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브스턴스>는 외적 결핍이 어떻게 인간의 본질을 파괴하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스크린 속 기괴한 잔상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내 삶 또한 그 영화만큼이나 치열한 '본체'와 '껍데기' 사이의 전쟁터였기 때문이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미쉐린 타이어 캐릭터처럼 올록볼록하고 건장한 아기였다. 천하장사처럼 하체가 튼튼한 아이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내가 그저 복스럽게 잘 먹는 아이인 줄로만 알았다.
"너는 2살 때부터 밥알을 씹어 먹을 정도로 잘 먹었어. 정말 타고났었지."
엄마의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돌이켜보면 그 왕성한 식욕은 단순한 식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내 몸 안 어딘가에는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이 깊숙이 쌓여 있었다. 엄격한 부모님의 훈육 아래 억눌렸던 욕구들, 학교생활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형언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나는 '먹는 행위'로 잠재웠다. 나에게 음식은 영양분이 아니라, 마음의 구멍을 메우는 시멘트와 같았다.
중학교 시절, 엄마가 쥐여준 학원비와 용돈을 들고 수업이 끝나면 나는 거의 습관처럼 분식집으로 향했다. 매일같이 사 먹던 떡볶이는 내게 가장 값싸고 확실한 위로였다. 1,000원짜리 탐스러운 빨간 떡볶이를 넘기며 나는 하루의 고단함을 잊었다.
가끔은 컵떡볶이를 사 들고 집으로 오는 길, 길모퉁이에서 엄마를 마주칠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렇게 길에서 먹으면 보기 안 좋아. 그리고 살찐다.”
엄마의 그 말은 걱정 어린 충고였겠지만, 그때의 나에겐 날카로운 칼날처럼 가슴을 후벼 팠다. 위장이 아니라 마음이 불러야만 그날이 끝났다고 믿었던 소녀는 그렇게 떡볶이 1인분이 2인분이 되고, 내 몸도 국물에 불어 터진 밀떡처럼 서서히 부풀어 올라 고등학교 시절 인생 최대 몸무게인 71kg을 찍고야 말았다.
지금도 나에게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기묘한 습관이 하나 있다.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마지막까지 아껴두었다가 먹는 것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계란 프라이를 먹을 때면, 가장 맛있는 흰자 끝부분이나 노른자 주변 한 점을 필사적으로 남겨둔다. 처음 그 모습을 본 남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어? 계란 프라이 왜 반을 안 먹고 남겨둬?" 그럴 때면 곁에 있던 엄마가 익숙한 듯 한술 더 뜨신다.
"아, 우리 사위 몰랐구나. 우리 딸은 아껴 먹는 거야. 마지막 입가심이라나? 호호."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지지만,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마지막 조각을 입에 넣는다. 사실 그 마지막 한 점은 단순한 식습관이 아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내 몫의 행복'을 필사적으로 붙잡아두려는 불안한 본능이었다. 가장 맛있는 순간을 끝까지 유예해야만 비로소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상받았다'는 안도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그 집념으로 공부를 했으면 서울대에 갔을 거라고 농담하시지만, 그 지독한 에너지는 공부가 아닌 식탐으로 향했고 결과는 고스란히 살로 갔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나를 예쁘게 꾸미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하지만 엄한 아빠는 귀걸이조차 뚫지 못하게 하셨고, 꾸미는 것은 학생의 본분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엄히 꾸짖으셨다. 억압받을수록 갈망은 커졌다. 나는 몰래 귀찌를 사서 귀에 달고 다니며 금지된 본능을 달랬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귀를 뚫고 짧은 치마를 입는 것이었다. 나를 본 친구들은 "어떻게 참고 살았냐, 대단해."라고 말했다.
나의 어릴 적 꿈은 무대 위에 서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동요대회에서 나가고 교가를 대표로 부를 만큼 나는 무대의 조명을 사랑했다. 예쁜 옷을 입고 주인공이 되어 빛나고 싶다는 욕망. 하지만 현실의 벽은 차가웠다.
유명 연기학원을 찾아갔을 때, 그들이 내 열정을 보기도 전에 내뱉은 말은 충격적이었다.
"한 달 동안 10kg 빼고 오세요. 그 정도 열정도 없으면 연기할 자격 없습니다."
