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후폭풍 - 웰니스아파트 804호

연작소설 <웰니스족 2>

by 힐링가객

* 연작소설 7회차입니다. 연결된 서사의 전편은 여기서 보실 수 있어요. ^^ -> https://brunch.co.kr/@healingsiinger/54







베란다에서 물장난을 했기로서니 무슨 큰 이슈가 될 건 아니었다. 다만 물 호스의 방향이 문제였다. 잠시라도 아이들끼리 방치한 건 사실이었기 때문에 나로선 입이 열 개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호호 형제가 조금 컸다고 눈치를 봤다. 호영이가 동생에게 씩씩대는 걸로 보아 호민이가 먼저 베란다에 나가서 호스를 찾아내 물을 틀었던 모양이었다. 찬찬히 살피는 호영이와 달리 호민이는 활달한 장난꾸러기였다. 규원이도 호영이랑 놀 때는 조용하다가 호민이랑 놀 때는 격하게 부딪쳐 울기도 했다. 그러고도 호민이형을 찾는 걸 보면 개구장이들끼리 장난코드가 맞는 모양이지만.

지금껏 아이들이 호호 형제와 함께 만나서 놀아도 화 낼 일이 없었다. 어쩌다 아이들끼리 소소한 다툼이 생길 땐 언니가 지혜롭게 중재했기 때문에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되었다. 호되게 야단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위험을 막으려고 당부한 건데 시무룩해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


마음이 쓰이는 이유가 있었다.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외할머니가 쓰러진 날이었다. 엄마가 없으면 아이들은 저절로 기가 죽는 걸 알면서도 단호하게 훈육할 수밖에 없었다. 안전 확보는 문제가 생겼을 때 즉시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아래층 여자가 엘리베이터에 붙인 격앙된 대자보와 앞집 남자가 보여준 동영상 속의 심벌즈 경고에 너무 놀랐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목소리가 커진 것도 사실이었다. 앞집 남자가 무안한 표정으로 서둘러 인사하고 자리를 피한 것도 내가 감정적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불편해서 그런 것 같았다. 돌이켜 생각하니 또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래층 여자는 혼자 보긴 아까운 인물이었다. 아이들이 베란다에서 물장난을 해서 물이 좀 흘렀다고 치자. 창문에 얼룩밖에 더 생겼을까? 그렇기로서니 냄비 뚜껑을 맞부딪치면서까지 경고를 해야 했을까? 경찰을 부른다고 협박하면서? 주의를 끄는 방법도 참 요란스럽지 않은가? 자기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면서! 입만 열면 우리송이 우리송이 달고 살면서, 남의 아이들에겐 그렇게까지 거칠게 대해야 하는 건가?


나이가 두어 살 더 먹었다고 해도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일 뿐인데, 호영이 호민이를 믿고 나간 나는 얼마나 정신이 없었던 걸까. 규원이에게 먹는 음식을 던지며 놀았냐고 물었을 때 시원이가 피자박스를 잡아당겨서 떨어질까 봐 소파로 옮겼다고 했다. 저런! 소파가 넓긴 하지만 쿠션 때문에 올라가는 순간 뒤집어질 수밖에 없었을 텐데! 콜라 캔은 왜 바닥에 넘어졌냐고 물었지만, 그저 모른다고만 했다. 규원이는 억울한 듯 울먹이면서 동생들을 흘끔거렸다. 규원이의 등을 쓸어주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돌봄은커녕 동생들을 챙겨주길 무언중에 강요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아동심리학에서 첫째 아이를 폐위된 왕이라고 규정한 것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저희들끼리 놀이에 빠져 흥분해서 뛰었다면 콜라 캔이 구르고 피클이 뒤집어져도 몰랐을 거였다. 어쨌든 쌍둥이를 돌보면서 깨끗이 먹고 박스를 치우는 것까지 기대할 순 없는, 그저 개구지게 자라가는 아이들일 뿐이었다. 나는 나대로 뜨거운 박스를 여느라 방심한 사이에 감싸 쥔 휴지를 흠뻑 적시며 피가 뻗쳐 나왔고, 그 와중에도 음료 캔을 잘못 만지면 다칠까봐 거실탁자 위에 나란히 따서 놔주고 서둘러 나간 거였다. 숙취를 풀겠다고 나가서 오도가도 안하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이기지도 못할 거면서 이차 삼차까지 몰아간 지난밤처럼.

