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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전의기량 May 23. 2021

경력단절 엄마의 비애

고집불통 엄마의 어른 연습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 만원을 벌더라도 그 일은 안 하면 안 되겠니?



내 나이 마흔  나는 2년 차 경력 단절 엄마가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시작한 사회생활의 종착지가 초등학교 가는 아이로 인해  경력 단절의 시작되었다.  


나는  아이를 낳고  아이를 봐주던 엄마가 몸도 안 좋으셨고 내가  엄마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기에  친정집으로  가서 사시겠다는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1학년과  학부형이 되어 다니는 초등학교 1학년은 세월의 깊이가 달랐고 뭐부터 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집에서 아이를 봐주는 사람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내 일만 고집할 수는 없었다.  일을 쉬기 시작하면서 남편도 엄마도 내가 이렇게까지 오래 쉴 거라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18년 일하는 동안 잠깐씩 한 달 두 달 정도 쉬던 때는 있었지만 바로 또 어떻게든 일을 구해서 일했던 아이였기 때문에  금세 또 일을 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지나고 보면 난 고등학교 졸업하고 지금껏 쉼 없이 일해온 세월에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일은 내 마음대로  안된다 했던가?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던  쉼의 시작은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게 뒤엉켜 버렸다.  초등학교의  설렘을 가지고 있었던 아이는  초등학교 문턱도 제대로 가본 것이  손에 꼽을 정도이고  하루 24시간을 온종일 집에서 나와 있게 되었다.


 일하느라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만 먹었던 나는  집에 있으면서  국이며 반찬을 하기 시작했는데   직접 해보니  엄마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아이와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싸우기도 엄청 싸웠다.    


EBS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학교에 가질 않으니 제때 듣지 못하는 날이 다반사고 학교에서 하는 일은 다 해야 되는 것이라 생각한 엄마는 아이랑 지지고 볶는 날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도 잠시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하나둘씩 내려두니  나아지기 시작했다. 서툴고 모자랐던 반찬 만들기부터 아이와의 대화 시간까지  뭐 100%를 잘할 순 없고 아직도  잘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전보다 나아졌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아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집이나   똑같겠지만 우리 집에도 마찬가지 수입이 문제였다. 맞벌이하면서도 근근이 먹고살았던 집이 둘 중에 한 명만 버는데 어찌 살 수 있었을까?   둘이 벌었을 땐  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 자금 대출 원리금 상환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 사람이 버는 돈으로   수입에  상당 부분을 차치하는 대출금까지 상환하니  한 달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불가분 한 상황이 발생하면 달려가야 하기 때문에 돈이 부족했지만 당장 아이를  맡길 곳이 없으니 일을 시작할 수도 없었다.   코로나가 나아지면 일자리를 구해 보는 것으로 하고 당장 방법이 없어  종신보험 주계약을 금액을 줄여서  생활하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백신이 생기고  코로나 확진자가 줄어 들것이라 생각했지만  세상일은  생각만큼 되지  않았다.  


그러다 우리 집에  청지 개벽 같은 일이 발생하고 만다.  종신보험 해지해서 받은 돈도 점점 줄어가고 남편이 어느 날 나한테 묻는다.  


우리 아파트 들어가려면 얼마의 돈이 필요하지?  


XX 이만큼 대출 더 받아야 돼.!!  

머? 진짜!!

그동안 내가  남편이 주는 돈으로 생활은 하고 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돈이 부족하다는 것을 이야기했지만 남편은 이 정도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파트를 살리기 위해서 얼마의 돈이 언제까지 필요한 것을 정리해서 보내주고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자는 의미로  집안의 가정경제에 대해  보내 주었다.  통장을 각각으로 쓰고 있었던 우리 집 그 덕에 돈이 어디서 새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고 지출이 되고 있지만  돈이 적합하게 지출이 되고 있었는지 모르고 돈만 쓰고 있었다.


통장이 텅장이 된 것을  이제야 확실히 안 남편

난 10년 동안 벌어서 너 갖다 줬어!!

아파트를 이사 못 갈 것 같다는 것에 체념하면서  한숨만 쉬는 남편은 나한테 이야기했다. 월급만으로 세상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진즉에 알았다면,  아이에게 조금은 부족하게라도  학교 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알았다면 내가 일자리를 포기 않고 어떻게든 버텼을 것이다.  


그뿐만이던가,  28살에 처음 유방암 수술을 할 때도 그랬다. 28살에 유방암 수술을 하면서도 실손보험이 없었기 때문에 종신보험으로  병원비를 충당해야만 했다.   


