고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놀아준 그 날 이후, 종종 803호 남자와 마주쳤다. 조용해서 있는지 없는지 몰랐는데, 남자는 밤이나 낮이나 집에 있는 듯했다. 뭘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남자가 자기의 일을 공개했다. 주식투자를 한다고 했다. 처음엔 그런 일이 직업이 되나 싶어 뜨악했다. 남자가 집안에 죽치고 않아 뭘 하는지 궁금했던 건 나뿐이 아니었다. 내 말을 듣고 위층 언니도 궁금했다고 털어놨다. 남자는 나름 규칙적인 생활로 바빴다. 매일 근무시간을 정해놓고 시장의 동향을 살피면서 자금을 운용하고 관련된 공부도 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오후4시 전후에 아이들 울음소리라도 들리면 현관문을 열고 나와 참견을 했다. 무슨 마법을 쓰는지, 아이들은 남자랑 나가는 걸 좋아했고, 신이 나서 돌아왔다.

하루는 위층 형부가 저녁이나 먹자고 불렀다. 고향 다녀오는 길에 의항에 들렀다가 하역을 시작한 어선에서 바닷장어를 샀다고 했다. 올라갔더니 언니는 상을 차리고 형부가 익숙한 솜씨로 장어를 손질하고 있었다. 배를 가른 장어는 살이 두툼했다. 왕소금을 뿌려 굽고, 언니가 마련한 겉절이에 쌈장을 곁들이자 특별한 잔치가 되었다.

그 날 처음으로 803호 남자를 불렀다. 남자가 아껴두었던 중국산 술을 가지고 왔다. 같이 모인 것이 처음이라 통성명을 한 남자들끼리 호구조사가 시작되었다. 803호 남자가 형부보다 4 살이 많았다. 결국 막내가 된 남편은 순식간에 두 형님을 모시게 되었다. 남자 셋이 모이니 왁자해졌다.

언니가 쪽파를 넣어 배추 전을 부쳤다. 술자리가 거나하게 무르익었다. 언니네 집에서 잔치를 벌이자 아이들이 신이 났다. 아랫집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게 그렇게 마음 편안할 수가 없었다. 그 날은 무사히 지나갔다.


그 다음 주일에 남편이 지방에 있는 거래처에 다녀오면서 왕새우를 사가지고 와서 답례라며 또 잔치를 벌였다. 내가 시끄러울까 걱정하자 남편이 못을 박았다.

“사람 사는 집에 사람 모이는 건 당연헌 거고, 모이먼 시끄러울 수도 있는 거여, 맨날 그러는 거 아니니께 걱정허지 말어.”

“그래도 막상 전화 오면 분위기 깨질걸. 사람 불러놓고 민망할까봐 그러는 거지.”

“전화 오먼 내가 양해를 구헌다니께. 남편을 불러올리던지 허지 뭐. 부딪쳐 봐야 아는 거구, 알어야 가까워질 기회도 생기는 거여.”


위층 언니네 가족과 앞집 남자가 또 모였다. 제 철을 만난 왕새우는 고소한 살이 가득 들어 맛이 좋았다. 5월의 새우라니 그 탐스러운 흰 살이 어찌나 달고 맛있는지 술꾼들이 지나칠 수 없는 안주였다. 아래층에 한 접시 가지고 내려가 양해를 구하려고 했더니 초인종 소리에 응답이 없었다. 집이 비었다면 잘 된 일이었다. 만일 시끄럽다고 하면 언니네 집에서 아이들을 재우자고 했던 터였다.


형부가 현역시절 휴가 나와서 찾았던 대천 맛 집의 물 메기탕 이야기를 꺼낸 것을 시작으로 세 남자의 화재는 군대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술기운에 이미 목청들이 커졌다. 남자들이 바람을 잡아서 노래방에 갔다. 규원이와 호영이 호민이를 위층으로 올려 보냈다. 그날따라 쌍둥이가 낮잠을 자지 않은 채 보채다가 곤하게 잠든 터라 두어 시간 깊이 잘 것 같았다. 강권해서 따라나서긴 했지만 불안해서 삼십분도 못되어 언니랑 먼저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이 위층에서 다 내려와 있었다. 쌍둥이도 깨어있었다.

관리실에서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호민이가 전했다. 아이들은 낯모르는 어른에게 훈육을 받았다는 것에 잔뜩 겁먹고 있었다. 뭘 했냐고 물었더니 전자총을 내밀었다. 총알 없이 레이저 빛과 소리만 발사되는 장난감이라 시끄러웠던 모양이었다. 보나마나 아래층 여자가 관리실에 전화를 했을 거였다. 기죽어 눈치 보는 아이들에게 밤에는 시끄럽게 하면 안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이런 상황을 만든 건 어른들 탓이지 아이들 탓은 아니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적당한 선에서 끝내고 헤어져야 하는데, 술자리 감성을 따라간 남편 탓이고, 거기에 맞장구쳐서 끊지 못하고 끌려간 내 탓이었다.