호영이와 호민이 규원이 세 아이에게 장난감과 레고 블록을 정리하도록 역할을 나눠주고 나는 거실을 청소했다. 피클 국물이 소파에 엎어져 시큼한 냄새가 났다. 패브릭 소파의 겉싸개를 분리해 쿠션은 건조기에 넣어 열소독을 하고 덮개는 따로 세탁을 했다. 캔이 넘어지면서 흘러나온 콜라가 우드재질로 마감된 바닥에 스며들어 변색이 되었다. 새 집에 여기저기 얼룩이 남는 것이 거슬렸지만 당장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전화도 받지 않고 내려가서 초인종을 눌러도 반응이 없는 걸로 보아 아래층은 비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난리를 친 여자가 언제 들어올지, 감정적으로 격앙된 여자가 또 무슨 트집을 잡을지 불안했다. 어쨌든 언니가 없는 긴 오후 시간을 다섯 아이와 함께 무사히 보내야했다.




유모차에 쌍둥이를 태우고 아이들을 몽땅 데리고 상가로 걸어가서 텀블링 장에 들여보냈다. 다행히 아이들은 언제 뭔 일이 있었나 싶게 신나게 뛰어오르며 놀았다. 나이별 구분이 되어 있어서 쌍둥이는 낮은 곳에서 따로 놀았다. 호민이가 너무 높이 뛰어올라서 부딪치지 않을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묘기를 하듯 앉은 채 뛰어올랐다가 내려오면서 마주보고 웃는 걸 보니 이 쪽에선 가늠이 안 돼도 안전거리는 확보하고 노는 것 같았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뜨거운 사우나에서 땀을 뺀 남편은 빨갛게 상기되어, 취기가 완전히 가셨는지 의심스러운 얼굴로 나타났다. 아빠가 왔다고 흥분한 아이들은 호떡과 와플 아이스크림을 사주자 와와! 환호성을 질렀다. 바삭한 와플 위에 과일과 아이스크림이 듬뿍 올라간 디저트가 눈으로만 먹어도 즐거울만큼 푸짐했다.

아이들이 간식을 먹는 동안 남편이 차를 가지고 왔다. 문자메시지로 남편에게 아이들 데리고 갈만한 곳들을 보냈더니 그 중에 동물카페를 골랐다. 가까운 곳에 유럽마을도 있고 수영장 카페도 있는데, 유럽마을은 예약인원이 마감됐고 수영장은 사람이 너무 많다고 했다.

지난밤의 일로 내가 기분 상한 것도 모르는 눈치 없는 남편은 아이들 다섯과 우리 부부가 타기에 딱 맞은 크기라며 승합차를 자랑스러워했다. 쌍둥이 출산 직전에 갖은 핑계를 동원해서 바꾼 승합차였다. 다른 건 무심한 편인데 유독 차에 욕심을 가진 남편은 기꺼이 투 잡을 뛰기 시작할 만큼 차를 바꾸는데 진심이었다. 그 때 흔쾌하게 동의하지 않았던 나를 의식해서 지금도 차가 잘 쓰이는 날이면 저렇게 우쭐대는 것이다.

동물카페는 호영이 호민이도 처음이라고 했다. 나는 쌍둥이를 챙기고 남편은 세 아이를 데리고 종횡무진 했다. 장난코드가 딱 맞는 사내아이들과 구분해놓은 동물 관을 넘어 다니며 먹이를 주고 동물들에게 장난을 거는 걸 보니 남편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애들을 많이 낳자고 했던 건 저러고 싶어서였나?

구겨졌던 내 마음도 살며시 펴져서 웃음이 나왔다. 사내아이들이 햄스터를 서로 만지려고 품에 안아보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동영상이라도 찍어두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쌍둥이를 챙기느라 여력도 없고, 다친 손이 불편해서 사진 몇 컷 남긴 것이 다였다.