나는 연기를 배우고 싶었지, 살 빼는 법을 배우러 간 게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은 나의 연기력보다 나의 '부피'를 먼저 계산했다. 고3, 공부할 시간도 모자란 때에 아빠를 설득해 다녔던 그 학원에서 나는 인형처럼 마른 친구들 사이에 끼어 들러리가 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영화감독조차 내게 면접 대신 "공부하는 것이 어때요? "라는 차가운 조언을 건넸다.
그때 알았다. 무대란 오직 '날씬한 자'들만 통과할 수 있는 좁은 문이라는 것을.
대학교에 들어간 뒤 나는 독해졌다. 2년 동안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헬스장에 주 4회 이상 출석하며 매번 2시간이 넘는 지옥 같은 운동을 건넸다. 저녁 6시 이후로는 계란과 닭가슴살 외엔 입에 대지도 않았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친구들이 먹는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했다.
마침내 목표했던 숫자에 도달했다. 키 165cm에 몸무게 52kg. 나의 중학교 동창들은 나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예뻐지니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친절해졌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에게 고백을 받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마치 나는 영화 속 '수'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승리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람들의 찬사를 먹고살게 되자, 역설적으로 나는 더 심한 허기에 시달렸다. '예뻐진 나'만 인정받는 세상을 확인하고 나니, 이제는 조금이라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죽기보다 무서워졌다. 지독한 강박의 시작이었다.
0.5kg만 늘어도 세상이 나를 다시 차갑게 외면할 것 같아, 심장이 터질 듯한 불안을 안고 헬스장으로 뛰어갔다. 다리가 조금이라도 짧아 보일까 봐 발목이 비명을 지르는 킬힐을 하루 종일 견뎌냈고, 생눈의 나를 마주하기 두려워 충혈된 눈에 억지로 서클렌즈를 밀어 넣었다.
내 몸은 쉴 새 없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먹고 싶은 욕구와 말라야 한다는 강박이 내면에서 격렬하게 충돌할 때마다, 내 위장은 그 싸움의 잔해를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신을 들볶던 그 지옥 같은 시간의 끝은 결국 만성 복통과 위염이었다. 껍데기를 지키기 위해 내면의 장기들이 타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한의원 원장님은 내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사람은 오장육부가 하나는 강하면, 하나는 약합니다. 해루아님은 타고난 위는 튼튼했지만, 막 써버려서 망가졌네요."
감사할 줄 모르고 나의 위를 괴롭힌 대가였다. 많이 먹다가, 또 지독하게 굶다가...
나의 위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30살이 넘어 사회생활에 지쳐 다시 시작한 한약 다이어트로 얻어낸 52kg의 몸. 하지만 71kg의 나를 미워할 때보다, 52kg의 나는 더 불안했다. 예뻐졌지만 자유롭지 않았고, 인정을 얻었지만 편안하지 않았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건 날씬한 몸이 아니라,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는 '조건 없는 존중'이었다는 것을.
“예쁘면 인정, 날씬하면 합격, 관리하면 유지”라는 세상의 공식을 증명하기 위해 나의 숫자를 깎아내고 사이즈를 줄여왔다. 하지만 이제 나의 몸은 안다. 그 증명은 결코 끝이 없으며, 껍데기로 얻은 박수는 결국 더 큰 공포를 데려온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
달리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순간, 나는 비로소 '살아 있는 나'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법을 배웠다. 요가로 다듬어진 호흡은 타인과 비교하던 조급함을 잠재우고, 오직 나만의 속도에 집중하는 평온함을 선물해 주었다. 주방에서 신선한 채소를 손질하며 요리할 때면, 인위적인 가공의 맛보다 재료 본연이 가진 순수한 맛이 얼마나 충분하고 아름다운지를 체감한다. 그리고 지금, 내 안의 결핍을 꺼내어 문장으로 옮기는 이 행위가 나 자신을 치유함은 물론, 누군가에게는 다정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가만히 미소 짓는다.
이제 외모라는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를 귀하게 여기기로 했다. 세상의 시선에 맞추려 나의 소중한 실체를 깎아내지 않을 것이다.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은 세상 그 무엇도 아닌 바로 '나다움'이니까. 나는 나를 온전히 사랑하는 삶을 선택한다.
오늘만큼은 거울 속의 나에게, 그 누구보다 다정한 인사를 건네본다.
"고마워. 너는 지금 이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아름다워."