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 한 그릇과 엄마의 미소

운동을 배우다, 인생을 배우다

by 역전의기량

오랜만에 떡국을 먹었더니 배가 쉽게 꺼지질 않는다.
“엄마, 자전거 타면 되겠네.”
혼잣말처럼 웃었다.

자유부인으로 시작했던 월요일이 지나고,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됐다.
며느리가 아닌,
명절마다 혼자 있었던 엄마에게 가기로 했다.

묵은 김치를 챙겨 들었다.
지하철로 두 시간이 넘는 거리.
처음엔 떡국을 끓여 가져갈까 했지만,
이걸 들고 장까지 봐서 끓이면
엄마한테 좋은 소리를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배달을 시켰다.
잘했다.

도착해 문을 열어 달라 했는데
한참 뒤에야 열린다.
다리에 힘이 없어 걷기 힘든 엄마.
휠체어가 친구가 된 지도 오래다.

배달 온 떡국을 그릇에 담아
김치와 함께 드리니 좋아하신다.
따뜻한 떡국 한 그릇과 엄마의 미소.
엄마가 뇌병변 사고를 겪은 지 5년이 넘었다.
혼자 간단히 드실 수는 있지만
명절에 떡국을 드신 지도 오래라 하신다.
양이 많다 했는데
그 많은 걸 다 드셨다. ㅎ

오늘은 날이 제법 따뜻했다.
익숙한 곳만 편해하는 엄마에게
밥도 먹었으니 커피 사드리겠다며 밖으로 나가자 했다.
처음 휠체어를 밀던 날,
운전을 못해 엄마를 넘어뜨리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이젠 남편 없이도 혼자 잘한다.

스타벅스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앙금빵과 커피.
별맛 없는 모녀의 대화가 이어진다.
양쪽 집 시집·장가 못 간 분들 걱정은 왜 그리 많으신지.
시집간 나는 안 보이나. ㅎ

커피를 마시고 공원에 앉아 햇빛을 쬐었다.
친척들에게 안부 전화도 드렸다.
넘어져 수술 후 요양 중인 이모,
큰아버지 돌아가신 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큰엄마,
사업의 고비를 넘기며 살아가는 큰오빠.

말하지 않을 뿐,
사연 없는 집은 없다.

집에 돌아와 엄마 저녁 이야기를 한다.
우리 딸은 저녁도 제때 안 먹는다며,
운동하고 내 밥 먹기 바쁜 내가
엄마 저녁 챙긴다며 못된 건가 싶다.

저녁은 닭볶음탕.
엄마는 반찬이 호사스럽다 하신다.
혼자 드실 땐 김치가 전부였던 것 같다.

설거지하고,
딸기 먹고,
동생이 와서 2차전.

하루 종일 힘드셨던 모양이다.
수제비 끓여달라 하셔서
불까 봐 타이밍을 맞추고 기다렸는데
내 눈앞에서 사라지란다.
쓰레기 버리고 돌아오니 또 한마디.

알고 보니
엄마도 눈치를 보고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신 분 두고
엄마 침대에 누워 있었더니
엄마가 씻지도 않은 내 발을 만지며 말한다.

오래간만이라며.

이제라도
어줍지 않은 책임감을 내려놓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히 드는 설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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