거칠어 보이는 호민이가 제일 드라마틱했다. 어쩌면 저렇게 상냥하고 조심스러울까 싶을 만큼 기니피그를 품에 안고 아기 어르듯 얼러주는 거였다. 저 애는 아마도 동물을 돌보면서 살아도 행복할 것 같았다. 규원이는 겁이 많아서 두 형이 하는 걸 따라 하면서도 얼굴을 멀찍이 피하면서 무서워했다. 의외로 시원이랑 지원이가 겁이 없었다. 특히 조류를 좋아했는데, 날아서 조금씩 자리를 옮겨 다니는 앵무새들을 만지고 싶어 쫓아다녔다.


팔과 양 어깨와 손에 앵무새를 잔뜩 거느린 관리사가 다가와서 시원이의 팔에 앵무새를 옮겨주었다. 주황색과 초록색이 섞여 있어 한 눈에 반할 수밖에 없는 화려한 새였다. 시원이가 너무 신이 나서 입으로 호호 불며 손을 움직이자 앵무새가 포르릉 날아 관리사의 어깨로 돌아가 앉았다. 그러자 시원이가 발을 콩콩 구르고 손을 옴짤 거리며 다시 오라고 새를 불렀다. 마치 새와 이야기를 나누듯 새에게 말을 거는 거였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새가 외면하자 어떻게든 다시 받아보려고 두 손을 모으고 관리사를 향해 애교를 부리며 ‘듀셰여’를 반복했다. 관리사가 시원이의 팔에 다시 앵무새를 옮겨주었다. 시원이의 입이 하 벌어지며 새가 날아가 버릴까봐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움직이지 않으려고 참고 있는 모습이 마치 웃는 로봇처럼 엉거주춤해서 나도 모르게 폭소가 터졌다. 정말 너무 귀여웠다.


이렇게 좋아하는 줄 알았으니 자주 좀 데려오자고 다짐을 했다. 물안개 같은 행복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이 찬란한 순간이 너무 소중해서 눈물을 찔끔거리면서도 아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호영이는 아까부터 토끼에게 당근을 먹이며 몰입하고 있었다. 보석 같은 토끼의 눈과 멋들어지게 쫑긋 세우고 있는 귀와 당근을 먹는 입모양이 신비로운 모양이었다. 지원이는 당차게 양 손을 내밀어 앵무새 두 마리를 옮겨 받았다가 생각보다 억세게 손목을 죄는 새의 발톱에 놀라 뿌리쳤다. 울음을 터뜨리지 않고 다시 달라고 손을 내밀더니 두 번째는 뿌리치지 않았다.

가슴이 청색빛깔인 사랑 앵무는 노란색 머리에 파란색 부리를 가지고 있었다. 우아한 꼬리 깃에 무늬가 들어가 있어서 멋스러운 모델 같았다. 지원이의 손목에 앉았던 앵무새를 내가 손으로 받아서 지원이의 어깨에 올려주었다. 거기가 편한지, 새가 꽤 오래 앉아있었다. 어깨의 느낌이 간지러운지 살며시 움츠리자 새가 발을 옮겨 다른 어깨에 앉는 거였다. 그 순간 날아가는 줄 알았던 지원이가 와하, 감탄했다. 새를 보려고 목을 움츠리고 얼굴을 돌리자 날아가버렸다.


관리사가 와서 앵무새에게 먹이 주는 방법을 알려줬다. 입장하면서 받은 먹이를 손바닥에 덜어놓자 연이어 한 알씩 쪼아 먹었다. 내가 하는 걸 보고 아이들이 '나두! 나두!'를 외치며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에 모이를 놓아주자 앵무새가 꼬리깃을 흔들며 손바닥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지원이가 놀라서 손을 뺐다. 앵무새는 시원이의 손에 있는 먹이를 콕콕 쪼아 먹었다. 부리가 손바닥에 닿는 느낌이 재밌는지 시원이가 까르르 웃었다. 지원이도 용기를 내어 다시 손을 내밀었다. 관리사가 웃으면서 앵무새 한마리를 더 내려놓았다. 두 아이가 모이를 먹이느라 몰입하는 모습을 휴대폰으로 찍었다.


