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썸도 민원처리했을까

사람들에겐 암호가 있고, 나에겐 민원처리반이 있었다.

by yeon



민원 접수


“누나는 귀엽지만 내 이상형은 아냐.”


내 미니홈피에 새로 쓰인 일촌평은
수수께끼 같은 말이었다.

그 시절, 2000년대.
SNS가 생기기 전에는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유행했다.
친한 사이라면 서로의 대문에
일촌평을 남기며 친분을 과시하곤 했다.

나는 동호회에서 비교적 친해진,
나보다 한 살 적은 남자 멤버에게 일촌평을 부탁했다.
그는 친절했다.

그래서일까.
그가 남긴 문장은 더 모호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 문구를 열심히 파헤쳤다.

‘이상형이 아니면 아닌 거지,

대체 왜 내 홈피에 본인 취향을 써 놓은 거야?’

이유를 추정했다.


일촌평에 쓸 말이 떠오르지 않았나?
써 달라고 한 게 불만이었나?
아니면 “꿈 깨”란 말인 건가?

나는 결국 궁금함을 못 참고
그의 미니홈피 방명록에 물었다.
무슨 뜻이냐고.


그는 답이 없었다.

못 봤나 싶어서,

동호회 모임에서 마주쳤을 때 다시 물었다.

그는 그제야 말했다.


“그냥, 그 말 그대로야. 내 이상형은 따로 있다고~”

“그래? 네 이상형은 어떤 건데?”

나는 그저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었다.
그가 애교 있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던가,
기억은 잘 안 난다.

아무튼 나는 그에게 민원을 넣었다.
일촌평을 고쳐 써 달라고.

민원은 접수만 되고 한참 묵혔다.

그러다 어느 날, 그의 일촌평이 평이하게 바뀌었다.


내용은 싱거웠지만 나는 만족했다.
대문이 깔끔해졌으니까.



예의 있는 답장


내가 잠시 일을 돕던 요가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는 남자분이 요가원을 맡게 되었다며,
내게 요가 수업을 부탁하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겨울이었다. 코감기에 걸렸다.

수업이 없는 오전 시간,
원장은 본인이 그린 청사진을 한참 얘기해 주었다.

내 목소리가 코맹맹이인 걸 알아챈 그는
티슈를 몇 장 뽑아 내밀며 말했다.

“야, 코 막혔네. 코 풀어라.”

나는 티슈를 받아 들고 잠깐 고민했다.

수련실에 나가자니 새침 떠는 느낌이 들고,
문 밖에서 코를 풀자니
안에서 푸는 것과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결론을 냈다.
그 자리에서 해결하기로.

코를 팽하고 풀었다.

원장이 황당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야, 네가 나 안 좋아하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너무한 거 아니냐?”

나는 더 의아해서 되물었다.


“코 풀라면서요~?”


그가 내게 이성적 감정을 가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남자친구가 있었고,
원장과 나는 장난기가 잘 맞는 동료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내가 요가원을 그만두고 며칠 뒤,
원장에게서 문자가 왔다.

“너 내가 좋아한 건 알고 있냐...?”


나는 답을 안 보낼까 하다가,

그래도 ‘읽음’ 표시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읽씹’만큼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소한의 답장을 보냈다.


“음냐음냐~”



8년 후 사건 재조사


나는 한때 무술수련에 심취했다.

느리게 움직이는 수련이라 부담도 없었고, 내게 잘 맞았다.

내가 배우러 다니던 무술 센터는 수강생과 꽤 친화적인 곳이었다.
비슷한 또래의 센터 직원분들과 워크숍을 함께 듣고, 가끔 식사도 했다.
절반쯤은 센터 사람 같은 기분이었다.

거기서 키우는 어린 사범이 있었다.
나보다 네댓 살 어린데, 순수하고 너스레도 잘 떨어서
센터 사람들이 모두 귀여워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주말 워크숍을 듣고 직원들과 저녁을 먹었다.

슬슬 집에 가려고 하는데 어린 사범이 내게 다가왔다.

“누나, 이번에 고질라 영화개봉했대요.

나 고질라 너무 보고 싶어. 같이 보러 가요.”

“지금…?”

시계를 보니 9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늦지 않겠냐는 내 말에 그는 심야 영화를 보면 된다고 했다.

나는 심야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종달새 체질이라서 해가 지면 돌아다니는 것이 몹시 귀찮았다.
게다가 영화관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고질라 같은 괴수가 나오는 장르는 더더욱.

내가 미온적이자 그는 다시 졸랐다.


“그 영화 꼭 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좀 보러 가요, 네?”

다른 센터 분들은 정리할 일이 있다며 웃었다.


“그래요, 연 님. 같이 보고 와요.”

그렇게 등 떠밀려 가게 되었다.


영화관은 거리가 있어서 버스를 탔다.
주말이라 길이 꽤 막혔다.

어린 사범이 차가 막힌다고 불평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영화표를 끊는 일과
끝나고 어떻게 집에 가나 하는 생각이 교차했다.

그는 센터 차가 있으니 그 차로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한참 걸려 도착한 영화관 앞은 조용했다.


마감.


“아ㅡ!! 여기까지 왔는데 마감이라니!!”

어린 사범은 안타까워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속으로 안도했다.


어린 동생에게 매몰차게 거절하지 않으면서
영화를 보는 일도 자연스럽게 스킵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냥 귀가했다.


그리고 어린 사범은 몇 개월 후 타국으로 그 무술 수련을 하러 떠났다.

수년 뒤, 나는 결혼을 앞두고 센터에 들렀다.
청첩장을 전하고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서였다.


마침 그 어린 사범도 잠시 귀국해 있었다.

“누나, 나도 청첩장 줘요.
결혼식 갈게.”

“그래? 고마워. 여기.”

청첩장을 보던 그가 툭 말했다.

“아, 아쉽다.
나 누나 많이 좋아했는데.”


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러다 순간 뇌리에 스친 생각.


“아, 그럼 그래서 너 그때 나한테 영화 보러 가자고 한 거였어?”

그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아니, 몰랐어요?!”


그때의 띵함이란.

심야영화가 영화 때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약 8년여 만에 알았다.

센터 직원들은 다 알고, 나만 몰랐다는 것도.







사람들에겐 암호가 있고,
나에겐 민원처리반과 보안요원반이 있다.

마음동요반(별칭 설렘반)도 있지만
아주 가끔 출동한다.

그래서 나는 대체로

내 썸을 민원처리하곤 했다.


물론 상대방의 의중은 까맣게 모른 채로.







추신.


내게서 미니홈피 일촌평 얘기를 들은 남편의 표정이 변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입매를 한일자로 굳혔다.

‘진짜로 그랬다고?’


그리고,


‘이 못 말리는 사람 좀 보소…’


라는 속내가 보였다.


잘 못 알아듣는 나를 위해
길게 설명한 남편의 평은 한마디로 이렇다.


“아주 센스 있는 일촌평인데,
그걸 단호박으로 묻다니.”


… 이럴 수가.
내 남편도 썸은 못 타는 사람인데.


그런 남편도 이해한 걸,

나는 끝까지 못 알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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