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았던 말들

운동을 배우다, 인생을 배우다

by 역전의기량

초등학교 4학년 겨울,
아빠에게 맞는 엄마에게 도망치라고 말했었다.

그 길로 엄마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엄마는 자신의 삶을 살기보다
힘들게 돈을 벌어 세 자매를 키우는 데 보탰다.

엄마는 잦은 구타로 이미 한쪽 귀는 좋지 않았고
몸도 만신창이였지만,
치료보다 먹고 사는 일이 먼저였다.

엄마가 없는 집.
세 자매는 아빠와 살았고
아빠의 폭력은 딸들에게로 이어졌다.

갈 곳 없던 어린 나이,
맞고도 병원에 가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 쌓인 채
세 자매는 뿔뿔이 흩어졌고,
나는 아빠와 단둘이 살게 되었다.

어른이 되면 돈을 벌 수 있고,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 믿었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곳을 찾아
수없이 이력서를 보내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렇게 시작된 사회생활.
왕복 네 시간의 출퇴근도 신기했고
세상은 넓어 보였다.

하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업무 중 소통을 하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날이면
“죄송합니다”라는 말부터 나왔다.

혹시 나 때문에 일이 늦어진 건 아닐까.
그 죄책감이 나를 가두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오면
화를 내거나,
술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울음으로 하루를 끝내는 날이 많았다.

누가 나를 탓한 적도 없었는데
나는 스스로를 괴롭혔고,
집에서 가장 편한 사람에게
내 안의 무거움을 쏟아내곤 했다.

아마 엄마가 집을 나갔던 나이는 정확히는 기억 안나나 지금의 내 나이쯤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며 더 열심히 달렸는데,
돌아보면 묘하게 닮아 있었다.
화를 내지 않고 오늘 하루를 풀어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참이 지난 후에야,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귀가 안 들려서 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며 말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더 바란다.
내 딸은 나와는 다른 삶을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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