나와 쌍둥이는 멀리까지 다니기 힘들어서 조류 관에 머물렀다. 엄청 큰 새도 있었는데, 관리사가 바빠서 이름을 물어보지 못했다. 한 곳이라도 충분히 감상하고 다음 기회로 미뤘다. 모두 만족한 놀이여서 호영이 호민이도 얼굴이 밝았다. 기본 음료를 받아놓고도 또 동물 관으로 돌아가서 남편과 함께 파충류관까지 보고 왔다. 결국 추가 요금을 물었다. 하루종일 뭔가를 챙겨먹을 시간이 없어 기진맥진 했던 나는 디저트를 주문해서 쌍둥이와 함께 먹었다. 당근케이크와 스콘이 먹을 만했다.


계획대로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저녁까지 먹고 집에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선 아이들이 모두 잠들었다. 물난리로 야단도 맞고 텀블링 방에 동물카페까지 갔으니 고단할 만도 했다. 잊기 전에 전달하려고 남편에게 말했다.


“애들이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는데, 선택을 잘 한 것 같아. 종종 와도 좋을 듯. 지원이랑 시원이는 오늘 조류 관 밖에 못 봤거든”

“아마 없어질걸? 대충 뉴스에서 봤었는데, 여긴 좀 규모가 있어서 당장 폐업하진 않겠지만.”

남편이 심드렁하게 받았다. 아까는 그렇게 좋아하면서 아이들보다 더 신나서 놀던 사람이 뭔 일인가 싶었다.

“왜? 환경도 괜찮고 관리사까지 있던데, 동물카페에서 뭔 일이 있었어?”

“동물학대라는 의견도 있고, 폐업할 때 방치하는 사례들이 있었나 봐. 말이 많았더라고.”

“그렇구나. 그럼 동물원에 가야 보겠네? 여기 문 닫기 전에 최대한 자주 와서 보여줘야겠다.”

남편도 동의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은 동물카페에 데려가자고 약속했다. 오늘처럼 호호 형제도 같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아래층에 내려갔다. 초인종 소리에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이젠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일 아이들을 몰고 바깥 활동을 해서 그런지, 체력이 바닥이었다. 쌍둥이를 쫓아다니느라 발바닥이 시큰거리고 고관절이 뻑뻑했다. 생각해보니 혈압 약을 챙겨먹지 않았다. 백년처럼 긴 하루였다.


솔직히 그 날 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호호형제를 재워야 하나 싶어서 위층에 함께 올라가서 잠자리 옷을 챙겨서 내려왔다. 씻고 나온 아이들이 다시 놀고 싶어 했지만 허락하지 않았다. 잠이 올 때까지 책을 읽도록 했더니 사내아이 셋이 과학 동화를 골랐다. 나도 쌍둥이를 재우려고 책을 읽어주는데 위층 언니와 형부가 돌아왔다.

마음이 복잡할 것 같아 언니에겐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언니의 친정엄마는 증상을 인지하자마자 즉시 독거노인 케어콜 호출을 눌러 출동서비스를 받은 덕분에 위기를 잘 넘겼다고 했다. 검사 결과를 보고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면 며칠 지켜보다 퇴원할 수도 있다고. 그나마 다행이었다. 엄마가 며칠 동안 찾아가지 않으면 실망할 것 같아서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까지 뵙고 왔다고 했다.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갔다. 긴 하루였지만 언니에게 도움이 된 것 같아서 마음은 뿌듯했다.




일촉즉발의 긴장이 흐르는 공간에서 나와 아이들은 매일 집 밖으로 소풍을 나갔다. 한참 전에 말복이 지났지만 한낮엔 여전히 찌는 듯 더웠다. 집에 돌아오면 규원이가 입술에 검지를 올려붙이고 쌍둥이에게 쉿! 쉿! 했다. 쌍둥이도 따라서 조금만 소리가 나도 지들끼리 쉿! 쉿! 하며 조심했다. 사고를 통해 배웠으니 다행이긴 한데, 언제까지 욕구를 억누른 채 살아갈 수 있을지, 중요한 성장기에 아이들이 그래야만 하는 것인지 웃픈 현실이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옛 버릇이 도졌다. 휴대폰으로 경매 사이트를 틈틈이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아이들 마음이 멍들기 전에 시흥으로 돌아오라고 했던 진희의 목소리가 귓속에 자리를 잡고 틈만 나면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시흥에서 살 때가 인간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디든 여기보단 나을 것 같았다. 이렇게 불편하게 사느니 이곳을 떠나는 편이 나았다. 기획 신도시라고 부푼 마음으로 입주했지만, 그것도 다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지체하지 말고 옮겨야 마땅했다. 꼭 이 아파트가 아니라도 1층을 구해보자고 다짐했다.


