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배우다. 인생을 배우다.
시험에 떨어졌고, 6월엔 이사를 간다.
전력질주하듯 달려온 시간을 뒤로 두고 서 있으니 가슴에 구멍이 난 것 같다.
이 기분은 처음이 아니다.
첫 시험에 떨어졌을 때도, 작년에도 그랬다.
작년엔 그 구멍을 메워보겠다고 바디프로필에 도전했다.
운동도 세게 하고, 식단도 조절하고, 몸을 만들었다.
촬영을 마치고 한 달쯤 쉬었을까.
곧바로 방통대에 들어갔고, 다시 공부하고 일하고 운동하며 살았다.
늘 그렇게, 고. 고. 고.
돌아보니 이 ‘고고고’는 스물두 살부터 시작됐다.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땐 놀고 싶었고, 대학생활도 즐기고 싶었다.
그런데 입학한 지 3개월도 되기 전에 취업했다.
편도 2시간씩 회사와 학교를 오갔고, 어느 것 하나 즐겁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버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야간대학을 다니며 마감업무까지 해냈고,
스물여덟에 처음 유방암 수술을 하고도
마치 여름휴가라도 다녀온 사람처럼 일주일 만에 출근했다.
결혼하면 좀 달라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전문대를 졸업한 뒤 다시 4년 과정을 한다며 야간대학에 들어갔고,
또 다른 회사에서 묵묵히 일했다.
애쓰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났고,
아이를 낳아 상황이 바뀌어도
나는 예전의 나를 버리지 못했다.
습관은 무섭다.
그토록 닮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모습을
어느새 그대로 따라 살고 있었다.
두 번째 유방암 수술을 하고도
엄마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는 이유로 일주일 만에 다시 출근했다.
6개월쯤 지나자 또 예전 습관으로 돌아갔다.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었지만, 세 번째 재발을 의심해야 했다.
나는 또 다른 방식으로 버티고 있었다.
집에 가면 아이는 아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화면속 세상과 대화하고 있었다.
누구 하나를 탓하고 싶다기보다,
같은 공간 안에 있어도 서로 닿지 못하는 기분이 더 힘들었다.
그래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느니
차라리 운동하는 게 낫다고 믿었다.
몸을 움직이고 나면 적어도 잠시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버틸 수는 있었으니까.
지금 돌아보면
나는 게을렀던 적보다 버티던 시간이 더 길었다.
쉬는 법을 몰랐고,
멈추는 건 늘 나중의 일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멈추는 건 무너지는 게 아니라는 걸.
비워두는 건 포기하는 게 아니라는 걸.
버티는 것 말고도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는 걸.
조금 늦었을지라도
이제는 그걸 배워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