엉망이 된 거실을 대강 정리하고 언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갔다. 규원이는 따라가고 쌍둥이는 내가 데리고 재웠다. 잘 시간이 한참 지나서 아이들은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노래방에서 한 잔 하면서 스트레스를 푼 남자들이 들어온 건 자정 가까운 시간이었다. 애들을 언니네 집에서 재우기로 한 것만 알고 있는 남자들은 이후 상황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없다는 것이 남편의 고삐를 풀어버릴 줄은 몰랐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남자들이 집 앞에서 인사말이 길어지는 것이 불안했다. 문을 열고 인사를 하려다가 불길한 직감에 아이들이 잠들어있는 안방으로 들어가 문틈으로 보았다. 현관문이 열리면서 남편이 강권하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예감대로 세 남자가 다시 집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새털같이 많은 날 중에, 이런 날도 있는 거지유. 언제 우덜헌티 이런 자유가 있었슈? 형님들 들와서 한 잔 더 허시고 가뿐허게 잠들먼 좋잖유.”

막무가내로 권하는 남편은 취기로 고향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오죽 외로웠겠나, 오죽 스트레스가 많았겠나, 이해가 되었기 때문에 말릴 수가 없었다. 어차피 저 지경으로 취했을 땐 눈치를 줘도 소용없었다. 오빠네 집에 갔을 때 아내의 혈육을 만난 감격에 저렇게 막무가내로 풀어진 걸 본 이후론 저 정도로 취한 걸 보지 못했다. 말려도 소용없다면 소란만 피울 거여서 나는 궁금증을 누르고 나가지 않고 버텼다. 남편이 손수 술상을 차리는가 싶더니 다시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남편은 엇나가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TV 장식장 서랍을 뒤지더니 거기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포커를 찾아냈다. 세상에 저런 물건이 있었나? 신혼 초기에 친구들 모임 중 하나가 포커를 치며 놀았지만 규원이가 태어난 후론 집에서 그런 걸 한 적이 없었다. 언젠가 해외여행에서 돌아온 친구에게 특이한 모양이라며 포커세트를 선물로 받아왔다고 보여주었던 기억이 났다. 그게 아직도 집안에 있었는지 감쪽같이 몰랐다. 이사를 세 번이나 하면서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나는 아이들에게 보여줄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어떻게 금지시킬까 고민에 빠졌다. 골초였던 남편에게 금연을 시키면서 다시는 무언가를 양보하라는 말은 안하겠다고 약속한 터였다. 모처럼 가까워진 남편들 모임에 찬 물을 끼얹을 수도 없었다. 그 나마 스트레스를 풀만한 관계를 이제 막 시작했는데 그렇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무언가 지혜가 필요했다.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면서 한 번씩 왁자한 웃음소리를 내서 나를 긴장시키다 새벽 3시가 되어서야 헤어졌다. 형부도 앞집 남자도 취하니 아이들 같았다. 그러고 보면 남편만 탓할 일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기왕에 시작된 관계를 끊어버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공조를 해서 브레이크 장치를 마련할까 고민에 빠졌다.


화장실에 들어간 남편이 기척이 없었다.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남편이 변기에 앉은 채 칫솔을 물고 졸고 있었다. 이렇게 취했는데 멀쩡한 척 놀고 있었다니, 무슨 초능력이라도 발휘하고 있었던 건가 묻고 싶었다. 이렇게 취해서 고집을 세우고 강권하여 이웃의 두 형님을 붙들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혹시 이런 걸 술주정, 아니 주사라고 하는 건가?’

순간 마음속에서 날카로운 칼이 일어나는 걸 가까스로 눌렀다. 취한 사람을 붙들고 시비를 걸어봤자 싸움밖에 더 날까 싶어서였다. 그렇게 가볍게 말하고 지나갈 일도 아니었다.


“규원아빠 뭐해요? 정신 차리고, 얼른 씻고 자요.”

게슴츠레 뜬 눈으로 나를 본 남편이 머리를 흔들더니 대답했다.

“어, 어, 알었네에. 내 알어서 헐 거여.”


혀가 꼬여 발음이 뭉겨졌다. 입을 헹구고 비척거리며 걸어 나오더니 거실 소파에 쓰러져 곧바로 잠들었다. 나는 거실탁자를 멀찍이 밀어놓고 소파 등받이를 빼서 바닥에 깔아놓았다. 혹시라도 떨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잠든 남편을 보고 있자니 내 인생이 한심스럽고 비참하게 느껴졌다. 아이와 다름없는 이 남자를 믿고 아이를 셋이나 낳아 이 남자한테 매달려있는 꼴이었다. 쌍둥이 옆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얼마나 코를 고는지 거실이 떠나가는 것처럼 울렸다. 출렁이는 바닷물에 조각배를 띄우고 그 안에 누워있는 것처럼 불안하게 흔들리는, 망막한 밤이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다음 날 눈을 떠보니 대낮이었다. 9시가 되도록 잠을 자다니, 몇 년 만의 일인지 몰랐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해장국을 끓이는데, 위층 언니가 다급한 소식을 알려왔다. 친정어머니가 심장마비로 병원에 실려 갔다는 거였다. 전에도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언니와 형부가 아이들을 맡겨놓고 병원으로 갔다. 마침 토요일이라 다행이었다. 아침을 먹이고 돌아서니 거실이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규원이와 시원이가 형들과 놀면서 흥분해서 분류해놓은 장난감 트레이를 꺼내 쏟아놓고 있었다. 그 중엔 호민이 호영이가 쓰던 블록과 퍼즐도 있어서 아이들이 흥분했다.