물건은 많았다. 하지만 덩어리가 큰 상가나 대지 혹은 산이나 농지들이었다. 평수가 작은 다세대주택도 간간히 보였다. 하지만 세 아이와 함께 지내기엔 너무 작았다. 잠에서 막 깨어났을 때나 졸리울 때 아직도 행동이 둔하고 불안정한 시원이가 여기저기 부딪힐 것 같아서 건너 뛰었다. 마음을 당기는 곳도 있었다. 도시에서 적절한 거리에 있는 농가였다. N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지도로 주변을 확인할 수 있어서 눈알이 빠질 만큼 궁리하며 들여다보았다. 푸른 골짜기에 아이들을 풀어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껏 뛰고 소리 지르며 개와 닭과 토끼도 기르면서. 하지만 그런 건 이상적인 소망일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다 대단해보였다. 초월적인 의식으로 이미 그런 환경을 개척해나가는 귀농 유튜버의 삶에 마음을 뺏겨서 잠든 아이들 곁에서 야간모드로 방송을 보다가 꿈을 꾸며 잠들었다.

다음 날 규원이가 등원도 하기 전에 인터폰이 울렸다. 아래층 여자인가 싶어서 긴장했는데 김밥 먹으러 오라는 위층 언니의 호출이었다. 규원이를 보내놓고 쌍둥이를 데리고 올라갔다. 언니가 꼬마김밥과 함께 단호박과 팽이버섯을 넣고 끓인 미소된장국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참기름 냄새가 고소한 꼬마 김밥을 한입크기로 썰어놓자 색감이 너무 예뻤다. 재료들을 어찌나 가늘게 썰어 넣었는지 앙증맞은 미니어처 장식품처럼 보였다. 지단에 깻잎을 깔고 양념한 밥을 싸서 부추로 묶은 지단말이밥은 맛이 부드럽고 고소했다. 손가락 길이인데 지원이가 자르지 않은 걸 들고 베어 먹었다. 뭔 잔치냐고 물었더니 급할 때 아이들을 맡아줘서 고맙다고 일부러 준비했다는 거였다.

언니의 김밥은 밥알이 알맞게 말랑하면서도 뭉겨지지 않게 고슬거려서 맛있다. 커다란 접시에 쌓여있던 김밥이 순식간에 비워졌다. 김밥용으로 밥을 할 때는 식초를 한 스푼 넣어서 한다는데, 식초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단 호박이 들어간 버섯된장국도 맛이 좋았다. 된장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들큰한 국물이 입에 맞는 듯 두 아이가 정신없이 마셨다. 보이는 재료는 간단한데 이렇게 깊은 맛이 나는 건 언니의 비법육수 때문일 거였다. 국물맛을 감상하고 있는데, 호민이 호영이에게 이야기를 들었다며 뭔 일이 있었던 거냐고 언니가 물었다. 결국 이야기하게 되는구나 싶어서 나는 대강 설명했다. 이미 지나간 일을 두고 언니의 마음이 상하지 않았으면 했다.


“괜히 규원엄마 고생만 시켰네. 녀석들 동생들 챙기면서 잘 좀 있지 하필 그럴 때 일을 저질러서는.”

“아이들이 본 건 있어서, 화초에 물을 주려고 했던 거래요. 충분히 설명하고 당부 했으니 다시 혼내진 마세요.”

“잘 했어. 즉석에서 이야기해야지 지나가면 못 가르치잖아. 그나저나 다친 손은 괜찮아?”

“그럼요. 잘 붙고 있어요.”

“다행이야. 아래층 여자는 만나봤고?”

“웬걸요. 그 날 몇 번이나 내려갔었는데, 없더라고요.”

언니는 가만히 나를 건너다보더니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내가 만나볼까? 우리 아이들이 시작한 거니까, 설명도 하고 오해라도 풀게.”