중증 특례로  병원비는 많이 나오지 않아서 보험에서 해결이 되었지만  암수술받으면 얼마 정도 회복기간이  필요했다.   암 수술 이전에도 나는 맘모톰 수술이며 전신 마취로 수술을 받아본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회복기간이 있어야만 했는데 보험에서 나온 돈으로 병원비를 충당하니  생활비로 쓸 돈이 여력치 않아   암 수술  일주일 후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출퇴근 시간이 2시간 걸림에도  회사 다니면서 대학을  졸업했고 먹고사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안에 나를 바라보는 나만의 삶은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먹고살기가 바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았었으니 36살에  두 번째 유방암 수술을 받게 되었다.   


청천벽력 같은 사실 ,  돈을 벌어 모을 때쯤 되면  첫 번째 유방암 수술 후에도 갑상선 수술 및  맘모톰 수술을 하니 벌어둔 돈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고 애가 태어나면서  엄마와 같이 사는 동안에는 더구나 돈을 모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철없는 행동을 했던 것이다.  손에 쥔돈은 없는데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일을 쉬겠다고 한 것 보면 말이다.   


물론, 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양한 강의도 많이 들을 수 있었고  그동안 일하면서 해보지 못한 공부도 많이 할 수 있었다.  내 전공을 살려서 초보창업자를 위한 전자책도 만들었다. 책도 100권 이상 읽고 쓰며 브런치 작가도 되었다.  


그뿐인가  작게 소모임도 운영해보고   창업자분들을 위한 블로그도 운영 중이다.  똥 손이 요리도 하면서 요리 블로그도 하고 있으니 참 많은 것들을 이루었다.   시간이 헛되지는 않지만 이 모든 것들이  당장의 수익은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을 이루면서도 일자리를 구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집안일을 하며 엄마라는 사람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는  아이가 학교 가면 집에 올 때까지 시간제 업무를 구하던가 아니면  집 근처에  회사를 구해야 하는데  수없이 많은 곳에 이력서를 보냈지만 나한테 맞는 곳은 없었다.   


회계업무라는 것이 월말에는 마감을 치고 연말에는 감사 준비로  야근을 불가피하게 해야만 한다.   신입도 아니고 경력자가  아이를 본다고 집에 가야 한다면 어느 회사에서 나를 봐줄 수 있을까?  내가 일했던 업종에 맞는 회사는 찾을 수 없고 일해보지 않은 회사는   경험이 없으니 나를 찾지 않는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세상을 보며 먼저 준비했다면 지금의 나 같은 상황도 해쳐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모른다.  안타깝게도 먼저 알지 못했다.  


늦게 알았어서 지금이나마  제대로 살고 싶어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아이 학교 가면서 올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이고 모르면 몰랐지만 알면 알수록 배우고 싶은 일 그러나  해보지 않은 일이라고 어느 누구에게 반기지 못했다.  


남편이며 시어머니까지  코로나가 잦아들면 하던 일 할 수 있을 텐데 왜  그 일을 하냐부터  별의별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집안의 여자가  남자가 벌어다 준 돈으로 모아서  잘 살았으면  살림이 불어야 하는데  왜 살면 살수록 마이너스냐는 소리까지 듣다 보니 왜 살아야 하나 싶었다.  


눈물로 하루를 지나 보니  

TV에서  드라마가 나온다. 오케이 광자 매

광자 돌림  세 자매의 웃픈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집 큰 딸 이야기에 마음이 저려왔다.


변호사 남편만 바라보고 살림 살던 큰딸,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남편만 보다 살다 남편의 외도 소식에 이혼한다.  이혼하고 받은 위자료는 3천만 원 딸의 이혼 소식을 들은 아빠는 딸이 안타까워서 눈물만 흘린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집에서 살림만 살던  큰딸은  당당하게 이혼하고 나왔지만  회사 사무직도  식당 아줌마도 적응을 하지 못하고 나온다.   어디도 받아주지 않은 것에 눈물 흘린다.




 

어찌 보면 시어머니도 걱정하는 마음에서 전화하셨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할수 있는 최선의 상황에서 버티고 있는 나에게 아들 생각하며 이야기 하시는 것이 몹시도 서운하고 속이 상했었다.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나에게  힘든 상황에서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 너를 믿고 조금만 더 해봐.라고 말해 주길  원했는지 모른다.    번일을 겪고 나니 더구나 다른사람에게 들으려 하기 보다  나에게 먼저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잘못이 아니라
몰라서 그랬을 뿐이라고......  
  
조금만 더 노력해보자.
어느 누구도 아닌 나의 인생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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