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고 소모하지 않는 방식으로

운동을 배우다.인생을 배우다,

by 역전의기량

아빠는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아이는 맵찔이었다.

음식도 살림도 서툰 내가 일을 마치고 집에 와 두 사람 먹을 음식을 준비하던 때가 있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일한다고 해도, 일하고 와서 밥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뿐인가. 집에 들어오는 순간 마주하는 난장판까지.

거기에 어렵게 만든 음식이 기대만큼 맛이 없다는 말이라도 들으면, 지하 옥반수 밑바닥에서부터 화가 끝없이 올라왔다.

조용한 날이 없었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어느 순간 지쳐서 포기했던 걸까.

애쓰고 소모하는 일을 반복하다가, 영종도로 이사 온 지 한 달쯤 지나 다시 재발해 병원에 다니고 치료를 받고, 일하고 운동하며 살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내가 먹는 음식 말고는 남편에게 챙겨달라고 부탁했다.


긴 병에 장사 없다는 말도 있지만, 일만 하던 남편이 음식을 맡는 데도 한계가 없을 수는 없었다.

반찬에 국까지 한 끼 식사를 배달해주는 곳도 시켜봤지만, 우리 집 입맛에 맞지 않을 때가 많았다.

이것도 저것도 안 맞으면 결국 배달음식을 먹는 날이 많아졌다.


감정 소모가 길어지면 카드값이 많이 나온다.

애쓰고 소진하다 보면 결국 돈싸움으로 이어진다.


한동안 미뤄두고 있었다.

그런데 재정관리를 하며 흐름이 정리되기 시작했고, 머리를 비우고 생각하다 보니 결국 먼저 정리되어야 하는 건 내 안의 구조라는 게 보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예전처럼 애쓰고 소모하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저녁 운동을 완전히 안 하는 건 못 하겠어서 짧고 굵게 하기로 했다.

운동 뒤 회복 시간을 충분히 주면 머리도 조금은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입 짧은 아이가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아침,

그리고 내 아침 시간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되는 아침부터 만들어보기로 했다.

아이도 아침을 먹고 가니 좋고, 나도 부담이 덜해 좋았다.


내 아침도 조금 바꿔봤다.

오늘은 귀리 리조또에 카레가루를 섞어봤는데, 아는 맛이지만 기존의 변형이라 괜찮았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출근했다.


월요일답게 하루 종일 바빴다.

작은 실수 하나로도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느꼈다.


저녁에는 운동을 갔다.

지난주에 배운 걸 복습하는 시간이었다.

점프스쿼트로 워밍업을 하고, 콩콩점프를 제법하더니 동서남북 점프까지 시키시는 동쌤 덕분에 점프의 새로운 맛도 알게 됐다.

짝다리 균형을 도와주는 런지점프는 지난주 처음 했을 때는 땀이 소나기처럼 났는데, 오늘은 한 번 해봤다고 조금 덜했다.




프론트스쿼트와 저쳐스쿼트가 비슷하다는 걸 이제야 알았던 기량 언니는 동쌤께 괜히 아는 척도 해봤다.

지난주 수업 때 이야기하지 그랬냐는 말에, 뒷북치는 게 또 나란 사람인가 싶었지만 동시에 제때 이야기하는 법도 연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저쳐스쿼트를 연습하는 걸 동쌤이 찍어주셨다.

잘한다고 칭찬도 듬뿍 주셨다.

마지막으로 한발 힙쓰러스트를 하는데 둔근에 불나는 걸 느끼고, 러닝 2K로 운동을 마무리했다.


집에 갔더니 변변한 반찬이 없다며 저녁을 대충 먹었다는 윤씨 부녀는 치킨이 먹고 싶다고 했다.

잔소리 한 번 하고 결국 치킨을 주문해 같이 먹었다.

그런데 각자 핸드폰을 보며 먹는 모습을 보니,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것도 조금씩 변화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도 미리 만들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장 다 바꾸겠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지치지 않는 선에서, 애쓰고 소모하지 않는 방식으로, 하나씩 해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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