“에이 그건 아니죠. 동생들이 흥분해서 서로 호스를 잡아보려다가 그런 거잖아요. 하지만 그 여잘 만날 수만 있다면 사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것도 좋지요.”

이틀 후에 언니가 친정엄마 퇴원시키러 다녀와서 집에 들렀다. 혹시나 늦어지면 호민이 호영이를 봐달라고 해서 긴장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일찍 돌아왔다. 응급처치와 진료를 받고 퇴원을 원하셔서 집으로 모셔오려고 했지만 엄마가 거절을 하셨다고 한다. 혼자서 일상을 유지하면서 남편을 보러가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평안하다고. 가까운 것 같아도 모르는 것투성이라 언니의 이야기에 놀랐다. 특히 너무도 이성적인 어르신의 현명함과 기민함에 보탤 말이 없었다. 언니가 엄마한테 듣고 온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해주었다.


“어차피 각자의 몫이 있는 것 아니겠니? 아직 나는 스스로 돌볼 수 있단다. 보호자한테 연락을 해야 한다고 해서 불렀지만 이제 괜찮아. 네 아버지 돌보는 동안은 살아낼 거야. 내 몫을 다하고 나면 그 땐 떠나도 좋겠지.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내 증상은 내가 아니까.”

얼굴을 뵌 적은 없지만 언니의 친정엄마여서 그런지 참으로 어르신다운 말씀이라고 느꼈다. 생을 달관하신 분의 유연함. 나도 엄마를 보내드렸지만, 언니 또한 부모님의 질환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구나 짐작했다. 친정아버지가 요양원에 계시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된 이야기였다. 집과 가까운 곳에 모셔서 엄마가 하루에 한 번 혹은 이틀에 한 번씩 아버지께 다녀온다는 거였다. 혼자 살면서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남편을 돌보고 계시다는 건데, 그런 힘든 생활을 감내하시는 노부부의 심정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언니 말로는 부모님이 원하신 대로 진행하신 거여서 어떤 참견도 여지가 없었다고 한다. 다행히 지자체에서 독거노인 케어콜을 지원해주고 정기적으로 사회복지사를 파견해 건강을 체크하고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덕분에 엄마가 혼자 심장마비 증상을 자각하고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출동서비스를 받으셨다는 거였다.





오빠가 보내준 택배를 받은 건 언니의 친정엄마가 퇴원한 그 날 저녁이었다. 다행히 곧바로 오빠와 통화가 되었다. 특수작물을 이것저것 시도하는데, 올해는 마 농사를 했고, 잘 된 건 아니지만 먹을 만큼은 나왔다는 거였다. 사먹으려면 비싼 거니까 보내줄 때라도 챙겨먹으라고. 그래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건 오빠뿐이었다. 이렇게 좋은 것 골라 보내고 오빠는 잔챙이 먹을 거냐고 물었더니 오빠가 동문서답을 했다.


“나눠먹어. 몸에 좋은 거여. 임서방도 먹이고.”


진희의 말이 생각났다. 유기농산물이라도 나눠주면서 마음을 녹여보라던. 그래서 크기가 적당하고 깨끗한 것으로 골라서 깨끗한 쇼핑백에 담았다. 아래층에 내려가 벨을 눌렀으나 역시나 반응이 없었다. 어떻게 할까, 서성이며 궁리하다가 집에 올라와 사과의 메시지를 포스트잇에 써서 백에 붙였다. 다시 내려가 아래층 현관 손잡이에 쇼핑백을 걸어놓았다. 포스트잇이 보이도록.


아침에 일어나 우유를 꺼내러 갔을 때 나는 실소했다. 전날 아래층 현관문에 걸어놓았던 백이 포스트잇이 붙여진 채로 우리 집 현관문에 다시 걸려있었다. 거절이었다. 아니, 나와는 관계 자체를 원치 않는다는 표현이었다. 원천차단도 일관성 있게 실행하는 그 여자의 반응이 놀랍지도 않았다.