컨디션이 좋을 리 없는 남편은 해장국을 한술 뜨고는 나갔다. 약국에 들러 위장약 좀 사먹고 사우나에 가서 마사지를 받아야겠다고. 아이들은 밥은 안 먹고 피자에 치킨 타령을 했다. 모여 있으니까 명절인 줄 아는 모양이었다. 이런 일이 또 있으랴 싶어서 주문해 주려고 전화를 돌렸다. 그런데 자동응답기가 안내하는 오픈 시간에 못 미쳤다. 딱 한군데 상가에 입점한 새로 오픈한 가게에서 전화를 받았다. 예열하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래도 주문해 주었다.


하필 그런 날 주방 정리를 하려고 설거지통에 손을 넣었다가 손을 베었다. 밤 동안 물소리를 낼 수 없어 쌓아두었던 설거지 속에 과도가 들어있는 걸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검지 두 번째 마디에서 솟구치는 피에 개수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 급하게 식초병을 찾아 상처를 소독했지만 밴드만 보면 환장을 하는 아이들 덕분에 싸맬 것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지혈이 되지 않는 손가락을 휴지로 감아쥐고 밴드를 사러 나갔다. 나가면서 아이들에게 집안에서는 절대로, 절대로 뛰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


그것이 문제였을까. 내가 나간 뒤에 아이들이 집안에서 뛰지 않으려고 베란다에서 놀았던 모양이었다. 베란다에서 물 호스를 발견한 윗집 호민이가 화초에 물을 주겠다고 수도꼭지를 틀었고, 그대로 아이들이 물놀이에 빠져든 거였다. 아래층 창문이 열려있어 그 집 베란다로 물이 쏟아진다는 건 아이들 의견으론 생각할 수 없는 차원이었던 것이다.


단지 내엔 약국이 없어서 할 수 없이 한참 걸어 나가서 상가 끝에 있는 약국에 들어갔다. 약을 구입해서 바로 소독하고 아쿠아 밴드를 붙였다. 밴드 하나면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걸 휴지가 피투성이가 되는 줄도 모르고 싸쥐고 나온 상황이 어이없었다. 마음은 바빠도 나온 길이라 세탁물을 찾았다. 슈퍼에 들려 아이들 찬거리를 사들고 오는데 엘리베이터에서 ‘804호는 만행을 반성하라’ 는 글이 적힌 A4 용지를 발견했다. 그 걸 보는 순간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현관문은 열려 있었고, 엉망이 된 집안에 아이들은 무사히 모여 있었다. 나를 발견한 호민이가 후다닥 현관으로 뛰어나오자 아이들도 따라와 옆에 섰다. 뭔 일이 있었던 것인지 물어보았지만 겁에 질린 아이들은 입을 꼭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때 앞집 문이 열리면서 남자가 나왔다. 사안을 파악하느라 미쳐 현관문을 닫지도, 신발을 벗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아이들 대신 앞집 남자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요란한 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들려 내다보니 아래층 여자가 자기 집 창문 밖으로 냄비 뚜껑을 부딪치며 소리를 지르더라는 거였다. 남자가 동영상으로 찍었다며 상황을 보여주었다. 야단도 그런 야단이 없었다. 아래층 여자가 신들린 듯 냄비 뚜껑을 챙챙 부딪치며 ‘경찰을 부른다’고 소리치는 것이 또렷이 들렸다. 집을 비운 이 짧은 시간에 그런 사달이 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인정한다. 먼저 내가 부주의했고, 다음은 아이들이 너무 심한 장난을 했다는 거. 이런 사고가 다시는 나지 않도록 당부했다. 겁먹은 아이들은 눈만 데룩데룩 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무슨 죄인가. 모든 걸 분별할 수 없기에 아이들인 것을. 정작 혼나야 할 것은 어른들이 아닌가. 사고는 정말 눈깜짝할 새에 일어난다. 그래서 아이들끼리 두면 뭔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두 번이나 사고를 치다니 앞이 캄캄하다. 차라리 앞집 남자한테 도움을 청해볼 걸. 그 집엔 밴드 하나쯤은 있었을 텐데. 알았으면 주고도 남을 이웃인데…. 결국 잠시라도 아이들을 방치한 내 탓이었다. 한 편으론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일은 자기가 벌여서 일박이일동안 이런 문제적인 상황들을 만들어놓고 정작 뒤처리는 방관하고 나가버렸으니까.


나는 대역죄인의 심정으로 아래층에 내려갔다. 집은 비어있었다. 인터폰을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마음을 녹여보라고 했던 진희의 말이 생각나서 씁쓸하게 웃었다. 그저 기회가 있으면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 날부터 개운치 않은 불안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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