나는 될수록 집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려고 규원이가 등원할 때 쌍둥이를 데리고 나가서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와 점심을 먹고 다시 나가서 규원이가 올 때까지 상가 뒤편으로 이어진 공원을 전전하다 더우면 상가를 들러서 돌아왔다. 아이들이 피곤하면 한 발짝도 걷지 않기 때문에 유모차를 항상 끌고 다녔고, 집에 들어오면서 단지 내 슈퍼에도 자주 들렀다. 슈퍼집 여자는 여전히 나에겐 반값 세일 상품을 알려주었고, 나는 권하는 것들 중에서 한두 개를 구입했다. 사람이 많지 않은 오전에는 주인여자가 말을 붙여왔다. 어느 날 넌지시 물어보는 거였다.

“아래층 여사님과는 잘 푸셨어요?"

"우리 아래층이요? 사장님도 알고 계셨어요?"

"나도 이때까지 살면서 그럼 사람 첨 봤잖아. 아무리 시끄럽다 그래도 어떻게 냄비 뚜껑을 창밖으로 부딪치면서 경찰을 부른다고 소리 지를 생각을 해? 웬만큼 상식적인 사람은 생각도 할 수 없지. 아파트 전체가 울려서 다들 놀랐을 거야. 앞 동 사람들도 창문 열고 구경한 사람 많았거든.”

심벌즈 사건을 말하는 거였다.

“아 그날요, 우리 위층 언니네 친정엄마가 위급해서 아이들을 맡긴 날이었어요. 우리 아이들이 베란다에서 물장난을 심하게 해서 그런 거죠 뭐. 하필 그날 제가 손을 다쳐서 약국에 나갔다 왔는데, 딱 그사이에 그 일이 벌어진 거였어요.”

“아유, 양쪽 말 다 들어봐야지, 한 쪽 말만 들으면 오해하기 딱 좋지 뭐야. 그 후로 아래층 여사님 매일 운동하던데, 여기도 한 번씩 들르는데, 안 봤으면 모를까, 그 때 그러는 거 보고나선 이상한 성격이구나 조심하고 있지. 그 여사님이, 사람을 긴장시키는 유능한 재주가 있더라고. 유통기한 조사하고 꼭 우리한테 없는 상품만 찾고….”

“그래서 안 계셨군요. 어쩐지 사과하려고 몇 번을 찾아가도 없더니만.”

“쌍둥이 엄마가 갔었구나 그집엘. 그럼 그렇지. 여사님 말로는 사과도 한 번 없다 하더니 사실이 아니었네.”

“제가 유기농산물 봉투에 사과드린다고 메시지까지 써붙여서 아랫집 현관문에 걸어놓기도 했어요. 다음날 우리 집 현관문에 걸려있었지만요. 거절도 일관성 있게 하시더라구요”

“알만하네. 그러고도 남을 성격이야. 애들 키우면서 사는 모양이 다 그런 거지. 뭐 시끄럽고 환경이 불결해서 피해가 극심하다는데. 자기 기준에 안 맞는다고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안 그래요? 암튼 다둥이 엄마가 고생이 많겠어.”

덕분에 여자가 집을 비운 이유를 알았다. 나도 모르게 쓴 웃음이 나왔다. 그런 줄도 모르고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고 날도 더운데 집밖으로 나가서 배회를 했던 거였다. 서로 부딪치지 않으려고 밖으로 돌았다니. 터놓고 대화로 타협점을 찾으면 될 일을 왜 그렇게 사과도 안 받고 엇나가는 건지. 그 여자의 심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는 못해도 여자의 근황을 알 수는 있는 바늘구멍만한 틈은 확보한 셈이었다.






그 일 이후로 나는 조금 긴장이 풀렸다. 그 여자의 성격을 관찰하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사과를 해도 받아주지 않는 이웃에게 더 이상 어떤 노력을 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처음부터 내 방법이 잘못된 거였다. 무시를 하던지 똑같이 민감하게 굴던지. 하지만 전자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후자는 그렇게 신경쓸만한 여력이 없었다. 나는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자고 마음을 매만졌다.


그런데 전략을 바꾼 것은 나뿐이 아닌 모양이었다. 드디어 가시 같은 까탈레나 본연의 반응이 시작되었다. 무엇이 여자를 자극했는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걸 시비걸기 시작했다. 긴장과 스트레스도 평소수준으로 돌아왔다. 어떤 면에선 반응이 없는 긴장보다 차라리 안도가 되었다. 그런 마음이 드는 나 스스로에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여자에게 내가 길들여진 건지도 몰랐다.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여자가 인터폰으로 지적을 하면 어쨌든 여자의 영향권 아래 있는 느낌을 걷어낼 수 없었다. 기분이 상하고 움츠러드니까. 하지만 그런 내 자신의 모습도 갈수록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이 소리 무슨 소리죠? 이렇게 뛰기엔 너무 이른 시간 아니에요?”

늦잠을 잔 규원이가 욕실로 뛰어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인터폰을 걸어온 것이다. 코가 막혀서 칭얼대는 시원이 때문에 밤새 잠을 못자 온 몸이 무거운데, 전화를 받고 보니 잠이 확 달아났다. 볶아놓은 야채들을 넣고 김자반과 지리멸치볶음을 넣어 주먹밥을 만들던 손에서 위생비닐장갑을 벗었다.

“저기요. 일부러 시비 걸려고 작정하고 있나 봐요. 나도 알아요. 지금은 아침이고, 우리 큰 애가 늦어서 거실에서 욕실까지 뛰어갔어요. 바쁘면 아이들이 잠깐 뛸 수도 있는 거지,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유난을 떨어요? 좋게 말할 때 정도껏 하세요.”

분을 누르고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부러 쾅쾅 구르고 뛰어다녔으면서 지금껏 참은 게 얼만데, 정도껏 하래? 당신이 ….”


여기까지 듣고 전화를 내려놓았다. 당장 뛰어 내려가고 싶었지만 우선은 어린이집 차 시간이 바듯했다. 전화는 또 올 거였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규원이를 독촉했다. 차가 올 시간까지 20여분 동안 밥도 먹여야 하고 옷과 가방도 챙겨줘야 했다. 빛의 속도로 주먹밥을 마저 만들어 먹이고 아이들을 준비시켰다. 세 아이를 데리고 규원이를 등원시키러 내려갔다. 규원이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는데 양손을 잡고 있던 아이들이 손을 빼려고 몸을 비틀었다. 어디로 뛸지 몰라서 시원이의 손을 단단히 붙잡고 지원이를 놓아주었다.


알림 내용을 잘 전달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는 동안 지원이가 아파트 공용현관 쪽으로 걸어가는 게 보였다. 시원이도 빠져나가려고 앙탈을 부려서 시원이를 안아 올렸다. 내가 지원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자 선생님이 서둘러 말을 마치고 인사했다.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돌아섰을 때였다. 공용 현관문에 다가선 지원이가 위험해 보여서 지원이를 불렀다. 문이 열리면서 키가 큰 여자가 아이를 안고 나왔다. 순간 지원이가 넘어졌다. 부딪친 것인지 내가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다 혼자 넘어진 것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넘어진 지원이를 본 여자가 얼굴을 휙 돌리는 것이 아닌가. 더 기막힌 건 지원이를 일으켜주기는커녕 환하게 웃고 있다는 거였다. 아래층 여자였다.


“야, 너 뭐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내 얼굴을 알아본 여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지원이를 일으켜주나 싶었는데, 아이를 안은 채 반대편 주차장 쪽으로 뛰어가는 것이 아닌가. 달려가 울고 있는 지원이를 일으켜 안고 여자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속에서 뻗쳐오르는 열에 심장이 조여들면서 목이 뻣뻣해졌다.


‘저게 진짜 미친 거 아냐?’


나도 모르게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사이 차는 떠나고 자모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여자가 웃었던 것이 무슨 의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방금 전에 통화하면서 억지를 부리던 그 여자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지원이를 알아보고 일부러 넘어지게 한 건가? 설마? 아이가 넘어지도록 몸을 부딪혔다고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 듯 얼굴이 뜨거워졌다.













* 연작소설 웰니스아파트 804호편을 구독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브런치북 <웰니스아파트704호>편을 보시면 연결된 서사와 갈등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 라이킷과 텍스트 공유 및 댓글로 응원해주시면, 더 열심히 쓰고 발행하겠습니다.

keyword
이전 07화6. 베란다 물난리 -웰니스아파트 80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